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의 성급한 반항심
람슈타인 Rammstein <Du Hast>
이 글을 쓰며 람슈타인의 <두 하스트>를 다시 듣는 지금은 기분이 좋지 않다. 이 음악은 내재된 반항심을 발화시키는 데 탁월한 명곡인가보다. 이번엔 나 자신에 대한 반항심이 터졌다.
여러 나라 출신의 남자들이 회담을 하는 TV프로그램을 보다 독일인 대표 다니엘 린데만 씨가 미남 투표 1위를 차지하는 장면을 보았다. 점잖고 안 웃기고 이지적인 그는 내가 겪은 전형적 독일인 이미지와 달라 생소했다. 화끈한 마초 이미지가 독일에 대한 내 고정관념이었다. 나는 괴리감을 느껴 한때 독일을 대표하던 인더스트리얼 헤비메탈 밴드 람슈타인(Rammstein)의 음악을 오랜만에 찾아들었다. 십년 전 독일을 여행할 때 끼고 다닌 아티스트였다.
그때 나는 베를린 중앙역에 내리자마자 아름다운 미술관과 박물관을 등을 섭렵하기 위한 기대에 부풀었고, 인포메이션 부스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어느 모퉁이에서 딱 스킨헤드 양아치 셋을 만났다. 대가리를 빡빡 밀었고 눈빛에 장난기가 없으며 스터드 박힌 가죽옷을 입고 있었다. 아마도 지나가는 외국인을 위협하는 게 하루 일과인 네오나치 애들로 보였지만 차림새가 너무 전형적이라 오히려 장난 같았다. 게다가 헤비메탈을 좋아하게 생긴 친구들이라 친근감마저 느꼈다. 내가 입은 헬로윈(HELLOWEEN) 티셔츠를 알아봐주길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그때였다. 양아치들이 화난 얼굴로 소리쳤다.
“어이 거기 잘생긴 자식, 당장 너희 나라로 안 꺼질래!”
독일어를 잘 모르지만 아마도 그런 말이었을 것이다. 내 뒤엔 아무도 없었다. 분명 나한테 하는 말이고, 욕인 것 같았다. 그런데 어쩐지 찰지지가 않았다. 듣는 순간 모욕감을 느낀다거나, 기분이 나빠지지 않았다. 뭐라는 건지도 모르겠고 착착 감기는 맛도 없었다. 독일어 딕션은 아무 말이나 해도 욕처럼 들릴 수 있어 매우 유리한 고지에 있는데 실망스러웠다. 형이 소싯적에 욕 좀 하고 다닐 때 쓰던 18단 콤보 기술을 전수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말을 진짜 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나는 가는 길을 멈추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자 빡빡머리 세 녀석의 눈빛이 독일제 카메라 렌즈처럼 번뜩였고 초점이 내게 맞춰졌다.
“&Affe@! X#Hundesohn*#!Mistkerl@$%!!!"
오, 그건 맹견 짖는 소리와 흡사했으며 섬찟한 찰기가 있었다. 모르는 단어들이었지만 딱 들어도 쌍욕이었다. 이야 수준급이네. 하려는데 하필 걔네들은 태양의 역광으로 서 있어 나는 찡그린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는 셈이 되었다.
내 반응을 응전으로 간주한 그들은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달려왔다. 아차, 빌어먹을! 시선을 마주치며 인상을 써버렸어. 엿 됐다. 어떡하지.
어떡하긴, 닥치고 쨌다. 십년 전이라 젊고 잘생겼을 때니까 얼굴을 지켜야 했다. 사실 외국에서 양아치들이 시비 걸면 뭐라고 지랄하든 생까고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걸 깜빡했다.
