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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꿈꿨던 문학청년, 음악가로 살게 된 사연

슈만, 교향곡 1번 B플랫장조 op.38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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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곡은 ‘봄’이라는 표제성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요. 신혼의 단꿈에 부푼 슈만의 행복감, 봄날의 생동하는 분위기 등의 해석이 따라붙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곡이 그렇게 따사로운 느낌으로만 충만한 것은 아닙니다.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 [출처: 위키피디아]

어린 시절의 슈만은 문학적 재능이 빼어났던 소년이었습니다. 15살에 자서전을 쓰기도 했고, 김나지움 마지막 학년(우리로 치면 고등학교 3학년이겠지요)에는 ‘시와 음악의 밀접성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쓰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학적 재능은 아마도 부친에게서 이어진 것으로 유추됩니다. 아버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1773~1826)는 슈만의 고향인 츠비카우에서 서점을 운영하면서 출판업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번역가로도 활동했지요. 외국의 시인들, 예컨대 영국 시인 바이런의 작품을 번역해 독일에 소개하는 일 같은 것을 했습니다. 1810년에 다섯 형제의 막내로 태어난 슈만은 늦둥이였는데, 아버지는 이 아들을 유독 곁에 두고 예뻐했다고 하지요. 늦둥이여서도 그랬겠지만 막내가 보여준 문학적 재능 때문이기도 했을 겁니다. 슈만은 열 살이 조금 넘었을 때부터 아버지의 서점에서 출판을 위한 교정을 본다거나, 일부 항목을 집필하기도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용돈을 주었다고 합니다. 슈만은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의 문학적 재능과 꿈을 한층 더 키웠겠지요.

1828년에 김나지움을 졸업한 슈만이 뮌헨으로 가서 하이네를 만난 것도 그런 맥락입니다. 적어도 이 시절의 슈만은 시인을 꿈꿨던 문학청년이었다고 봐야하겠습니다. 당시 하이네는 열한 살 연하의 슈만을 데리고 친절하게 뮌헨 시내 곳곳을 안내해줬다고 합니다. 상상도 못했겠지요. 자신의 시편들이 아직 앳된 얼굴의 그 청년에 의해 아름다운 노래로 거듭날 것이라고 짐작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슈만의 훗날 하이네의 시를 가사로 삼아 <리더크라이스>, <시인의 사랑> 같은 가곡을 작곡합니다. <시인의 사랑>에 대해서는 이 칼럼의 지난해 3월 6일자(//86chu.com/Article/View/21598)에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잠시 짬을 내 클릭해보시기를 권합니다.

자, 슈만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를 좀더 이어가겠습니다. 그렇게 문학적 재능과 더불어, 슈만은 당연히 음악에 대한 재능과 꿈도 함께 갖고 있었겠지요. 본인이 남긴 글에 따르면 7살 무렵부터 피아노를 쳤다고 합니다. 라이프치히대학 법학과로 진학해서는 훗날 자신의 아내가 되는 클라라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비크(1785~1873)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하지요. 1년 뒤에는 학교를 하이델베르크대학 법학과로 옮기는데, 이곳에는 안톤 티보(1772~1840)라는 유명한 교수가 있었습니다. 법학자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었지만 음악평론가로도 활약이 대단했던 인물이지요. 그의 집에서는 종종 음악회가 열렸는데, 슈만은 그 음악회에 참석하는 것이 “하이델베르크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이라는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에는 7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가 그의 집에서 연주되고, 그가 피아노로 반주할 때 내 눈에서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이 두 명의 스승, 그러니까 비크와 티보는 슈만의 음악적 생애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티보는 슈만에게 “법학보다는 음악을 하는 게 어떻겠나”라고 권했습니다. 슈만은 세상을 떠난 아버지 대신 고향집을 지키고 있던 어머니에게 당장 편지를 쓰지요. 음악을 하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굳히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긴가민가 싶었겠지요. 막내아들이 음악가로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을 테니까요. 슈만도 어머니의 그런 우려를 의식했는지 “프리드리히 비크 선생님의 의견을 들어보세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국 비크가 망설이던 어머니에게 쐐기를 박습니다. “내가 이 아이를 3년 안에 유능한 피아니스트로 키워내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것이지요. 슈만은 하이델베르크를 1년 만에 떠나 라이프치히로 되돌아옵니다. 그때부터 비크의 집에서 제자로 거주합니다. 이때부터 비크의 딸인 클라라와의 인연이 깊어졌다고 봐야하겠지요.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 1819~1896), [출처: 위키피디아]

