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궂은 인터뷰] 번아웃과 갭이어 사이에서 -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월간 채널예스> 2022년 4월호 - 김진영 작가의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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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보다 아주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잔잔히 전해져 오는 ‘우아무’에 대한 공감의 메시지가 정말로 큰 힘이 된다. 일을 열렬히 사랑하면서도 번민하는 마음은, 당신뿐만이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 쓴 책인데, 그 말을 오히려 내가 돌려 받는다. (2022.03.30)


설마 나에게 갭이어(gap year)가 필요하겠어? 자문해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를 쓴 김진영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책은 ‘갭이어’를 반드시 갖자고 추천하는 책이 아니다. 일하는 마음이 어딘가 크게 변한 것 같을 때, 그 시그널을 무시하지 말자.



책 출간 후 각별한 축하를 받았다.  ‘우.아.무. 사랑 위원회’가 창단됐다고 하던데?

서로의 삶 깊숙이 서로의 일과 삶을 응원하는 친구들이 있다. 이들이 나보다 먼저 작년 3월, 7월 각각 첫 책을 냈다. 서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에, 그리고 우리 모두 이벤트와 축하와 기념을 좋아하는 본투비 기획자들이라 소박하지만 아주 유난스럽게 서로의 출간을 축하하기 시작했다. 이미 앞선 두 친구의 출간 기념회에서 웬만큼 할 수 있는 서프라이즈는 다했다고 생각했는데 (책 모양 케이크, 100쇄 기원 초대형 풍선 등) 역시나 이 기획자 둘은 상상도 못한 방식으로 '우아무'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우아무 사랑 위원회'가 주는 크리스탈 감사패. (내 이름이 단독으로 박힌 상패는 난생 처음이다) 나도 아직 어색한 내 새끼를 '사랑'해주는 위원회가 있다니. 

요즘 근황은?

첫 책을 쓰고 작가가 되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심지어 출간 후 작가 소개란에 쓴 메일 주소로 단 한통의 메일만 왔다. 하지만 잔잔히, ‘우아무’의 안부가 전해진다. 정말로 책을 '읽은' 사람들의 공감과 토로, 반가움 등이 가득 담긴 안부를 전해 받을 때마다 쓰는 동안은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결국 쓰기 잘했다, 싶다. 요즘은 다큐멘터리에 대한 책을 쓰고 있는데, 여전히 고통스럽다. 두 번째는 처음보다 쉬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 역시 쓰고 나면, 쓰기 잘했다, 이 고통을 잘 견뎠다 싶겠지.

<폴인 – 일하는 사람의 갭 이어> 연재를 계기로 책을 출간하게 됐다. 

연재를 하면서 19번의 전화 인터뷰와 6개의 정식 인터뷰를 했는데, 내 안에도 인터뷰어 이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번아웃을 겪기 전과 후를 모두 알고 있는 편집자님께 두 개의 원고와 기획안을 보냈다. 다행히 ‘자기만의 방’의 페르소나인 '김시영' 씨와 일하는 마음의 겨울을 맞은 '나'의 고민이 잘 맞았다.

책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힘이 생긴다. 희망적이다.

편집부가 원고에서 발견해준 문장이다. 사실 처음 들었을 때는 좋다고 생각했지만 곱씹을수록 '될 수 있다'가 마음에 걸렸다. 무엇이 돼도 안 돼도 괜찮다는, 지금의 나를 충분히 살피고 내 중심을 잡자는 책이라서. 또 내가 아직 번아웃에서 회복된 것 같지 않아서 이 제목을 결정하기까지 무척 고민했다. 결론적으로 편집부에게 무척 감사하다. 출간 후 감사하게도 제목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다큐 에세이(텍스트로 쓴 다큐멘터리)’라는 독특한 콘셉트가 책 표지부터 펼쳐진다.

갭이어를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할수록 '질문' 이상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하지만 나는 늘 카메라 뒤에서 질문만 하던, 타인의 이야기를 담은 촬영본을 가지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엮어가던 사람이었다. 막상 백지에 내 이야기를 쓰려니 텅 빈 화면에 커서만 꿈뻑꿈뻑 쳐다보기 일쑤였다. 그러던 차에 편집부에서 '다큐 에세이'라는 콘셉트이자 장르를 제안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도 즐겁게 일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며 카메라를 들고 그 답을 찾아가는 저자의 로드무비같은 책을 만들자고. 그 덕에 쓸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갭이어를 꼭 생각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은가?

