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은 분주했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돌아오고 있었다. 떠나는 사람들과 돌아오는 사람들이 마주쳐가는 공간. 공항이 가장 설레는 곳이라는 한 시인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설렘이 일상이 되면 어떨까? 일상에 잠식되어 설렘도 그 반짝임을 잃을까? 아니면, 매일매일의 하루가 반질반질 윤기를 낼까? 나는 그녀들을 기다렸다. 누군가 가장 설렌다고 말했던 공간에 머무는 사람. 매일 떠나는 사람이고, 매일 돌아오는 사람. 스튜어디스 말이다.
목에 두른 예쁜 스카프, 정돈된 헤어스타일과 의상을 갖추고, 우아하게 공항을 활보하는 그녀들. (사실은, 아주 조급하거나, 끌고 다니는 가방이 상당히 무겁다거나 할지라도!) 남들이 설렘으로 품고 있는 비행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그녀들의 일상이 궁금했다. 『그녀의 비행기 타는 법』은 아시아나 승무원 입사 동기인 전미애, 김소운, 최보윤 세 사람이 풀어내는 스튜어디스 버전의 탐구생활이다. 스튜어디스라는 꿈을 품고 입사해, 비행을 하면서 겪은 실수담, 여행담 등을 유쾌하고도 솔직하게 담아냈다.
글만큼이나 유쾌한 그녀들이 한곳에 모였다. 승무원 트레이닝 센터에 마련된 모형 항공기 안이었다. 인터뷰가 진행된 퍼스트 클래스 안에서는 시종 웃음이 터졌다. 기꺼이 함께 떠나고 싶은 친구가 있는 직장, 일해보니 더욱 매력적인 직업, 거기에 대한 무한 애정과 긍정적인 마인드까지! 물론 누구에게나 들키고 싶지 않은 속사정과 어려움이야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스스로에게 좋은 에너지를 불어넣기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녀들은 그랬다. 자신의 일상에 윤기를 내는 법을 알고 있는 듯했다.
우리들의 비행과 기행, 그리고 만행
(왼쪽부터)최보윤, 김소운, 전미애
책을 낸 소회는?
최보윤: “스물네 살에 같이 입사해서 지내다 보니, 할 말이 너무 많아 밤도 새울 지경이었다. 6년 후면 서른이니, 서른 즈음해서 이 이야기를 책으로 내보자고 했다. 원래는 우리끼리 제본을 해서 가질 생각이었는데, 작업해보니 책의 두 배 분량인 700장 정도의 원고가 나왔다. 행동파 전미애 씨가 출판사에 연락했는데 반응이 좋아 진행하게 되었다.”
주변 반응은 어떤지?
김소운: “우선 무척 신기해한다. 자기 얘기가 나와서 좋아하는 분도 있고, 회사 사람들은, 한번쯤 생각해봤을 일이었을 텐데, 이렇게 실천한 것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일러스트도 직접 그리고, 사진도 직접 찍은 것이라고 들었다.
최보윤: “원래 내가 일러스트를 담당했는데, 막판에 미애와 소은이도 같이 작업했다. 혼자 한 게 아까울 정도로 잘하더라.(웃음) 2년 정도 준비하면서, 각자 쓰고 그린 것을 취합했다. 원래는 색채감 있는 일러스트를 원했는데, 출판사 쪽에서 선으로 된 일러스트를 원해서 다시 작업했다.”
책 속에서 솔직함이 많이 느껴졌다. 굳이 밝히지 않고 넘어갈 법한 심정도 솔직하게 써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전미애: “그런 말 많이 들었다. 너무 진솔했다며.(웃음) 그냥 보여지는 모습의 승무원이라기보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성을 드러내고 싶었다. 서른이 되면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감성들, 승무원이든 아니든 여자라면 느끼는 것 말이다. 멀리서 보게 되는 승무원이 아니라, 가까운 친구처럼. ‘나 오늘 이랬잖아’ 얘기해나가듯 썼다.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조금은 다른 우리들만의 이야기.”