슈만이 교향곡 1번 B플랫장조를 썼던 때는 31세였던 1841년입니다. 말하자면 클라라와 결혼한 이듬해였습니다.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스승 비크는 자신의 딸과 슈만이 결혼하는 것을 극렬하게 반대했지요. 사실 이해가 갈 만한 대목입니다. 비크가 슈만을 자신의 집에 거주하게 한 이후, 스승은 당연히 제자의 이상성격, 혹은 조울증 같은 것을 눈치 챘을 겁니다. 비크의 주장에 따르면 슈만은 음주벽까지 있었다고 하지요. 게다가 슈만은 스물두 살이었던 1832년에 오른손 손가락을 다쳐서 피아니스트의 길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어도 스승이 보기에는, 음악가로서의 장래마저 불투명해진 상황이었습니다. 세상에 어떤 아버지가 그런 남자와 딸의 결혼을 승낙할까요?

물론 이후의 과정은 알려진 대로입니다. 슈만은 법정 투쟁 끝에 클라라와의 결혼에 마침내 성공하지요. 1840년이었습니다. 슈만은 서른 살이었고 클라라는 스물한 살이었지요. 당시 슈만의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는 상상이 가고도 남습니다. 그는 결혼한 그해에 수많은 사랑의 발라드를 작곡합니다. <리더크라이스> <미르테의 꽃> <시인의 사랑> <여자의 사랑과 생애> 등 많은 가곡을 작곡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 해를 슈만의 음악적 생애에서 ‘가곡의 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듬해에 교향곡 1번을 작곡하고 교향곡 4번의 초고를 씁니다. 규모가 작은 교향곡이라고 할 수 있는 <서곡, 스케르조와 피날레>도 이 해에 작곡하지요. 그래서 1841년을 ‘가곡의 해’와 대비시켜 ‘교향곡의 해’라고 부릅니다.

교향곡 1번 B플랫장조에 붙어 있는 ‘봄’이라는 표제는 대체로 슈만이 직접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모두 4개 악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슈만은 각각의 악장마다 ‘봄의 방문’, ‘해질녘’, ‘즐거운 놀이’, ‘무르익은 봄’이라는 표제를 붙였습니다. 특히 1악장 도입부에서 호른과 트럼펫이 연주하는 첫번째 주제의 악상을 시인 아돌프 뵈트거의 ‘봄의 시’(Fruhlingsgedicht)에서 얻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골짜기마다 봄이 꽃 피고 있다’라는 구절이지요. 이런저런 이유로 ‘봄’이라는 표제가 통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슈만은 웬일인지 곡이 완성된 후에 ‘봄’이라는 표제를 떼어버리고 초연 당시에도 그냥 ‘교향곡 1번 B플랫장조’로 발표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 곡은 ‘봄’이라는 표제성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요. 신혼의 단꿈에 부푼 슈만의 행복감, 봄날의 생동하는 분위기 등의 해석이 따라붙는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곡이 그렇게 따사로운 느낌으로만 충만한 것은 아닙니다. 슈만이 최초의 자필악보에 써넣었던 ‘봄’이라는 표제와 달리, 어둡고 광폭하며, 심지어는 여전히 한풍이 몰아치는 듯한 악상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옵니다. 네 개의 악장을 반복해 들을수록 슈만의 강박과 우울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게 사실이지요.


