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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있지의 케이팝 고전주의? 'CHESHIRE'
있지(ITZY) 'CHESHIRE'
있지(ITZY)의 'CHESHIRE' 뮤직비디오는 퀴즈쇼의 세트장에 즐거운 표정으로 등장하는 다섯 멤버들로 시작한다. 그에 비해 이 미니 앨범의 패키지는 심플하다. (2022.12.14)
대중음악 평론가 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칼럼이 격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최신 이슈부터 앨범 패키지에 담긴 이야기까지 지금 케이팝의 다채로움을 전합니다. |
있지(ITZY)의 'CHESHIRE' 뮤직비디오는 퀴즈쇼의 세트장에 즐거운 표정으로 등장하는 다섯 멤버들로 시작한다. 카메라가 뒤로 빠지면 이들 앞에 어둑한 네온 조명 속에 눈과 네일을 번득이는 멤버들이 보인다. 등장하는 많은 이미지가 서로 대조를 이룬다. 녹색 배경의 사무실과 설원, 녹색 인형과 파스텔톤 털인형, 실재하는 공과 폴리곤, 어느 아티스트의 이름처럼 핑크와 블랙 등. 어떤 대조는 녹색 배경에 영상을 합성하는 크로마키 기법을, 어떤 것은 3D CG를, 또 어떤 것은 마술 트릭이나 단순한 표정의 변화를 매개로 한다. 첫 장면의 배경에 걸린 'True or false'라는 글씨처럼, 뮤직비디오는 다양한 방식으로 참과 거짓이 혼동될 수 있음을 표현한다. 이는 정답을 알 수 없지만 마음이 가는 대로 즐기면 된다는 가사와 맞닿는다.
그에 비해 이 미니 앨범의 패키지는 심플하다. 주사위 모양으로 접게 되어 있는 '포토큐브'가 특이하다고 할 수는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머천다이즈의 일환이며 사실 멤버들의 얼굴을 담백하게 담고 있는 물품이다. 포토북은 멤버들의 모습을 시원시원하게, 또한 얼굴 클로즈업에 상당한 비중을 두어서 수록하고 있다. 의상이나 표정, 소품 등이 특별한 서사를 전달하지는 않고 그저 멤버들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해, 어찌 보면 '담백하다'고까지 표현할 만하다. 스페셜 에디션 버전의 부클릿이 뮤직비디오와 동일한 의상의 사진을 담고는 있지만, 기본적인 기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체셔 고양이를 모티프 삼은 뮤직비디오나 노래와는 별개의 작업물이라 해도 놀랍지 않을 듯하다. 정규 앨범이라면 한 곡의 타이틀보다는 좀 더 큰 세계를 담을 수 있다. 그러나 선공개된 싱글 'Boys Like You'를 포함한 4곡의 미니 앨범이라면 'CHESHIRE'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더 크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경쓰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는 부분은 이 패키지에 없다. 다만, 타이틀곡의 콘셉트와 연결점을 거의 보여주지 않으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포토큐브'를 보면서, 공교롭게도 주사위를 근작의 테마로 한 소속사 후배 그룹 엔믹스를 떠올리게 된다. 있지에게는 복잡한 설정이나 거창한 마니페스토 같은 것은 없다. 있지의 아티스트 이미지에는 어떤 최첨단의 향취가 있지만, 이들의 작품은 사실 고전적인 데가 있다. 공격적이면서도 유쾌한 노래는 적어도 현세대 케이팝의 정석적인 구조를 따르고 있다. 사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퀴즈쇼 같은 테마도 케이팝에서 클리셰 중 클리셰에 속한다. 벌써 14년 전 <다크나이트>에 등장해 유행하면서 케이팝 가사에서도 마르고 닳도록 인용된 'Why so serious?'를 핵심적인 구절로 반복해 사용하기도 한다. '나도 날 몰라', '뭐든 내 맘대로', '정해진 답이 없어', '네 느낌을 믿어봐' 같은 가사들은 케이팝, 특히 걸그룹 가사의 빅데이터에서 뽑아온 것마냥 익숙한 표현들이다. '이렇게까지?' 싶을 정도의 고전주의다.
그래서 좋은 것은? 이지적인 충격에 휩싸일 필요없이, 노래와 춤을 즐기게 된다. 심플하다.('헷갈리는 연심'이라는 노래의 소재를, 엔믹스의 캐치프레이즈인 '다양성'보다는 참/거짓의 '이중성'으로 담아낸 것도 그렇다) 간단하면서도 매력적인 멜로디, 뜨겁고 날카롭다가는 은근해지는 보컬의 완급 조절, 화끈한 비트, 인상적이고 재미있는 안무 같은 것들이다. 그것은 다시, 가창과 안무, 그리고 표정 연기를 수행하는 인물에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것은 소속사 JYP 엔터테인먼트가 이전까지 가장 잘했던 것이고, 시류의 변화에도 고집스럽게 지키고자 한, 어떤 면에서 '보수적'인 가치와 그 효용이다. 그래서 지금의 있지는 JYP의 '현세대'이자, 또한 엔믹스 이전의 JYP라는 세계에 속한 것처럼 보인다.
JYP식 보수성은 콘셉트를 어디까지나 외피에 불과한 것으로 둔다. '콘셉트'라는 단어의 용례는 중구난방이지만, 케이팝에서는 하나의 작품이 채택하고 설정하는 '세계'라는 의미로 흔히 통용된다. 특히 '세계관' 채택의 유행과 함께 콘셉트가 아이돌 콘텐츠의 핵심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새삼 재확인하게 되는 것은, 아이돌이 표현하는 인물상과 콘셉트가 항상 한 덩어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 'CHESHIRE'의 '콘셉트'와 패키징 사이에서는 연관점을 찾기 어렵지만, 2019년 데뷔 이래 있지가 선보이고 쌓아올린 콧대 높고 자신감 넘치며 조금 유쾌한 인물상만큼은 양자에서 넘치도록 드러난다. 콘셉트에 열을 올리기보다, 차라리 콘셉트는 조금 지나칠 정도로 '쉽게' 가져가면서, 노래와 아티스트의 매력에 집중하게 한다. 그런 전략이 잘 어울릴 아티스트라면 누가 있을까? 있지가 있다.
사족이지만, 가사지를 별지로 수록하는 경우를 케이팝 패키징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포토북이 사진만을 담기를 원해서라기에는, 크레딧이나 'Thanks to', 트랙리스트 등은 아무렇지 않게 포토북에서 페이지를 차지하고는 한다. 콘셉트나 디자인상 별개의 물성을 뚜렷하게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굳이 가사지를 분리하는 게 패키징의 완성도를 해하지는 않는지 하는 의문이 있다. 물론 이건 있지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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