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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53화 : 옳은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소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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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잘 걷지도 못하는 그가 이토록 삼엄한 감시 속에서 또 다시 탈출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2019. 10.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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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혀를 깨물고 죽을 수도 없게 입 안에 수건으로 재갈이 물려져 있어서 고통으로 꿈틀거리다가 혼절하기를 되풀이 했다. 경찰은 물고문이 통하지 않자 자석식 전화기의 전선을 젖은 몸에 감아놓고 페달을 돌려 전기 고문을 했고 불에 달군 인두로 허벅지를 지졌다. 류재익은 자신의 살이 타 들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비명을 질렀다. 그의 조직의 실질적인 활동이었던 연쇄파업에 대해서는 이미 먼저 잡힌 이들이 진술해 놓은 조서가 있어서 조사 받기가 수월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조직원 개개인에 대한질문이 나왔을 때 그 사람은 사회주의가 뭔지도 모르고 동생이나 친구 때문에 참가했다는 식으로 거짓 진술하여 본인들의 형량 부담을 덜어주는 일뿐이었다.

 

이러한 고문과 악형에도 류재익이 굴복하지 않자 경찰은 두고두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주어 자백을 받아내려고 장기 취조에 들어갔다. 이때 그는 유치장에 있지 않고 고등계 사무실 이층 분실에 있었다. 경찰은 그가 격렬한 열병 혹은 각기 때문에 따로 분리 수용했다고 발표하고 있으나, 이는 고문 후유증을 숨기려던 것이며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것은 유치장에서 일당끼리 서로 통방을 하여 사건의 내용을 적당히 짜 맞출 수도 있었고, 고문 사실을 폭로하며 소동을 일으킬까 염려해서였다.

 

삼월 중순의 어느 비 오는 밤이었다. 류재익은 오랜 취조로 지친 형사가 졸고 있는 틈을 타서 길가로 난 창문을 넘어 밖으로 뛰었다. 오랜 고문과 각기병으로 비틀거리며 광화문 쪽을 향해 뛰고 걷고 하면서 그는 경찰의 추적에서 되도록 멀어지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정동 입구까지 이르니 벌써 경찰의 추적하는 호루라기 소리며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정동 골목으로 들어서서 마침 지나가는 장작수레 뒤를 밀어주며 따라갔다. 추적이 급해지자 류는 어느 건물의 담을 뛰어넘었다. 그가 들어간 곳은 정동 재판소 건너편의 미국 영사관이었다. 그는 그곳이 어디인줄도 모르고 비를 피해 처마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가 한꺼번에 몰려온 피로와 풀린 긴장으로 혼절해 버렸다. 얼마나 지났는지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깨어난 그의 앞에는 장총을 겨눈 제복 입은 서양군인이 서있었다.

 

군인들은 그를 경비실로 끌고 갔고 류는 서투른 영어로 자신은 정치적 망명자이며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들은 모르는 척했다. 미국영사는 그를 경비실에 앉혀 놓고는 경찰에 전화해서 도둑을 잡았으니 데려가라고 신고했다. 경찰서를 탈출한 류재익을 찾기에 피 눈이 되어있던 일본 경찰은 도둑 신고 따위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무시하다가 몇 번이나 독촉 전화를 받고서야 할 수 없이 순사를 보냈다. 잔뜩 귀찮은 표정으로 도둑을 인수하러 온 순사는 그가 류재익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놀라서 지원 병력을 부르며 소란을 떨었다. 혼절한 채 서대문 경찰서로 실려간 류는 주사를 맞고서야 정신을 차렸다. 경찰은 그가 러시아 대사관에 들어가 망명을 하려다가 지척에 있는 미국영사관에 잘못 들어갔다고 생각하고 공산주의 국가로 가려 했다는 이유로 무수한 매질과 욕을 가하였다. 살려는 생각도 없이 오히려 자살하려고 생각할 정도의 가혹한 고문이었다. 손에 자동식 수갑을 채우고 발에는 커다란 쇳덩이를 붙들어 매어 수족을 묶인 몸이 되었다. 그리고 허리에는 방울을 차서 몸을 움직이면 달랑달랑 소리가 나서 감시자의 졸음도 깨우도록 해두고 문이란 문은 다 열쇠를 굳게 채운 뒤 그 열쇠는 요시노 고등계 주임이 퇴근하면서 자기 집으로 가지고 갔다. 이것이 류재익 제일차 탈출 실패의 전말이다.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잘 걷지도 못하는 그가 이토록 삼엄한 감시 속에서 또 다시 탈출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다시 한 달이 지난 4월의 어느 늦은 밤이었다. 류재익은 철통같은 감시망을 뚫고 드디어 두 번째의 탈출에 성공한다. 비상경계망을 펼친 가운데 전 서울의 경찰이 개미떼 같이 풀려나와 역마다 지키고 교외로 나가는 길목마다 지키며 검문검색을 실시했고 정사복 경찰들은 집집마다 이 잡듯이 뒤지며 남산 북악산 인왕산 낙산 등지에서 야간 매복까지 했지만 그를 잡지 못했다. 이에 요시노 고등계 주임은 인책 사임을 당했으며 사건은 경기도 경찰부로 넘어가고 말았다. 탈출한 류재익에게는 오백 원의 현상금까지 걸렸다.