정신적 분열, 혹은 조울은 슈만의 음악을 이해하는 통로 가운데 하나일 겁니다. 교향곡 1번도 그렇습니다. 트럼펫과 호른의 팡파르로 시작하는 1악장은 처음부터 무겁고 느리지요. ‘봄이 왔다’라는 암시로는 왠지 부적절해 보이는 이 불안한 팡파르는 1악장이 끝날 때까지 여러 번 반복됩니다. 가끔 목관악기들, 특히 플루트가 앞으로 나서며 봄날의 새소리를 연상케 하는 악구를 연주하지만, 그 새들의 지저귐마저 이내 사그라지고 다시 어두운 팡파르가 고개를 쳐들고 있지요.



이어서 라르게토(Larghetto)로 느리게 흘러가는 2악장은 슈만의 ‘봄’에서 가장 로맨틱한 악장으로 손꼽힙니다. 하지만 그 로맨틱은 우아함이나 사랑스러움보다는 어딘지 쓸쓸한 비애의 정서를 풍깁니다. 아타카(attacca)로 중단 없이 이어지는 3악장 스케르초에서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고, 마지막 4악장에서 햇살처럼 잘게 부서지는 음표가 잠시 고개를 내밀지만 이 역시 관현악 총주의 무거운 기세에 눌려 사라져버리고 말지요.


안타깝게도 슈만은 ‘마음의 병’을 끝내 치유하지 못했습니다. 44세에 라인 강에 몸을 던졌다가 지나가던 배에 간신히 구조됐지만, 46세에 엔데니히 정신병원에서 눈을 감습니다. 그는 왜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에 찾아온 아내 클라라에게 “알겠어(Ich kennen)”라고 말했던 것일까요? 슈만은 본 교외의 묘지에 묻혔고 아내 클라라도 40년 뒤에(1896년) 옆자리에 누웠습니다.


조지 셸(George Szell)ㆍ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1959년/Sony

오래 전의 녹음이지만 세부적 표현력에서 여전히 높은 점수를 받아 마땅한 음반이다. 조지 셸은 1946년부터 1970년까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이끌면서 세계적인 교향악단으로 키워냈다. 이 음반에서도 셸이 보여주는 확고한 카리스마를 만날 수 있다. 악보 자체를 중시하는 지휘자의 진중함과 더불어 화사한 색채감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음반이다. 특히 현악기들의 유려함, 금관의 단단한 응집력이 지금 들어도 좋다. 2장의 CD에 슈만의 교향곡 4곡을 모두 수록했다.




볼프강 자발리쉬(Wolfgang Sawallisch)ㆍ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1972년/Warner Classics

지난해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볼프강 자발리쉬가 전성기 시절에 연주한 녹음이다. 정통 독일 지휘자로 설명되는 그는 엄격하고 견고한 구성미를 중시했다. 당연히 구름처럼 많은 팬을 모으기에는 부적절한 체질이었다. 게다가 한창 활약하던 1960~1970년대에는 카라얀과 번스타인, 솔티 등의 지휘자들이 음반과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는 이 음반은 LP시절부터 애호가들의 필청반으로 손꼽혀왔다. 1악장 도입부의 팡파르에서부터 두터운 중량감을 보여주면서 중후한 연주를 펼쳐낸다. 아래 추천하는 번스타인의 해석과 많이 대비된다고 할 수 있다.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ㆍ빈 필하모닉/1984년/DG

슈만의 교향곡 1번을 연주한 음반 중에서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음반이다. 봄의 느낌이 완연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출렁거리는 연주, 화사한 색감이 진하다. 말하자면 번스타인 스타일로 밝게 채색된 ‘봄’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지지하고 또 다른 이들은 불편해한다. 하지만 특유의 리드미컬한 지휘로 봄날의 약동감을 구현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번스타인과 빈필하모닉의 이 녹음이야말로 추천 1순위다. 이 음반 역시 2장의 CD에 슈만의 교향곡 4곡을 수록했다. 착한 가격에 4곡을 모두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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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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