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터 2-10] 51화 : 일본인 철도원이 줄고 있다는 소문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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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의주간 기관수들은 장차 대륙으로 담당 구간을 옮겨갈 것에 대비하여 일 년에 보름씩 남만철도국의 대륙기차를 타고 답사 교육을 받곤 했다. (2019. 10.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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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박은 일본군 장교들과 섭외하여 소가죽과 육류는 물론 군마도 납품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일본군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가 조선인이며 만주인 가정에서 자라나 만주국의 교육을 받아 일본어에도 능통했고, 노력하면 누구나 일본인이 될 수 있다는 사고를 가지고 있어서 신뢰할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는 양아버지 첸 씨에게 정색을 하고 말했다.

 

 “우리는 이제 확실하게 일본 편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습니다.”

 

그는 비록 조선인이 일본 다음의 이등국민이지만 삼등은 중국인 사등은 만주인 오등은 몽고인이라고 한다면 두 번째가 어디냐고 생각했다. 그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일등국민인 일본인과 똑같이 될 수가 있잖은가. 유럽이 아메리카를 발견했던 것처럼 만주는 일본인이나 조선인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만주사변 이후 조선 총독부는 적극적으로 이민을 권장하여 농민은 물론이고 수많은 노동자 장사꾼 도시 서민들이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향하였다. 이주민은 거의 백오십 만에 달하고 있었다. 조선어판 일간신문과 잡지에서는 이들을 개척자라고 추켜세웠다. 일본의 황도정신은 민족협화의 정신이며 타민족을 포용하여 이상세계를 이루자는 것이다. 현재 만주국에서 교육 받은 자는 아직은 일 할 정도지만 일본의 좋은 점을 받아들인 동양도덕을 기초로 하여 서양의 소란스러운 점은 받들지 않을 것이다. 만주국은 동양정신에 기초한 건국이념에 따라 서양처럼 의회정치를 하지 않고 인민과 관이 함께 하는 협화회 중심의 도덕정치를 하고 있다. 이는 도덕의 세계 건설을 목포로 삼는 이십 세기의 위대한 창조이며 인류의 대 로망의 실험이라고 선전했다. 만주에 거주하는 팔십 만에 지나지 않는 일본인이 사천만의 중국 민족을 지배하는 것이 바로 개척자의 정신이며, 백오십 만의 조선인은 이등이지만 일본을 모방한 식민자로서 일본의 만주 지배에 편승하여 조선의 확대된 영토인 식민지를 만주에 건설해야 할 사명은 조선독립보다 더욱 중대한 사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청년은 군납회사를 세우고 양아버지 첸에게서도 분가하여 통조림 공장을 설립했다. 같은 무렵에 그는 일본 여인과 교제를 시작한다. 미인이고 교육도 받았다고 하지만 그녀는 아마도 만주에서 전사한 군인의 아내였을 것이며 일본인 전용 카페의 마담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이제 일본인에 성큼 다가가고 있었다. 연극은 그녀와의 연애담과 결혼을 대단원으로 행복한 결말을 짓고 있었다. 만주의 조선인들을 위한 대중 선전극으로 총독부와 만주국의 지원을 받았을 것이었다.

 

십여 년 전부터 조선의 대도시마다 중국인 노동자들이 몰려들고 교외에는 중국 농부들이 야채 농사를 짓는 큰 농장들이 많았다. 만보산 사건의 잘못된 선전으로 평양과 평북 지방에서는 중국인들에 대한 살상 사건이 많이 일어났고 그때의 상흔이 조선인과 중국인들 사이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일본인은 이러한 갈등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역과 행정기관이 있는 이른바 본정통에 모여 살았기 때문에 중국인 노동자들과 직접 접촉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인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경쟁하고 주거지에서 늘 부딪쳤기 때문에 점점 더 갈등이 쌓여갔다.

