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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45화 : 잘 먹고 잘 살자는 게 사람이 태어난 이유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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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이니 의리니 하는 게 다 잡동사니 쓰레기란 소리 아닌가. 그런 걸 싹 치워버리면 머릿속도 빈방처럼 청결해진다.” (2019. 0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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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백순아 왜 그래, 어디 아프냐?”

 

했더니 돼지가 꾸룩거리며 대답했다.

 

 “애고 멀 잘못 먹었나바여.”

 

하기는 며칠 전부터 맏누이가 말하던 것이다. 백순이가 자꾸만 기둥에 몸을 비벼대고 땅을 앞발로 긁적이며 파는 게 심상치 않다고 했다.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단단히 큰 탈이 난 모양이었다. 달영은 개천 건너에 있는 다른 축사로 달려갔다. 그는 소와 돼지 수십 마리를 기르는 노련한 축산 농민으로 아버지가 살았을 때부터 서로 상부상조하던 친구였다. 아저씨는 급히 달영과 함께 축사로 와서 백순이를 살펴보았다.

 

 “얘가 자네 따라 다닌다는 그 돼지여?”

 

 “네 영리하기가 개보다 낫지요.”

 

 “그러니 뭘 잘못 먹거나 밖에서 전염병 옮아온 거 같은데.”

 

아저씨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다시 말했다.

 

 “소문 못 들었어? 경기도 일대에 구제역 퍼졌다든데.”

 

 “그럼 어떡해요?”

 

 “뭘 어떡해 다른 놈들에게 옮기 전에 얼른 잡아야지.”

 

 “잡다니요, 백순이를 잡아요?”

 

 “허허 이런 철딱서니 보았나. 무슨 돼지에게 이름까지 지어 놓구 그래. 지금 당장 잡아서 고기라두 팔아야지.”

 

아저씨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껄껄 웃고는 돌아갔고 이전처럼 고기 떼어 받고 도축해 주겠다는 제안은 하지 않았다. 최달영 소년이 직접 도축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의 조수격인 맏누이동생이 걱정스레 백순이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오빠야 빨리 잡아야겠다.”

 

 “쉿 조용해! 걔 듣는 데서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누이는 어이가 없어서 하늘을 보며 웃는다.

 

 “참 별꼴이네! 그래 갖구 돼지 길러서 어디 우리 식구 멕여 살리겠수?”

 

누이가 핑하니 돌아서서 집으로 가버린 뒤에 최달영은 백순이 돼지 옆에 한참이나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한식경쯤 지나서 그는 리어카 끌고 도구를 챙겨 가지고 다시 돼지우리로 갔고 염려가 되었던지 누이가 양동이를 들고 그를 따라왔다. 백순이는 아까보다 더욱 기력이 떨어져서 입에 거품을 물고 늘어져 있었다. 돼지를 리어카에 싣기 전에 최달영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백순아 너를 보내야겠구나.”

 

했더니 전혀 움직일 기색이 없던 돼지가 머리를 움직이고 꼬리를 몇 차례 흔들면서 꿀꿀 꾸루룩 했다. 최달영의 귀에는 백순이가 힘없이 이렇게 얘기하는 소리로 들렸다고 한다. 아버지 살려 주세여. 제가 병이 나을 거예여.

 

 “야야 뒷다리 좀 맞들어라.”

 

누이는 옘병할 어쩌구 구시렁거리면서 오빠가 돼지의 상체를 잡아 일으킨 아래쪽에 가서 돼지 뒷다리를 잡고 끙끙대며 간신히 리어카에 실었다.

 

 “아이고 그래두 이만하기가 다행이지. 더 컸으면 어쩔 뻔 했음나.”

