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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코드, 청춘가 특집

이즘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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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비록 '아름답지'만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먹먹하고 솔직하게 담아낸 한 편의 수필이자 동료가 되어줄 청춘가를 선정했다. (2021.07.02)

세상에는 수많은 청춘가가 존재한다. 힘이 담긴 응원 문구로 삶의 원동력을 부여하고, 낙관주의를 권하며 대가 없이 사랑을 베풀거나, 혹은 고된 순간에 절절한 위로의 손길을 건네주는 음악들이다. 저마다 그 모습은 다르지만 공통된 주제는 젊음이 지닌 '아름다움'이다. 이는 다양한 언어와 문화권 아래, 오랜 시간 인류가 청춘이라는 가치를 예찬해온 방식이자 청년의 가치가 어떤 존재로 인식되어 왔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긍정이 늘 해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흘러나오는 음악이 끝나고 이어폰이 고요해지면, 우리는 형체 없는 희망만을 간직한 채 비참한 현실로 돌아와야만 한다. 집값 폭등과 청년 실업, 세대 및 성별 갈등까지 최근 급격히 부상한 사회 문제는 MZ세대에 드리운 무기력의 원천으로 이미 단단히 자리 잡은 상태다. 'N포세대'라는 말이 유행하는 상황 속 우리네 삶은 극복은커녕 유지하기조차 쉽지 않다.

어쩌면 지금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힐링 테라피보다 걱정과 근심에 대한 본질적인 공감이 아닐까 싶다. 때론 같이 있어 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되기 마련이기에. 여기 비록 '아름답지'만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먹먹하고 솔직하게 담아낸 한 편의 수필이자 동료가 되어줄 청춘가를 선정했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젊은이'(2015)

예나 지금이나 술을 마시고 담배를 태우는 건 두 가지를 의미한다. 어른이 됐다는 것과 인생이 잘 안 풀린다는 것.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의 몸집이 커지는데 왜 젊은이들은 점점 더 힘들어지는가? 누구의 잘못이고 무엇이 잘못된 걸까?

'술 취한 밤 사는 게 무거워 마신 술이 더 무거워

피우지 말라는 담배도 한 가치 물고 하늘 보고 누웠다

내 맘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깨져버린 잔

여기에 나 있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별'

“상쾌할 수 없는 현대의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곡”이라고 밝힌 보컬리스트 조웅의 말과 달리 노래는 흥겹고 유쾌하다. 1960년대 미국의 개러지 록 사운드에 조웅의 장난 끼 넘치는 보컬과 김나언의 앙증맞은 건반은 낯설 수 있는 개러지 인디 록 넘버 '젊은이'를 친근하게 만든다. 그렇게 친해진 다음에 들리는 허무하고 구슬픈 가사는 희망을 잃어가는 젊은이들의 마음속으로 조용히 스며든다. 




다이나믹 듀오 '고백(Feat. 정인)'(2005)

이 시대의 젊은이에게 '진심 어린 조언'이란 때때로 우스운 '구별짓기'처럼 느껴진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내 상처가 나만 겪는 상처처럼 느껴지는 오늘 그리고 어제, 아니 어쩌면 내일이 반복되는 지금 절실히 필요한 노래는 그냥 상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힘내'가 아닌 그러니까 '이제는 다 커버린 철없는 나의 고백'처럼 말이다.

'이건 슬픈 자기소개서. 친구들아 sing it together'

2005년 발매 이후 십여 년간 청춘의 곁을 감싼 노래. 강산이 변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지만 노래가 묘사하는 쓴 내 나는 청춘의 나날은 여전히 지속되는 것만 같다. 이제는 그럼에도 '젊으니까'를 외칠 여력도 남아있지 않는 처절한 20대의 끝에서 다시 '고백'을 떠올려 본다. 젊지만 언제나 이제는 다 컸다며 조급함에 시달리는, 앞을 보기 두려워 뒤와 옆을 보며 내달리는 청춘. 이 곡에는 그런 우리의 자화상이 담겨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절룩거리네'(2003)

예고 없이 찾아온 국가 부도의 날은 당시 대한민국의 많은 젊은이들을 하루아침에 패배자로 내몰았다. 대학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하는 중이었던 청년 이진원도 안정적인 직장은커녕 계약직으로 여기저기를 떠돌았고 주변 환경으로 인한 좌절과 사회를 향한 불만은 날로 커져갔다. 하지만 신세 한탄만 하며 허송세월 하기 싫었던 그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란 이름을 달고 기타를 집어 들었다.

호기롭게 음악계에 발을 들였으나 별다른 연줄이 없었던 그곳 역시 '구역질 나는 세상'과 다를 게 없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래들이 가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지만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도 그는 분노하지 않았다. 오히려 스스로가 현실을 거스를 수 없는 팔자라는 걸 깨닫고 '무능하고 비열한 놈'임을 인정했다. 또한 '하나도 안 힘들어/그저 가슴 아플 뿐인걸'이란 역설과 육신을 내던지는 자학은 무기력에 잠식당한 이들을 대변하는 비관적 서사였다.