 

국경지방인 신의주는 강 건너 안동과 이웃동네나 마찬가지여서 아옹다옹하면서도 서로 음식과 풍속이 뒤섞여 있었다. 중국인 노동자는 아무런 증명서 없이도 나룻배를 타거나 얼어붙은 강을 건너 조선으로 들어와서는 조선인 보다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하여 일본인 기업주들이 때때로 저항하는 조선인 노동자 대신 고용하기에 편했다. 총독부에서는 식민지 경영의 어려움을 나중에야 깨닫고 중국인의 조선 내 취업을 금지시키도록 했으나 일본인 농장주들이나 기업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만주에서는 반대로 중국인들이 조선인들을 멸시하며 망국노라고 배척했다. 그러나 항일무장 투쟁을 하는 중국 조선의 젊은이들은 항일연군을 조직하여 함께 싸우고 있었다. 개척 농민이 아닌 기술자 교사 관료 상인 등 조선의 중산계층은 만주의 지배자가 누구인가를 뼈저리게 깨닫고 있어서 자기의 몸과 마음을 일본인과 똑같게 하려고 노력했다.          

 

평양역에서 심야의 휴식과 기관차 교대를 마치고 마에다 야마구치 이일철 세 사람은 다시 신의주를 향하여 철로를 달려 나갔다. 청천강 철교를 건너 정주 곽산 선천을 지나며 날이 밝아왔다. 신의주에 도착하여 화물차량을 현지 차량계에 넘기고 철도여관에 들어가 쉬기 전에 세 사람은 기관수들이 종점에서 늘 그러듯이 술 한 잔을 나누기로 했다. 마에다가 신의주며 압록강 건너 안동에서 봉천 신경까지 훤히 알고 있어서 그들을 중국 요릿집으로 데려갔다. 마에다가 중국어 몇 마디로 음식을 시키고는 두 후배들에게 말했다.

 

 “나는 내일 아침에 신경으로 출발한다. 자네들은 앞으로 몇 년 경성 신의주 선로를 익히면 나처럼 대륙선을 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여객열차를 담당하게 될지도 모르지. 점점 일본인 철도원이 줄고 있다는 소문이다.”

 

기관수들 사이에서 급행 여객열차의 기관수는 철도원의 꽃이라고 말해왔다. 야마구치는 마에다의 말에 제법 흥분된 표정으로 물었다.

 

 “그, 그게 무슨 근거가 있는 소문입니까?”

 

 “전쟁이 확대될 거라는 소문 말이다. 철도원들은 교육도 받았고 징집되면 장교로 임관된다.”

 

야마구치는 마에다의 말에 픽 웃어버린다.

 

 “군대 징집으로 철도원이 줄어들어 자리가 많이 나게 된다는 말이군요. 제가 기관수를 계속하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얘기로군요.”

 

 “이 사람아, 자넨 벌써 삼십 대 중반 아닌가? 전쟁 막판이 되어야 자네 같은 늙다리들을 부르겠지.”

 

야마구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철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네 같은 조선인들에게 기회가 많아지겠군.”

 

이튿날 두 사람은 강 건너 안동에 가서 만주 초입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둘러보았다. 갔던 길을 되짚어 다른 기관수가 이끄는 의주 경성 간 화물열차를 타고 돌아왔고 이전과 같은 근무가 계속되었다. 경성 의주간 기관수들은 장차 대륙으로 담당 구간을 옮겨갈 것에 대비하여 일 년에 보름씩 남만철도국의 대륙기차를 타고 답사 교육을 받곤 했다.

 

그해 겨울에 류재익 사건이 온 세상을 흔들어 놓았다. 이이철과 한여옥이 차려 놓은 떡집은 차츰 인근 양평정과 샛말에까지 알려져 단골들이 늘어났고 박선옥의 외조부모네 집에서 떡을 받아다 파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들은 막음이 고모와 의논하여 집에서 함께 떡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대가마솥 세 개와 떡시루 셋, 안반, 떡메, 절구, 공이, 함지, 각종 무늬의 떡살, 어레미 체, 홍두깨 등 크고 작은 도구들을 마련했다. 그래도 시대가 좋아져서 시장거리에는 정미소가 두 군데나 있었다. 찹쌀, 멥쌀, 잡곡, 등속을 며칠에 한 번씩 쓸 만큼 가루로 빻아왔고 팥, 콩, 녹두, 참깨, 꿀, 기름 같은 고물이나 속에 쓸 것들은 틈틈이 만들어 두었다. 막음이 고모가 집에서 놀면 뭐하냐고 부업이라도 벌여 아이들 월사금에 보탠다고 소매를 걷고 나섰다.

