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 "행복한 사람은 글을 안 써도 된다는 주의예요"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글을 쓰는 게 힘든 데 왜 써야 하나' 생각해 보면, 내가 조금 더 삶을 잘 살아가고 사랑하기 위해서잖아요. 그러니까 고통을 피해갈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행복한 사람은 글을 안 써도 된다는 주의예요. (2023.02.08)
작가 은유의 새로운 글쓰기 책이 출간됐다. 『글쓰기의 최전선』, 『쓰기의 말들』 이후 7년 만이다. 부제가 말해주듯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는 '계속 쓰려는 사람을 위한 48가지 이야기'를 담았다. '저 같은 사람도 글을 잘 쓸 수 있나요?', '첫 문장을 어떻게 쓰면 좋을까요?',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같은 질문들 속에는 '쓰는 사람'의 고민이 들어있다. 은유 작가에게도 낯설지 않은 고민들이다. 작가는 자신이 붙들었던 질문들, 이제는 해답을 찾은 고민들, 여전히 이어지는 쓰기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들려준다. 그것으로써 답변을 대신한다. 마흔여덟 번의 묻고 답하기가 이어지는 동안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와 '좋은 글의 모습'이 또렷해진다.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 담긴 것은 '쓰는 사람' 은유의 이야기인 동시에, 은유의 글을 흠모하고 글쓰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다.
네이버 오디오클립의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가 이번 책의 바탕이 되었죠? 오디오클립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네이버 오디오클립 측에서 연재 제안이 왔어요. 제가 오디오로 콘텐츠 제작을 해본 적이 없어서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처음에는 담당자 분이 '10~15분 정도 분량으로 하면 된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몇 줄만 메모해 와서 편안하게 하시면 된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되나 보다 생각하고 수락을 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10~15분이 굉장히 긴 시간이더라고요.(웃음) 메모 몇 줄 가지고는 당연히 안 되고, 원고를 써야겠더라고요. 들으시는 분들의 소중한 시간을 알차게 채워야 되니까요. 그래서 대본을 써서 녹음을 하게 됐고, 질문을 뽑는 과정에서 저희 학인 분이 도움을 주셨어요. 그걸 바탕으로 해서 강연할 때 항상 받는 질문들을 추가하고, 또 궁금한 것들을 넣고 빼고 하면서 리스트업을 했어요. 처음에는 '나도 한 번 DJ처럼 편안하게 해보자'는 의욕이 있었는데, 하면서 정말 진땀 흘렸어요.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웃음)
부제가 '계속 쓰려는 사람을 위한 48가지 이야기'입니다. 어떤 독자들을 생각하며 책을 쓰셨는지 알 것 같아요.
원래 '계속 쓰는 사람'이라고 하려다가, 그러면 처음 시작한 사람이 배제된다고 생각해서 '쓰려는 사람'이라고 했고요. 글쓰기는 계속 써도 숙달이 되지 않잖아요. 쓸 때마다 벽을 만나고 좌절하게 되는데, 그런 분들과 그냥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속 시원한 해답을 제공해 드리는 게 아니라, 그냥 '나도 이런 게 힘들었어' 하고 대화하는 것 같다고 할까요. 그래서 '이야기'라고 적게 됐어요.
'쓰는 사람'으로서 작가님의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게 되셨겠네요.
그렇죠. 제가 이전에도 글쓰기 책을 냈지만, 그때 느꼈던 어려움이랑 지금 느끼는 어려움은 또 다른 것 같아요. 어려움이라는 측면에서는 비슷한데, 뭐라고 해야 할까요. 어떤 건 해결이 안 되고, 어떤 건 포기가 되고, 어떤 고민은 계속 가져가야 되고... 그런 것들이 조금 보이는 느낌이에요. 예를 들면, 경력이 10년 정도 되면 글쓰기 앞에서 좀 편안해질 수도 있잖아요.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이 정도야' 하고 약간 달관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웃음) 이번 책을 쓰면서 제가 힘들어하고 고민했던 것들을 다른 분들도 어려워하신다는 걸 알게 돼서, 그게 좀 의지가 됐어요. 외롭지 않았다고 할까요. 글쓰기에 어려움을 느낄 때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는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나의 부족함의 문제가 아니라, 글을 쓰다 보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갈등과 고민이라는 걸 알면 좀 견딜 만해지죠. 그래서 책에서 '글쓰기 공동체'라는 표현을 썼어요.
