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잔 “40년 치 인생 내공을 믿어보세요”
『나답게 살고 있냐고 마흔이 물었다』 김은잔 저자 인터뷰
마흔을 기점으로 생각의 방향도 인생의 방향도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하곤 해요. 왠지 이제부터는 좀 더 ‘나답게’ 살아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2020.06.22)
요즘의 마흔은 고민이 많다. 한편에서는 여전히 젊고 기회가 많은 나이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젠 자리를 잡은 진짜 어른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주변에서 ‘지금 해도 늦은 결혼, 출산’ 등을 말할 때 서른 후반의 여자는 더욱 불안해진다. 언제부터 나이에 이렇게 많은 제약이 생겼을까?
17년 차 방송 작가인 김은잔은 다음 브런치에서 일과 사랑, 결혼, 미래를 고민하는 30·40대 여자의 마음을 누구보다 솔직하고 섬세하게 그리며, 나이답게 아닌 ‘나답게’ 살 것을 조언하여 화제를 모았다. 어떤 나이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서른에 해야 하는 것도, 마흔 전에 이뤄야 할 것도 없다. 저자는 책 『나답게 살고 있냐고 마흔이 물었다』를 통해 마흔도 괜찮다는 위로 이상으로 ‘마흔이 되어야만 비로소 알게 되는 삶의 요령’을 들려준다.
책 속에 비혼과 미혼의 차이, 그리고 결혼을 고민하는 30·40대 여자들의 마음이 정말 현실적으로 표현되었어요. 특히 30대 여성에게 결혼 문제는 아주 큰 고민거리죠. 비혼과 결혼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친언니 같은 조언이 듣고 싶어요.
결혼과 비혼 모두 개인의 선택이고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사회는 그 선택을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아요. 가까운 지인부터 가족, 직장 동료 등 많은 이들이 남의 개인사에 지나치게 관심이 많으니까요. “왜 결혼 안 해?”, “빨리 시집가!” 하면서요. 이로 인해 많은 여성이 결혼 문제 앞에서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타인의 조언을 걸러 듣는 내공이 꼭 필요해요. 결혼이나 비혼은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삶의 형태’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남의 말보다 내면의 말을 더 주의 깊게 들었으면 좋겠어요. 움츠러들지도 마세요. 비혼은 왠지 말 자체로 좀 있어 보이는데, 미혼은 아직 결혼 못 했다는 뜻 같아 괜히 작아질 때도 있잖아요. 그러나 비혼과 미혼은 각자 삶의 형태가 다를 뿐이에요. 나이가 많거나 비혼이어도 괜찮아요. 그저 매 순간을 즐기면서, 앞으로의 인생을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는 게 중요해요.
30대 중후반이 넘으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연애에서 을이 되는 여자들이 많아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남자와의 연애를 지속한다거나, 결혼을 전제로만 상대를 찾으려고 하죠. 남녀관계에서 자세를 낮추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에도 쓴 말인데, ‘조급하면 진다’고 생각해요. 연애할 땐 연애에 집중하고 결혼 조급증은 내려놓으세요. 조급증만 내려놔도 많은 문제가 해결돼요. 결혼 때문에 을이 된 연애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되거든요.
조급한 사람들은 여유가 없어요. 관계에서 여유가 있고 없고의 문제는 아주 큰 차이를 만들어요. 여유가 없다면 관계에서 동등한 거리를 두거나, 관계를 리드할 힘이 줄어들 수밖에 없죠. 결혼이 연애보다 우위가 되면 마음속에서 ‘타이머’가 작동합니다. ‘이 남자는 결혼할 남자인가? 그게 아니라면 지금 그만둬야 하는 걸까?’ 하는 물음들이 튀어나오는데,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연애를 연애 자체로 즐길 수 없게 돼요. 무엇보다 결혼 조급증이 생기면 연애와 결혼 둘 다 놓치기 쉬워요. 결혼이 급하다고 해도 좋은 연애가 우선이고, 연애보다 더 소중한 건 나라는 사실도 잊지 마세요.
“그 나이면 노산이야. 시집가야지”라는 무례한 말을 하는 남자에게 “여자가 노산이면 남자도 노산, 내 출산과 결혼은 알아서 할게”라고 뼈를 때린 현실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이 자리를 통해 매번 나이를 들먹이는 무례한 이들에게 한마디 더 해준다면요?
결혼과 출산 모두 당사자가 알아서 할 일인데, 여자의 출산에 조금의 보탬도 되지 않는 오지랖은 그만 좀 넣어두시라고 정중하게 다시 한번 말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발 말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해 주세요. 지금 아무 생각 없이 하려는 말이 누군가에겐 폭력일 수 있으니까요.
그때 저렇게 말한 건, 임신과 출산의 모든 책임을 여자에게 떠넘기듯 말하는 일부 남자들의 무례한 태도를 더는 참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의 노산에만 관심이 많아요. 여자는 30대만 되어도 ‘너는 이제 곧 노산’이라는 말을 최소한 수 번, 수십 번은 듣게 되는 게 현실입니다. 실은 성별을 떠나서 누구든 나이가 들면 생산능력이 떨어지잖아요. 남자의 노산도 여자의 노산과 똑같은 문제로 생각하는 세상이 오면 좋겠어요.
