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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나고 피곤할 때 베토벤 ‘전원’에 귀기울여 보세요

베토벤 <교향곡 6번 F장조 op.68 ‘전원’> 위안이 되었던 숲길에서 영감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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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6번은 바로 하일리겐슈타트의 숲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느끼는 평화로운 감정을 형상화하고 있는 곡입니다. 교향곡 5번에 ‘운명’이라는 별칭을 붙인 것은 후대 사람들(주로 일본인들)이었지만, 교향곡 6번에 ‘전원’(Pastorale)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는 베토벤 자신이었지요.

지난 회에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을 들었습니다. 내친 김에 <교향곡 6번 F장조>로 이어가겠습니다. 5번과 6번은 같은 시기에 태어난 쌍둥이입니다. 지난 회에서도 얘기했듯이 베토벤은 교향곡 작곡을 잠시 중단했다가 1807년에 다시 펜을 듭니다. 그 해와 이듬해에 두 개의 교향곡을 동시에 작곡해 1808년 12월 22일, 본인의 지휘로 한꺼번에 초연합니다. 하지만 두 곡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5번이 ‘전투와 승리’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반면, 6번은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5번과 6번은 ‘이란성 쌍생아’입니다. 같은 부모에게서 같은 날 태어났지만 생김새가 많이 다릅니다.


산책하는 베토벤 [출처: 위키피디아]

유리우스 슈미트(1854~1935)가 그린 ‘산책하는 베토벤’이라는 그림을 기억하시나요? 정장 차림의 베토벤이 뒷짐을 진 채 숲속의 오솔길을 걷고 있는 인상적인 그림입니다. 아마 기억나실 겁니다. 물론 베토벤의 실제 모습은 아닙니다. 베토벤이 산책하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그린 그림이겠지요. 하지만 그림이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베토벤에게 산책은 매우 중요한 일과였습니다. 귓병에 시달리며 유서까지 써야 했던 베토벤은 하일리겐슈타트의 숲길을 거의 날마다 거닐었습니다. 요제피네를 향한 열정이 어느 정도 잦아들고 다시금 교향곡 작곡에 손을 댔을 때도, 그는 여전히 숲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자연과 무언의 대화를 주고받는 것은 당시의 베토벤에게 크나큰 위안이었을 겁니다. 다른 사람과 대화가 불편할 정도로 귀가 안 들리던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랬을 겁니다. 그래서 생전의 그는 “사람은 속일 때가 있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숲 속에 있으면 기쁘고 행복하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렇게 베토벤에게 위안을 줬던 하일리겐슈타트의 숲길은 이제 ‘베토벤 산책로’라는 이름으로 여행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교향곡 6번은 바로 그 하일리겐슈타트의 숲을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 느끼는 평화로운 감정을 형상화하고 있는 곡입니다. 교향곡 5번에 ‘운명’이라는 별칭을 붙인 것은 후대 사람들(주로 일본인들)이었지만, 교향곡 6번에 ‘전원’(Pastorale)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는 베토벤 자신이었지요. 뿐만 아니라 베토벤은 이 곡의 5개 악장에 저마다 ‘표제’를 달아놨습니다. 1악장은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상쾌한 기분’, 2악장은 ‘시냇가의 정경’, 3악장은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 4악장은 ‘천둥, 폭풍우’, 5악장은 ‘목가(牧歌),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감사와 기쁨’입니다.


하일리겐슈타트 공원 안에 있는 베토벤 동상 [출처: 위키피디아]

그래서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교향곡 6번을 ‘표제음악’(Program Music)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표제음악이란 작곡가가 ‘어떤 대상’을 표제로 내세우고, 그것을 음악적으로 묘사하는 것을 일컫습니다. 그 ‘어떤 대상’은 자연이나 풍경이 될 수도 있고, 특정한 줄거리나 사상 같은 관념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음(音)의 순수한 예술성을 추구하는 ‘절대 음악’(Absolute Music)과 대립되는 개념입니다. 예컨대 지난 11월 30일자 칼럼에서 함께 들었던 비발디의 <사계>는 계절의 변화에 따른 자연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표제음악입니다. 이렇듯 어떤 사물이나 풍경, 혹은 줄거리나 관념을 묘사하는 표제음악은 19세기 이후의 낭만주의에서 특히 성행합니다. 문학과 음악이 하나로 뒤엉키던 질풍노도의 시대였지요. 대표적인 곡이 베를리오즈의 광기 넘치는 대작 <환상 교향곡>입니다. 물론 리스트도 ‘교향시’라는 장르를 통해 표제음악을 여러 곡 썼습니다.

