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릭의 창작 일기] 어느 날, 작가가 되었습니다
슬릭의 창작 일기 1화
창작을 업으로 삼으면서 어머니가 원하는 평범한 삶을 살아낼 수도 있을까? 나는 아직 그 답은 모른다. (2022.01.03)
지난 8월, 내 인생에 없을 것만 같던 일이 일어났다. 공동 집필이긴 하지만 내 이름이 겉표지에 적힌 책이 세상에 출간된 것이다. 책이 출간되고 한 달여 정도, 나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단 채 여러 행사에 참여하며 마냥 신나있었다. 내가 작가라니. 학교에 다닐 때 여러 차례 써냈던 장래희망들 중 분명 한두 번 정도는 써냈던 직업이었다. 그 외에 써냈던 직업 중에서는 작사가, 가수 같은 것이 있었고 조금 자란 후에는 학급에서 튀지 않기 위해 꾸며낸 직업인 교사, 검사 등이 있었다. 물론 후자 쪽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창작에 대한 욕망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와 함께 했다. 초등학생 때는 친척동생이 집에 놀러 오면 함께 동요를 만들어 부르곤 했고 - 아직도 기억이 난다, 무지개 라는 노래였으며 무지개색으로 된 온갖 길쭉한 것들을 읊는 노래다 - 또, 줄이 두어 개밖에 남지 않은 채 방치된 아버지의 기타를 꺼내 혼자 튕기며 노래를 만들거나 아는 노래를 간단히 커버한 적도 있었다. 소설을 쓰거나 개사를 하는 일도 왕왕 있었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면서 느끼는 쾌감을 그 시절부터 남다르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렇게 만들어내던 것들은 주로 글과 음악이었고, 그러면서도 창작하는 자신이 조금은 부끄러워 꼭 어른이 되면 본격적으로 창작하는 법을 배우리라 다짐했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창작에 대한 욕구는 그전보다 훨씬 더 커졌다. 이제 나는 가족들에게 창작을 하고 있다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때 몰두하고 있던 창작물은 바로 랩이었는데,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에는 '랩'이라는 장르와 관련된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다는 생각을 쉬이 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그래도 랩이 하고 싶었고 부모님 몰래 랩 커뮤니티 오프라인 모임을 나가다 들켜버렸던 날도 있었다 - 나는 호랑이 같은 우리 어머니에게 용서받기 위해 진심을 다해 사과(?) 편지를 쓰고 지쳐서 잠들어버렸다. 랩퍼가 되고 싶던 특이한 딸과 달리 아주 평범한 부모님이었던 우리 부모님은 당연히(?) 나의 진로 결정에 반대표를 날리셨고 그렇게 나는 창작을 잠시 놓은 채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졸업이라는 석방만을 기다린 채 공부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러나 창작에 대한 나의 욕구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나는 계속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했다. 대학에 입학해서는 힙합 동아리에 들어 곡을 만들고 무대 위에 섰다. 전공 공부보다 그쪽이 나에게 훨씬 잘 맞는다는 건 아주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문제는 여전히 진로쪽에 있었다. 언제까지고 동아리 활동만으로 창작욕을 다스리고 살 수만은 없었다. 나는 창작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부모님께 창작의 재능을 인정받기 위해서 더 많은 사람들의 평가와 칭찬을 보여드리고 들려드렸다. 마침내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내 손에 나의 첫 번째 앨범이 들린 순간, 부모님께서도 마음의 장벽을 허무셨던 듯 하다. 나는 제과점의 누구에게도 내가 가수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었고, 앨범이 나오는 날 1집 cd를 선물하며 깜짝 발표를 해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나는 이 창작에 대한 욕구가 유전이라 믿는다. 우리 어머니께서도 학창 시절 시를 쓰셨다고 들었고, 장래희망은 늘 작가였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는 처음 내가 예술 계통의 직업을 선택하려 했을 때 가장 심하게 반대하신 분이시기도 하다. 본인께서는 자녀들이 '평범하게' 이 세상을 살아갔으면 했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평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평범'히 대학을 졸업해 '평범'히 취직을 하고 '평범'히 결혼을 해 살아가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런 삶이 얼마나 특별한지 안다. 어머니께서 포기하셨어야 했을 창작자의 삶만큼이나 말이다. 우리 집 세 남매 중 가장 청개구리였던 나는 어머니의 '평범함' 스펙트럼 저멀리로 달아나 가수가 되고, 온갖 인권 행사에 장윤정처럼 등장하더니 급기야 작가로 데뷔하게 되었다.
지금도 어머니께서는 세 남매의 삶 중 나의 삶을 가장 많이 걱정하신다. 무엇보다 소득이 불안정하니 그렇다. 신진여성문화인상을 수상했을 때는 누구보다 좋아하셨으면서 여전히도 종종 '평범한 삶'에 대해 내게 이야기하신다. 창작을 업으로 삼으면서 어머니가 원하는 평범한 삶을 살아낼 수도 있을까? 나는 아직 그 답은 모른다. 다만, 여성 창작자로서 세상에 부딪히고 충격에 아파하며 돈 되는 일은 전부 하면서도 그것들이 모두 창작에 관련된 일임에 감사하는 삶을 살 뿐이다. 나의 삶이 모든 창작자의 삶을 대변하지는 않겠지만 한국에서 여성 창작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난이도가 꽤 높은 일임에 분명하다. 나는 어머니가 걱정하신 대로 '평범'치 못한 삶을 선택해서 불안정하게 살아가지만, 어머니조차 알 수 없었던 세상의 기울기에 끝없이 오르막을 오르는 듯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 무엇도 창작이 내게 주었던 쾌감을 포기하게 만들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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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작가. 누구도 해치지 않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 『괄호가 많은 편지』를 함께 썼다.
<슬릭>,<이랑> 공저11,700원(10% + 5%)
문득 괄호를 열고 닫듯이 서로의 마음도 넘나들 수 있을까 불안의 시대, 갇혀버린 마음을 위로하는 슬릭과 이랑의 편지 힙합 신에서 혐오 대신 사랑을 노래해온 슬릭, 장르를 넘나들며 쉴새없이 이야기를 만드는 이랑.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일하고 있는 두 여성 아티스트가 코로나 시대에 편지를 주고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