 

그의 탈출 경과는 나중에 밝혀졌는데 담당 검사 측의 기록과 해방 이후 활동가의 증언이 조금씩 다르게 알려졌다.

 

전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가 탈출하기 12일 전에 계도의 편의를 위하여 족쇄는 채운 대신 수갑을 풀어주었다. 양손이 자유로워지자 그는 곧 탈출 준비에 착수했다. 그는 한 달여 전에 혼자 갇혀 있다가 이층의 고등계 훈시실로 옮겨졌는데 그 안에는 김 아무개 등 조선인 사상범 예닐곱 명이 갇혀 있었다. 다른 이들은 수갑도 채우지 않았고 계단 아래 일층에 내려가 대소변도 볼 수 있었지만 류재익은 훈시실 밖으로 한 발도 나가지 못하도록 용변도 변기를 가져와서 보게 했다.

 

수감자들은 유리병에 담긴 우유를 배달해 마시고 있어서 양철로 된 병뚜껑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는 밥알을 짓이겨서 족쇄 안에 넣어 형을 뜬 다음 우유병 뚜껑을 구부려 열쇠를 만들었다. 실험을 해보았더니 놀랍게도 족쇄가 쉽게 풀렸다. 침상 밑 나무마루 틈새에 양철 열쇠를 숨겨 두었다. 침상 밑에는 개인 사물을 그대로 넣어 두도록 했기 때문에 외투와 함께 손톱깎이에 붙은 작은 칼도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의 안감을 도려내어 변장용 마스크를 만들었다. 한밤중에 모두가 잠들었을 때에 한 가지씩 준비하여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잡힐 때에 입고 있던 외투 안쪽에는 만약을 대비하여 안감을 찢어 지폐를 넣고 바느질 해두었던 비상금도 있었다.

 

그날 저녁밥을 일부러 남긴 류재익은 이를 같은 방에 있던 이질 환자 김 아무개에게 주었다. 김은 좋아라고 이를 얻어 먹었다. 밤 12시경부터 김은 순사에게 변소에 가고 싶다고 애원했다. 거듭되는 애원에 못 이겨 순사가 새벽 4 시에 그를 데리고 변소에 갔다. 이때 류는 재빨리 열쇠로 족쇄를 풀고 마스크를 쓴 다음 침대 밑의 외투를 입고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당당하게 정문을 나섰다. 문 앞에서 보초 순사가 변장한 그를 형사로 알고는 ‘이제 퇴근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하자 수고하라는 답례까지 하면서 그는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비는 언제라도 그가 도주용으로 쓰려고 안감 속에 꿰매 두었던 비상금으로 지불했다. 그는 택시를 몇 번씩 바꿔 타면서 생각해 두었던 최후의 은신처로 달려갔다. 