더 넣고 싶었는데 못 넣은 이야기가 있나?
최보윤: “원래는 이 책의 두 배 분량의 원고가 있었다.”
전미애: “책에 일정한 흐름이 있다. 먼저 승무원이라는 꿈을 갖고 교육원에 입사하지만, 힘든 일도 겪고, 실수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비행하면서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고, 여행도 다니고, 그렇게 닿은 서른 문턱에서 겪는 감성적 이야기들이 있고, 다시금 비행의 즐거움을 되찾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때문에 이러한 흐름상 넣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다.”
최보윤: “기본적으로, 비행과 기행, 그리고 만행을 넣은 것이다.(웃음)”
책 쓰고 나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최보윤: “비행을 이제 그냥 할 수는 없게 되었다는 점.”
전미애: “알아보는 사람도 있으니까. ‘이 승무원은 책까지 냈으니까 일도 잘하겠지’ 하는 기대치가 암암리에 있다.”
김소운: “아무래도 책임감이 더 생겼다. ‘아니, 저런 애가 책을 냈어?’ 하는 말은 듣지 않아야지.”
그녀들의 비행기 타는 법
첫 비행, 기억나나?
최보윤: “정말 정신 없었다. 처음 신입으로 나온 사람들은 (기내에서) 위험물로 취급된다.(웃음) 각자 다른 비행에 투입되는데 배지를 달고 간다. ‘저희 처음입니다.’ 초보운전 딱지처럼.(웃음)”
별일 없었나?
전미애: “별일 많았겠지?(웃음) 우리만 모르는 걸 거다. 지나간 자리마다 사고를 치고 다녔겠지만, 뒤에 선배님들이 수습해주니까, 당사자는 사고 친 것도 모른다.”
김소운: “3개월 정도 교육을 받고, 실습비행을 거친 후에, 첫 비행을 나선다. 처음 스케줄을 받는 순간, 정말 두근거렸다……. 지금은?(좌중 웃음)”
개인 여행을 할 기회가 많은가?
최보윤: “스테이션마다 다르다. 보통 사흘 정도 주어진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일정에 문제가 없으면, 잠을 포기하고 돌아다니는 식으로 여행하기도 한다.”
전미애: “장거리를 다녀오면 한국에서 이틀 정도 쉰다. 거기에 휴가를 조금 붙이면 4~5일 정도 쉴 수 있다. 주말에만 쉬는 것이 아니라, 쉬는 날이 달라서 몰아서 쉬기도 한다. 그럴 때 개인 여행을 떠난다.”
김소운: “사전에 계획을 하려면, 연차 신청을 해야 한다. 두 달 정도 전에 컴퓨터로 신청하면 나온다. 신청하는 게 어렵긴 한데. (스케줄 맞추는 게 어려운가?) 아니. 클릭하는 속도가 중요하다.(웃음) 수강신청처럼.”
전미애: “한 비행기에 탈 수 있는 승무원이 정해져 있다. 아시아나에는 승무원이 3,000명 정도 되는데, 승무원들이 같은 날 신청하면 안 되니까, 수강신청처럼 빠르게 클릭해야 한다.”
