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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52화 : 잠복조는 곧 미행조로 바뀌었다
『마터 2-10』 연재
그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바닥에 뒹굴며 고함을 질렀다. 누구에게든 조선 사람들에게 한 사람이 잡혀간다는 것을 알리는 일 또한 활동가의 임무였다. (2019. 10. 07)
담장에 흰 빨래가 걸려 있으면 안전한 것이고, 빨래가 없으면 시간을 바꾸어 다른 곳에서 대기하거나 주의하라는 뜻이며, 검정 색깔이면 들어오지도 말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는 뜻이었다. 류는 일터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 골목 입구에서 집을 바라보고 담장에 빨래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발길을 돌려 용산 지역의 공장을 맡은 중앙 오르그의 믿을만한 동지에게 갔다. 그는 안대길 방우창 등과 더불어 류재익의 최초 적색노조 오르그에 참가했던 노동 활동가였다. 이들은 모두 몇 차례나 좌절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기 위해서 아래로부터의 조직에 매진해 온 일꾼들이었다. 그는 서울역 뒤의 만리동 언덕에 있는 서민 주택가에 문간방 하나를 빌려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그 역시 지난번 연쇄 파업 뒤로 수배에 올라 공장을 그만두고 역 주변에서 가두노동을 하며 조직과 연결하고 있던 중이었다. 장만수가 그의 별명이었다.
류는 어두워질 때까지 부근에서 기다리다가 그의 방을 찾아 갔다. 마침 장이 돌아와 있었고 류재익은 아지트의 경계 신호를 말하고 그가 파악해 주기를 원했다. 당일 밤을 뜬눈으로 새우고 장이 나가서 그가 접촉하는 공장의 여공 조원을 시켜 사정을 알아오게 하였다. 류재익은 그동안 남산으로 올라가 소일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정해진 약속시간에 장을 만나기 위하여 중림동 전차 정류장 부근으로 가서 기다렸다. 이미 오후 세 시로 정했던 약속시간이 십오 분이나 지났지만 그는 장이 조금 늦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면서 삼십 분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러나 원칙을 어긴 것은 그의 잘못이었다. 약속한 상대가 십 분을 넘기면 그는 곧 자리를 떴어야 한다.
경찰은 아지트를 파악하고 그와 부부 노릇을 하던 학생 출신의 여공 홍 아무개를 검거했다. 다행히 류재익이 집을 비웠던 대낮이었다. 그들은 파업 당시에 체포했던 여공을 재검거하여 고문해서 홍의 인적 사항을 샅샅이 알아냈고 그녀가 류재익의 레포라는 사실도 짐작했다. 그들은 다만 그녀를 체포하면 류재익의 행적을 근접하게 알아낼 수 있으리라 믿고 잠복도 없이 그대로 덮쳐서 체포했다. 세를 내준 집 주인과 동네 사람들에게서 그들이 부부라는 것을 알아냈고, 공사장에 일 다닌다는 그녀의 행세 남편의 인상파악으로 바로 그들이 찾고 있는 류 아무개가 맞는다고 확신했다. 그녀가 류재익의 아지트 키퍼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따라서 체포된 뒤에 홍은 자연스레 류의 귀가시간에 안전 신호를 보낼 수 없게 되었던 것이었다.
홍을 검거해 놓고도 경찰은 비상망을 풀지 않고 잠복에 들어갔다. 골목 주변에 노점상과 행상으로 변장한 형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만약 장만수가 직접 갔다면 그는 먼 곳에서도 이들 잠복한 경찰의 비상망을 눈치 챘을 테지만 그도 수배 중인 몸이어서 오히려 평범한 모습의 여성을 보내면 홍의 예전 직장 동료라고 둘러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찰은 훨씬 노련했다. 그녀가 아지트인 집을 찾아가 언니 어디 갔느냐고 묻고 체포를 확인하고 긴장해서 나올 때까지 그냥 내버려 두었다. 잠복조는 곧 현장에서 미행조로 바뀌었다. 이들은 여공을 미행하여 서울역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리어카꾼 장만수를 체포했다.