물러설 곳이 없었던 9회 말. 마지막을 각오하고 타석에 올랐던 달빛요정은 역전을 바라면서도 대중에게 닿아보지 못하고 아웃 당하는 상황을 걱정했다. 허나 시대적 비극을 같이 견뎌낸 이들의 마음에 만루홈런을 꽂았고 경기를 끝내기 위해 절룩거릴지라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며 홈에 도달하진 못했지만 '절룩거리네'는 지금까지도 청춘들의 밤하늘을 밝히는 애달픈 공감으로 남아있다. 




방탄소년단(BTS) '낙원'(2018)

더하기보다 빼는 것이 익숙한 요즘 시대의 자기 위로 공식은 '포기'다. 삶에서 연애와 결혼, 아이를 덜어낸 삼포란 단어가 등장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단념의 가짓수를 특정할 수 없기에 N을 붙여 그 범위를 확장한다. 중심엔 MZ 세대가 있다. 가족 혹은 사회 등 타의에 의해 날마다 목적 없이 경쟁했던 그들은 이제 지쳤고, 마음에 쌓인 짐을 버리듯 토해내는 한숨이 내려앉은 땅엔 꿈의 잔재가 무수하다.

'Now 어리석은 경주를 끝내 Stop runnin' for nothin' my friend

네가 내뱉는 모든 호흡은 이미 낙원에

Stop runnin' for nothin' my friend 다 꾸는 꿈 따윈 없어도 돼'

'낙원'은 담담하다. 영국의 프로듀서 엠넥(MNEK)의 잔잔한 비트 위로 읊조리듯 노래하는 방탄소년단의 목소리가 특별히 따뜻하지 않은 이유는 무기력증에 빠진 채 코스에 쓰러진 이를 일으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마주 바라보는 진심이기 때문이다. 어느 때보다 확실하다. 자포자기의 도달점은 절망이 아닌 새로운 기회이기에 억지로 쥐어진 목표를 벗어나 멈출 수 있는 용기를 전달하는 것. 방탄소년단이 내미는 손끝이 올곧다. 




송민호 '겁 (Feat. 태양)'(2015)

사실 곡에 대한 첫인상은 그리 좋지는 않았다. 'Eh / Ayo'로 들어가는 태양의 피처링 파트와 '아버지!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라며 절규하는 송민호의 랩이 과하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대중적이고 귀에 꽂히는 곡인 건 분명하나 강한 비트를 선호하는 개인적 취향에 '겁'은 말랑말랑하고 기성 가요의 문법이 진했다.

허나 곡의 선호도를 둘째 치고 가사에 집중하면 송민호의 이야기를 충실히 담았음을 알 수 있다. '겁'이란 제목부터 그렇다. 약해 보이지 않기 위해,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마련. 대신 송민호는 겁에 질린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공감과 동정을 끌어낸다.

'내가 나를 죽였어, 엄마도 내 눈치를 봐'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게, CCTV 속에 사는 게 무서웠어'라고 고백하는 송민호. 아문 상처를 쑤시며 과거를 대면하는 건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자의식의 성장을 의미하기도 하며 동경하는 뮤지션의 과거사를 마주한 청소년들은 시련의 평등성을 느끼며 위로받는다. 위너(Winner)에서의 화려함과 < 신서유기 >의 유쾌함 등 그 어떠한 이미지보다 송민호의 본질에 가까웠던 건 '겁' 속 연약한 청춘일지도 모른다. 




자우림 '스물다섯, 스물하나'(2013)

참으로 모순적인 시기. 마음껏 부딪혀 보면서 경험하는, 시행착오가 청춘의 특권이라지만 바늘구멍만 한 기회의 문은 그러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아등바등 살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은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고 있더라?' 인생의 봄이라는 푸르른 계절의 실상은 찰나의 시간이며 우리는 꽃을 피운 것도 미처 깨닫지 못한 채 쓰디쓴 한탄을 마시며 살아간다.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그때는 몰랐던 애틋한 시기를 회고한다. '아직도 손에 잡힐 듯'한 청춘의 추억은 향기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뿐, 아릿한 내음만 남기고 흩어져 버린다. 내레이션 같은 김윤아의 보컬과 잔잔하게 깔린 스트링 사운드를 타고 사람들은 잠시 잊고 있던 각자의 사연을 하나씩 꺼내어 본다. 뚜렷하게 이뤄낸 것 없고 나만 뒤처진 줄 알았던 아쉬움의 순간을 '그래도 아름다웠다'라고 정의 내리는 곡.




장기하와 얼굴들 '싸구려 커피'(2008)

일말의 꾸밈도 없다. 마치 경험을 고스란히 옮긴 듯한 일련의 문장들이 묵묵히 나열될 뿐이다. 권태에 찌든 기타의 음율과 한숨 섞인 도입부를 지나, 독백을 넘어 거의 타령에 가까운 장기하의 덤덤한 보컬은 지극히 현실적인 가사와 맞물리며 듣는 이조차 '적잖이 속이 쓰릴' 만큼의 무기력함을 빚어낸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충격적인 데뷔 싱글 '싸구려 커피'의 등장이었다. 적나라한 표현과 독특한 퍼포먼스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곡은 누구나 따라부르기 쉬운 간단한 곡 구성을 토대로 남녀노소를 막론한 선풍적인 유행을 이끌며 제2의 인디 부흥기를 이끌었다.

