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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44화 : 백순이를 향해 말을 건네었다
『마터 2-10』 연재
그가 열아홉 살에 이런 모든 일에 역증이 나서 양돈 사업에서 손을 놓게 된 데에는 백순이 탓이 컸다. 백순이가 누구냐고? 그건 그가 길렀던 암퇘지의 이름이다. (2019. 09. 09)
달영이 보통학교를 나와 일거리를 찾아 헤맨 것은 그 무렵에 돼지를 키워 연명하던 아버지가 술병으로 죽고 나서 여자뿐이던 집안의 생계를 짊어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집에서는 어머니와 두 누이가 아버지의 생업이던 양돈을 계속했고 달영은 기르던 돼지가 성돈이 되면 직접 도축하여 고기를 내다 팔았다. 처음에는 도축업자에게 도매금으로 돼지를 넘기다가 직접 잡아 고기로 팔면 훨씬 이문이 많이 남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버지 때에는 집 옆의 마당에 기둥 몇 개를 세워놓고 돼지의 귀를 뚫어 새끼줄에 매어 키웠는데 그래서 온 식구가 돼지오물과 냄새로 뒤범벅이 되어 살아야 했었다. 최달영 소년은 동네 이장에게 가서 자신의 형편을 하소하고 인가에서 좀 떨어진 마을 언덕 한 모퉁이를 빌려 쓰겠다고 청원했다. 매년 단오에 동네 사람을 위하여 돼지 한 마리를 잡아 내놓는다는 조건으로 어려움 없이 땅을 빌린 달영은 언덕에 토굴을 파고 앞에는 소나무 울타리를 둘러 그럴듯한 양돈장을 만들었다. 이때부터 돼지는 열 마리도 못되던 규모에서 스무 마리쯤으로 불어났다. 달영은 양돈장 옆에 한 칸짜리 움막을 지어 놓고 밤이나 낮이나 그곳에서 기거했다. 밥 때가 되면 누이동생들이 교대하러 오거나 찐 고구마라든가 감자 따위를 요깃거리로 갖다 주기도 했다. 도축업자는 영등포 시장 부근이나 도림천 너머에도 있었는데 돼지를 잡을 때마다 그들과 약조하여 고기를 넘기거나 적당한 수고비를 주고 데려와야 했다.
달영은 자신이 스스로 하면 모든 일이 돈이 된다는 점을 알아차렸고 눈썰미로 돼지 다루는 법을 익혔다. 돼지를 몰고 앞으로 나아갈 때에는 꼬리에 새끼줄을 매어 당기면서 한 손에는 대나무 회초리를 쥐고 좌우로 툭툭 치면서 몰고 간다. 거세를 하거나 도살 전에는 날뛰지 못하게 하는 방법도 간단했다. 돼지가 힘을 쓰려면 아래위로 턱을 쳐들고 흔들어야 하는데 주둥이를 단단히 묶어 놓으면 대번에 기가 죽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돼지를 잡는 것도 약간의 담력만 기르면 되었다. 양돈장에서 잡으면 그 다음부터는 돼지들이 주인의 말을 듣지 않게 되니까 멀찍이 떨어진 집 마당 앞으로 끌어오게 된다. 또한 우물도 가깝고 돼지를 처리할 물도 끓일 수 있었다. 돼지를 몰고 와서 마당의 기둥에다 목줄을 당겨 바짝 붙들어 맨다. 이때에는 돼지도 벌써 저 죽을 줄을 알고 똥을 부직부직 싸면서 뒷발을 구르고 꽥꽥거리며 요동을 친다. 주먹만한 쇳덩이가 달린 채석장 해머를 몸 뒤에다 감추고 침착하게 돼지의 대가리를 겨누기 맞춤한 거리까지 다가선다. 길게 사이를 두지 않고 한 호흡에 들이마셨다가 내쉬면서 해머로 돼지 이마를 딱 내려친다. 이마 뼈가 주저앉은 돼지가 졸지에 기절하면 즉시 잘 갈아놓은 칼로 목을 딴다. 그러면 조수를 맡은 맏누이가 바가지와 양동이를 들고 와서 돼지 피를 받는다. 피가 거의 빠졌다 싶으면 죽은 돼지를 배가 하늘로 가도록 뒤집어 놓고 머리를 자르고 목덜미에서 항문까지 베어 내장을 수습한다. 그리고는 끓인 물을 부어가며 잘 갈아놓은 칼로 뻣뻣한 털을 밀어낸다.
