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에서 딱 떠오르는 노래, 거북이 〈비행기〉
거북이 〈비행기〉
가장 좋아하는 곡인 <비행기>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고, 비행기 타고 가는 먼 나라면 더 좋겠다는 역마살을 쿡쿡 찌르는 음악이다. 생계를 위한 노동에 지쳐 몸도 마음도 바닥에 질질 끌릴 때 이 음악을 듣거나 부르면 금방 화색이 돌곤 한다.
최근에 알바를 구했다. 인천공항에서 승객들의 위탁수화물을 비행기에 싣고 내리는 일이다. 퇴근하고 이 글을 쓰는데 오타가 많이 날 만큼 무거운 놈이 많았다. 소설가로서 아이러니한 인생을 사는 것 같다. 건축 설계를 하듯 짜임새를 미리 구상 & 구성하고 유려하게 시공하는 게 소설가의 주특기 아닌가. 근데 내 생계를 한 번도 꼼꼼하게 구상해 본 적 없는 것이다. 설마 굶어죽진 않겠지 하며 안일하고 무모하게 달려왔다. 그랬더니 글을 쓰기위한 최소한의 밥벌이를 육체노동 알바로 투닥투닥 때우는 신세다.
바보라고 자랑하려는 것 같지만 아니다. 당분간 월세를 낼 수 있게 돼 바보가 될 신세를 면했으니까. 후훗. 심지어 비행기를 남달리 좋아해 이번 일이 꽤 흥미롭다. 비행기란 사람이나 화물을 하늘위로 날려 보내주는 과학과 예술의 하이브리드 아니겠는가. 절정의 과학으로 인간의 한계를 공중에 날려 보내는 매끈하고 잘 빠진 물체인 것이다. 인천공항에 매일 간다는 것도 신난다. 게다가 보수적인 한국에서 장발족인 나를 채용해 줘 신기하기도 했다. 나는 머리카락이 짧으면 글이 안 써지는 특징이 있는데(삼손이여 뭐여) 참 잘됐다. 유니폼도 줘서 오늘 뭐 입을까 고민하지 않는 점은 보너스.
그러나 막상 일 해보니 스타일을 안 따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천장 낮은 비행기 화물칸에 들어가 허리도 못 편 채 짐 가방과 뒹굴어야 하는 것이다. 화물칸은 당신이 누구든 어떻게 살아왔건 순식간에 거지꼴로 만들어버린다. 무거운 가방이 쓰러질 때 정강이가 벗겨지기도 하고 무너지는 가방더미에 갈비뼈 어택을 당하기도 하고 무릎 손목 팔꿈치 어깨 허리가 동시에 나한테 왜 이러냐며 난리인 점도 꽤 고충이다.
아무튼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고생스럽게 일하니까 공장 얘기는 이쯤 해 두고 본연의 주제인 오늘의 음악을 밝히겠다. 뚜둥. 여러분은 비행기 하면 어떤 음악이 떠오르시는가? 나는 일단 이거다.
떴다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높이높이 날아라 우리 비행기
외국 곡에 한글 가사를 입힌 아동문학가 윤석중 님의 곡이다. 하늘로 대차게 이륙하는 비행기를 보며 이 노래를 부르면 동심이 그립다. 제트엔진과 날개의 양력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게 사람이 날아라날아라 하면 뭘 하며 고도 3만5천 피트까지 쭉쭉 알아서 올라갈 비행기에게 다 큰 어른이 높이높이 날라고 하는 건 의미가 없지만 물체에 감정을 이입하는 순진한 동심이 오랜만에 그리워지는 거다. 그냥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가.
사실 이 국민동요를 오늘의 주제곡으로 삼아 종이비행기 날리던 꼬꼬마 시절의 추억을 똥꼬 발랄하게 떠들고 싶었다. 그러나 격조 높은 채널예스의 지면에 그동안 음악과 추억과 여행에 대한 깊이 있는 칼럼을 빙자한 질 낮은 개그와 일기만 써 재낀 주제에 떴다떴다 비행기 가지고 어린 시절 코 묻은 얘기를 꺼낼 체면이 없었다. 미남 담당자와의 술 약속도 계속 미루고 있는데 미안해서 안 되겠다.
그래서 얼른 다른 음악을 생각했다. 출근길에 마이 앤트 메리의 <공항 가는 길>, 줄리 런던 버전의 <Fly me to the moon> 헬로윈의 <eagle fly free> 켄트의 <747> 그리고 뜬금없이 저니의 <open arms>등등을 자주 듣는데 뭔가 비행기랑 연결 될 것 같으면서도 칼럼으로 쓰기엔 접점을 찾기 애매한 음악들이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완벽하게 <비행기>라는 제목을 가진 곡을 깜빡하고 있었으니 그 곡이 바로 오늘의 주제곡 거북이의 <비행기>이다. 나로선 라디오에서 우연히 나올 때마다 볼룸을 잔뜩 높이게 되는 곡이다. 발표한지 거의 10년 됐으니 오랜만에 들어보시라.
