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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 높은 완성도의 소포모어
백현 <Delight>
가파른 발전이 앞으로의 솔로 활동에 청신호를 켠다. 아티스트 스스로의 바람대로 많은 청자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음반. (2020. 06. 17)
SM 산하의 솔로 뮤지션들은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 성공 케이스인 태연과 태민은 각각 팝스러운 이미지와 화려한 퍼포먼스 등 저마다의 트레이드 마크를 내세운다. 이는 소속사가 단독 가수들의 성질을 구분하고 각자가 서로의 위치에서 개개의 개별성을 지니게 하는 그들의 특출한 전략이다.
백현은 어떨까. 그 역시 전작 <City Lights>에서 감행한 변모로 힙합 알앤비의 고혹에 발맞추며 회사의 가장 힙한 뮤지션으로의 자리를 꾀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개성이 완숙하게 다져졌다고 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음악 완성도의 부재보다, 세계관을 온전히 구축하기에는 짧은 경력과 그룹을 벗어난 그가 아직 대중에게 확실한 입김을 불어 넣지 못했다는 점이 솔로 아티스트로의 지위 획득을 가로막는 이유로 보인다. 본작 역시 분명한 방향성에 비해 듣는 이를 자신의 세계로 초대하는 색감, 견인력은 다소 설익어 있다. 그만의, 그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이라 부르기에는 껄끄러운 부분이 있는 것.
그러나 이런 약간의 평범함이 높은 완성도를 만나 오히려 신보의 소구력으로 작용한다. 결론부터 말해 <Delight>는 아주 쉽게 즐길 수 있는 알앤비 음반이다. 여러 프로듀서에게 핸들을 맡긴 사운드 스케이프는 모난 구석이 없고, 보이스 컬러를 잘 활용한 촘촘한 곡 배치로 들을 거리를 확장하며 구성의 넉넉함을 확보한다. 전작과 비교해 한층 짙어진 음향 기조도 대중적인 작법과 거리를 두지 않으면서 도회적인 몽환경을 형상화하려는 아티스트의 의도를 효과적으로 발현. 쉬운 청취와 캐릭터 다지기 어느 쪽도 놓치지 않는, 그 사이의 줄을 타는 밑그림이 탄탄한 뼈대를 구축한다.
몽롱한 전자음이 둘러싼 「Candy」는 그러한 작품의 좋은 타이틀이자 킥오프다. 머리로 내세우는 트랙치고 하이라이트 멜로디의 선율적 쾌감은 다소 약한 듯 보이지만, 밀도 있는 그루브에 유연하게 힘을 풀었다 조이는 목소리와 신시사이저를 서로 포갠 울림에는 타격감이 있다. 뒤이어 켄지가 쓴 「R u ridin’?」의 간소한 운율이 가져다주는 속도감, 둔중한 편곡이 춤추게 하는 「Ghost」가 중독성을 살리는 구성도 만족스러운 첫인상을 심는다.
속도를 줄이고 보다 절제된 템포를 지향한 곡도 음반에 더욱 쉬운 접근을 도우며 인상적이다. 「Bungee」와 「Love again」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전자는 가라앉은 피아노의 안정감으로, 후자는 어쿠스틱 기타의 자연스러움으로 지속 청취를 가능하게 하며 자극을 피한다. 언뜻 상투적인 겉모양이지만 기본 이상의 짜임새를 보장하기에 호감이 앞선다. 거기에 예상 밖의 발랄함으로 친절한 로맨스를 전하는 「Poppin’」은 중반 텐션을 끌어올리는 백미.
높은 완성도의 바탕에는 무엇보다 가수의 활약이 성실히 뒷받침되고 있다. 백현은 피쳐링에 참여한 뮤지션 없이 메인 선율과 화음, 추임새를 홀로 소화하며 훌륭한 연기를 펼친다. 더욱 날개를 단 그의 기량이 돋보이는 지점. 성공적인 변모의 첫걸음에서 그것을 좋은 음악으로 연결한 소포모어까지. 가파른 발전이 앞으로의 솔로 활동에 청신호를 켠다. 아티스트 스스로의 바람대로 많은 청자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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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