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돌아온 계절
오늘은 이기겠지, 제발 그렇다고 해주세요
그깟 공놀이. 이왕이면 신나게 즐겨야지. 그래도 오늘은 이기겠지, 제발 그렇다고 해주세요. (2022.04.29)
우리 관계에는 한 가지 원죄가 있다. 선악과를 따 먹은 일만큼 인류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관계에서 그 일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꽤 오랜 기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바로 네가 수원에서 자라 수원을 연고지로 둔 KT 위즈라는 프로야구 10번째 구단의 창단 팬이었고, 나는 너를 만난 죄로 야구라는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됐다는 점이다. 그것도 1군 데뷔 첫해부터 3년 연속 꼴찌를 한 팀의 팬으로서.
사실 처음에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함께하는 즐거움에 가까웠다. 하지만 한 경기, 한 경기 시간이 쌓일수록 오늘의 경기 결과에 따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진짜 팬으로 달라진 건 필연적인 흐름이었다. 오늘은 야구 안 봐야지, 도저히 못 보겠어 말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스코어를 확인하고, 무심코 즐겁게 흥얼거린 노랫말이 다시 생각해 보면 선수 응원가라는 점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옷장 안에 등번호가 박힌 유니폼 가짓수가 늘어나고, 책장 앞엔 기념구가 쌓이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가장 먼저 스포츠면 야구 기사를 들여다보고, 시즌이 끝나면 허한 마음으로 개막일 디데이를 셈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 순간 깨달아 버리고 만 것이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그런 우리 팀은 만년 꼴찌팀이란 오명을 벗어나는데 자그마치 4년의 시간이 걸렸지만, 우승만큼은 누구보다 빠르게 해내고야 말했다. 지난 시즌 창단 8년 만에 통합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뤄냈고, 우리는 난생처음으로 우승팀 팬이라는 자부심과 기쁨으로 함께 웃고 울었다. 첫 정규시즌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 지은 순간 흘린 눈물은 그것만으로도 내 삶에 가장 반짝이는 순간 중 하나로 남았다. (내 멋대로) 역사에 길이 남을 우승 세리머니는 우리 모두를 감동으로 충만하게 하기 충분했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코로나19로 관중 입장이 제한되고, 육성 응원이 금지되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우승이라는 축제를 마음껏 만끽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2년 만에, 박탈당했던 응원이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계절, 겨우내 잠들어 있던 야구장에 마침내 울려 퍼지는 팬들의 함성 소리에 내 심장도 다시 쿵쾅거린다. 야구팬으로서 공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팬들의 환호만큼 설레는 게 또 어디 있을까. 승리를 확정 짓는 짜릿한 홈런에도, 실점을 막아내는 기가 막힌 호수비에도 속으로만 삼켜야 했던 응원가를 이제는 소리 높여 부를 수 있다니! 2년여의 시간을 돌아 다시 우리의 일상이 제자리를 찾고 있는 지금 내 마음은 벌써 응원석 한복판에 있다.
기뻐할 수 있을 때 좀 더 마음껏 기뻐했어야 했는데. 지난 시즌에는 우승팀이었지만 올 시즌에는 언제 다시 꼴찌로 떨어질지 모르는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니 야구는 정말 알 수 없다. 하지만 또 우리는 야구를 끊지 못하고, 이기는 날이면 야구장이 떠나가라 아파트를 부르겠지. 트위터 야구팬 최고의 아웃풋, 혜성처럼 등장한 야구계의 인플루언서 쌍딸님이 『죽어야 끝나는 야구 환장 라이프』에서 그러지 않았던가. “나는 야구 때문에 단명할 것이다. 그러나, 야구 때문에 줄어드는 수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그깟 공놀이. 이왕이면 신나게 즐겨야지. 그래도 오늘은 이기겠지, 제발 그렇다고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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