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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릭의 창작 일기] 우울증과 나

슬릭의 창작 일기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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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은 도대체 뭔데 나를 이렇게 오랫동안 괴롭히는 걸까? (2022.04.07)

일러스트_한아인

오랫동안 우울증을 겪어왔다. 인터넷에 떠도는 우울증 자가진단 테스트부터 병원에서 주는 500여가지 선다 문제까지 줄곧 풀어왔지만 우울증 척도가 떨어졌던 때는 처음으로 우울증 진단을 받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손에 꼽는다. 최근에는 우울증과 더불어 긴장, 불안증과 공황까지 얻게 되었고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우울증은 도대체 뭔데 나를 이렇게 오랫동안 괴롭히는 걸까?

병원에 갔던 날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나는 사실 정신병원에 들를 생각이 없었다. 약 6년 전, 그때만 해도 나같은 사람이 정신병원에 간다는 것은 너무 이상한 일이라는 아둔한 생각때문에 계속 마음이 아팠지만 그 아픔의 원인이나 병명조차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병원에 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와서 마음을 먹고 병원을 찾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으며 입원 권유를 받았지만 일단 약물치료부터 하는걸로 의사선생님과 합의를 본 것도 기억난다. 그 때가 내 병원 인생의 시발점으로서 6년이 지난 지금도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중간에 호전이 되어서 잠깐 병원을 그만 다녔지만, 생에 일어나는 나쁜 일들로 인해 많은 병을 얻었고 지금도 건강해지기 위해 열심히 병원을 다니고 있다.

주변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우울증은 예술가의 병이라 누가 그랬던가, 예술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병 얘기를 나누고 나면 우울증으로 통원 치료를 받는 예술가들이 참 많기도 하다. 마음이 아프다. 다들 건강하게 예술하고 살았으면 하는데 세상이 그걸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병원에 간다고 하는 말들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세상에게 화가 난다. 오히려 병원에 가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그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병원에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같은 경우에도 줄곧 받아왔던 악플 등의 문제로 우울증이 깊어진 적이 있다. 이런 문제는 소위 '정신 승리'할 수가 없다. 나를 향한 스피커에 내가 대응할 나의 마이크는 주어지지 않은 채 지속적으로 폭력적인 말들을 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정신 승리가 가능한가. 악플을 다는 사람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에게 그 저의를 물어본 적이 있다. 대부분 그들이 행복하지 않을거라 대답했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엄한 화를 남에게 푸는 경우라고도 들었다. 자신의 우울증, 불안 및 정신적 불안정을 다른 사람에게 폭력적으로 푸는 행위야 말로 세상에게 화가 나는 순간 중 하나이다. 그런 말들은 마음에 남아서 없어지지도 않는다. 내 자존감이 떨어지고 우울이 나에게 찾아오는 순간마다 나의 목소리로 다시 어레인지되어 나에게 들려온다. 악플을 받고 괴로워하는 나에게 '그런거 보지 마'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말인지 여기서 드러난다.

한편, 우울증이 창작의 근원이라고 보는 관점도 접했었다. 무언가 결핍되어있어야지만 좋은 창작물이 나온다는 그런 논지였다. 우울증이 무엇의 결핍을 의미할까? 왜 무언가 결핍되어야지만 좋은 창작물이 나온다고 믿게 되었을까. 우울증을 오래 앓아온 나로서는 그런 말들이 무의미하기도 하거니와 인간 정신에게 굉장히 무례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창작하는 일은, 내게는 어찌 보면 조금 성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나의 상상력을 믿고 세상에 없던 것을 존재하게 하는 일이지 않은가. 우리는 우울한 감정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담아 창작하기도 하지만 그 감정 자체를 창작의 근원이라고 하기에는 여러 감정을 표출한 다른 창작물들의 존재에도 모순이 되어버린다. 우울증을 겪지 않은 상태에서 기쁜 마음을 담아 누군가 창작해 낸 창작물은 그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지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다만 우울증을 겪다 보면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을 꽉 지배하는 순간이 찾아오고, 예술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는 재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영감을 찾아 늘 헤메는 예술가에게 꽉 찬 우울은 달콤한 유혹과도 같았나보다. 그렇게 자신을 병들게 해서라도 창작을 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이런 말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다.