그런데 베토벤은 자신의 여섯 번째 교향곡이 ‘표제음악’으로만 규정되는 것을 우려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 곡과 관련해 “정경묘사는 불필요하다. 음악은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말하자면 음악적 화자(話者)의 감정과 심리 상태가 ‘풍경’이라는 이름의 객관적 외부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을 좀 더 곱씹어본다면, 베토벤이 매우 근대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주체의 관점에 따라 사물은 달리 보일 수 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1악장」

이제 음악 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숲으로 막 들어섰을 때의 즐거운 감정을 표현하고 있는 1악장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allegro ma non troppo). ‘빠르지만 지나치지 않게’라는 뜻입니다. 현악기들의 활약이 매우 두드러집니다. 바이올린이 오스트리아 시골마을에서 불리던 민요의 가락을 첫 번째 주제로 밝고 환하게 제시합니다. 두 번째 주제도 역시 바이올린이 제시하고 목관이 이어받습니다. 나뭇잎을 흔드는 상쾌한 바람소리, 곳곳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2악장」

이어서 시냇가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2악장 ‘안단테 몰토 모소’(Andante molto mosso). ‘느리게, 매우 생동감 있게’라는 뜻입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등의 현악기들이 졸졸졸 흘러가는 시냇물의 흐름을 끊임없이 묘사합니다. 부드럽고 청량한 화음이 가슴을 적셔주는 악장이지요. 그렇게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와 더불어, 곳곳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1악장에서도 새들이 지저귀지만 2악장에서는 더 많은 새소리들이 등장합니다. 플루트는 꾀꼬리를, 오보에는 메추리를, 클라리넷은 뻐꾸기의 지저귐을 그려냅니다. 이렇게 숲에서 들려오던 소리를 오선지에 옮기던 그때, 베토벤은 귀가 거의 안 들리던 상황이었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3~5악장」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이라는 표제를 달고 있는 알레그로(빠르게) 템포의 3악장에는 활달한 기운이 넘칩니다. 즐겁고 유머러스한 스케르초풍의 악장이지요. 현악기들이 톡톡 튀어오르는 짧은 음형을 빠르게 연주하면서 시작합니다. 이 인상적인 악구는 곡이 진행되면서 여러 차례 반복해 등장합니다. 때로는 현악기가, 때로는 관악기가 연주합니다. 유럽의 시골마을 풍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사람들이 발걸음을 함께 맞추며 춤을 추는 모습을 연상하면 되겠습니다. 얼근하게 한잔 걸친 농부들의 춤은 때때로 격렬해지기도 합니다. 아울러 오보에와 파곳 등의 관악기가 익살스런 악구를 연주하면서 흥겨움을 배가시키기도 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호른이 마치 팡파레를 터뜨리듯이 힘찬 연주를 한차례 선보인 후, 곧이어 4악장으로 ‘중단 없이’ 넘어갑니다.

3악장부터 5악장까지는 쉬지 않고 연주됩니다. 음악용어로는 ‘아타카’(attacca)라고 합니다. 휴지부(休止符) 없이, 다음 악장을 계속 연주하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3악장 마지막 부분에서 터져 나오는 호른 소리를 잘 염두에 두실 필요가 있습니다. 곧바로 새로운 악장이 문을 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4악장은 ‘천둥, 폭풍우’라는 표제가 암시하듯이, 악장의 변화를 금세 감지할 수 있습니다. 천둥이 치고 폭풍우가 몰려오는 장면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음의 현악기들이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천둥소리를 그려낸 다음, 피콜로와 트롬본 등의 관악기, 거기에 타악기인 팀파니까지 가세해 폭풍우를 묘사합니다. 교향곡 6번에서 풍경 묘사적인 성격이 가장 두드러지는 악장입니다. 현악기들이 하강음형과 상승음형을 반복하면서 급박한 위기감을 그려내기도 하지요. 하지만 악장의 후반부에 이르면 다시 환한 햇살이 서서히 비추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장면은 플루트가 담당합니다. 그리고 쉼 없이 5악장으로 넘어갑니다.