여전히 포기가 안 되는 건 무엇인가요?
예전에 제가 글쓰기 책에 썼듯이 '글은 나보다 더 잘 쓸 수도 없고 못 쓸 수도 없다'는 이성복 선생님의 말씀이 되게 위안이 됐었는데요. 그래도 나보다 잘 쓰고 싶잖아요.(웃음)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아요.(웃음) 내가 가진 게 100이라도 운이 좋아서 130을 표현하고 싶어지는 열망 같은 게 있어요. 희망. 그건 포기 안 되더라고요.
열망 뒤에는 좌절도 따라올 텐데요. 좌절하는 것에는 좀 익숙해지셨어요?
쓴 글을 봤을 때 '그래, 내가 쓴 게 이거구나. 그렇게 열망하고 바랐지만 내가 쓴 건 이거다' 하고 받아들여야죠. 약간 시소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처럼. 그걸 받아들여야 또 다음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좋은 글을 썼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자의식 과잉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냥 글은 글일 뿐이고, 나는 최선을 다했고, 그러면 그냥 떠나 보내야죠.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건 이만큼이구나, 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죠. 여행도 그렇잖아요. 가기 전에는 되게 들뜨고 뭔가 대단한 일이 벌어질 것 같지만, 막상 가면 좋은 것도 있지만 너무 힘들기도 하고 '그냥 여기도 현실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되잖아요. 글쓰기도 비슷한 것 같아요.
작가님과 글쓰기 수업을 함께하는 학인 분들의 글도 실려 있는데, 다 너무 좋더라고요.
그렇죠? 저희 학인들 수준이 이 정도입니다.(웃음) 저 '학인 부심' 있어요.(웃음)
그러실 것 같아요.(웃음)
그 글들은 다 학인들의 안에 있는 이야기가 나온 거잖아요. 제가 글쓰기 수업을 하지만 크게 가르치는 영역은 없고, 그런 이야기들을 끌어내주는 게 글쓰기 수업에서 제가 하는 역할인 것 같아요. '이런 거 너무 좋아요' 이렇게 말해주는 거, 그게 제 역할이죠. 헤어 디자이너가 머리를 길러줄 수는 없잖아요. 머리카락을 자르고 다듬는 게 역할인데, 제 역할도 그런 것 같아요. 없는 걸 꾸며낼 수는 없고, 뭔가를 글로 써냈을 때 '이 부분이 되게 좋아' 하고 감동하고 '이게 빛나는 부분이야, 이런 이야기를 계속 쓰면 돼'라고 말해주는 게 제 역할인 것 같아요.
그런 피드백이 쓰는 데에 정말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쓸 때) 다 자기 의심을 하게 되잖아요. 자기 글을 믿지 못하거든요. 우리가 자기 생각이나 글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한 채 어른이 되는 것 같아요. 크면서 막 지지 받거나 '네 생각이 맞아'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기회가 잘 없어요. 평가만 받고 '이게 문제야', '저게 문제야', '이걸 따라' 이렇게 했지, 나의 생각이나 경험에 대해서 지지 받고 존중 받아 본 경험이 많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글을 써놓고 '이게 내가 잘 쓴 건가?', '남들이 어떻게 볼까?' 걱정하고 우려하게 되죠. 저도 그렇고 학인들도 그래요. 그래서 '그런 생각은 너무 자연스러운 생각이다', '존중 받아야 될 경험이다', '너무 잘 읽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죠. 사실이고 빈말은 아니에요.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독자들에게 권하시길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가족(없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같은 것들'을 목표로 가져 보라고 하셨어요. 이유가 있나요?