돼지 잡는 일뿐 아니라 기르는 일도 고되고 험한 일이었으니 무엇보다도 양돈의 성공 여부는 사료를 어떻게 얻느냐 하는 데 달려 있었다. 정미소에서 나오는 모든 곡식의 겨에서부터 옥수수 수수 등속의 줄기와 식당의 음식찌끼, 두부공장이며 기름집 양조장에서 나오는 비지, 깻묵, 지기미, 등속을 걷으러 다녀야 했다. 그뿐 아니라 묵 집에 가서는 도토리 상수리 껍데기를 얻어야 했는데 이를 먹은 돼지의 육질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이다. 아버지 생전에 길을 닦아놓은 곳이 몇 군데 있었고 소년 최달영이 찾아 다니며 뚫어놓은 업소가 더 늘어나서 그럭저럭 돼지먹이는 해결이 되었다. 사료 조달의 문제는 부지런함과 장사 수완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손수레를 끌고 거의 수십 군데의 장소를 하루 종일 돌아다녀야 했고 하루라도 틈이 생기면 그곳을 돌며 때로는 담배 한 보루 고기 몇 근 경우에 따라서는 몇 푼의 돈으로 사례를 해야 되었다.
그가 열아홉 살에 이런 모든 일에 역증이 나서 양돈 사업에서 손을 놓게 된 데에는 백순이 탓이 컸다. 백순이가 누구냐고? 그건 그가 길렀던 암퇘지의 이름이다. 백순이는 묘하게도 검둥이라고 불렀던 토종 암퇘지가 낳은 여덟 마리 중의 막내였다. 그것이 주인 눈에 뜨이게 된 것은 우선 형제들 중에 기중 몸집이 작고 비실거리는데다 털빛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잡아서 고기로 팔기를 망정이지 그냥 산채로 가축시장에 내었다가는 털빛이 새카만 순종이 아니라고 흠 잡히기나 좋을 그런 년이었다. 년이라는 건 고것이 암컷이었기 때문이다.
보통은 암수를 분리하고 어미와 새끼도 다른 울타리에 떼어 키운다. 교미 기간이 잦아서 암수를 함께 키우면 살을 찌우기 어렵고 어미와 새끼도 함께 키우면 어미가 새끼들을 먹이려고 스스로 먹기를 자제하는 까닭이다. 수유기간이 지나면 얼른 새끼들을 어미에게서 떼어 놓는다. 검둥이와 접을 붙인 수퇘지가 원래 일본에서 들어온 외래종과 혼종이었던지 뱃바닥과 뒷다리에 흰털이 보이더니 여덟 마리의 새끼 중에 두 마리가 흰털이 섞였다. 한 마리는 수컷이고 몸집도 정상이었고 암컷인 한 마리가 형제들보다 훨씬 작고 체력도 딸리는지 늘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다. 젖을 먹을 때면 이악스러운 다른 새끼돼지들에 끼이지 못하고 어미 뒷다리께로 밀려나 젖꼭지를 물 기회가 없었다.
최달영은 이 새끼에게 백순이라는 이름까지 지어 주고 어미의 젖꼭지에 갖다 대고 물려주기도 하고 젖을 뗀 뒤에는 울 밖으로 끄집어내어 따로 먹이를 주면서 정성스레 키우더니 육 개월이 되어가자 형제들보다 더욱 몸집이 크고 튼실한 암퇘지로 성장했다. 사람의 특별한 보살핌을 받아 그랬는지 아니면 천성이 그러했든지 백순이는 제 이름을 부르면 알아들었고, 먹이를 주려고 다가서면 다른 돼지들은 먹이통이나 바가지에 달려들어 꿀꿀거리며 난리법석이건만 백순이만 꼬리를 치며 다가와 주둥이를 달영의 바짓가랑이에 부비며 반가워하는 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순이가 진짜로 자기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걸 최달영은 알게 되었다. 날씨 좋은 봄날 먼 들녘에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햇볕이 따사한 점심 무렵에 백순이에게 비지와 쌀겨에 맑은 물 섞어서 여물통에 부어주고는 그는 울타리에 기대어 섰다. 혼잣말로 늘 그러듯이 백순이를 향하여 말을 건네었다.