 

집 앞 마당으로 데려와 돼지를 기둥에 붙들어 매고 함마로 때리고 할 것도 없이 그냥 땅에 눕혀놓은 채로 최달영은 뾰족하고 긴 칼을 잡고 백순이의 멱통을 찌르고는 옆으로 길게 돌렸다고 한다. 힘이 없어 꽥꽥거리지도 못하고 백순이가 늘어지자 누이는 아무 생각도 없이 양동이 갖다 대고 피를 받았고 최는 칼 집어 던지고 집 밖으로 나가 버렸다고 한다. 뒤처리는 평소에 오빠의 작업을 보아왔던 누이가 엄마와 제 동생까지 불러내어 큰일을 치러 냈다. 그 뒤로 그는 돼지 기르는 일에 역증이 나고 말았고 돼지 근처에 가려고도 하지 않았으며 돼지고기는 한 점도 먹지 못하게 되어버렸다고 한다. 최달영은 이 우습고도 처참한 이야기를 끝내고는 이일철에게 한마디 덧붙였다.

 

 “지츠요오 그 말을 뒤늦게 배웠다.”

 

 “지츠요혼이, 실용본위라구 하지. 어디서나 일본인 상관이 그렇게 가르치더군.”

 

 “인정이니 의리니 하는 게 다 잡동사니 쓰레기란 소리 아닌가. 그런 걸 싹 치워버리면 머릿속도 빈방처럼 청결해진다.”

 

일철은 묵묵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잘 먹고 잘 살자는 게 사람이 태어난 이유고 본분 아닌가. 그게 왜 나쁜가 말이다. 나는 강해져야 한다구 결심했고 제일 먼저 실행을 해버렸다.”

 

최달영은 어느 날 역전 주재소에 가서 안면이 있던 일본인 형사 모리를 찾아갔다. 언젠가 그는 단골집에 돼지고기를 넘기다가 도축법 위반으로 걸렸다. 옛적에도 그랬지만 일제가 들어온 뒤에도 시골 동네에서 혼인 회갑 장례 등 경조사나 동제가 있을 적에는, 돼지나 닭 따위의 가축을 잡아서 현장에서 식구들과 이웃들이 나누어 먹는 일을 불문에 붙이고 있었다. 그러나 상행위를 목적으로 허가 없이 도축하여 대중에게 고기를 파는 것은 엄금되어 있었다. 큰 가축인 소는 주인이 직접 잡기가 곤란했지만, 돼지나 염소 정도는 아무나 잡을 수 있었다. 양돈농가는 관청의 허가를 받은 도축업자에게 도매금으로 돼지를 넘기거나 그의 손을 빌려 도살 분해한 돼지고기만을 업소에 팔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 이윤이 거의 삼분의 일로 줄어들어서 많은 축산 농민이 직접 도축하는 일이 흔했다.

 

달영이가 어둑새벽에 가마니를 덮은 돼지고기를 리어카에 싣고 시장 안을 돌다가 어느 해장국집 앞에서 모리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모리는 조선말 발음을 때로는 혀 짧은 소리로 했지만 능숙한 편이었고 그의 조선말 실력은 보통학교를 나온 최달영의 일본어 실력만이나 했다.

 

 “그동안 봐주었는데 오늘은 안 되겠다. 이거 모두 압수처분하고 너는 콩밥 좀 먹어야겠구나.”

 

 “한번만 봐주십시오.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 내가 용서해주면 너는 무엇으로 갚을 텐가?”

 

모리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얼굴을 바짝 들이대자 최달영은 엉겁결에 말해버렸다.

 

 “미, 밀주를 파는 집이 있습니다.”

 

모리 형사는 별로 반가워하지도 않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게 어디 한두 집인가. 만드는 놈을 잡아야지.”

 

 “소주를 밀조하고 있습니다.” 

 

밀주는 도축에 비하면 훨씬 엄중한 범죄였다. 조선 사람은 예전부터 마을의 동제를 위하여 공동으로 술을 담그기도 했고 집집마다 가내 제사며 경조사를 위하여 가양주를 담갔다. 일본이 점령한 뒤부터는 소금 담배 주류가 전매품이 되면서 특히 밀주는 엄한 단속 대상이었다. 만주사변 이래로 대륙에서 비공식적 전쟁이 계속되고 산미증식운동이 독려되고 있는 시국에 쌀을 절약해야 하거늘 누룩을 함부로 담그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막걸리도 아니고 청주나 소주는 쌀의 소비가 많아서 더욱 당국의 관리를 받아야 했다. 술꾼들은 소주에 비하면 막걸리가 배만 부르고 육류나 생선 같은 안주와는 걸맞지 않는다 하여 저마다 소주를 찾았다. 소주를 몰래 만들어 팔면 몇 배의 이익이 되었고 그것은 세금을 도둑질하는 중한 범죄가 되었다. 