최보윤: “어마어마한 경쟁을 한다.(웃음)”
스튜어디스의 여행은 남다른 데가 있을 것 같다. 스탠바이 티켓을 이용한다거나, 비행 리퀘스트(일 년에 두 번 정도는 가고 싶은 구간을 정해서 가고 싶은 사람이랑 함께 갈 수 있는 시스템) 등등 스튜디어스만 누릴 수 있는 비행법을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전미애: “스탠바이 티켓은 전체 항공사 직원이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이다. 원래는 인터라인 티켓, 직원할인 티켓이라고 한다. 승무원이라면 세금 정도만 내고 티켓을 이용할 수 있는데, 몇 군데를 제외한 다른 항공사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대신 항공기의 좌석이 있을 경우에만 탑승할 수 있기 때문에, 성수기에는 사용하기 어렵다. 요새는 여행 다니는 사람이 많아서 성수기, 비성수기가 따로 없다. 그래서 일단 공항에 와본다. 기다리다가 안 오는 사람이 있거나, 당일 취소하는 사람이 있으면, 비행기에 탈 수 있다. 출발 30분 전에 손님이 오지 않는다는 게 확정되면, 그때 게이트로 달려간다.(웃음)”
입사 후 몇 년이 지나고 나면 외국에 나가도 별다른 감흥이 없어지기 마련이다. 가서 뭘 할까, 하는 계획만 있을 뿐. 집 앞에 나가는 사람처럼 두근거림은 하나도 없어진다. 인엔아웃 햄버거를 먹으며 걷다가 저 멀리 LA의 할리우드 사인을 처음 봤을 때 ‘어머, 저거 진짜야?’ 하거나 시드니 서큘러키 앞을 손잡고 걷는 노부부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로맨틱함에 가슴이 찡해지고, 베트남에서 수많은 오토바이 행렬에 길을 건너지 못해 계속 길가에 서 있었던 일 등,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지만 이젠 너무나 익숙해져서 이런 것들은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다. 혹시 내 마음속에서 ‘두근거림’이 자취를 감춰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까지 했었다.(P.91)
달려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생각보다 우아한 여행은 아니다.(웃음) 여행을 자주 가서 이제 놀랄 것도 없다고 했는데(웃음) 여행을 자주 다니고 나서, 여행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게 있다면?
김소운: “무엇보다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일정이 틀어지거나, 가고 싶은 곳에 못 가게 되면, 다음에 와서 가면 되지, 하는 여유가 생겼다. 일정이야 항상 틀어지기 마련이니까.”
전미애: “이전에는 단체 여행을 많이 갔는데, 이제는 우르르 몰려가서 사진 찍고 돌아오는 여행은 의미가 덜해졌다. 파리를 가서 에펠탑을 여러 번 보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보는 것에서 의미가 생기는 것 같다. 부모님과 함께 가는 것도 특별한 여행이 된다.”
최보윤: “학생 때 유럽 여행을 가면, 단체로 짜여 있는 일정이 있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관광지를 찾아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잖나. 요즘에는 내가 보고 싶은 것 하나만 정한다. 그래서 내셔널 뮤지엄만 여유롭게 보고 온다든지, 어느 카페에 앉아 사람들만 보고 온다든지. 이렇게 여유로워졌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승객들이 탑승하는 순간, 제일 바쁘지만 가장 중요하다
정말 여행이 일상이 되었을 때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부럽다.(웃음) 식사 서비스만 잘 넘어가면 비행은 무난하다고 했는데, 주로 식사 서비스에서 컴플레인이 많은가? ‘델리의 스페셜 밀 사건’은 한참 웃었다.
최보윤: “손님이 100명 타면, 두 가지 메뉴를 100가지 실을 수가 없잖나. 6 대 4, 7 대 3 정도로 싣는데, 그걸 잘 맞춰서 서비스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뒤에서 ‘안 먹겠다. 매니저 나와라’ 하는 컴플레인이 들어올 수 있다.”
처음에 델리행 비행을 싫어했던 건 스페셜 밀 때문이었다. 뭐가 스페셜하냐구? 쇠고기를 먹지 않는 베지테리안, 그중에서도 달걀을 먹는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뉘고, 아시안 베지테리안, 인디안 베지테리안이 또 다르다. 중간 중간에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무슬림식과 힌두교도인을 위한 힌두식이 섞여 있다. 300석 만석을 기준으로 볼 때 적으면 30명에서 160명 정도까지 특별식을 먹는다.(p.156)
여러 국적의 손님을 태우다 보면 문화적 차이를 느낄 때도 많겠다. 나라별로 승객들의 특징이 있지는 않나?