이 책은 갭이어를 가지시라고 추천하는 책이기보다 갭이어를 가져도 괜찮다에 가깝다. '나 정말 더이상은 이대로 못 살것 같다', '주말과 휴가로는 도저히 충전이 되지 않는다', '일하는 마음이 어딘가 크게 변한 것 같다' 하는 어떤 시그널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부디 그 시그널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커리어 중간에 갭이어를 가지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실제로 만난 인터뷰이들은 대부분 갭이어를 매우 적극적으로 선택했다기보다 갭이어가 '주어진' 것에 가깝다. 더이상은 일을 지속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나 마음의 건강이 악화된 것.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갭이어를 '선택'하는 나름의 특단의 조치를 내렸기에 모두들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을 재정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터뷰이들의 이야기 중에 꼭 하나의 문장을 소개한다면?

"20년 차가 되어도 진로 고민은 계속해요. 20대 땐 30대가 되면 더이상 고민이 없을 것 같고, 30대 땐 40대가 되면 일에 고민이 없을 것 같죠. 하지만 일을 하는 동안에는 평생 진로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20년차 MD이자 브랜드기획자 허윤의 인터뷰 중 문장이다. 

그와의 인터뷰 전에는 나보다 5살, 10살, 20살씩 많은 언니나 선배들과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그들 역시 나처럼 고민을 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될 때면 좌절했다. 5년 후, 10년 후, 20년  후에도 지금 이 혼란과 방황이 계속된다고?!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그런데 허윤님과의 인터뷰 후에는 이런 고민이 고단하고 지리하다기 보다 좀 더 자랑스럽게 여겨진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 일에 꽤나 많은 삶의 부분을 쏟고 있는 사람들, 일과 나를 분리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이라면 고민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니까.

책을 쓰고 달라진 점이 있나?

이전보다 아주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잔잔히 전해져 오는 ‘우아무’에 대한 공감의 메시지가 정말로 큰 힘이 된다. 일을 열렬히 사랑하면서도 번민하는 마음은, 당신뿐만이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 쓴 책인데, 그 말을 오히려 내가 돌려 받는다. 그리고 나는 '팀'으로 일하는 것이 즐거운 사람이라는 데에 더 큰 확신을 갖게 되었다. 원고를 쓰는 시간은 외로웠지만, 책을 만드는 과정은 각 분야의 전문가와 함께였다. 나의 지분은 10%뿐이고. 내 책이면서 나만의 책이 아닌 것. 책이 나오고 퍼져가는 과정을 '함께' 경험하고 있는 이 시간이 정말 즐겁고 감사하다. 앞으로도 나는 팀으로 일하는 데서 행복을 느낄 것이다.

의외의 독자들을 상상해본다면?

아직 번아웃이 오지 않았고, 번아웃이 뭔지 잘 모르는, 그래서 번아웃이란 사실 조금은 꾀병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독자분들에게 추천한다. 그리고 주변에 번아웃으로, 무기력으로, 일과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방황하는 친구나 동료, 가족들에게 선물하기를 강력히 권한다. ‘우아무’가 가장 가닿고 싶은 코어(core) 타깃은 사실 번아웃과 우울, 무기력의 터널 2/3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마음이 최소한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을 때, 주변 사람들 혹은 여러 경험담을 토대로 몇 개의 '심리상담/정신과 119 리스트'를 갖고 있기를 정말로 강력히 추천한다. 마음에도 언제든 응급상황이 올 수 있다. 처음에는 내 마음과 정신의 응급상황을 어디에 호소해야 하는지, 어디를 찾아가면 나아지는지 알지 못해 무척 괴로웠다. 괴로움과 막막함이 무너진 마음에 공포심을 더했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얼른 심리상담 선생님의 전화번호 최소 1개를 핸드폰에 저장하자. 그 번호가 언젠가 나를 구원할 것이다.



*김진영

이야기를 듣고, 쓰고, 찍는 다큐멘터리스트. 좋은 질문을 던져, 세상에 흩어져있는 이야기를 엮어내고 전달하는 일이 좋아 다큐멘터리 PD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으며 콘텐츠 기획자로, 때로는 브랜드 콘텐츠 전략가로 하는 일이 확장됐다. 일의 언어는 달라도, 결국 평생을 이어갈 내 일의 이야기는 하나라고 믿는다.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우리는 아직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김진영 저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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