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터 2-10] 59화 : 당장 레포에게 가서 비상을 알려요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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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내의 얼굴을 본 순간 야마시타 최달영은 불침을 맞은 것처럼 화들짝 놀랐던 것이다. 대합실의 사람들이 술렁대더니 개찰이 시작되었다. (2019.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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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야마시타는 종착역인 하인천역이 부두 지척에 있음을 생각했다. 그는 우물쭈물 하지 않고 결정을 내렸다. 한 사람은 여기서부터 만나러 온 자를 미행하고 역으로 가는 중간 지점에서 다른 조원이 기다렸다가 교대하여 그를 따른다. 조장 야마시타는 역에서 그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그는 역 대합실에 가서 기차 시간표를 확인했다. 남은 것은 막차였다. 그는 우선 경성까지 가는 표를 끊었다. 지원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를 미행하든가 도중에 체포하게 될지도 모른다. 삼십분쯤 지났을 때에 손님들이 하나 둘씩 대합실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야마시타는 대합실의 오른쪽 구석에 신문을 펴들고 앉아 있었다. 몇 사람이 들어오고 뒤에 조원이 들어서는 게 보였다. 그는 한눈에 조장을 알아보고 곁에 와서 앉았다.

 

 “저기 국방색 반외투에 털모자 쓴 자입니다.”

 

야마시타가 미행해 온 조원의 눈짓 방향을 바라보니 매표소 부근에서 막차 시간표를 확인하는 듯 한 사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야마시타는 천천히 일어나 사내를 향하여 걸어갔다. 가까이 가서 그의 얼굴을 확인해 두려는 것이었다. 그가 네 걸음쯤 떨어진 위치까지 다가섰을 때 사내가 돌아섰다. 야마시타는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그를 스쳐 지나가서 기차 시간표를 향하여 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쳐들고 시간표를 보는 시늉을 하면서도 그는 뒷통수가 근질거렸고 가슴이 몹시 뛰기 시작했다. 그 사내의 얼굴을 본 순간 야마시타 최달영은 불침을 맞은 것처럼 화들짝 놀랐던 것이다. 대합실의 사람들이 술렁대더니 개찰이 시작되었다. 그가 돌아서 보니 승객들이 줄지어 개찰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야마시타는 줄에 끼어들지 않았고 국방색 외투가 인파 사이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서있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조장을 관찰하고 있던 보조원이 뛰어와서 다급하게 말했다.

 

 “미행하지 않습니까?”

 

야마시타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는 몸을 돌리더니 앞장서서 대합실 밖으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조원이 성냥을 그어 불을 붙여 주자 그는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였다가 길게 내뿜고는 말했다.

 

 “내가 잘 아는 녀석이다.”

 

이튿날 아침 야마시타는 영등포 본서로 가서 그 동안의 정탐 결과를 놓고 부두 하역장의 조십장, 방우창, 그리고 자신들의 공작 독서회에 드나드는 장씨와 어제 방을 만나러 왔던 연락원에 대하여 논의했다. 그들은 논의 끝에 부두의 조십장은 일찍이 함경도 원산에서 흘러들어온 태로계라는 것이 내사결과 밝혀졌고, 코민테른 극동부와의 연결점은 역시 조와 방이라고 추정했다. 따라서 방우창은 국제당과의 연결 속에서 조를 찾아 도피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 두 놈을 쥐어짜면 경성의 국제당 조직은 모두 드러날 겁니다.”

 

 “어제 만났던 자가 연락원이라면 그도 연결이 되지 않겠나?”

 

 “그 자가 방에게 연락선을 물으러 갔을 겁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마쓰다 경부가 물었다.

 

 “서두르지 않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제가 파악하고 있던 자입니다. 그를 놔두었다가 미끼로 쓸 수 있습니다.”

 

 “주요 인물이 아닌가?”

 

 “주요인물은 수배자를 직접 만나지 않습니다.”

 

야마시타는 거의 확신을 가지고 말했고 모리 반장도 동의했다.

 

 “연락원이라면 하부 야체이카일 것입니다.”

 

마쓰다 경부가 미심적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음, 아무튼 그 자도 잠복조를 보내서 계속 관찰하도록.”

 

영등포 경찰서 고등계는 행동개시 일을 화요일 밤으로 정하고 하루 전날인 월요일에 모리 반장이 일본인 형사 두 사람을 증원하여 인천으로 가서 야마시타 정탐조와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이 인천으로 출발하기 전에 이이철의 떡집을 정탐하러 갔던 보조원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그는 야마시타에게 보고했다.

 

 “떡집에 문이 잠겨 있어요. 둘러보니 집안에 아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야마시타는 잠깐 생각해 보더니 보조원에게 말했다.

 

 “내가 알아서 조치할 터이니 당분간 입 다물고 있게.”

 

그들이 인천에 가서 체포하려는 자는 조십장과 방우창 두 사람이었고, 그들이 공작하며 내사한 자료는 인천 경찰서에 넘겨줄 것이었다. 즉 야마시타 조가 공작 독서회를 조직하면서 걸려든 조선인 노동자의 명단과 그들의 직장, 따로 독서회를 운영하는 것으로 보이는 장씨의 독서회 등에 대하여 간단한 사찰보고서를 주기로 했던 것이다. 모리와 야마시타가 인천 경찰서 고등계를 찾아가 반장에게 그 동안의 공작 내용을 알리자, 뒤늦게 보고를 받은 일본인 경부는 노발대발하면서 그들의 발밑으로 보고서를 집어던지기까지 했다.

 

 “너희들 뭘 믿고 남의 나와바리에 와서 이따위 장난을 치는 거냐?”

 

모리가 뻣뻣하게 말했다.

