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귤나무와 함께하는 시인 오하나의 1년 열두 달의 기록
『계절은 노래하듯이』 오하나 작가 인터뷰
일정한 자연 현상이 약속처럼 찾아온다는 신비한 절기를 이참에 더 깊게, 세세하게 느껴보자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2022.04.29)
제주의 농원 곳곳이 크리스마스트리에 따스한 전구를 매단 것처럼 귤이 주렁주렁 달려 노란 빛을 발하는 계절이 있다. 12월, 귤 수확기다. 일손을 돕는 친구들과 함께 작업복을 입고 손때 묻은 장갑을 낀 채 한 그루씩 맡아 가위로 열매를 따느라 가장 바쁜 때라고 할 수 있다.
광주리에 귤들이 툭, 툭, 떨어지는 소리는 차곡차곡 쌓아온 한 해 농사의 결실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노랫소리 같다. 귤나무를 돌보며 살아 있는 것들을 보듬고 기록하는 시인 오하나의 1년 열두 달의 기록을 담은 책이 출간되었다. 그가 알알이 골라 기록한 제주의 하루하루는 잿빛 건물 속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연의 빛깔과 내음, 눈부신 풍경을 선사한다. 아름답고 부드러운 선율을 지닌 계절의 이야기를 지금 만나보자.
안녕하세요. 『계절은 노래하듯이』를 통해 작가님을 처음 만나게 된 독자들께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제주에서 감귤나무를 돌보고, 글 짓고, 꽃을 하는 오하나입니다. 자연을 좋아해서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숲, 바다, 농원에서 보내고요. 그때 만난 아름다운 존재를 담아서 이야기가 됐든 꽃 디자인이 됐든, 다양한 방식으로 고유한 세계를 여는 걸 기쁨으로 삼고 있습니다.
첫 산문집을 출간하셨습니다.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릴게요.
작년(2021년) 한 해 동안 제주로, 농원으로 찾아오는 24절기를 따라서 농부로 움직인 시간이나 주위 자연, 소중한 친구들과 함께 지낸 시간을 기록한 책입니다.
제주에서의 일 년 기록을 24절기에 맞춰 스물네 편의 이야기로 책에 담았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감각을 느끼기에도 벅찰 정도로 숨가쁜 일상을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절기’라는 것이 낯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절기에 따른 생활을 담은 에세이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요?
저에게 편지나 선물로 많은 영감과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시는, 그리고 절기를 사랑하는 이하나 편집자님이 맨 처음 절기에 따른 산문집을 제안하셨어요. 감귤 농사를 짓고 있었지만 그때만 해도 농부의 달력이라는 절기에 지금만큼 예민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제안을 받고 나서 일정한 자연 현상이 약속처럼 찾아온다는 신비한 절기를 이참에 더 깊게, 세세하게 느껴보자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어쩌면 이 테마야말로 제가 물 흘러가듯이 자연스럽게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일 거라는 직감이 들어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쓰게 되었어요.
이 책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이 아니라 소한이라는 절기에 쓴 글로 시작됩니다. 겨울에 쓴 글이 맨 처음 등장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한 해의 첫 절기가 바로 소한인데요, 귤 농부도 수확을 갈무리하고 비로소 따뜻한 실내에서 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연필을 쥐고 새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요. 때마침 ‘이 땅의 축제에 초대한다’라는 내용이 적힌 카드를 받았는데, 일 년이라는 비어 있는 시간 동안 무얼 하며 기쁘고 즐겁게 지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보는 글이 책의 시작으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책을 살펴보면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모든 존재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작가님께서 자연의 것을 가져다 쓰는 경험을 귀하게 여기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연 속에서 다른 생명과 더불어 살아가는 일로부터 느끼거나 배운 점이 있을까요?
자연의 성실함, 정직함, 허영이나 과욕 없음, 최선을 다해서 지금, 여기, 아름답게 존립하는 모습 등… 너무 많아서 다 말씀드리기 어려운데요. 제가 인간이라서 갖는 못난 점을 자연에서 찾아보기 힘들 때, 그래서 자연이 더없이 지혜로워 보일 때, 그럴 때 자연으로부터 깊게 느끼고 배웁니다.
지구와 오래 행복하게 잘 살기 위해서 지금 당장 독자들이 실천할 수 있는 친환경 생활 팁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지금 당장이라! 음. 당장 바꾸실 수 있지만 당장 수고로워지는 팁이기도 할 거예요. 우리 모두 하루에도 몇 번씩 소비하며 살잖아요? 커피 한 잔, 샴푸와 로션 등등. 소비하기 전에 한번 멈추고 생각해 보는 거예요. “이 일회용 컵은 어디서 왔지? 어디로 돌아가지?” 그러고 나서 소비권을 행사해 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작은 것일지라도 바꾸고 싶다는 좋은 마음이 생겨날지도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계절은 노래하듯이』를 읽을 독자님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자연에 기대어 한숨 돌리고 싶으신 분, 숲과 바다와 하늘을 사랑하시는 분, 제주의 24절기와 순환하는 농부의 삶이 궁금하신 분은 누구라도 『계절은 노래하듯이』에서 평안함과 빛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라 믿어요. 편하게 읽고 마음이 밝아지시길, 나아가 지금까지는 미처 들리지 않았던 계절의 풍요롭고 부드러운 노래가 계시는 곳에도 하나둘 들려오기를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오하나 2013년 교토대학에서 식물 다양성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돌아와 감귤 농사를 지으며 글을 써 왔다. 아름다운 존재를 담아 고유한 세계를 여는 걸 좋아한다. 제주에서 시를 쓰고, 감귤나무를 돌보고, 꽃을 하고 있다. 시집 『별사탕가게』 『아가풀과 노루별』 등을 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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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귤나무와 함께하는 시인 오하나의 1년 열두 달의 기록 “아늑한 숲과 투명한 바다, 싱그러운 귤나무의 소식을 당신에게 보냅니다” 12월이 되면 제주의 농원 곳곳은 크리스마스트리에 매달린 따스한 전구처럼 귤이 주렁주렁 달린다. 귤 수확기에는 일손을 돕는 친구들과 함께 작업복을 입고 손때 묻은 장갑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