“콩비지 많이 먹어라. 새벽에 가져와서 아직두 따뜻할 거야.”
라고 했더니 백순이가 꿀 꾸르륵 꿀꿀 하면서 주둥이를 위로 쳐들고 웃는 얼굴로 대답하는 것이었는데 어쩌면 달영은 그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 고마워여. 너무 맛이 있어여. 백순이가 분명히 자기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최달영은 깜짝 놀라서 다시 한 번 백순이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고 한다. 어쨌든 이런 이야기도 옛말 솜씨가 뛰어났던 신금이가 남편 이일철에게 들었다면서 아들 이지산을 거쳐 손자 이진오에게 전해진 이야기라 과장이 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백순이를 사료 받으러 나가는 리어카 뒤에 달고 다니던 그 무렵의 최달영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가 있어서 그리 황당한 소리는 아니었던 듯싶다. 최달영은 백순이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우리 백순이 맨날 울타리에 갇혀 살기가 갑갑하겠구나.”
그랬더니 백순이가 꿀꿀 하면서 대답했다.
“네 아버지 장에 갈 때 저도 데려가 주세여.”
최달영은 너무도 놀랍고 황당하고 기뻐서 혹시 이게 내가 돼지를 많이 잡다보니 돼지귀신이 씌웠나 걱정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점심 먹으라고 교대하러 온 맏누이가 나타나자마자 이 놀라운 사실을 말해주었다.
“히야 우리 백순이가 나하구 말이 통한다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누이동생은 오빠의 얼굴을 멍청히 올려다보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중얼거렸다.
“오빠는 안 되겠다. 돼지치기 일을 그만둬야 해.”
그녀는 오라버니가 이렇듯 지저분하고 힘겨운 노역에 지쳐서 헛소리를 하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이거 봐라, 내가 말을 시켜 볼 테니.”
최달영이 진지한 얼굴로 백순이 돼지를 내려다보며 명령했다.
“아부지 말 잘 들어라. 이제 언니에게 인사를 해봐라.”
“모야, 촌수가 별나기도 하네. 오빠는 아부지고 나는 언니야?”
“가만 있어봐. 자아 백순아 언니에게 인사해.”
그렇지만 어찌된 일인지 백순이 돼지는 여물통에 머리를 처박고 비지 쌀겨 죽탕을 맛있게 들이킬 뿐이었다. 누이가 말했다.
“오빠야 어서 가서 점심이나 먹구 와. 배고파서 머리가 어떻게 된 모양이야.”
최달영은 그제야 백순이가 자기 혼자 있을 때만 말이 통한다고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 최달영은 목줄도 없이 그냥 백순이를 울타리 밖으로 내놓았고, 리어카 손수레를 끌고 시장으로 나갈 때에는 이미 중돼지가 다 된 백순이가 쫄랑쫄랑 그 뒤를 따라갔다. 마을에서 역전 지나 시장에 가기까지는 제법 먼 거리였는데 지나치는 거리의 상점 주인이나 행인들도 모두들 이 진기한 광경을 보기 위하여 멍한 표정이 되어 입을 벌리고 서 있곤 하였다. 아이들이 뒤를 따라 오기도 하고 장난을 치려다가 최달영의 호통 소리에 달아나곤 했다. 개처럼 사람을 따라다니는 돼지가 영등포 일대에 유명해졌고 그 이름이 백순이라는 것까지 알려져서 시장 사람들은 최달영의 리어카와 돼지가 나타나면 ‘백순아 백순아’ 하면서 반가워했다. 시장 장사꾼들 중에는 자기가 팔던 고구마라든가 호박이든가 아무튼 돼지가 좋아할만한 먹이를 내주었고 돼지가 맛있게 받아먹으면 좋다고 박수를 치기도 하는 것이었다. 어떤 때에 백순이가 많이 먹고 배가 부르면 먹이를 받아 물고 제 아버지에게 내밀었고 일부러 최달영은 큰 소리로 아는 체를 하던 것이다.
“아이고 배부르니까 뒀다가 먹을래여? 아부지가 맡았다 줘여?”
그러면 시장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깔깔 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백순이가 몸이 안 좋았던지 토굴 속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다. 달영이 울타리를 열고 들어가 보니 백순이는 네 굽을 모으고 옆으로 넘어져서 가늘게 숨만 헐떡이고 있었다.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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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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