남자 한 명 여자 둘 혼성 삼인조 거북이의 음악은 딱 인생 친화적이다. 멋 부리고 끼 부리거나 전형적인 음악을 하기보단 독특하게 친밀한 매력을 추구했다. 뽕짝 같은 리듬에 힙합과 발랄한 랩과 단조의 음색이 섞여 있는 그들의 음악은 경쾌하면서도 어딘지 슬픈 쪽을 건드리는 희한한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그들만의 친밀성이 있다. 들으면 일단 신나는데 싸구려 유흥을 북돋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삶의 국면들을 순수하게 사유한 노랫말에서 페이소스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거다. 페이소스에 재미를 뭉칠 줄 아는 이들의 표현력을 나는 한껏 동경한다. 찰리 채플린을 존경하는 것처럼.
필자는 <빙고>, <싱랄라>, <사계> 등등을 자주 듣는다. 봄엔 버스커버스커, 여름엔 비치보이스를 듣는 것처럼 쓸쓸할 땐 단연 거북이다. 과연 언제 다시 들어도 촌스런 위화감 없이 훌륭한 음악을 해냈다. 거북이의 음악은 질긴 생명력을 가졌지만 대부분의 히트곡을 작사 작곡하고 프로듀싱한 리더 터틀맨 임성훈 씨는 7년 전의 어느 잔인한 4월에 먼 곳으로 떠났다. 4월이 몹시 미울 정도로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곡인 <비행기>는 어딘가로 떠나고 싶고, 비행기 타고 가는 먼 나라면 더 좋겠다는 역마살을 쿡쿡 찌르는 음악이다. 생계를 위한 노동에 지쳐 몸도 마음도 바닥에 질질 끌릴 때 이 음악을 듣거나 부르면 금방 화색이 돌곤 한다. 특히 이런 가사에 그 능력이 숨어있다.
파란 하늘위로 훨훨 날아가겠죠 어려서 꿈꾸었던 비행기 타고
…비행기 타고 가던 너 따라가고 싶어 울었던 철없을 적 내 기억 속의 비행기 타고가요
공항에서 승객들이 비행기에 타는 동안 지상에선 짐 가방을 부지런히 비행기에 실어주고 물을 채워주고 정비사들이 비행기를 점검한다. 기내식 트럭과 급유 트럭이 다녀가면 출발 준비가 끝난다. 힘센 토잉카가 비행기를 활주로 쪽으로 밀어준 다음에 비행기가 자기 힘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지상조업자들은 나란히 서서 손을 흔들며 배웅한다. 안에 탄 사람과 우린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손을 흔들 때 객실 안에서 손을 마주 흔드는 승객들을 보면 난 어쩐지 콧등이 시큰하다. 기차역 같고 항구 같고 바래다준 연인의 창문 같다.
거북이의 <비행기>를 들으면서도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먼 곳으로 떠난 터틀맨이 그곳에서 행복하길 빌며 한참 손을 흔들어 본다. 가슴이 시큰하다. 부디 파란 하늘위에서 높이높이 날아라 우리 터틀 형.
사족 - 독자님들께 위탁수화물 가방이 더러워지지 않는 팁을 몇 가지 소개할까 한다. 새로 산 여행 가방이 걸레가 된 경험이 있다면(난 매번 그랬다) 이렇게 하면 된다.
1. 비닐이나 껍데기로 꽁꽁 싸매거나 도어 사이드를 신청한다.(ㅡㅡ;;)
2. 큰 기종을 타면 인력으로 일일이 싣지 않고 기계로 한꺼번에 올리고 내려 바닥에 끌릴 일이 적다. 가방에 대해선 사람보다 기계가 인간적인 아이러니. (비싼 게 함정)
3. 작은 기종을 탈 땐 바퀴 네 개 달린 캐리어가 좋다. 배낭이나 보스턴 백, 바퀴 두 개만 달려 굴릴 수 없는 캐리어는 질질 끌게 된다. (화물칸 바닥은 그닥 깨끗하지 않다)
4. ‘수고하십니다. 살살 다뤄주세요’ 라고 써봤자 소용없다. 땀이 눈에 들어가 읽을 틈이 없다.(겨울엔 모르겠다)
5. 캐리어가 더러워지는 걸 여행 경력을 나타내는 ‘간지’라고 생각하면 심리적 데미지를 입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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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 『말이 되냐』,『예테보리 쌍쌍바』와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