최보윤: “처음에는 인도 승객들의 제스처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김소운: “예스인지 노인지 잘 모르겠더라.”
최보윤: “계속 고개를 갸우뚱 갸우뚱하신다.(웃음) 이게 싫다는 건지 좋다는 건지 캐치하기가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좀 알겠더라.(웃음)”
전미애: “일본도 특징이 있다. 일본 승객들은 굉장히 조용하고, 얌전하다. 큰소리 내는 사람이 없다.”
김소운: “일본 같은 경우는, 세 명이 일렬로 자리를 받아오면 제자리에 앉는다. 심지어 기내가 비워 있다고 해도 자리를 바꾸지 않는다. 일본 승무원에게 물어봤더니,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승무원한테 뭘 물어보느라 주목받는 것 자체를 폐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
최보윤: “나라별로 문화적 차이가 굉장히 크다. 필리핀에 가면, 사람들이 자유롭다. 노래를 부른다거나.”
최보윤: “그분들은 음식을 먹을 때도, 소리를 내서 먹는 게 예의라고 본다. 서비스가 끝나고 난 후의 모습도 다 다르다. 일본 승객은 다 정리를 해서 원위치를 시켜놓고 내린다. 중국 승객들은 몽땅 한쪽으로 쌓아둔다. 물이나 커피, 우유도 한쪽에서 짬뽕을 해서 준다. 한국 분들은 그냥…… 잘 안 준다.(웃음)”
전미애: “유럽 사람들은 코스 문화가 발달되어서, 코스로 즐기길 원한다. 비즈니스나 퍼스트 클래스는 코스 서비스가 되고 있지만, 일반석 경우에는 코스 음식이 한 트레이에 나온다. 하지만 거기에도 에피타이저, 메인, 디저트로 구성된 코스 요리다. 유럽 승객들은 굉장히 천천히 먹으면서, 그 안에서 코스를 즐긴다. 우리는 이것저것 순서 없이 먹는 데 비해 그분들은 여유롭게 코스에 맞춰 먹는다. 와인도 잘 알아서 질문이 많다.”
어느 나라 사람이 컴플레인 제일 심한가?
김소운: “코리안?(웃음)”
최보윤: “국적 항공기에서 아무래도 말이 통하다 보니까, 컴플레인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전미애: “일본에는 또 일본 승객들의 컴플레인이 많다고도 하더라. 우리는 한국 분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타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다.”
김소운: “기대치도 높아지고 있고. ‘아시아나 항공을 타면 어떨 것이다’ 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조금만 서운해도 바로 표시하게 되는 것 같다.”
없는 음식을 내놓으라고 한다거나, 항공기 안에서 처리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컴플레인을 받을 때,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전미애: “아무래도 비행이라는 상황이 일상적인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최보윤: “어디 당장 나가서 구해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이 안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 어려운 것 같다. 일이 생기기 전에 미리 생기지 않게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테면, 초이스가 모자라지 않게 잘 서비스를 한다든지.”
그런 서비스 노하우가 있다면?
김소운: “카트를 확인하고, 손님을 쫙 본다.(좌중 웃음) 한국 단체 분이 많거나, 비빔밥을 많이 찾을 것 같으면, 앞쪽에서부터 조절해 나간다. 외국인에게는 스테이크를 권하고, 다른 상황에서 스테이크가 모자랄 것 같으면, 비빔밥에 대해 화려한 수식어를 붙여서 소개한다. 정말 맛있다고.(웃음)”
최보윤: “비율을 먼저 조사해서, 손님들 성향에 따라 싣는 것인데도 마음대로 안되더라.”
김소운: “어떤 날은 외국인들이 비빔밥을 많이 찾기도 하고.”