 

그러나 후자의 진술은 앞의 검사의 기록과는 다르다. 류는 고등계 훈시실에 야간 감시자로 들어오는 일본인 초임 순사와 사귀게 되었다. 경찰관 중에는 애초에 선량한 사람들을 보호하고 악한 자를 잡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경찰 시험을 치른 일본인 청년이 있기 마련이었다. 천성적으로 밝고 이타적인 성격을 가진 모리다라는 젊은이도 그런 사람이었다. 사회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일본의 천황주의를 싫어하고 민주주의적 사상을 가졌으며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많은 흥미를 가진’ 모리다는 야간에 근무하러 들어오면 ‘인간평등을 위해 사회주의자가 되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류재익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했다. 처음 붙잡혀 왔을 때에는 두 사람이 일개조가 되어 지키는 바람에 단둘이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감시가 완화되어 모리다 혼자 당직을 서게 되자 먼저 일본어로 말을 걸어왔다. 류는 특유의 ‘선전선동의 힘으로 모리다를 감화시켜 그의 호감과 이해를 얻었으며, 모리다는 그의 혁명적 열정과 지성 및 풍부한 인간성에 감복되어’ 그의 탈출을 돕고자 했다는 것이다.

 

류재익은 천황제야 말로 자본가와 권력자들이 인민을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정신적인 족쇄이며, 일본은 천황제를 폐지하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가 되어야만 완전한 인간평등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모리다에게 말해 주었다. 일본이 제국주의로 아시아를 침략하고 조선이 그 피해자가 된 것도 끝없이 팽창하지 않으면 자신을 유지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결과라고 류는 말했다. 그는 자신의 조직원들에게 말할 때처럼 다정다감하고 신념에 찬 얼굴로 모리다에게 설명했다. 동서양과 남녀의 구별 없이 모든 세상의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 권리가 있으며 인류가 그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자신의 한 목숨은 조금도 아깝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모리다는 그의 말에 깊이 감화되고 말았던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밤이 깊도록 계속되었고 모리다는 자신의 비망록에 그의 말을 받아 적기도 하며 열렬한 동의를 표시했다. 초임순사인 모리다는 밤마다 야간 당직에 들어왔고 여러 차례 깊은 대화를 나눈 두 젊은이는 서로 간에 마음을 열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어느 날 한참이나 대화를 나누고 나서 류재익은 조심스럽게 지나가는 말처럼 던져 보았다.

 

 “나는 밖에 나가고 싶소. 옳은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소.”

 

모리다의 얼굴에서 일순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리고는 진지한 말투로 대답했다.

 

 “밖에서는 활짝 피어 있던 벚꽃도 이곳에만 들어오면 시들어 버립니다. 그러나 시들지 않고 피어나는 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친구가 가버리면 외로워지겠지요. 그렇지만 소란을 피우지는 않을 겁니다. 차 한 잔이 식을 때까지는.”

 

이날 밤 류가 족쇄를 풀고 옷 보퉁이를 이불 속에 넣어 불룩하게 해놓고 다시 창문을 넘어 탈출한 후 모리다는 약 삼십 분이 지나서야 호루라기를 불며 범인이 달아났다고 고함을 질렀다. 숙소에서 잠자다 뛰어나온 순사들은 건물 안을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못한 기마경찰대들이 말을 끌고 나오느라 소란을 떨었다. 경찰차와 오토바이들이 몰려 나갔다. 집에서 자다가 달려온 요시노 주임은 권총을 뽑아들고 미친놈처럼 화를 내며 사무실을 돌아다녔다. 소란이 벌어진 몇 시간 뒤에 류재익을 놓친 당사자인 모리다 순사가 조선인 사상범들이 잡혀있는 유치장에 나타났다. 갓 스무 살을 넘긴 애송이 모리다는 다른 일본인 순사들과는 달리 정이 많고 순수하여 조선인 수감자들에게 은밀한 동정을 보여주던 사람이었다. 탈주자를 잡는다고 경찰서가 온통 뒤집혀 있었지만 모리다는 야근으로 조금 피곤해 보였을 뿐 태연한 얼굴이었다. 그는 평소처럼 웃는 얼굴로 유치장에 갇힌 조선인들 앞에 서더니 어젯밤에 자신이 만든 짧은 노래를 불러 보겠다고 말했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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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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