5악장 알레그레토(조금 빠르게, 알레그로보다 약간 느리게)는 클라리넷과 호른이 목가적 선율을 연주하면서 문을 엽니다. 마치 목동의 뿔피리 소리처럼 들려옵니다. 바이올린이 그 목가를 부드럽게 이어받습니다. 두 번째 주제도 역시 바이올린이 부드럽게 연주합니다. 베토벤이 스스로 붙여놓은 표제처럼, 안식과 감사의 느낌으로 충만한 악장입니다. 일이 잘 안 풀려 짜증이 나거나 피곤할 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베토벤의 ‘전원’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좀 편안해지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베토벤처럼 숲이나 산을 직접 찾아가는 것도 좋겠지요. 새해에도 건강과 행운이 언제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브루노 발터(Bruno Walter)ㆍ컬럼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1958년/Sony

1악장과 2악장의 템포가 빠른 탓에 종종 논란의 대상이 되는 녹음이다. 말하자면 숲 속에 들어섰을 때의 푸근함과 여유로움이 약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오래도록 교향곡 6번 ‘전원’의 필청반으로 회자돼온 녹음이다. 여든이 넘은 명지휘자 발터(1876~1962)가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컬럼비아 심포니를 지휘한 ‘말년의 녹음’이다. 물론 일부 평자들이 지적처럼 너무 달려나가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이처럼 명확한 아티큘레이션을 구사하면서도 물결치는 현악기군의 풍성함을 보여주는 녹음은 별로 없다. 발터는 하일리겐슈타트의 숲에서 베토벤이 마음속에 품었음직한 ‘안식에 대한 희구’ 속으로 육박해 들어가려는, 낭만적이고도 인문적인 지휘를 펼쳐낸다.



칼 뵘(Karl Bohm)ㆍ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971년/DG

뵘(1894~1981)은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빈 필하모닉을 이끌고 베토벤 교향곡 전집 녹음에 나섰다. 이 역시 ‘말년의 녹음’이다. 그중에서도 6번 ‘전원’은 특별한 명연으로 손꼽힌다. 현의 풍성함이나 선율을 밀어붙이는 힘은 발터 쪽이 한층 강렬하지만, 그에 비해 빌 필하모닉의 현악기들은 좀더 우아하고 찰진 느낌을 전해준다. 게다가 관악기들이 발군의 실력을 뽐내면서 ‘역시 빈 필하모닉’이라는 찬사를 들을 만한 연주를 펼쳐낸다. 특히 ‘천둥, 폭풍우’라고 이름 붙은 4악장에서 관악기들이 보여주는 연주력은 가히 넘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전원’의 교과서라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다. 오스트라아 빈의 고전적 격조가 살아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전원’의 분위기를 살려내고 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ㆍ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2000년/DG

올해 80세의 아바도는 지금까지 두 종의 베토벤 교향곡 녹음을 남겨놓고 있다. 1980년대에 빈 필하모닉과,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일련의 베토벤 교향곡들을 녹음했다. 빈 필하모닉과 베를린 필하모닉이라는 ‘거함’을 이끌고 베토벤의 교향곡을 두 차례 완주해낸 지휘자는 현재까지 아바도뿐이다. 흔히 전자를 ‘구녹음‘, 후자를 ‘신녹음’이라고 얘기하는데, 구녹음보다 신녹음 쪽이 더 많은 점수를 받고 있다. 특히 6번은 호평받는 연주다. 아바도가 펼쳐내는 ‘전원’의 풍경은 온건하다. 숲길을 거니는 여유로움이 잘 살아 있다. 아바도는 과도한 해석을 배제한 채 정직하고 명확한 연주를 펼쳐낸다. 오래 거닐어도 물리지 않는 ‘전원’이다. 2000년대의 신뢰할 만한 녹음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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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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