 

한여옥은 그때 장산이를 잉태하여 차츰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이이철은 마음대로 모임에 나다니기가 점점 미안해져서 일주일에 한두 번 외출을 했고 대개 낮에는 떡을 팔거나 배달을 가고 저녁에는 이튿날 오전부터 제작할 물건 준비를 했다. 큰일은 주로 자신이 했고 떡을 썰거나 빚거나 모양을 찍고 속을 넣는 섬세한 일들은 한여옥과 막음이 고모가 방안에 다정히 앉아서 해냈다. 그날도 한여옥과 막음이 고모는 가겟방에서 떡살에 절편 무늬를 찍어 곱게 써는 작업을 하고 이철은 가마솥마다 쌀가루 앉힌 시루를 얹고 불을 땐다 물을 긷는다 장작을 나른다 하며 한창 바쁘게 돌아치던 때였다.

 

 “오라버니, 큰일 났어요!”

 

방안의 여자들도 이철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을 정도로 놀라서 바라보니 유리문을 열고 뛰쳐 들어오는 것은 박선옥이었다. 그녀는 신금이의 조수로 방직공장의 적색노조 야체이카 세포로 두어 해를 보내는 동안에 직공 조장이 되었고 조직에 대해서도 깊이 알고 있는 이철의 기본 오르그였다. 그에게는 영등포에서 열 손가락에 드는 귀중한 동지였던 셈이다.

 

 “이것 좀 보세요.”

 

그녀는 신문을 들고 있었다. 그녀가 내민 신문은 아직도 인쇄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오늘자 석간이었다. 일면 머리기사에는 류재익의 체포 소식과 함께 그의 도피 과정이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경무국에서는 어렴풋하게 류의 지하조직에 대해서 파악하고 있었다. 경성에서 연쇄파업이 빈번해지고 각 공장들에서 주동했던 남녀 노동자들을 문초하는 가운데 중앙에 근접한 자의 실토가 나왔다. 사건을 담당한 서대문서와 용산서 등에서는 문건을 대량으로 압수했고 그중에서 같은 종류의 지침 같은 문건을 발견했다. 그들은 적색노조 중앙을 파악하려고 심문을 강화했다. 강화한다는 것은 거의 살인적인 고문이 가해졌음을 의미한다. 조사 도중에 한 사람이 사망했고 둘은 예심 중에 형무소에서 옥사할 정도였다. 경무국은 지난 서류철에서 류재익이 일본에서 검거되어 조선으로 압송된 사실과 그의 인적사항이 전향한 적색노조 조직원의 진술과 맞아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경무국은 얼마 안 가서 그가 류재익임을 확신하고 경성의 전 경찰서 고등계에 첩보로 명령을 내려 보냈다. 그를 체포하는 자는 일 계급 특진과 함께 막대한 포상금을 받을 것이었다.

 

류는 자신과 접근하여 연락을 도맡았던 여성 노동자가 있었다. 은신처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녀의 자취방이 있었고 김형신이 체포된 날 그는 즉시 그녀와 함께 방을 얻어 아지트 부부가 되었다. 동네 사람들의 의심을 사지 않으려고 류는 도로 공사판에 일을 다녔다. 그가 아지트 키퍼인 그녀와 나눈 원칙은 귀가 시간을 지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집을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주위 정찰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가기 전에는 그녀가 먼저 골목 바깥 큰길까지 나아가 전차 정류장 주위를 살피고 들어왔고 그가 일을 마치고 들어올 때면 한 정거장 전에서 내려 도보로 걸어오면서 거리의 동향을 살핀다. 골목 입구에서 집 방향을 바라보고 안전 신호를 확인했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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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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