인간관계는 늘 어려운 문제인데, 마흔이 되면 더한 것 같아요. 미혼 친구와 기혼 친구는 공감대가 사라져 연락이 뜸해지고, 절친은 사소한 일 하나로 멀어지고, 가까운 이에게 배신당하기도 하고… 작가님도 인간관계의 변화를 많이 겪으셨을 텐데, 20대와 마흔의 인간관계의 가장 큰 차이는 뭘까요?
나이대별로 인간관계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나이 앞자리가 바뀔 때마다 큰 변화들이 생기죠. 일단 10대와 20대엔 친구가 1순위일 만큼 중요했다면, 30, 40대가 되면 아예 우선순위의 재배열이 생겨나요. 많은 이들이 사회생활도 시작하고, 결혼이나 임신 같은 인생의 큰일을 겪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문제는 나는 ‘그대로’인데 주변의 관계만 확확 변하는 것을 보면 혼란스럽죠. 왜 나만 두고 다들 변하는 걸까 싶고요. 그럴 때 저는 그런 일들이 생기는 걸 그냥 지켜봤어요. 물론 억울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나름의 작은 항변(?) 같은 것도 했지만, 30대를 지나면서 인연과 관계는 내가 안달을 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리고 하나의 인연이 빠지면 또 다른 인연이 채워지기도 했죠. 관계에 너무 연연하거나 속상해하지 마세요. 물론 노력도 필요하지만, 관계는 노력한다고 붙잡히지 않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작가님은 비정규직 프리랜서 방송 작가 일을 무려 17년 넘게 하셨어요. 한 가지 일을 10년 넘게 하기도 쉽지 않은데,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매년 ‘언제 이 일을 그만둘 수 있지?’ 하고 생각할 만큼 불안하고 힘든 일이에요. 대학 때 꿈꿨던 직업을 가졌는데, 막상 되고 나니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았죠. ‘방송 작가 대신 뭘 할 수 있을까?’, ‘작가 일을 때려치울 만큼 욕심이 나는 일이 있나?’ 하고 많이 고민했어요.
그런데 이 일만큼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오래 두고두고 질문을 해봐도 ‘없다’가 제 대답이었어요. 만약 있었다면, 과감하게 관두고 다른 일을 시작했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대신 뭔가를 표현하고 글로 쓰는 게 제 적성과 잘 맞는다고 생각했고, 언젠가 방송 작가를 관두게 되더라도 글 쓰는 일을 하겠다고 나름의 노선을 잡았어요. 그저 제가 좋아하는 일인 ‘글로 표현하는 일’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 같아요.
나이 듦을 편안하게 여기고 더 행복해졌다고 말하는 분도 많지만, 여전히 “내 나이가 많아서” 하며 주저하는 어른들도 많아요. 이런 분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나이가 많든 적든 가보지 않은 길이 두려운 건 모두가 마찬가지일 거예요. 어떤 나이든 이 나이가 이번 생애 처음이잖아요. 하지만 ‘지금 이 나이에’, ‘나만 뒤처진 거 아닐까?’ 하는 걱정들과 비교는 의미가 없어요. 정작 나이가 어린 사람보다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있는 기회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잘 생각해보면 기회는 사실 어릴 때도 별로 없었어요. 그땐 그때대로 어려운 일이 많았고요. 대신 나이가 좀 더 있는 우리는 어떤 기회든 잡을 수 있는 용기와 배짱이 있잖아요. 까짓것, 이만하면 두려운 것도 없다 하는 배포도 한번 부려볼 만하고요. 나이 탓을 하기 전에 지금까지의 인생 내공을 믿어보세요. 무려 40년치예요!
앞으로 남은 작가님의 40대를 어떻게 ‘나답게’ 보내실 건지 계획이 궁금합니다.
인생에서 각자 기념비적인 나이가 있는데, 저한테는 마흔이 아닌가 싶어요. 마흔을 기점으로 생각의 방향도 인생의 방향도 많이 달라졌음을 실감하곤 해요. 왠지 이제부터는 좀 더 ‘나답게’ 살아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은 왜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지, 정작 나 자신을 돌보면서 살지 못했거든요. 이제는 제게 중요한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한도 내에서의 열심을 다 하며, 여전히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또 고민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그리고 올해 5월, 결혼과 함께 제주도로 이사를 했어요. 새로운 터전에서 다시 저만의 길을 찾아나가려고 하는데 여전히 살짝 두렵고 설레네요. 삶은 언제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까 마흔인 어른들이 ‘이제 무슨 일이 생기겠어’ 하는 자조적인 태도보다 ‘삶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니까’ 하는 설렘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 김은잔 1980년생, 17년째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프리랜서 방송 작가. 나이 마흔을 관통했지만, 무사히 잘 살고 있다. 마흔이 되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별로 달라진 게 없어서 조금은 고민이다. 그래도 괜찮지 않은 날보다 ‘괜찮은 날’이 더 많아서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30대 후반부터 막연하게 마흔에 대해 느끼고 경험하고 때론 뼈저리게 깨달은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싶었고, 이 책은 그 결과물이다. 다음 브런치에서 ‘마흔 언저리의 연애’, ‘여자 나이 마흔’이란 주제로 글을 쓰고 있다. 일과 사랑, 결혼 그리고 미래를 고민하는 마음을 섬세하게 기록하여 여성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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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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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거나 시시하거나 이대로가 좋은 나이, 마흔 서른보다 설레고 스물보다 자유로운 마흔의 삶에 관하여 요즘의 마흔은 고민이 많다. 한편에서는 여전히 젊고 기회가 많은 나이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이젠 자리를 잡은 진짜 어른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두 의견 사이에 선 마흔은 방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주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