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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가 하고 싶은 이야기, X1 이은상
‘프로듀스 X 101’의 X, 이은상
의도치 않게 ‘프로듀스’ 시리즈의 온갖 문제점들을 무겁게 떠안게 된 소년이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2019.10.04)
Mnet ‘프로듀스 X 101’ 최종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마지막 등수로 이름이 불린 붉은 머리 소년 이은상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 전부터, 이 고등학생 참가자는 웃지도, 울지도 못한 채로 혼이 나간 듯 멈춰 있었다. 감정의 고저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표정과 말투는 ‘프로듀스’ 시리즈가 어째서 인권 차원에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지 온몸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프로듀스 X 101' 마지막 방송에서의 이은상 / 출처- Mnet '프로듀스 X 101' 캡처
X1으로 데뷔하고 난 뒤, 이은상은 검은색 머리로 데뷔 무대에 섰다. 요즘의 그는 ‘프로듀스 X 101’ 마지막 방송 당시의 붉은 머리 소년과 같은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는다. 늘 온유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이은상은 멤버들 중 누군가가 우스운 행동이나 말을 하면 옆 사람을 붙들고 온몸을 흔들며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웃기도 한다. 여전히 말수는 적고 다른 멤버들에 비해 행동이 느리기까지 하지만, 붉은 머리 소년이 검은 머리 소년으로 거듭나는 시간 동안에 조금이나마 그는 여유로워졌다. X1으로서 보내는 하루하루를 즐기려고 노력하면서.
엑스원 타이틀곡 ‘FLASH’ 무대 / 출처-Mnet 공식 유튜브 'MPD 입덕직캠' 캡처
X1의 데뷔곡 ‘FLASH’의 무대에서 이은상은 ‘프로듀스 X 101’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왔을 때보다 훨씬 더 자신감에 차 있다. 누구보다 차분한 얼굴을 하고, 묵묵하게 춤을 추다가 자신의 파트 ‘가 되면 그 짧은 시간 안에 무대마다 다른 제스추어를 선보인다. 타이틀곡 ‘FLASH’에서 뿐만 아니라, 서브곡 ‘웃을 때 제일 예뻐’에서도 변화무쌍해지는 그의 제스추어들은 변화 그 자체가 콘셉트가 된다. 이은상이 지닌 꿈의 무게는 도전과 성장을 키워드로 삼았던 ‘프로듀스 X 101’보다도 이 몇 개의 무대 위에서 더 잘 드러난다. ‘우산을 들어줄게’라는 짧은 한 줄에서 우산을 들었다가, 하트를 작게 만들었다가, 크게 만들었다가, 우산을 내밀기까지 하는 이 18세 소년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엑스원 타이틀곡 ‘FLASH’ 무대 중 ‘우산을 들어줄게’ 파트 / 출처-Mnet 공식 유튜브 'MPD 입덕직캠' 캡처
“진중해요.” 그를 지켜본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이은상에 대해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그에 관해 말하며 기분 좋게 웃었다. “말이 없고 차분해요. 정말 노력하는 친구고.” 말없이 강렬하게 ‘프로듀스’ 시리즈의 폐해를 각인시킨 연습생은 그 대가로 얻은 무대에서도 여전히 조용하게, 그러나 누구보다도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 등수인 11등을 일컫는 X라는 미지수 때문에 얻은 상처는 금세 아물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의도치 않게 ‘프로듀스’ 시리즈의 온갖 문제점들을 무겁게 떠안게 된 소년이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많은 제스추어를 연구해온 것처럼 매일매일 진중하게 음악과 무대를 대하는 태도가 바래지 않도록. 아이돌 그룹 X1의 멤버 이은상이기 전에, 스스로 지켜야 할 것은 이은상이라는 사람이니까.
관련태그: X1, 이은상, 프로듀스 101, FLASH
전 웹진 IZE 취재팀장.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로, 각종 매거진, 네이버 VIBE, NOW 등에서 글을 쓰고 있다. KBS, TBS 등에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예능에 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아이돌 전문 기자로서 <아이돌 메이커(IDOL MAKER)>(미디어샘, 2017), <아이돌의 작업실(IDOL'S STUDIO)>(위즈덤하우스, 2018),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 방용국 포토 에세이>(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우주북스, 2020) 등을 출간했다. 사람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