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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소생, 그 생명의 순환을 말하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교향곡 2번 '부활'('Auferstehung','Resurrection')
“오르간이 있는 층에서 합창단이 클로포슈토프의 ‘부활’을 노래했다. 그것은 번갯불 같았다. 내 마음속에 있던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모든 예술가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합니다. 영국의 시인 T.S. 엘리어트는 <황무지>(The Wasteland)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 기억과 욕망을 뒤섞으며 /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하지만 지금 이 땅의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가슴을 억누르는 이 무거운 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하나는 슬픔이고, 또 하나는 분함입니다. 지금 우리는 슬프고 분합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와 싸우다 숨을 거뒀을 어린 생명들을 생각하노라면 참담한 슬픔이 몰려옵니다. 살릴 수 있었던 아이들을 아직까지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한 국가 권력의 무능과 무책임을 생각하면 분하고 억울합니다.
지난주에는 황망한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이 컬럼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펜을 듭니다.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2번 ‘부활’입니다. 독일의 시인 클로프슈토크(1724~1803)의 ‘부활’에서 영감을 받은 이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시 일어서라, 다시 일어나 / (중략) / 가혹한 사랑의 투쟁 속에서 / 나는 솟구쳐 오르리라 / (중략) / 일어서라 그래 다시 일어나 / 그대 내 마음이여 어서 일어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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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말러 Gustav Mahler, (1860년 7월 7일 - 1911년 5월 18일) [출처: 위키피디아]
죽음을 모티브로 삼았지만 부활을 꿈꾸고 있는 음악입니다. 말러가 완성한 교향곡은 모두 10곡인데, 그중에서도 유난히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러는 스물여덟 살이던 1888년에 첫번째 교향곡 ‘거인’을 완성하고 곧바로 이 두번째 교향곡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하지요. 하지만 완성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당대 최고의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1830~1894), 말러와도 친분이 두터웠던 이 지휘자가 세상을 떠난 1894년에 그의 추도식에서 영감을 받아 마지막 악장을 작곡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최초의 스케치에서 완성까지 6년의 세월이 걸린 곡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세기말의 작곡가 말러는 전작인 교향곡 1번 ‘거인’(Titan)의 연장선상에서 이 곡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말하자면 교향곡 1번의 음악적 화자였던 ‘거인’이 죽음을 맞는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곡이지요. 물론 말러는 훗날(1896년) 1번 교향곡에서 ‘거인’이라는 표제를 아예 없애 버렸지만, 2번 ‘부활’의 첫번째 악장을 작곡하던 무렵에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던 구상은 여전히 ‘거인의 죽음’이었습니다.
이런 지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말러는 베토벤의 아홉번째 교향곡 ‘합창’, 특히 마지막 악장에서의 합창을 자신의 음악적 이상으로 여겼습니다. 말러가 흠모했던 작곡가 바그너도 마찬가지였지요. 바그너는 음악과 문학이 혼연일체된 종합예술을 추구했고, 말러도 자신의 교향곡에서 그런 이상을 실현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초기 교향곡들을 일종의 ‘교향시’로 간주했습니다. 물론 말러는 훗날 자신의 음악이 표제 없이 연주되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표했지만, 적어도 두번째 교향곡을 작곡할 무렵의 말러는 문학적 언어를 합창으로 표현해내는 일종의 ‘칸타타 심포니’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폴란드의 시인 아담 미츠키에비츠(1789~1855)의 시에서 착상을 얻어 단악장의 교향시를 작곡했고, 그 곡에 ‘장례식’(Todtenfeier)이라는 제목을 달았지요. 그것이 바로 교향곡 2번의 1악장입니다.
3악장은 템포에 대한 별도의 지시 없이, ‘부드럽게 흘러가는 움직임으로’라는 지시가 독일어로 적혀 있는 스케르초 악장입니다. 팀파니의 타격으로 시작해서 스케르초 악장다운 어릿광대풍의 연주가 펼쳐집니다. 인생의 희비극, 기괴함, 그리고 익살맞음이 뒤섞인 악장입니다. 말러의 특유의 통속적 선율이 빈번히 등장하기도 합니다. 혼란스럽게 뒤틀린 우리의 삶, 때로는 악몽을 꾸는 것처럼 공포스러운 삶에 대한 묘사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말러는 이어지는 4악장에서 한 줄기 빛을 불러옵니다. ‘태초의 빛’(Urlicht)이라고 명명한 악장이지요. 알토 독창이 “O Roschen rot!(오 붉은 장미여!)”라고 노래하면서 시작합니다. “Der Mensch liegt in gro?ter Not! 인간은 큰 위기에 처해 있구나! Der Mensch liegt in gro?ter Pein! 인간은 큰 고통에 빠져 있구나! Je lieber mocht‘ ich im Himmel sein. 나는 차라리 하늘(천국)에 머물리라”라는 가사가 이어집니다.
5악장은 마침내 이 칸타타적 심포니의 절정입니다. 종말, 혹은 최후의 심판이 대지를 뒤덮는 광경을 관현악이 묘사합니다. 말러 스스로 “절망의 울부짖음”이라고 칭했던 불협화음으로 막을 엽니다. “계시의 트럼펫”이 울려퍼지고, 멀리서 들려오는 호른은 심판의 날을 알리면서 부활을 암시합니다. 플루트와 피콜로는 나이팅게일처럼 지저귀면서 “지상에서의 삶을 돌아보는 마지막 메아리”를 묘사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성자와 천사들의 노래가 등장하지요. “일어나라, 그래 일어나 / (중략) / 너는 아무것도 잃지 않으리라 / 네가 바란 것이 네 것이 되리, 그래 네 것이 되리 / 네가 사랑했던 것이 네 것이 되리 / (중략) / 그대 내 마음이여 어서 일어서라!”
관련태그: 구스타프 말러, 부활, Auferstehung, Resurrection, 브루노 발터, 레너드 번스타인, 클라우디오 아바도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