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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불온과 순수 사이 균형점을 찾아가는 TXT
투모로우바이투게더(TXT) '이름의 장: TEMPTATION'
원한다면 신자유주의의 꽃으로서의 아이돌에게 금욕과 노력이 미덕이자 성장의 원동력이며, 또한 그것이 과거와 결별하는 Z세대의 공감 지점이라는 제언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2023.02.08)
대중음악 평론가 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칼럼이 격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최신 이슈부터 앨범 패키지에 담긴 이야기까지 지금 케이팝의 다채로움을 전합니다. |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새 미니 앨범 <이름의 장 : TEMPTATION>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대비다. 'Sugar Rush Ride'는 상쾌한 기타 사운드가 필터를 들락거리며 예쁜 긴장과 시원한 개방감을 들려주는데, 후렴은 갑작스럽게 텅빈 동굴 속으로 추락한다. 느린 긴장의 킥과 낙천적이라 더 불온하게 느껴지는 휘파람 같은 신스는 야성과 관능의 안간힘으로 서서히 필터가 열리듯 2절로 기어올라간다. 분명 1절과 같은 구성으로 시작하는 2절은 그러나 후렴의 잔향 탓에 전혀 다른 인상으로 다가온다. 이같은 대조의 긴장은 패키징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자연광에 탐닉하는 듯한 (팬시한) 히피풍의 'Daydream 버전'은 끈적하게 흐르는 혼돈을 양장의 붙인 면지에 묘사했고, 다시 'Nightmare 버전'의 치렁치렁하고 푹신하며 싸늘한 실내 촬영 화보와 대조를 이룬다. 매력적인 모습을 다양하게 선보이는 케이팝 산업이 언제 콘셉트를 대조시키지 않은 적이 있겠는가마는, 이만큼 불길한 긴장을 담아내는 일은 분명 흔치 않다.
잠시 시계를 돌려 패키지를 열기 전, 눈에 띄는 건 역시 커버 아트의 로고다. 데뷔 당시 플랫 디자인 스타일의 T가, 2021년 판화적으로 거칠게 표현된 X를 거쳐, 자연 혹은 '생물' 모티프 같은 곡선의 X로 다시 변형됐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디스코그래피가 쌓일 수록 로고의 변천이 그려낼 변태의 과정을 나란히 놓아보고 싶은 기대감도 든다. 마티스의 판화를 연상시키는 이 새로운 X는 다양한 버전의 패키지들에 거의 동일하게 포함된 암녹색의 가사지 속 일러스트로도 같은 스타일을 유지하며 확장되고 있다.
패키지 중 'Daydream 버전'은 두 가지에서 흥미로운데, 살갗의 노출이 많다는 것과 자연물 오브제를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풀밭과 강물, 꽃, 나비와 드러누운 멤버들의 모습은, 과거 BTS의 '대안적 남성성'이 시작된 <화양연화> 연작의 시각 전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부드럽고 나른한 백일몽은, 뮤직비디오에서 좀 더 독하게 제시되는 세계의 다른 일면이다. 뮤직비디오는 해맑은 소년들이 무인도를 찾았더니 그곳에 간직된 태초의 모습 틈에 무시무시한 환각 버섯이 자라고 있었다는 스토리 같기도 하다. 그리고, 무척 관능적이다. 꿀물 같은 점액질, 감각에 탐닉해 젖혀지는 고개와 몽롱한 표정 연기, 긴장으로 체모가 일어서는 장면, "살갗 아래 모든 세포가 더 예민해져 가" 같은 가사가 그렇다. 미니 앨범의 제목이 제시하는 '유혹'은 다분히 성적인 것으로 읽힌다.
미지와 혼돈으로서의 자연과 그 속의 야성으로서의 성, 그리고 멤버들은 그에 맞서는 반대항으로서 순수한 소년미로 표현된다. '매운 맛'을 좀 덜어내면 어디서 많이 보던 공식이다. 뭔가에 쫓기는 듯한 모습, "넌 능숙히 잠긴 내 문을 열어", "어떡해 저 별이 보여", 혹은 양손의 검지를 맞대는 동작까지. 주인공은 이를 '당하는' 존재이며, 그 양상은 많은 부분에서 걸그룹이 클리셰로 채택하던 영역과 겹쳐진다.
흥미로운 건, 앨범 공식 소개글에서는 유혹의 정체가 성장의 결심을 가로막는 '눈앞의 자유와 유희'이며, 그에 대해 주인공이 '성장의 유예'를 욕망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혹에 넘어가면 성장이 유예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곡과 뮤직비디오는 이 '유혹'에 대해 다분히 성적인 뉘앙스를 암시한다. 성은 흔히 성인이 되는 계기로 인식되고,(그것이 정확하거나 정당하느냐는 물론 별개다) 케이팝 산업도 성적인 내용을 성장의 기점으로 삼는 (이제는 다소 시효가 지난) 클리셰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니 'Sugar Rush Ride'에 통념을 적용한다면, 유혹에 넘어가면 성장한다는 것이다. 공식 소개글과는 정반대의 논리다. 이 모순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통념을 벗어난 참신한 접근일 수도 있다. 과감한 콘텐츠와 매우 안전한 공식 언어를 병행해 콘텐츠의 시장적 리스크를 희석하는 케이팝 특유의 기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는, 원한다면 신자유주의의 꽃으로서의 아이돌에게 금욕과 노력이 미덕이자 성장의 원동력이며, 또한 그것이 과거와 결별하는 Z세대의 공감 지점이라는 제언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다시 말하지만 '원한다면' 말이다.
결국 작품이 보여주는 대조의 긴장은, 불온한 자연의 야성과 순수한 소년이라는 대조에서, 그리고 양립항이 제시되는 (전복적이라고까지 하기는 조심스러울지언정) 과감한 재해석으로 완성된다. 한동안 보이 그룹 씬이 비관과 긴박으로 치달은 '치명적' 콘셉트로 점철되고, 그 뒤에는 유혹의 주체로서 표현되던 보이 그룹의 고전적 '치명-섹시'가 위치한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가 이에 은근한 차별화를 시도해 왔다고 할 때, 이 미니 앨범은 새로운 균형점을 아슬아슬하고도 치밀하게 제안한다. 컨셉추얼을 능란하게 수행하면서도, 수록곡 등을 통해 매우 밝고 단정한 틴팝의 매력 역시 위화감 없이 선보여 온 아티스트의 역량과 브랜드가 이를 가능케 한 중요한 열쇠의 하나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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