 

 “어느 집인지 앞장서라.”

 

모리 형사는 주재소에 나와 있는 조선인 보조원 한 사람을 데리고 달영이를 앞세워 뚝방 동네로 갔다. 시장의 북동쪽에 있는 동네인데 차츰 장터가 확장되면서 크고 작은 업소가 늘어나고 있었다. 두부공장, 콩나물 공장, 방앗간, 기름집, 양조장 등속이었다. 최달영은 앞서 가면서 잠깐 후회하는 심정이었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양조장은 아버지 때부터 사료 술지게미를 얻어온 집이었고 지금도 사나흘에 한 번씩은 달영이가 들르던 곳이었다. 그는 술지게미를 얻는 대신에 갈 때마다 일이 끝난 작업장을 대청소했고 독과 항아리들을 씻어 햇볕에 물기를 말리기 위하여 마당으로 나르곤 했다. 때때로 공장 일꾼들에게 술추렴하라고 돼지 부속물을 갖다 주곤 했다. 그는 스스로 빚은 없다고 생각했다.

 

양조장에 도착하자 모리는 작업장의 일꾼 세 사람과 주인을 불러 마당에 세워놓고 보조원과 함께 뒤지기 시작했다. 양조장 안은 큰 작업장과 두 군데의 칸막이가 있었는데 여러 곳을 살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소주 내리는 곳을 찾아냈다. 또한 창고에서 막소주가 들어있는 됫병들이 병을 담은 나무상자가 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최달영은 손으로 가르쳐주기만 하고 뺑소니를 쳤는데 그 뒤로 양조장은 한 달포 가까이나 문이 닫혀 있었다. 달영은 어찌 되었나 궁금하여 주재소를 지나다가 고개를 빼고 기웃이 들여다보았다. 모리 형사가 안에서 그를 보았는지 돌아서서 가려는 달영의 뒤통수에 대고 불렀다.

 

 “오이, 나 좀 보자.”

 

달영이 주재소 안으로 들어가니 정복을 입은 순사장이 가장 안쪽에 앉았고, 모리와 또 다른 정복 순사가 있었으며 창가의 긴 나무의자에 보조원 둘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지금 막 무슨 회의를 끝낸 모양이었다. 그들 중에 순사장과 모리 형사만이 일본인이고 순사와 보조원들은 조선인이 분명해 보였다. 모리가 순사장에게 최달영을 소개한다.

 

 “이 녀석이 내가 말하던 아이요. 주재소장님께 인사해라.”

 

최달영은 별 생각 없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그가 물었다.

 

 “이름이 뭔가?”

 

 “최달영입니다.”

 

주재소장은 그를 따라서 초, 츠 하며 발음하려다가 그만두고는 모리에게 말했다.

 

 “이름 좀 지어주지 그래.”

 

 모리가 최달영에게 물었다.

 

 “너 사는 데가 어디라구 했나?”

 

 “도림리에 삽니다.”

 

 “그 언덕 아래 동네 말이냐?”

 

모리는 잠깐 생각했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네 이름은 지금부터 야마시타라고 해라.”

 

순사장이 다시 물었다.

 

 “몇 살이냐?”

 

 “열여덟 살이오.”

 

그들은 아마도 양조장 밀주 사건 후에 고발했던 조선 소년에 대하여 의견을 나누었던 것으로 보였다. 모리와 순사장은 서로 고개를 끄덕였고 모리가 말했다.

 

 “야마시타군, 우리가 너를 취직을 시켜 주려고 한다.”

 

 “예? 취직이라뇨……”

 

 “너는 오늘부터 우리 주재소 사환이다. 월급은 십오 원. 그렇지만 부수입이나 상여금이 나오니까 한 달에 삼십 원쯤 수입이 들어올 거다. 어떻게 생각하나?”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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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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