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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원 칼럼] 오렌지 피구공 (Feat. 김사월 - 오렌지)
황유미 『피구왕 서영』 김사월 <로맨스>
느긋하고 급하지 않은 허밍이 좋다. 주변의 시선이나 압박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박자로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그 걸음걸이는 경쾌함을 잃지 않는다.(2020. 06. 23)
어렸을 때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면 나는 집으로 바로 돌아오곤 했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노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왠지 집에 있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그때는 (90년도 중반) 텔레비전 방송은 낮 시간에는 잠시 멈추고 학생들이 하교한 뒤 늦은 오후에야 다시 시작되었다. 오후 시간대의 방송은 주로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는데, 특히 만화영화의 인기가 대단했다. 전통의 KBS와 MBC도 명작 만화들을 많이 방송했지만, 그 당시에 새롭게 등장한 SBS의 기세가 무서웠는데, <축구왕 슛돌이>, <슈퍼 그랑죠>, <피구왕 통키> 같은 만화를 보기 위해서 일찍 들어가는 친구들이 많았고 나도 그 중에 하나였다. 황유미 소설집 『피구왕 서영』을 처음 보고 그 시절이 문득 떠오른 동년배들이 많을 것이다.
만화 때문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겠지만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90년대는 피구의 시대였다. 『피구왕 서영』 에 나오는 것처럼, 피구는 여학생들의 체육경기 종목으로 많이 채택된 것은 물론이고, 축구나 농구 같은 주류 운동경기에서 처지는 남학생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체력이 약하더라도 공을 따라 죽어라 뛰지 않아도 되는 운동이었고, 거칠게 몸을 부딪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적당히 묻어가면 되는 것이 피구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공을 던져서 다른 목표물이 아닌 ‘사람’을 맞추는 경기라는 점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또 공격당할 위험이 없는 외야에서 일방적으로 내야를 공격하는 것,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공격자의 관심을 받지 않게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거나 혹은 맞서서 공을 잡아내야 한다는 사실을 통해서 치열하고 살벌한 인간관계의 일면을 나타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구왕 서영』은 새 학교에 전학을 간 서영이 동급생들 사이에서 생기는 권력관계와 서열,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겪어내고 극복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서영은 전학 간 학교에서 새롭게 관계를 맺고 소속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짝이 된 윤정에게 호감을 갖지만, 피구경기에서 활약한 까닭에 교실 내부의 권력관계의 정점에 있는 현지에게 관심을 받게 된다. 서영은 현지와 그 친구들에 동조해 주며 편안함을 제공받지만 윤정을 배척하고 교실 내의 권력관계를 공고히 하려는 그들에게 마음속으로는 불편함을 느끼고 내적인 갈등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피구는 현지와 그 패거리들과 가까워지는 매개가 되는 한편, 윤정과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서영은 윤정과 더 가까워지면서 현지 패거리와 함께 있을 때는 드러내지 못했던 자신의 속마음을 열게 되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 한다. 좋아하는 일을 즐거워서 할 수 있기 위해 노력한다면 정말로 ‘ㅇㅇ왕’ 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서영은 현지가 선심 쓰듯이 지어준 별명이 아니라 정말로 피구왕이 될 지도 모른다.
『피구왕 서영』과 함께 듣고 싶은 오늘의 노래는 김사월의 ‘오렌지’ 이다. 윤정과 함께 먹은 오렌지를 기억해 내며 미소를 짓고 있는 서영의 표정이 떠오르는 노래. 느긋하고 급하지 않은 허밍이 좋다. 주변의 시선이나 압박을 이겨내고 자신만의 박자로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그 걸음걸이는 경쾌함을 잃지 않는다. 서영이 친구를, 피구를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차린 것처럼,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상큼하고 달콤한 기운이 나른하게 퍼져나간다.
잘 지내보이겠지
너도 그 생각하겠지
너와 먹은 오렌지
너도 그 생각하겠지
오- 사랑하는 건 너무 쉬워
소설집 『피구왕 서영』은 피구왕 서영’, ‘물 건너기 프로젝트’, ‘하이힐을 신지 않는 이유’, ‘까만 옷을 입은 여자’, ‘알레르기’ 여섯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제작인’ ‘피구왕 서영’과 조금 결은 다르지만 가족이나 집단 속에서 당연한 듯 적응하지 못하고 그러기를 거부하는 예민한 개인의 자각이 주로 담겨있는데, ‘물 건너기 프로젝트’ 의 속 시원한 결말도 꼭 확인해 보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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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인디계의 국민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1대 리더. 브로콜리너마저의 모든 곡과 가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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