 

 “우리는 경무국의 지시 아래 공작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너희 놈들은 오야붕을 체포하여 공을 세우고, 우리는 농락당한 잣코들 뒤치다꺼리나 하라는 거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만, 경무국 고등계에서 하명한 치안사건입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경부는 화가 풀리지 않은 기색으로 부하들에게 일렀다.

 

 “다 잡아들여. 상해와 연결된 조직사건이니까.”

 

경부가 나간 뒤에 인천서의 반장이 야마시타에게 이죽거렸다.

 

 “당신 앞으로 인천에 얼씬거리지 마라. 내가 보는 즉시 상해의 적색분자 연락원으로 체포할 테니까.”

 

화요일 밤 열 시에 그들은 방우창과 조십장을 체포해서 영등포로 이송했다. 그들은 체포한 첫 밤이 매우 중대한 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새벽 동이 틀 때까지 되도록 많은 사실을 캐내어야만 더욱 많은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그들은 조십장에게서는 원산과의 연락망을 알아냈고 방우창을 집중 고문하여 그가 이미 경성 국제당의 중심인 권과의 연락선을 이이철에게 가르쳐 주었음을 알아냈고, 영등포 공장조직 가운데 국제당 오르그 몇 사람의 이름도 나왔다. 또한 그가 경성 당 재건 그룹과 국제당의 양쪽에 닿아 있었던 것과 경찰 측의 추측대로 이들 양 파가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경찰은 방우창이 이이철에게 권의 레포의 소재지를 알려 주었다는 사실에서 한발 더 들어가 권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캐냈다. 새벽의 고문은 매우 끔찍하게 계속되었다. 방우창은 세 번이나 기절했고 그때마다 대기하던 의사가 들어와 강심제 주사를 놓았다. 주위가 훤해질 무렵에 방은 꺾였고 권모가 은신한 익선동 담뱃가게 아지트를 불었다. 경무국에서 직접 나와 있던 경부보는 비상전화를 통하여 형사대를 익선동에 급파했고 그를 검거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모리의 지휘를 받아 방우창을 직접 고문했던 야마시타 등 조선인 형사들은 영등포 관할의 각 공장으로 풀려나가 노동자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방우창은 최후의 기력을 잃었는지 사망하고 말았다. 의사의 진단서에는 심장마비라고 적혀 있었으나 장시간의 전기고문과 물고문에 의한 폐 손상이 분명했다.

 

이이철은 어떻게 이 가장 위험한 최초의 검거 기간을 모면할 수 있었던가. 그가 인천에 가서 방우창을 만나고 하인천 역 종점을 향해 걷고 있었을 때에 그는 이상한 기미를 눈치 챘다. 중심가로 들어서는 길목의 전봇대 뒤에 누군가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는 비교적 먼 거리에서도 작은 불똥을 눈 여겨 보았다. 이철은 그를 지나쳐 걸어가면서 힐끗 상대방의 차림새를 훑었다. 털붙인 반외투에 귀에는 토끼털 귀가리개를 두른 남자였다. 이철은 스스로 어둠에 묻혔으리라 짐작한 곳까지 걸어가서 고개를 휙 돌려 돌아보았다. 거뭇한 그림자 두 개가 보였고 얼마 안가서 하나가 되었다. 그는 꼬리를 달았다는 것을 대번에 눈치 챘다. 이이철은 자신과 방우창과의 만남을 그들이 노리고 있었다고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다면 저들은 방우창의 꼬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인천서의 개들일 것이다. 그는 잠깐 망설였다.

 

이대로 어두운 들판을 향하여 도주할 것인가 아니면 예정대로 종점으로 가서 기차를 탈 것인가. 이미 주위는 중심가 거리였다. 그는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일부러 한길을 건너 맞은편 길로 바꾸어 걸어 보았는데 뒤를 따르는 자는 어느 틈에 사라져 버렸다. 이이철은 예정대로 막차를 타기로 작정했다. 그가 역의 대합실에 들어섰을 때 다시 토끼털 귀가리개의 그 자가 보였고 누군가의 옆에 가서 앉는 것도 보았다. 이철은 일부러 뒤돌아보지 않고 열차 시간표를 올려다보며 기다렸다. 그리고 갑자기 몸을 돌렸다 신문을 보던 그 자가 곧장 자기를 향하여 걸어오고 있었다. 몇 초였을까,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상대가 고개를 숙이고 옆을 지나갔지만 이철은 이미 시선이 맞부딪쳤던 그 순간에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 자는 최달영이 분명했다. 이철은 형의 어릴 적 동무 중 하나였던 돼지치기 달영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순사보조가 되어 앞잡이 노릇을 한다는 것을 형에게서도 들은 적이 있었고, 가끔 시장거리나 역전 모퉁이에서 그가 어슬렁거리는 꼴을 먼발치서 본 적도 있었다. 대합실에서 이철은 그가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는 모른 척 했다. 이철은 기차를 탔고 최달영은 그를 따라오지도 않았다. 이철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만삭의 아내에게 자기가 겪은 일을 말했다. 한여옥은 비록 아지트키퍼 노릇으로 가부부가 되어 이철과 진짜 부부가 되어 버렸지만 혁명운동의 중대함을 잘 아는 여자였다.

 

 “지금 당장 그 연락 레포에게 가서 비상을 알려요.”

 

 “직접 닿지는 않을 거요. 우리가 하는 식대로 두 번 보안접선을 하게 될 거요.”

 

 “그럼 이틀이나 걸리잖아요?”

 

 “시간이 없소. 내가 누구인지 최가도 알고 있으니까. 우리가 지금 이럴 시간이 없소.”

 

한여옥이 잠시 생각해 보더니 남편에게 말했다.

 

 “저는 막음이 고모에게 가서 의논해 볼 거예요. 당신은 어서 피하세요.”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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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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