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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알면 마음이 보인다

정재승 『열두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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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도 뇌과학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내용이다. 타인의 얼굴을 보며 감정을 읽는 방식이 동서양이 다른데, 동양인은 눈을 주로 보며 감정을 알아채고, 서양인은 입을 본다는 것이다. (2018.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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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무엇을 아는 것과 아는 것을 잘 전달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아는 것은 매우 많지만 잘 정리를 못해서 10%도 전달이 안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 물론, 나중에 알고 보면 아는게 별로 없는 사람인데, 참 맛깔나게 얘기를 잘해서 알고 있는 것이 10배는 되는 것 같이 보이는 사람도 있다. 사기꾼 기질이 농후한 사람이다. 둘을 비교하면, 그래도 사람들은 후자의 이야기를 듣기를 원할 것이다.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듣는 사람이 빠져들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우리는 스토리텔러라고 부른다. 서사문학, 구비문학, 신화와 전설은 모두 그의 입을 통해 전해져 내려온 것이다.

 

21세기의 스토리텔러는 아마 시시각각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정보들을 대중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닐까?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하니 맞춰서는 안된다는 말같은 가짜 뉴스와 거짓 정보가 선정적으로 만들어져서 중세시대에나 통용될 이야기가 종교적 믿음과 같이 퍼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 은 그런 견지에서 반가운 책이다. 물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다 구매한 베스트셀러인지라 새로 소개한다는 것이 계면쩍은 면이 있지만 좋은 책은 널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읽는 서가’에도 올리려 한다.

 

서두에 말했듯이 저자는 학자로서 업적도 훌륭하지만, 더욱 탁월한 것은 스토리텔러의 재능이다. 이 책은 그가 그동안 해온 12개의 대중 강연을 녹취해서 풀고, 저자가 내용을 수정 보강한 것이다. 구어체로 구성되어 있어 마치 내가 그 강연장에 있는 기분이다. 강연에서는 사용했을 파워포인트 슬라이드가 있으면 보면서 읽고 싶다는 욕구가 강하게 느껴진다. 아마 저작권 문제로 사용하지 못한 것 같은데 개정증보판이 나온다면 슬라이드의 이미지들이 적절히 삽입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정도다. 한 챕터는 한 편의 강연으로 기승전결이 뚜렷하다. 약 2시간 정도의 강연이므로 이 책 한 권은 24시간동안 저자의 이야기를 듣는 셈이다.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만발한 현대사회를 살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맞이해야 할 현대인에게 그의 전공인 뇌과학을 기반으로 선택, 결정, 결핍, 놀이, 미신, 창의성, 변화와 순응과 같은 큰 주제를 어렵지 않게 풀어나간다.

 

저자는 인간이 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으면서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3만년전 원시적 상황에서 생존과 짝짓기에 적합한 선택을 하도록 세팅된 뇌가 현대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탓이라고 설명한다. 아무리 자신이 똑똑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긴장, 불안, 마감에 몰리는 상황적 맥락에 들어가면 그 순간부터 원시뇌가 작동하여 오직 ‘생존 확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반응적 판단을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두 번째는 나의 기억은 매우 부정확하다는 것이다. 너무나 쉽게 암시와 이후의 사건들에 의해 영향을 받아 수정이 되거나 왜곡된 채 저장이 된다. 이에 대해서 재미있는 실험 하나가 소개된다. 울릭 나이서라는 사회 심리학자가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 사건이 있던 다음날 자기 수업을 듣는 106명의 학생에게 전날 이 사건을 언제, 어디서, 누구와 함께 들었는지 종이에 쓰도록 했다. 2년이 지난 후 학생들을 불러 2년 전 챌린저 호 폭발사건을 어디서 누구와 들었는지 다시 물어보았다. 놀랍게 25%의 학생이 전혀 다른 상황을 이야기했다. 더 많은 학생은 디테일에서 많이 다른 내용을 말했다. 정확히 기억을 하는 학생은 10%에 불과했다. 그래서 잘못 기억한 90%의 학생에게 2년전 그들이 직접 쓴 종이를 보여주며 확인을 해보라고 하며 이 모습을 녹화했더니 순순히 잘못 기억했다고 인정하기보다 “이건 제가 쓴 게 아닙니다. 내가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는게 맞습니다”라고 우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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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스플래쉬

 

 

이렇게 기억은 한 사건이 지난 다음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내외부 자극에 의해서 왜곡이 쉽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걸 인정하기보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맞는 내용이고 실제 팩트는 도리어 조작된 것이라고 자기 중심적으로 믿는 것이 일반적 자세라는 것이다. 이런 뇌의 부조리한 모습이 정치적 태도와 만나면 갈등을 만들고, 오래된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게 하는 원인이다. 이런 뇌의 작동기제를 이해하면 “내 기억이 틀릴 수 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믿는 것은 그런 이유로 가능하다”는 태도를 가질 수 있다. 그러면 나와 다른 의견에 너그러워질 수 있고, 자존심 심하게 상하지 않은채 웃으면서 잘못 믿고 있던 것을 고칠 수 있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즉 자기 객관화가 필요한 것이다.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도 뇌과학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로운 내용이다. 타인의 얼굴을 보며 감정을 읽는 방식이 동서양이 다른데, 동양인은 눈을 주로 보며 감정을 알아채고, 서양인은 입을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모티콘도 서양에서는 주로 스마일리 :) 와 같은 식으로 입모양을 표시하고, 한국에서는 눈을 찡긋하는 ^^ 모양을 선호한다. 재미있는 분석이었다. 이 책의 내용에서 조금 더 나아가보면, 미국에서 사는 한국인의 표정이 뭔가 어색하고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사진을 보면 입을 더 크게 벌리고, 이를 드러내면서 웃는 것이 여느 한국에 사는 한국인을 볼때와 다른 것이 아니었나 싶다. 자연스럽게 자기를 드러내고, 감정을 상호작용할 때 주로 오고 가는 부위가 다르기 때문에 얼굴 표정의 표현의 강조 부위가 다르게 된 것이 그렇게 보인 것이다.

 

저자는 우연히 하나의 이야기를 보고 나서 논문을 뒤적이면서 동서양의 차이에 대해서 깊이 공부하고 정리할 기회가 생겼다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서로 연관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던 우연의 발견들이 창의성을 가져온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창의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자주 지적인 대화를 나누라고 권유한다. 전혀 몰랐던 분야의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릴 마음은 필수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이종교배적 지적대화가 창의와 혁신의 실마리를 준다. 저는 창의적인 사람이 따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어느 순간 창의적 아이디어가 떠오를 뿐이고, 그걸 더 많이 경험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하면서 열린 마음을 갖고 세상의 다양한 자극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려 노력하라고 한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12개의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의 이야기를 전해주며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활짝 넓혀준다. 책 제목  열두 발자국』  은 ‘인간이라는 경이로운 미지의 숲을 탐구하면서 과학자들이 내딛은 열두 발자국’을 줄인 것이라 한다. 나는 이 열두 발자국이 한 방향만으로 깊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두세 발자국씩 사람마다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보면서 내 인식의 폭의 반경이 넓어지게 하는 그런 열두 발자국이 아닐까 상상을 해보았다. 창의적 순간을 만나기 위한 즐거운 지적 호기심을 갖고 열두 발자국을 내딛어 보는 경험을 탁월한 스토리텔러인 저자와 함께 할 수 있는 책이다.


 

 

열두 발자국정재승 저 | 어크로스
언제나 새로고침하고 싶은 인생의 난제들 앞에서, 숨 가쁘게 변화하는 시대의 한 가운데에서 저자는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독자들과 함께 탐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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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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