우리가 글쓰기에 너무 실용적인 목표를 세우면, 말하자면 내 책을 내겠다든지 마치 입시생처럼 꼭 이걸 하겠다고 하면, 뭐가 잘 안 나와요. 그 틀에 맞춰서 걸러진 게 나오니까요. 목적 없이 '이것도 글이 될까?', '저것도 글이 될까?' 하면서 자유롭게, 검열 없이 구속 없이 써보는 시간이 필요해요. 반드시. 그래서 제가 서문에서 목적 없이 글을 쓰자고 제안했는데요. 너무 목적이 없으면 동기 부여가 안 되니까 그러면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 되기'라는 목표를 갖자고 권했어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과 욕망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 나는 누구를 동경하는지, 이런 질문을 하면서 자기에 대해 탐구하는 거예요.
우리가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공부를 해도 결국 나를 설명할 수 없다면 허무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자기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자아에 대한 인식과 감각이 있어야 나를 지킬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 인식이 없으면 남이 뭐라고 할 때 '내가 진짜 그런가?' 하고 상처도 너무 많이 받게 되잖아요. 나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갖는 건 되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족(없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는 왜 중요한가요?
우리는 가족이 평화와 행복의 근원인 것처럼 많이 이야기하는데, 저는 그런 언어에 되게 반대해요. 가족이 그렇게 온전하게 있는 확률이 많이 없어요. 그리고 가족이 그렇게 행복을 주지는 않죠. 불행과 상처를 많이 주는 것도 가족이고요. 그래서 제가 가족 신화를 이야기하는 건 아닌데, 내가 태어나서 내 선택이 아닌 상태로 주어지는 삶의 조건이 '가족'이잖아요. 그래서 '가족(없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건 나를 둘러싼 환경, 나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준 조건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기도 한데요. 그런 이야기를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게, 글쓰기의 좋은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보통은 한 쪽 면만 많이 보게 되는데, 글을 쓴다는 건 다른 면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번 책을 쓰는 동안 근심을 떨치지 못했다고 쓰셨어요. '이미 글쓰기 책을 두 권이나 썼는데, 글쓰기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셨다고요. 그때 친구 분이 '그사이 은유도 달라졌죠. 다른 은유가 쓴 다른 책이니까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말해주셨다면서요? 스스로 생각하시에 그동안 많이 달라진 것 같으세요?
달라졌죠.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웃음) 읽은 책도 더 많아지고 수업도 많이 하게 됐고요. 그리고 예전에는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같은, 판단하고 불신하는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더 많이 하게 됐어요. 삶에 대한 호기심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어떻게 저런 상황이 됐을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하고 더 면밀히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거죠. 글쓰기에 대한 어떤 대단함이나 큰 믿음 같은 건 많이 떨어졌어요. 두 번째 글쓰기 책을 쓸 때보다 조금 더 글쓰기에 겸손해졌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수업할 때 "내 라이벌은 학교 앞 분식점 사장님이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떡볶이는 싼 값에 되게 큰 만족을 주잖아요. 글쓰기가 그렇게 누군가를 살릴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배부르게 하고 그 시기를 견디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그리고 매일 떡볶이를 만드는 그 부지런함 있잖아요. 그런 게 옛날에는 그렇게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았었거든요. 무시를 했다는 게 아니라 눈에 잘 안 들어왔어요. 매일 아침에 문을 열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떡볶이를 만들면서 아이들을 기다리는 마음, 일상을 유지하는 힘에 대해서 별다른 인식이 없었어요. 그냥 글 잘 쓰는 사람을 많이 우러러보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런 분들의 삶을 되게 존경스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시간과 돈을 들여서 책을 읽어주시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도 훨씬 더 커졌고요. 그렇게 삶의 측면에서 안 보였던 것들이 더 많이 보이게 된 게 제일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작가님은 '고통에 대해서 쓰는 것이 왜 중요하고 필요한지'를 너무 잘 아시죠. 하지만 '나가는 글'에 쓰셨듯이 고통 속에서 고통에 대해 쓰는 일이 견디기 힘들 때도 있는데요. 그럼에도 어떻게 지속하시나요?
우리 삶이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는 이유가 그만큼 불행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행복도 불행도 삶의 일부이고 다양한 모양이기 때문에, 저는 마음의 고통을 그냥 인정하고 견디는 게 삶의 능력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고통은 늘 삶의 기본값으로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냥 받아들여야 된다는 생각이 있고요. 우리는 일상을 살아야 되는데 거기에 너무 휘말려서 일상이 깨지면 그게 또 힘들잖아요. 고통 때문에 힘들고, 고통 때문에 일상이 깨져서 힘들고. 그런데 글로 쓴다는 것은 그 고통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가는 힘을 좀 기르는 일인 것 같아요.
