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 <쉼터에 살았다>, 살고 싶어서 ‘집’을 나왔다

웹툰 <쉼터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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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똑같지 않은’ 부모에 의해 자라는 사람은 정상가족 신화가 공고한 이 사회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헤쳐나갈 수 있을까? (2021.03.02)

웹툰 <쉼터에 살았다>의 한 장면

한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한 모녀의 다정한 모습을 흐뭇한 기분으로 보고 있을 때였다. “모든 부모님의 마음은 다 똑같죠. 자식을 위해 뭐든지 해주고 싶고.”라는 MC의 말이 여느 때와 달리 마음에 걸렸다. 우리는 흔히 부모의 사랑을 칭송하고 감사하는 것만큼 당연한 인간의 도리는 없다는 듯 말하곤 하지만, 정말로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뭐든지 해주고 싶어 할까? 그렇다면 연일 보도되는 아동학대 사건은 다 누구에 의한 것일까? 그리고 남들과 ‘똑같지 않은’ 부모에 의해 자라는 사람은 정상가족 신화가 공고한 이 사회에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헤쳐나갈 수 있을까? 

리디북스에서 연재 중인 웹툰 <쉼터에 살았다>는 탈가정 후 청소년 쉼터에서 생활했던 하람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어릴 때부터 양육자의 가혹한 체벌에 시달렸던 그는 대학에 가고 성인이 된 뒤에도 정서적으로 학대당한다. 어떻게 해도 엄마의 기대에 맞춰줄 수 없고 가족이 행복해질 수 없는 것도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지배당해 ‘사라질 방법’만 고민하던 그는 어느 날 자신이 겪은 일이 모두 가정폭력이며 그건 잘못된 일이라는 글을 읽고서야 깨닫는다. “그 모든 게 내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고? 그러면 나도 계속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살고 싶어서 집을 나온 하람을 짓누르는 것은 생활의 무게다. 그는 고시원에 살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리고 정신과에 다니면서 우울증 치료도 받지만, 가진 것 없는 이십 대 초반의 여성이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딸이 집을 나간 지 수개월이 지나도 연락 한번 없는 엄마, “네가 선택한 거니까 도와달라고 연락하지 말라”는 아빠는 그에게 상처만 남긴다. 결국, 심한 무기력증 때문에 쓰레기가 쌓인 방에 벌레까지 꼬이자 하람은 쉼터 입소를 결심한다. 


웹툰 <쉼터에 살았다>의 한 장면

정부에서 지원하는 청소년 쉼터에서는 만 9세에서 24세까지의 탈가정 청소년에게 무료로 숙식을 제공한다. 누군가는 ‘집’에서 당연히 누리는 폭언 없는 대화, 안전한 공간, 균형 잡힌 식단 등을 쉼터에 와서야 경험하게 된 이들은 하람만이 아니다. 하람을 언니처럼 따르는 열다섯 살 수아는 쉼터를 옮겨 다니며 생활한 지 1년이 넘었고, 쉼터의 러닝머신에서 넘어져 크게 다친 세나는 “아픈 것보다 보호자한테 연락 갈까 봐 겁났다.”라고 털어놓는다. 빈 몸으로 쉼터에 왔다가 갈아입을 옷과 휴대폰을 가지러 집에 갔더니 가족이 현관 비밀번호를 바꿔버린 바람에 창문으로 넘어간 얘기를 무용담처럼 들려주던 나리는 “집 나온 건 좋은데 진짜 개고생”이라며 씁쓸하게 말한다. 부모가 변하지 않을 것을 알지만 진심으로 사과하고 바뀐다면 당연히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고백에서는 너무 어린 나이부터 자기 앞의 생을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사람의 고단함과 외로움이 드러난다.


웹툰 <쉼터에 살았다>의 한 장면

 지난 2015년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가정 내 성차별과 가정폭력 문제를 다루며 화제를 모은 웹툰 <단지>처럼, <쉼터에 살았다>는 2018년 여성가족부 추산 연간 27만 명에 달하는 탈가정 청소년의 경험을 당사자의 목소리로 들려준다는 면에서 매우 유의미한 작품이다. 밖에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가출 청소년임을 들키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었고 “나는 절대 평범하지 않고 정상이 아니라서 절대 이해받을 수 없을 거라는 패배감”으로 괴로워하던 하람이 자신과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과 생활하며 “처음으로 이해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해방감을 느끼는 대목이 특히 인상적이다.


웹툰 <쉼터에 살았다>의 한 장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쉼터라는 공간에 대한 정보가 담긴 생활툰으로서의 재미도 적지 않다. 탈가정 청소년과 쉼터에 대한 외부의, 그리고 자기 안의 편견과도 맞서는 하람의 성장을 따라가며 나의 시선도 점검하게 된다. 하람 작가는 쉼터의 존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주민, ‘쉼터 애들’은 행실이 나쁘다는 편견을 드러내는 교사 때문에 상처받은 주위 청소년들을 보다가 이 작품을 구상했다. “가끔, 아니 사실은 꽤 자주 사람들이 쉼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라는 그의 말은,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사건을 단기간의 이슈로 소비하면서 피해자의 삶을 함께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는 인식이 여전히 부족한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만든다. 쉼터가 필요한 청소년, 그리고 쉼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싶어 하)는 모두에게 <쉼터에 살았다>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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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지은(칼럼니스트)

대중문화 웹 매거진 <매거진t>, <텐아시아>, <아이즈>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괜찮지 않습니다』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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