서대문서의 고등계는 그들을 체포해 오자마자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장만수를 집중적으로 고문했다. 체포되면 이십사 시간을 버티어야 하는 것이 모든 조직원의 원칙이었다. 침묵하다가 정 못 견디면 수사를 교란하기 위하여 엉뚱한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대거나 허튼 장소와 시간을 말해주는 식도 있었다. 그러나 특고들은 오랜 경험과 훈련에 의하여 대번 알아챘다. 류재익과 직접 관련된 정보가 아니면 허위라고 생각되는 실토에 대하여는 더욱 무자비한 고문을 가해서 공포에 무너지게 만든다. 여성이라면 즉시 가장 부끄러운 부분을 공격하고, 장만수 같은 건장한 사내에게는 거의 현장에서 지금 바로 병신이 되거나 처참하게 고통을 당하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악형을 가한다. 손톱을 뽑거나 성기의 요도에 철사를 꽂아 넣고 전기를 통하게 한다거나 눈 한쪽을 찔러 아예 멀게 할 수도 있었다. 그들도 체포 한 두 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장만수는 세 시간 만에 무너졌다. 아니 다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한 번의 허위 정보로 그는 손톱이 뽑혔고 이후에 전기 고문을 받았다. 지난밤에 류재익이 자기 방에서 자고 갔다는 사실만을 실토했다. 그리고 자신의 방 주소를 가르쳐주고 말았다. 저녁 세 시에 류재익과 중림동 전차 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한 사실은 끝내 감출 수 있었던 것이다. 장으로서는 이만한 시간 여유라면 경험 많은 조직의 지도자인 류가 무사히 도피를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따라서 그가 발설한 시간도 오후 세 시였다. 그들 조선의 순수한 활동가들은 체포 뒤 이십사 시간이라는 원칙을 지키려고 애를 썼다. 전설적인 활동가들 가운데 이러한 원칙을 지켰던 이들은 수십 명이었지만 강자가 아닌 한 옥살이 중에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대개 몇 시간을 버티기는 했다. 호흡을 참아본 이들은 말했다. 이삼 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또는 오 분이면 전장의 육박전도 대개는 끝이 난다고. 오 분은 일생이 지나는 것처럼 긴 시간이며 중요한 오 분은 역사를 좌우하기도 한다고. 어쨌든 장만수는 자기의 방 주소만을 불었지만 문제는 그가 귀가하는 길이란 중림동 전차 정류장에서 내려 만리재 언덕길을 오르는 그 길이었으니 너무 가까운 장소였다.
겨울 오후 거리는 매서운 바람이 몰아쳐서 춥고 행인도 별로 없었다. 상점의 유리창문은 하얗게 성에가 끼었고 밖으로 내밀어 놓은 난로 연통마다 흰 연기가 올라왔다. 한길에 전차와 승용차가 가끔씩 지나다녔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차만을 확인하고 가리라 생각한 류재익은 남대문 방향에서 휘어져 들어오는 전차를 바라보고 서있었다. 위의 전선에 접선된 도르래 바퀴에서 가끔씩 합선 불꽃이 튀는 게 보였다. 전차 안에는 서있는 승객이 제법 많이 보였다. 추위에 떨며 삼십 분이나 기다렸던 류재익은 내리는 승객들 중에 장만수가 있을까 싶어서 정류장 쪽으로 바삐 다가섰다. 전차 차장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만한 거리까지 다가섰을 때에 한 떼의 남자들이 출구로 몰려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형사들이었다. 잠복근무 중에는 그들도 빈민 노동자 행상 등으로 변장을 하니까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체포를 위하여 경찰서에서 막 바로 출동해 나온 게 틀림없었다. 도리우찌나 중절모를 쓰고 양복 상의에 당꼬바지 또는 각반을 차고 외투에 금테안경 쓰고 콧수염 기른 자들은 그들 모두가 고등계 형사임을 류재익은 경험으로 대번에 알아보았다. 전차에서 쏟아져 내리는 형사들을 본 류재익은 얼른 등을 돌리고 봉래동 방향으로 되돌아서 걸어갔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점점 잰걸음으로 걸었다. 인적이 드문 도로변에서 전차에 다가서다가 방향을 바꾸어 빠르게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쉽게 눈에 띄는 행동이었다. 