앞서 이야기한 '나를 설명하는 글쓰기'와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나를 설명할 때 고통을 뺄 수 없잖아요. 우리는 다 고통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옷 속에 숨겨진 고통이 있는데, 그걸 내가 쩔쩔 매면 삶이 늘 불안한 것 같아요. 그래서 글로 써서 정돈을 좀 해놓고 다룰 만한 일로 만들어놓고 내가 살아가는 거죠. 고통이 없어지지는 않는 것 같아요. 사회도 불안정하고, 또 우리는 타인의 삶에 계속 영향을 받기 때문에.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한 고통이나 고민, 삶의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글쓰기는 내가 그것에 너무 잠식당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게 하는 것 같고요. 그래서 고통을 직면하는 방법으로 글쓰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내 글쓰기는 고통의 글쓰기다"라고 말씀하시지만, 사랑의 글쓰기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죠. 고통을 받아들이는 건 삶을 사랑하는 마음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고통을 부정한다는 것은 내 삶을 부정하는 거잖아요. 고통까지 그냥 내 운명이다, 내 삶이다, 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은 삶에 대한 사랑이죠.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왜 글을 써야 하겠어요. 사랑하기를 포기해버리면 고통에 대해서 말할 필요도 없고, 그냥 안 써도 되죠. '글을 쓰는 게 힘든데 왜 써야 하나' 생각해 보면, 내가 조금 더 삶을 잘 살아가고 사랑하기 위해서잖아요. 그러니까 고통을 피해갈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행복한 사람은 글을 안 써도 된다는 주의예요. 놀아야죠.(웃음) 인스타그램에 자랑하고.(웃음) 하지만 인스타그램에 화려한 삶을 전시를 해도 '좋아요'의 이면에는 '울어요'가 다 있죠.
이렇게 쓰셨습니다. '언제부턴가 이렇게 생각해요. 글 한 편을 잘 쓰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잘 보내는 일이 중요하다고요.' 예전에는 어떠셨나요?
예전에는 무조건 글 잘 쓰는 게 중요했죠.(웃음) 무조건 글을 잘 쓰고 싶고 아름답게 쓰고 싶고, 그게 너무 강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 글쓰기를 방해하는 건 다 싫은 거죠. 아이들이 귀찮게 하는 것도 싫고, 더 번듯한 책상과 어떤 조건만 갖춰지면 더 좋은 글을 쓸 것 같고. 그래서 짜증도 나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내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고 일상을 엉망으로 만들면서까지 써야 되는 좋은 글이라는 건 또 뭐냐.'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런데 집도 깨끗하고 타인에게 다 친절하고 글도 잘 쓸 수는 없고... 이게 왔다 갔다 하는 거예요. 제가 선택한 건 '글쓰기를 일상에 조화롭게 세팅해 놓지 않으면 내가 오래 못 쓰겠다.'라는 거였어요. 글쓰기는 사랑에서 나와야 된다고 했을 때, 그 '사랑'이라는 게 실체도 없는 인류애 같은 게 아니라, 결국은 내 일상에 대한 사랑과 내 일상을 지키는 힘에서 나와야 하고, 가까이 있는 아이나 가족을 방해물로 여기지 않아야 되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은 하지만 참 힘듭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크니까 고양이가 저를 괴롭혀서요.(웃음) 내가 글을 잘 쓸 자신이 없어서 이런 생각을 하나, 그런 생각도 해봤는데요.(웃음) 그럼 어때요? 하루를 잘 사는 일이 얼마나 힘든데요. 글 잘 쓰는 것만큼 힘든 것 같아요.
「제 글보다 잘 쓴 글을 보면 기가 죽는데, 어떡하죠?」라는 꼭지가 있습니다. 작가님은 "저는 이런 감정의 발생을 무척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라고 하셨어요.