또 하나 우울증에 대해 많이들 이야기하는 말이 있다. 바로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같은 것'이라는 문구다. 감기는 잠깐 지나가는, 그리고 굉장히 흔한 병이기 때문에 우울증 역시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누군가가 만들어낸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쉬이 동의가 되지 않는다. 감기와 우울증의 가장 큰 차이는, 우울증은 눈에 보이지 않는 병이라는 사실이다. 그 사실이 우울증 및 정신 질환에 대한 혐오가 생기는 가장 큰 지점이라 생각한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 아프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분 탓이 아니냐', '의지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병으로 확대해석 하는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우울증은 확실한 병이다. 인간의 의지나 기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분'이 아니다. 감기는 그 아픈 과정과 회복이 눈에 확실히 보인다. 몸으로도 훨씬 선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내가 지금 아픈지 안아픈지 우울증보다 훨씬 더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나는 감기와 우울증의 그 차이가 서로를 동등한 위치에서 비교할 수 없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울증 약은 먹어도 먹어도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먼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을 치료하는 약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 약이 정말 나의 기분을 나아지게 할 수 있을지, 기력을 되찾게 하는 것인지 회복되는 과정을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약을 먹으면서도 쉽게 치료받는다는 생각을 갖기 어렵다. 또, 몸 속 호르몬의 분비를 변화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에 약의 복용기간도 굉장히 길다. 이 점 역시 감기에 걸리면 주사 한 방 맞고 딱 일주일을 앓고 일어나는 현대인에게 어색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어디가 어떻게 치료되고 있는지 , 그 과정은 왜이렇게 느리고 지루한 건지, 내가 과연 낫고 있는 것인지 - 이 생각은 우울증이기 때문에 드는 걸 수도 있다 - 등 약을 먹으면서 늘 의문에 휩싸이곤 한다. 나 외에도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인 사람들 역시 이런 기분을 느끼는지 궁금하다.

오랜 기간 우울증을 앓아온 나는 걱정되는 것이 하나 있다. 아마 우울증을 오래 겪어온 사람들이 공감할 수도 있는 문제일 것이다. 때때로 '우울' 자체를 '나'로 받아들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울한 나',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무기력하며, 이 상태에서 벗어날 기력조차 없는 상태' 자체를 '나'의 원래 성격 혹은 성향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 우울증이다. 우울증을 앓게 되면 활기있게 움직이거나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렇다. 오랜 시간 그 상태에 머물러있게 되면 그것이 나 자체라고 받아들이게 되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나 역시 그런 상황에 오랫동안 처해있던 적이 있다. 나는 원래 기력이 없는 사람이고, 원래 나 스스로를 방치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나의 문제'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우울증이 약물치료와 더불어 상담치료가 필요한 병이라는 것이 여기에서 잘 드러난다. 나에게 맞는 우울증 치료제를 찾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며, 지금의 내 상태를 스스로 반추해야지만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상담 치료가 필수적이다. 지금 나같은 경우에는 상담치료를 받고 있지 않지만 주변에 건강한 사람들에게 '원래의 너는 그렇지 않았다. 그 때의 너로 충분히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을 계속해서 듣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무기력증에서 그나마 견딜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쓴 이 글과 다른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할 수 있다. 나는 우울증을 오래 겪어온 사람일 뿐 우울증이 무엇인지, 왜 나를 이렇게 오랜시간 괴롭히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모두 자기 자신의 우울증이 존재하고, 버티기 위해 괴로운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쓴다. 우울증은, 다른 모든 병이 그렇듯 내 잘못으로 걸리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나을 수 있고, 다시 자기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될 시간은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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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슬릭(뮤지션, 작가)

뮤지션, 작가. 누구도 해치지 않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 『괄호가 많은 편지』를 함께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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