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은 여러 대학에서 공연예술이론 및 예술학 일반을 가르치며, 변호하고 싶은 아름다움을 만났을 때 비평을 쓴다. 가끔 사진을 찍고 노래 부른다. 은 프랑스에서 그가 만난 아름다운 예술과 사람들, 사라진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비평 에세이다.
책의 재미를 느꼈던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지금도 책의 재미를 느끼는 것을 전제로 한 질문 같아 답변하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저는 주로 고통을 주제로 삼는 동시대 예술에 관한 연구를 하는데요. 독서 역시 연구의 일환으로 이루어질 때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니 책이란 제게 이완을 돕기보단 긴장을 주는 매체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책 읽기를 그다지 즐겨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이완이 필요할 때는 오락을 하거나 요리를 해요. 독서가 재미있던 순간은 어릴 때 완결을 기다렸다 한꺼번에 빌려와 쌓아 놓고 엎드려 만화책을 보던 날들에 귀하게 두고 온 것 같습니다.
책 읽는 시간은 작가님께 왜 소중한가요?
물론 공부하듯 책을 읽을 때에도 빛나는 순간들은 있습니다. 좋아하는 철학자의 한 문장에 그의 우주가 담겨 있는 것을 느낄 때, 그 우주가 너무 아프고 아름다울 때 큰 숨을 내쉬며 책장을 덮고 가만히 있곤 해요. 그럴 때 창 밖으로 녹음이 가득하면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저는 책을 아주 느리게, 아주 조금만 읽는데요. 제 호흡대로 마음껏 느릴 수 있어서 책 읽는 시간이 소중합니다. (반면 어느 순간 사유를 무화시키고 그저 흠뻑 빠져들게 만드는 픽션들로 도피하는 시간 역시 드물고 소중합니다. 오늘 추천드릴 다섯 권의 책은 그런 것들 중에 골라보았어요.)
요즘 작가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어쩔 수 없이 고통에 관한 것들입니다. 가령 동물들과 전쟁들이요. 근자에 여유가 생긴다면 바버라 J. 킹의 와 올가 토카르추크의 을 읽으려 합니다.
최근작 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대체로 많은 순간에 독자가 아니지만 거의 언제나 관객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따라 한 편의 공연처럼 삶이 우리를 지나가고 있으니까요. 은 그 삶을, 세계를 바라보는 한 시선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여러분을 지나가는 것들이 부디 빛나기를, 잘 전송하시기를, 언제 어디서든 슬프고 아름다운 관객으로 살아가시기를 빕니다.
심윤경 저
난독증을 가진 소년 동구의 이야기입니다. 역사의 질곡이 지나가는 동안 오직 자신이 지닌 선함으로 동그랗게 빛을 밝히는. 훗날 심윤경 작가는 동구에게 짐을 지운 것에 미안해하며 착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설이』를 쓰기도 했지요. 그렇지만 저는 세상에 너무 선한 것보다 더 아름답고 아린 것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사노 요코 글그림/황진희 역
태어나고 싶지 않아서 태어나지 않았던 아이가 끝내 태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입니다. 태어나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일들이 아무렇지 않겠지만, 아이는 태어나 모기에 물리기를, 넘어져 다친 뒤 사랑하는 이가 붙여준 반창고를 자랑스레 간직하기를 선택합니다. 이토록 아픈 세상에서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의 의미를 더듬어보는 요즘인데요.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윤성희 저
윤성희 작가의 문체를 정말 좋아합니다. 숨막히게 흘러가는 생들이 얽히는데 그 얽힌 틈새로 빛이 들어요. 무심한 듯 담담하지만 마음에 구멍이 뚫립니다. 프랑스로 유학 갈 때 짐에 넣어갔던, 언제나 곁에 두고 싶던 사랑하는 한글 문장이에요.
안톤 체호프 저/김규종 역
등장인물 소개 페이지에 손가락을 끼워놓고 낯선 이름이 나올 때마다 재차 들추다 보면 그 이름들이 어느덧 각자의 생을 갖고 뼈아픈 존재들로 현현함이 즐겁습니다. 저는 체호프를 너무 좋아해서 제발 누가 체호프를 공연해달라고 언제나 빌며 삽니다.
M. B. 고프스타인 글그림/이수지 역
“저 눈사람 만들지 말걸.” 고대하던 눈사람을 만들어 창밖에 놓아둔 아이들이 그의 외로움을 염려해 회한을 느낍니다. 누군가의 회한은 제가 가장 슬퍼하는 감정 중 하나에요. 그러나 아이들은 이를 든든하게 극복해내지요. 그때의 몸짓들이 지극히 단순하고도 너무나 섬세한 그림 속에 따스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한 장 한 장 경이롭게 보았어요.
목정원 “느린 호흡으로 흘러가는 책읽기” 공연예술이론가 목정원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