아니, 어떻게 질투가 없을 수가 있어요. 잘하고 싶으니까 질투도 생기는 거죠. 그리고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항상 있고, 어렸을 때부터 축적된 문화적 자원이 있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건 시간적으로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들이 반드시 있어요. 예를 들면 어떤 여성이 백인 사회에서 유색 인종으로 살았다든지 그런 건 내가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잖아요. 다 자기 위치와 전제 조건에서 쓸 수 있는 최대치를 쓸 수밖에 없는 것이지, 그 사람의 감각을 내가 훔쳐올 수는 없어요. 그래서 저는 '그래, 내 상황에서 잘 쓰면 되지, 뭐.' 이렇게 마음을 다독다독합니다.(웃음)
'글쓰기 슬럼프'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글쓰기가 답보 상태라고 느끼는 건 '내 글을 내가 읽어도 지루하다'라는 아주 정직하고 불안한 느낌 같다"고 하셨습니다. 작가님도 이런 느낌을 받으실 때가 있나요?
그럼요, 많이 느끼죠. 이번 책을 쓰면서도 걱정했다고 했잖아요. '글쓰기 책을 또 쓰는데, 어떡하지?' 하고요. 그런 걱정은 계속 있어요. 책을 낼 때는 '똑같은 걸 또 쓰면 어떡하지?' 걱정하죠. 슬럼프는 뭔가 '글이 재미없다', '내 글을 내가 읽어도 새로운 게 없다'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슬럼프인 것 같아요. 그러면 저는 안 쓰고 다른 일을 많이 해요. 쓰려는 노력만큼 안 쓰려는 노력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훌륭한 말(駿馬)은 잘 달리는 것만큼 멈추는 능력도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슬럼프일 때는 좀 안 써야 된다고 생각하는 주의고요. 그래서 최근에 칼럼도 그만뒀어요. 조금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쉰다는 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고, 다른 식으로 충전을 하거나 다른 식으로 글쓰기 경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뒀어요.
예전에 인터뷰를 그만두실 때도 비슷한 이유였다고 하셨죠. 그 이야기가 책에도 나오는데요. 프리랜서처럼 고정된 수입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일을 그만두는 게 엄청난 결심이잖아요?
맞아요. 프리랜서들은 그게 어려워요. 그래서 최소한은 남겨둬야 해요.(웃음) 저도 사보 일을 그만둘 때 확 그만두지는 못했어요. 페이드아웃으로 점점점점 그만뒀는데요. 그런데 그만두지 않아서 다른 일이 안 들어오는 경우도 있어요. 확 그만둬야 다른 기회가 올 때도 있고, 그런 게 한 번은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사보 일을 점점 그만두고 있을 때 글쓰기 수업을 하게 됐거든요. 그때 '나 아니면 이거 절대 안 돼' 하고 붙잡고 있었으면 못했을 것 같아요. 확 그만둬야 다른 기회도 오는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일도 병행하면서 투 트랙으로 가야 되는 것 같아요. 어렵지만 투 트랙으로 하면서 서서히 일을 조정해야지, 한 곳에만 너무 몸 담고 있으면 다른 기회도 안 오거든요.
자유 기고가들에게 실제 도움이 될 이야기예요.
한 번쯤은 용단을 내릴 시기가 와요. 저도 자유기고가로 일하면서 철학 공부하던 때에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나고 보니 '그게 젊어서 가능했구나', '새벽까지 원고 쓸 체력이 있던 때여서 가능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하는데요.(웃음) 그래서 내가 다른 걸 하고 싶으면 다른 세계에 발을 하나 담그고 점점점 이쪽은 발을 빼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안 그러면 기회가 안 오니까요. 그만둘 수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권력일 수도 있어요. 내가 다른 걸로 살 수 있기 때문에 호기롭게 그만둘 수도 있는 거죠. 그러니까 너무 확 그만두지 마시고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셔야 돼요.(웃음)
글 쓰는 사람으로서 지금 작가님을 설레게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지금은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가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이 책이 어떤 독자 분들이 만나게 될까 기대도 되고 좀 두렵기도 해요. 어떻게 읽어주실지. 그리고 또 하나는, 지금 다음 책을 작업하고 있는데요. 한국 문학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번역가들을 인터뷰하고 있거든요. 한국 문학을 되게 사랑해서 그걸 영어로 번역해서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하는 젊은 번역가들을 인터뷰 하는데요. 그 일이 저를 설레게 합니다. 설렘에 더해서 '잘못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있고요.