최보윤: “‘와, 비빔밥 맛있다더라. 그거 달라’고.(웃음)”
전미애: “눈맞춤 서비스다. 고객의 입장에서 대접하려고 노력한다. 시골에 계시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타시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편안하게 서비스해드리고, 하이클래스 분들이면, 거기에 맞게 고급스러운 말과 행동으로 서비스하려고 한다.”
최보윤: “온도에 민감하신 분들은 거기에 맞춰서 서비스하기도 하고……. 먼저 대화를 하고 나면, 고객이 뭘 원하는지 알게 된다.”
전미애: “승객들이 탑승을 쫙 하는 순간…….(웃음) ‘아, 저분은 저렇겠구나’ 추위를 잘 타는 사람 같으면 먼저 담요를 가져다 주는 식의…… 비행 노하우랄까?(웃음) 말을 한두 마디 해보면, 손님들의 성향이 대충은 보인다.”
김소운: “탑승하는 시간이 제일 짧고 바쁘지만, 그때가 제일 중요하다. 일반석일 경우는 짐을 올리는 것을 도와드리고, 친근하게 먼저 말을 걸면, 음식 같은 것으로 컴플레인하지 않으신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인만큼, 그 속에서 배우는 것도 많겠다.
전미애: “이해하는 폭도 넓어지는 것 같다. 이 사람은 정말 이럴 수도 있겠구나 싶을 때가 많다. 문화의 차이가 많으니까. 이를테면, 우리는 화장실에서 세수하면서 물을 흘리는 게 아무렇지 않지만, 서양에서는 화장실 바닥에 물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집 안에서 슬리퍼를 신고 안 신고 하는 일도 그렇고.”
김소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수가 없다. 처음에는 화도 나고, 눈물도 나고, 속상한 일도 있지만, 이제는 그런 것에 약간 무뎌지기도 하고, 그걸 넘어서면 이래서 그랬구나, 하는 여유를 가지게 된다.”
사람을 대하는 일인 만큼 어떤 상황에 정답만 존재하지 않는다. 서비스하는 사람으로서의 ‘융통성’은 어디까지 발휘되어야 좋은 것일까? 매번 다른 상황에서, 다른 종류의 사람들과 겪는 일이니 그때그때 순간의 판단력이 중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키는 일만 제대로 해내면 되는 막내를 지나, 클래스의 리더가 되고, 선배가 되어 뭔가를 결정하는 순간이 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다.(p.12)
감사합니다, 그 말 한마디가 참 고맙더라
‘내가 지금 아니면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하랴!’라는 대목이 많던데 스튜어디스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는 언제인가?
김소운: “다른 사람들보다 나이 먹는 속도가 늦어지는 것 같다. 매일 화장하고, 예쁘게 꾸미고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예쁜 선배님, 후배님과 정보도 교환하고, 무엇보다 즐겁게 살잖나. 그러다 보니 나이를 천천히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최보윤: “웃고 있으면 기분까지 좋아지는 것 있잖나.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것 같다.”
전미애: “억지로 웃어야 하는 상황이더라도, 일단 웃고 나면 마음이 즐거워지기도 하는 것 같다.”
김소운: “억지로 웃어?(웃음)”
전미애: “예를 들자면.(웃음)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니까, 잔 지식도 많이 쌓이는 것 같다. ‘아,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구나.’ 연예인도 많이 타니까, 이 사람과 내가 1 대 1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언제 있나 싶기도 하고, 좋아하는 와인을 한 잔 드릴 수 있기도 하고.(웃음) 어찌 보면, 우리는 우리끼리 폐쇄적일 수 있잖나. 밖에서 만나는 사람이 없다 보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서 시야가 넓어지기도 하는 것 같다.”
최보윤: “처음 입사하고 교육원에서 메이크업이나 와인, 국제 매너, 언어 등등 정말 좋은 강의를 들었을 때도, 스튜디어스 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스튜어디스라는 직업은 하기 전보다 하고 나니까 더 좋아졌다. 심지어 나는 ‘용됐다’는 소리까지 들었다.(웃음) 배우는 게 진짜 많다.”