인스턴트 커피, 눅눅한 비닐장판, 그리고 담배꽁초가 든 미지근한 콜라까지. 제삼자의 시선으로 본 화자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운 콩트를 보는 듯하다. 허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당시 청년층이 이 곡이 보낸 관심에는 단순한 재미보다도, 해학과 자조에서 은은히 우러나온 지지의 심정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포크 록의 진정성에 2000년대 홍대 인디 씬 특유의 한국적인 키치함을 교묘히 배합한 '싸구려 커피'는 그해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노래' 부문에서 당당히 수상을 거머쥐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민초의 삶을 진솔하게 그려낸 김홍도 화백이 그랬듯, 오늘날까지도 세대를 관통하는 노랫말일 테니. 




장미여관 '청춘가'(2013)

청춘은 어디에 있을까. 사랑과 우정, 그리고 꿈이라는 가치도 사라진 지 오래다, 도전보다 포기를 부르는 지금의 세대에게 우선순위는 안정적인 삶뿐. 술 한잔 기울일 친구를 찾으며 지나버린 젊음을 위로하는 장미여관의 '청춘가'조차도 사치로 들린다. 과거는 가진 자들에게나 추억이지 없는 자들에게는 트라우마다. 그런데도 이번 리스트에 이 노래를 넣은 이유는 마지막 남은 낭만을 찾기 위해서다.

한국의 청춘처럼 계절도 겨울 다음 여름이 온다. 봄이 사라지고 있다. 새순이 돋아날 틈도 없이 찬바람과 더위만 기세등등하다. 날씨부터가 이러니 힘이 날 턱이 있나. 이럴 때 우릴 달래주는 건 뜨끈한 국물에 소주와 바삭한 치킨에 맥주다. '혼술'이 유행이니 따라가야겠지. 오늘도 술기운을 빌려 '버린 나의 꿈아/나의 사랑아/돌아오질 않을 젊음아'를 외치며 자책 중이다. 그렇게 나의 '청춘가'를 찾아 헤맨다. (임동엽)




재지팩트 'Always awake'(2011)

야박한 세상 속 '밤샘'은 청춘에게 익숙하다. 몸 건강한 젊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지만, 그만큼 힘들고 고단한 일이기도 하다. 불투명한 미래에 신음하면서도 그렇기에 이들은 밤에도 한 발을 더 내디뎌야 한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 밀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취업에 승리하기 위해, 혹은 그저 한 번뿐인 한창때의 찬란함을 만끽하기 위해 말이다.

'모두가 등한시하는 밤하늘에 뜬 달 / 곁에 있는 별처럼 깨어 있는 나'

빈지노와 시미 트와이스가 뭉쳐 결성한 힙합 듀오 재지팩트의 'Always awake'는 그러한 젊음의 패기를 압축한 아우성이다. 고독한 달빛 아래 '눈이 푹 패이고 몰골은 초췌'하지만, 'Say young!'을 부르짖는 외침만큼은 호기로워서 어딘가 자유로워 보인다. 심장에 요동치는 드럼과 멀게 들리는 관악기가 펼쳐놓은 달밤의 몽환, 그 위 영 제너레이션 랩 스타의 열정이 강렬한 메아리로 울려 퍼진다. 저마다의 목표를 위해 전등을 끄지 않는 청춘을 응원하는,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철야(徹夜) 예찬가. 




화나 'Prologue'(2017)

'나를 대표하는 말은 대충 한국의 청년, 젊은이, 학생, 취준생, 공시고시생, 말단 노동자나 알바..'

이름만 잃어버린 게 아니라 MZ는 지금 자존, 실재, 미래정신을 다 잃었다. 2017년 12월의 스토리가 2021년 6월에도 고스란히 오버랩 된다. 청춘의 공허는 세대공통이라지만 싸구려 휴지 같은 지금 청춘의 백지는 1986년 유미리 '젊음의 노트'에 표현된 '뭔가를 써야만 하는 빈 노트'와는 종이 다르다. 한동안 뻔질나게 들락거렸던 청년창업이란 말도 폐어가 돼가고 있다. 586들의 성장시대엔 그나마 기회, 기대라도 있었지...

예의 그 라임폭격보다는 조곤조곤 권총의 연발사격에 가깝지만 하드코어 메시지의 토로라 청년들은 더 공감한다. 방송 다큐 제목처럼 이거야말로 '청년 진짜 이야기'요, 청년현실 리얼 브금이다. 반국가 반정부 시야가 스멀거리는 가운데 MZ의 파괴욕망 헌장으로, 현실 선전포고로 손색이 없다. 한마디 한마디가 폐부를 찌른다. '가진 놈들 차지'라는 게 넋두리를 넘어 불공정 불공평 불평등의 '변함없는 세상'에 균열을 초래하는 그루핑의 시작이기를.. 화나는 이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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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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