번역가들의 세계라니 기대되는데요. 책은 언제쯤 나올까요?
올해 상반기 지나고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님은 항상 '아이를 돌보면서 글을 쓰는 여성'을 응원하고 반가워하시는 것 같아요. 그 여성들만이 갖고 있는 강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어떠신가요?
그럼요. 엄청난 강점이죠. 일단은 생명 하나를 돌본다는 것은 웬만한 힘과 능력이 아니죠. 어마어마한 힘과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적으로 저평가돼서 그렇지, 한 생명을 돌보고 예의주시하면서 길러내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힘과 사랑이 있어요. 위대한 모성이라거나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고요. 저는 그게 글 쓰는 힘과 사랑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그것'만 생각해야 된다는 점에서 글쓰기와 양육이 되게 닮았거든요. 벗어날 수 없어요. 예를 들면 제가 지금 한국 문학 번역가들을 인터뷰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제 신경 하나가 그 작업에 가 있거든요. 또 다른 신경 하나는 아이들한테 가 있고요. 지금은 아이들이 커서 괜찮은데 어릴 때는 뭐 먹었을까? 집에 혼자 있는데 괜찮을까? 외롭진 않을까? 무섭지 않을까? 계속 생각했어요.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늘 타인의 자리가 내 안에 하나 있는 거죠. 그 경험이 글 쓸 때 필요한 능력과 되게 닮아 있더라고요.
그런가요?
네. 그래서 저는 아이 키우면서 글 쓰는 여성들이 갖고 있는 엄청난 사랑의 힘, 사랑의 능력을 믿으셨으면 좋겠어요. 그것이 글쓰기의 원천과 에너지가 된다는 것을. 그 꼬물꼬물한 생명도 길러냈는데 글쓰기는 당연히 할 수 있어요. 아기를 키우는 동안 자기의 많은 걸 내어줘야 하는데, 글쓰기도 그렇거든요. (양육하면서) 뭔가 삶의 진액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있는데, 글쓰기도 되게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잘 쓰실 수 있고, 아기 키워내는 힘으로 글 쓰시면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출산과 양육을 경험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그 힘에 대해서는 사회적 저평가 때문에 본인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저도 잘 몰랐고, 지나고 나니 그게 되게 큰 에너지였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육아가 되게 소진이 많이 되는 일이거든요. 사람은 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살려는 근원적인 욕망이 있는데 그게 침해 당하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나보다 아이를 더 돌봐야 된다는 게. 그랬을 때 올라오는 삶의 불만족스러움을 채울 수 있는 게 또 글쓰기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아이 키울 때 글쓰기 하는 게 되게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해요. 건강한 육아를 할 수 있는 삶의 균형을 잡아주고, 그러면서 나를 지킬 수 있는 굉장히 좋은 방편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독자들에게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글쓰기 상담소라고 해서 제가 마치 도사처럼 모든 것에 답을 말해주는 건 아니에요.(웃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저는 글쓰기의 모든 답을 알려주는 사람은 아니고, '답 없음'을 같이 이야기하는 거고요. 글쓰기에는 답이 없잖아요. 또 답을 찾아가는 게 글쓰기이기도 하고요. 사실은 책 제목에 제 이름도 들어가고 '상담소'라는 말도 들어가니까 좀 부담이 됐었어요. 내가 뭐라고, 내 글도 못 쓰면서 상담을 하나.(웃음) 나도 이렇게 쩔쩔 매는데 내가 누구를 상담해,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데 저는 너무 쩔쩔 매는 사람이기 때문에 쩔쩔 매는 분들의 마음을 잘 공감해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잘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이 되게 소중한 마음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은유(김지영) 글 쓰는 사람. 누구나 살아온 경험으로 자기 글을 쓸 수 있을 때 세상이 나아진다는 믿음으로 여기저기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한다. 성폭력·가정 폭력 피해자, 시민 단체 활동가 등과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하며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 내는 일을 돕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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