반대로, 스튜어디스라서 힘들고 어려운 점이 있다면?
전미애: “시차 문제가 힘들다. 한국 시간으로는 새벽 두세 시인데, 미국 시간으로는 아침이니까, 밥 먹으러 가야 되고.(웃음) 몸의 사이클이 뒤죽박죽된다.”
김소운: “시차 때문에 몸 관리하기가 어렵다. 밥 먹는 시간이 바뀌게 되니까. 한 번은 위염이 심해서 병원에 갔더니, 어제 뭘 먹었냐고 묻더라. 새벽 3시쯤 뭘 먹었다고 하니까 의사가 놀라더라.”
전미애: “지금은 시차가 없이 살고 있다.(웃음)”
최보윤: “어떤 승무원은 어딜 가든 한국 시차로 살아가가도 한다. 뉴욕에 가면, 아예 시차가 반대다. 그분은 한국 시간에 맞춰서 밥 먹고, 자야 할 때 자고.(웃음)”
전미애: “밤인데도 한국 시간이 낮이면 일어나서 할 일 하는 식으로.”
최보윤: “슬럼프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것 같다. 안일하게 회사를 다닐 만하면 그러지 못하게끔 상황이 생긴다. 갑자기 까다로운 고객이 탄다거나, 내 서비스를 지적하는 선배들이 옆에 있다거나. 그럴 때 정신 차리고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승무원은 굉장히 제너럴하면서도, 스페셜한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손님으로 비행할 때도, 다른 항공사 승무원부터 보게 된다는 직업병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이런 직업병적 증세, 또 어떤 것이 있나?
훃보윤: “타 항공을 탔을 때, 내가 하는 업무이다 보니까, 자꾸 눈이 간다. 오버헤드 빈이 비행 중에는 닫혀 있어야 하는데 열려 있다거나……. 그런 안전에 관한 것들을 자꾸 체크하게 된다.”
김소운: “레스토랑에 가도, 서비스하는 사람의 동선이 잘 보인다. 내 테이블에 와서 실수를 했는데 사과를 안 하면, 쉽게 화가 나고……. 그렇지만 말은 못하고.(웃음)”
최보윤: “딱 보면, 이 사람의 서비스가 진정성이 있구나, 없구나 하는 게 느껴진다. 실수를 해도 고객이 모를 것 같아서 그냥 넘어가는지 정말 실수로 그런 것인지. 이런 게 보이니까, 까다롭게 되는 것 같다. 눈을 감아야 하는데.(웃음)”
어디선가 “승무원!” 하고 부르면 움찔움찔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부르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리다 승객과 눈을 마주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맞다, 지금의 나는 승무원이 아니지.’
이 당황스러움과 민망함이란… 앉아 있어도 누군가 휴대폰을 키면 꺼달라고 얘기해야 할 것 같고, 짐을 올리고 있으면 달려가 도와줘야 할 것만 같다.
‘쳐다보지를 말자.’
혼자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돌리는데,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옆 좌석 승무원과 눈이 마주쳐 소리 내지 못하고 키득키득 웃는다. (p.134)
그럴 때 한마디 하나?(좌중 웃음)
최보윤: “못 한다. 그냥 땅바닥에 고개를 숙이고, ‘어, 저거 닫혀져야 하는데. 저거 열리면 안 되는데.’(웃음)”
전미애: “옆자리에서 휴대폰 사용하고 있으면, 계속 신경 쓰인다. ‘꺼야 되는데, 저거.’ 그렇다고 내가 끄라고 말할 수도 없잖나. 쳐다보지 않지만, 계속 신경 쓰이고. 식당에서 뭘 하나 받을 때도,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실례합니다.’ 큰 소리로 외치고.(웃음)”
최보윤: “서비스할 때 ‘감사하다’고 인사를 잘해주시는 분들이 있다. 그럴 때 그 말 한마디가 정말 고맙다. 그래서 나도 평소에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전미애: “한국 사람의 스타일이긴 한데,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야 교육이 돼서 그렇지만, 그냥 길거리를 지나다닐 때도 "실례합니다! 실례합니다!"(좌중 웃음) 오래 일을 하다 보면 그렇게 되더라.”