긴 배낭여행에 지쳐있었고, 등에 멘 짐은 무거웠지만 나는 꽤 빨리 달렸다. 아마도 내 100미터 달리기 개인기록인 16초는 넉넉히 깼을 것이다.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리다 정신차려보니 나는 어느 패스트푸드 햄버거 가게 안에 피신해 있었다. 다행히 녀석들은 더이상 나를 쫓아오지 않았다. 어느 나라를 가든 독일인 여행자들과는 쉽게 친구가 되고, 꽤나 유쾌한 캐릭터를 많이 만났는데 실제 본토에서의 이미지가 확 나빠져 버렸다. 자리에 앉아 햄버거를 처묵하는 사람들도 남녀를 불문하고 음식이 몹시 맛없거나, 삶은 엄숙한 것이라는 표정을 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갑자기 뜀박질을 해서인지 강력한 시장기가 밀려왔다. 다른 식당을 찾기엔 발도 아프고, 피신처가 되어준 게 고마워서라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버거를 먹어야 했다. 함부르크도 아니고 베를린에서 하필 버거라니. 한데 메뉴 중에 Kinder라는 게 있었는데 꽤 저렴했다. 나는 가격이 더 친절한 메뉴인가 보다 하고 주문했다. 그러자 주문받는 직원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잘생긴 동양인 처음 보나요 생각했는데 나온 음식을 보니 어린이용 메뉴였다. 아아, 부끄러워서 음식을 받아갈 때 ‘냠냠 맛있게땅’ 하고 어린이인 척 했는데 하고 보니 그게 더 부끄러웠다. 떡대 좋은 직원이 고개를 살짝 꺾으며 나를 딱하다는 듯 바라보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양 적고 쪽팔린 햄버거를 먹는 동안 내 표정도 독일인들처럼 딱딱해졌다. 애들이 먹다간 당장 뱉고 울어버릴 것 같은 맛이었다. 제기랄. 나는 가슴이 비딱해지기 시작했다. 쫓기듯 사는 게 싫어 배낭여행 나왔는데 양아치들에게 쫓기다 미국식 패스트푸드로 쫓기듯 끼니를 때우는데 맛대가리 없고 이러기야.
그 햄버거 가게 안에는 람슈타인의 <두 하스트>가 깔려있었다. 성질 급한 사람이 듣기 좋게 쿵쿵거리는 비트에다 게르만족 마초 같이 짧고 굵게 외치는 노랫말 톤이 내 반항심을 일깨웠다. 그것은 마치 독일 친구 람슈타인이 내게 보내는 격려 같았다.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특히 중간에 “나인Nein!” 하고 두 번이나 외치는 부분은 내가 아는 독일어였다. 영어론 NO, 한국말론 아니아니. 그 낱말은 곧 베를린에 대한 내 견해가 되었다.
“를린 언니, 저 맘에 안 들죠?”
잔뜩 기대했던 베를린 미술관들의 현란한 컬렉션이 문득 흥미롭지 않았다. 베를린이 나를 싫어한다는 느낌이 들어버린 데다 일정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싫었다. 베를린에서 꼭 봐야할 것들을 본다는 게 배낭여행자들이 쫓기듯 치러야 하는 전형적인 숙제처럼 느껴졌다. 가슴속엔 오랜 여행으로 지친 피로감과 혼자 여행하는 쓸쓸함과 공허함이 스멀스멀 자리를 폈다. 그쯤 되자 베를린에 더 머물 기분이 아니었다. 숙소를 예약한 것도 아니니 여행에 대해 반항심을 부릴 찬스였다.
내가 가진 유레일패스는 날짜별 플렉시블이라 하루에 몇 번을 타든 상관이 없었다. 나는 꽤 반항적인 심정으로 뮌헨 행 기차에 올라버렸다. 햄버거 하나 먹고 베를린을 떠나긴 아까웠지만 반항심이 그보다 컸다. 첫인상에 빈정상한 것이다. 처음부터 생양아치들을 만나버린 건 단순히 운이 나빴던 거지만 어린이 메뉴를 먹어선지 애처럼 베를린 탓을 하고 싶었다. 기차가 미끄러지기 시작할 때 나는 람슈타인의 <두 하스트(Du Hast)>를 귀에 꽂았다. 강력한 비트가 내 반항심과 연동하자 위로받는 것 같아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이 글을 쓰며 람슈타인의 <두 하스트> 를 다시 듣는 지금은 기분이 좋지 않다. 이 음악은 내재된 반항심을 발화시키는 데 탁월한 명곡인가보다. 이번엔 나 자신에 대한 반항심이 터졌다. 아니 이봐, 유럽에 자주 갈 수 있는 인생도 아니고, 베를린에 내가 좋아하는 예술적 분위기와 어마어마한 컬렉션들과 즐길 문화가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무시하고 그때 그냥 떠났단 말이냐. 양아치에 쫄고, 애들 거 먹고 쪽팔려서 “너랑 앙 놀아”를 시전하다니. 어린애 바보 똥구멍 같지 않냐. 아아, 후회스럽다!
지금은 만약 또 양아치들을 만나더라도 베를린에 다시 가보고 싶어 죽겠다. 반항심이란 부조리와 불의를 지나칠 수 없을 때나, 지루한 반복을 탈피하고 싶을 때 좋은 효과가 있지만 그냥 삐친 놈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독일어 사전을 찾아보니 <Du Hast>의 뜻이 이렇다. Du- 너, 자네 / Hast- 조급, 성급. 이럴 수가. 용례가 맞는지 모르겠고 Hast가 영어의 Have에 해당하는 단어로 더 많이 쓰이는 것 같은데 모르겠고, 람슈타인은 내 반항심을 부추기는 게 아니라 경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네 성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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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 『말이 되냐』,『예테보리 쌍쌍바』와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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