전차에서 내리던 형사들 중에 몇 명이 그를 주목하고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류재익이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여 봉래동 다리에 올라섰을 때 다리 건너편에서 걸어오는 대여섯 명의 형사들과 마주쳤다. 그들도 장만수의 집으로 몰려가던 다른 조의 형사들이었다. 이제는 돌아설 수도 없었다. 류재익은 긴 호흡으로 숨을 갈아 앉히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앞만 보며 걸어갔다. 형사들도 그의 존재를 모르는 듯 천천히 걸어왔다. 앞에서 오는 형사들은 매서운 눈길로 류재익의 아래 위를 훑어보며 지나갔다. 뒤에서 쫓아오던 형사들도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류와 그들이 막 엇갈려 지나치는 순간에 양편의 형사들은 직감적으로 그가 자기들이 쫓던 인물임을 알아차렸다. 조선인 형사가 몸을 휙 돌려 류의 목을 뒤에서 휘감으며 끌어안고 함께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형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그의 팔 다리와 목을 잡고 눌렀다.
“당신 류재익이지?”
“그게 누굽니까? 나는 철도국에 다니는 김가인데요. 사람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숨 가쁘게 대답하는 류의 뒤로 꺾인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고 다시 포승줄까지 묶었다. 류재익은 온몸을 버둥거리며 외쳤다.
“놔라, 이 더러운 왜놈들아!”
그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바닥에 뒹굴며 고함을 질렀다. 누구에게든 조선 사람들에게 한 사람이 잡혀간다는 것을 알리는 일 또한 활동가의 임무였다. 길 가던 조선인들은 다가오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지켜보거나 겁을 먹고 못 본 척 황황히 그 자리를 비켜서 지나갔다. 형사들은 그를 한참 동안 발길질과 주먹으로 흠씬 때려서 기를 죽인 뒤에 저희끼리 희희낙락하며 끌고 갔다.
류재익이 검거되기 이전에 많은 활동가들이 이미 경찰에 잡혀와 있었다. 류의 조직 추산으로는 서울에서 이백여 명, 지방에서 백 육십여 명 정도였다. 경찰은 류재익이 상해와 연락하여 전국적인 조직을 결성하려 했다는 혐의를 두고 자백을 받기 위하여 악랄한 방법으로 고문을 시작했다. 나중에 나온 출판물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때리고 차고 물을 먹이고 달아매고 하다가 나중에는 쇠꼬챙이를 불에 달구어 넓적다리를 지지고 하였다. 죽음으로써 자기의 신념을 지키고 그 운동을 지키려는 숭고한 정신에서 류가 침묵으로 일관하자 초조해진 경찰은 음식도 잘 못 먹고 보행도 못하는 류 동무를 자기들이 업고 부축하여 취조실로 끌어내어 전기고문까지 하였다. 류는 나중에 그의 동무들에게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죽을 것을 각오하였다’라고 회상했다.
고문을 맡은 것은 서대문서에서 악명 높던 두 명의 조선인 형사들이었다. 그들은 먼저 류재익의 웃통을 벗겨 역기할 때 쓰는 것과 같은 종류의 좁고 긴 나무의자에 눕히고 양손과 양발을 묶어 꼼짝 못하게 했다. 한 놈은 그의 가슴팍에 말 타듯 올라타고 입을 벌려 수건을 물리고 재갈을 채워 입으로는 물을 마시거나 숨을 쉴 수도 없게 만들었다. 또 다른 자는 구두를 벗고 고무장화로 갈아 신고는 의자에 바짝 다가서서 피고문자의 얼굴을 좌우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양다리로 단단히 끼고 물이 가득 찬 주전자의 주둥이로 코에 물을 부었다. 입이 막힌 상태에서 코로 물이 들어가고 호흡이 불가능해지자 물이 폐로 들어가 내장이 터져버릴 것 같은 고통이 몰려왔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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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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