대체적으로 한국 승무원이 친절하지 않나? 외국엔 뭘 부탁해도 툭툭 던져주기도 하고, 물론 그것마저도 ‘그래, 여긴 외국이니까’ 이렇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최보윤: “문화적인 차이 같다. 그쪽에는 프렌들리한 게 좋은 서비스라고 생각하니까, 자유분방하게 서비스하고, 우리는 예의 바른 것을 중시하기 때문에 더 정중하게 서비스한다.”
매직팀, 차밍팀, 네일아트팀, 바리스타팀…… 알고 누리자
기내 속 이야기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도 종종 보인다. 극중 승무원들의 모습, 실제와 얼마나 비슷한가?
최보윤: “비슷한 점은 많은데, 많이 과장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은 컴플레인을 크게 부풀린다. 극이라는 게 이야기를 확대하는 것이긴 하지만, 문제의 인물이 들어오면서부터 기류가 바뀌고, 사건을 일으키면 모든 승무원이 그 사람에게 붙어서 해결하는 모습 등이 그렇다. 승무원들은 각자 담당한 50명을 케어해야 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컴플레인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다 갈 수는 없다. 그래도 다 있을 법한 상황을 확대하는 것 같아서 재미있더라.”
책 속에 패밀리 서비스가 소개되었는데, 그런 서비스가 있는지 이전까지는 몰랐다. 일반 승객들이 잘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서비스를 소개해달라.
최보윤: “만약 원하는 식사가 있다면, 24시간 전에 스페셜 밀을 신청하면, 실어준다.”
김소운: “해피 맘 서비스라고, 아기 데리고 탄 엄마를 도와주는 서비스도 있다.”
최보윤: “서비스가 무척 다양하니까, 내가 타는 항공기 서비스를 미리 인터넷으로 체크해보면 좋다.”
전미애: “굳이 정해진 날짜에 여행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면, 인터넷을 통해 특화된 서비스를 찾아보면 좋겠다. 아시아나 같은 경우 매직팀, 차밍팀, 네일아트부터 메이크업해주는 팀 등 다양한 특화팀이 준비되어 있다. 각국의 나라별 전통 의상을 입고 사진 찍는 서비스도 있고, 라떼아트를 시연하는 바리스타팀도 있다. 여건이 된다면 그런 날짜에 맞춰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스케줄은 한두 달 전에 나오니까 말이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이 나이가 천천히 드는 일 같다고 얘기도 했는데, 실제로도 보면, 나이와 상관없이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갖춘 승무원들도 많더라. 가까운 곳에 롤 모델이 많을 것 같다.
김소운: “캐빈 승무원에 구자준 부장님이라고 계신다. 유머 감각도 넘치고, 늘 새로운 것에 관심이 많으신 얼리어답터다. 독서가로 유명할 정도로 책도 많이 읽으시는데, 대화를 나눠보면 배우는 게 많다. 이수진 차장님도 떠오른다. 카리스마 있으시면서도 유쾌하신 분이다. 비행을 할 때는 독려도 잘해주시고.”
전미애: “예쁘고, 날씬하고.(웃음)”
최보윤: “육아와 직장을 다 잡고 계시는 분이다.”
김소운: “부럽다.”
최보윤: “오찬희 과장님이라고, 와인 강좌를 해주시는데, 다 입이 벌어졌다. 우리만 듣기엔 아깝다 싶을 정도로 재미있게 강의를 하시는데, 그것도 프랑스에서 다 공부해서 오셨다고 하더라.”
전미애: “우리는 모든 게 상식 선에서 맛만 보는 정도라고 한다면, 정말 멋있는 분들은 뭐든 깊이를 갖추고, 자기 관리에 철저한 것 같다. 같이 일하는 곳에도 언어, 기본 상식이나 매너 등 모든 것을 두루 갖추신 분이 많다. 유쾌하고 일을 즐길 줄 안다는 공통점도 있다.”
김소운: “남한테 서비스를 하려면, 내 마음이 여유롭고, 내가 행복해야 한다. 때문에 자기 관리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의 행복과 여유를 나눠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보윤: “매직팀의 양원영 선배님이라고. 가족에게 정말 잘하기로 소문이 난 분이다. 내 식구들부터 즐겁게 해주고 잘할 줄 알아야 진짜 서비스인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다. 항상 유쾌하신 분이다.”
승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소운: “너무 만만하게 생각하지 말자. 예쁘게 꾸미고 가방 들고 여행 다니는 직업은 아니라는 것. 입사하기 전에 충분히 준비하고, 공부해야 한다. 사람들과 맞닥뜨렸을 때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손님한테 말 거는 것도 어렵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라면, 어려운 직업일 수 있다.”
최보윤: “스튜어디스를 준비한다고 외모에 손을 많이 대는데, 그보다는 외국어나 체력 등 내실을 기할 수 있는 것에 힘을 썼으면 좋겠다. 외적인 것은 화장법이나 인상 교정 등 교육원에 들어와서도 충분히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미애: “외국어를 잘하면 좋겠다. 긍정적인 마인드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소통 능력이 필요한 일이니까.”
올해나 앞으로 10년 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최보윤: “세계지도를 방에 크게 그려놓고, 가족끼리 세계 여행을 다녀보고 싶다. 책 안에 있는 사진, 일러스트로 전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은 실현되었다. 홍대 텐바이텐에서 5월 한 달간 전시를 한다.”
전미애: “20대 때는, 서른이 되면 뭔가 달라질 거라는 막연한 게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마흔이 됐을 때도, ‘이제 한풀 꺾이는 불혹이구나’ 하지 않고, 계속 발전하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승무원이면 승무원으로서. 마흔이 됐을 때도, ‘내가 뭘 해냈구나’ 성취할 수 있는 걸 10년 동안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소운: “가장 큰 계획은 가족을 잘 꾸리는 것. 가족과 일을 병행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
스튜어디스,
매일매일 여행중이거나 비행중이거나
부러우면 지는 거다, 그녀들의 여행, 비행, 만행!
올해로 7년차에 접어든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 이코노미부터 퍼스트클래스까지 근무하고 있다. 흥미로운 이력이라면 남들보다 해외를 많이 나간다는 것. 그러면서도 틈만 나면 여행을 다닌다는 것. 스튜어디스는 다..
‘우리 시대의 프루스트’ 파트릭 모디아노.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문학세계를 정의한 장편소설이 출간됐다. 주인공 보스망스는 놀라울 만큼 작가의 실제와 닮아 있다. 유년시절 추억의 장소에서 기억의 파편들이 발견하면서, 그 사이사이 영원히 풀리지 않을 삶의 미스터리를 목도하는 소설.
IT 현자 박태웅이 최신 AI 트렌드와 인사이트를 담은 강의로 돌아왔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인공지능 6대 트렌드를 제시하고, 그에 따른 잠재적 위험과 대처 방안까지 담았다. 인공지능과 공존해야 할 미래를 앞두고 우리는 어떤 것을 대비해야 할까? 이 책이 해답을 제시한다.
『명탐정의 제물』 이후 일본 미스터리 랭킹 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시라이 도모유키의 신작. 독보적인 특수설정 1인자답게 이번 작품 역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기괴한 죽음 속 파괴되는 윤리성, 다중추리와 치밀한 트릭 등이 복잡하고도 정교하게 짜여 있다. 보기 드문 매운맛 미스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