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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제작자 안해룡 “출판을 한다면 제작을 알아야 한다”
“책이 많이 팔릴 때 무엇보다 기분이 좋다”는 안해룡 출판제작자
정말 책다운 책을 만드는 출판사는 제작 과정에서라도 도와드리면 더 많은 분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죠. 어느 책이든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서 만들어지니까,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출판 제작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인쇄소와 무거운 기계, 시끄러운 먼지 등이 연상된다. 공장에서만 진행되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출판계 업무보다 잘 알려지지 않기도 하다.
안해룡 출판제작자는 일반 공대를 다니다 부친의 인쇄업에 영향을 받아 인쇄 전공과에 편입, 동아서적 제작대행 업무를 거쳐 김영사 제작팀에서 11년 동안 근무했다. 현재 제이오엘앤피에서 대표직을 맡아 출판물 후가공과 제작 컨설팅을 하며, 서울출판예비학교, 한겨레교육문화센터 등에서 출판제작 실무과정을 강의하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같은 베스트셀러에서부터 최근 이슈작이었던 『나쁜 페미니스트』 등 수많은 책이 그의 손을 거쳤다. “책이 많이 팔릴 때 무엇보다 기분이 좋다”는 안해룡 출판제작자를 만나 출판 제작의 고충과 보람에 관해 물었다.
책을 제작하는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합니다.
인쇄소와 후가공소, 제본소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요. 책을 만들기 위해서 첫 번째로 필요한 건 원재료, 즉 종이가 필요합니다. 인쇄소에서는 원고 데이터를 받아서 종이에 인쇄하고, 인쇄가 끝나면 인쇄본은 제본소로 가서 접기 등의 제본 과정을 거칩니다. 표지나 띠지 등의 부속물은 후가공업체로 와서 가공하게 되죠. 마지막에 제본소에서 표지 등을 원고와 합해서 책이 완성됩니다.
출판사 제작 컨설팅도 해주신다고 들었습니다.
1인 출판 하시는 분들이 너무 비싼 원가를 지급하고 책을 만드는 경우가 많아요. 중대형 출판사나 메이저 출판사는 제작부가 별도로 있기 때문에 원가절감을 염두에 두고 일을 하시는데, 소규모 출판사가 상대적으로 제작 과정 때문에 수익이 줄어드는 게 안타까워서 서너 분 도와드리다 보니 제 업이 되어 버렸어요. 제작부의 역할을 대신하거나 폐기를 줄이는 방법 등을 조언해드리고 있어요.
효율적으로 책을 만들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책 판형을 결정할 때 서점에 전시된 기존 책을 많이 참고해요. 참고 도서를 가지고 와서 보면 버리는 부분이 너무 많은 도서일 때가 있죠. 계속 가격을 강조하게 되는데, 원가의 50%는 종이예요. 그러다 보니 종이 선택을 잘못하면 수익이 그만큼 떨어지는 거예요. 판형 결정도 잘해야 하고, 판형에 맞는 종이 선택도 중요하죠. 정규격 용지 외에도 지업사, 제지사 별로 수많은 변형 판형 용지가 있어요. 그걸 어떻게 찾아내서 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많이 찍으면 찍을수록 저렴해진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천 부를 열 번 찍으면 원자재가 열 번 들어가지만, 한 번에 만 부를 발주하면 그만큼 원가가 낮아지거든요. 디지털 인쇄는 프린트에 가깝고, 흔히 이야기하는 인쇄는 망점이라고 해서 점으로 인쇄할 내용을 찍습니다. 500부 이하라면 디지털 인쇄나 망점 인쇄나 가격이 비슷하지만, 500부가 넘어가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기 때문에 현재까지 책은 거의 디지털 인쇄로 제작하지 않아요.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디지털 인쇄가 활성화되고 있어서 조만간 국내도 소량 인쇄가 많아지지 않을까 합니다.
제작을 의뢰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실 만한 게 있을까요?
사실 컨설팅은 지금 봐 드리는 분들만 맡고, 다른 분들에게는 항상 저에게 오시지 말고 직접 배우셔서 하라고 말씀드려요. 1인 출판 하시는 분들이 편집과 기획은 잘 아시는데 제작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편집과 디자인까지 다 하시더라도 결국 제작비가 가장 많이 들 텐데, 비용에 대해서는 책을 직접 만드시는 거니까 조목조목 왜 나가는지 지식을 쌓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후가공 과정은 특히 독자들에게 생소할 것 같은데요,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시자면.
거의 모든 책은 후가공이 필요합니다. 팝업북 같은 유아 전집을 보면 인쇄 외에도 가공이 들어가는 부분이 많죠. 후가공 공장에는 인쇄한 표지에 코팅을 씌우는 기계, 특정 부분에 박을 씌우는 박 기계가 있고요, 투명 액체를 이용해서 반짝반짝하게 하는 실크 인쇄기 같은 기계 등이 있습니다. 모양 따는 톰슨이라는 기계도 있고요. 기계 설명을 하면 끝이 없으니 여기까지만 할게요.(웃음)
제작 방법도 유행이나 최신 기술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문학 책에 주로 쓰는 촉감코팅이라는 방법이 있어요. 만졌을 때 벨벳 느낌이 나죠. 학습지에서는 20년 전에 많이 쓰던 엣칭이라는 기술이 다시 유행하고 있어요. 모래알처럼 부분적으로 거칠거칠하게 만드는 기법이죠. 최근에는 PET 원단을 사용하는 기법이 재활용도 되고 유럽에서 주목을 받고 있어서 큰맘 먹고 기계를 들여왔어요.
인쇄할 때 책 내용을 보기도 하나요?
내용을 봐도 잉크의 농도 같은 걸 보고, 책 내용은 가제본했을 때 넘겨보면서 보긴 하지만 인쇄소에서 글을 읽을 일은 거의 없어요. 서점은 일주일에 두세 번 가요. 계속 공부해야 하기도 하고, 저희가 만드는 책이 어떻게 매대에 깔려있나 확인하기도 하고요. 관심을 가지고 보다 보면 언젠가 더 좋은 반응을 얻게 되지 않을까요?
책을 보면 항상 제작 방법이 먼저 눈에 들어올 것 같아요.
판형에서부터 종이는 뭘 썼는지, 전체적인 틀을 봅니다. 인쇄를 너무 잘했다든지, 디자인이 좋다든지. 디자인이 좋으면 후가공을 많이 하지 않아도 책이 좋게 나와요. 그래서 후가공업체를 운영하고 있지만 컨설팅을 하면 차라리 디자인을 신경 쓰시라고 조언하기도 하죠.
제작에서 가장 힘든 걸 꼽는다면 뭘까요?
원가를 낮출 방법이 없으면 협력업체, 즉 인쇄소나 제본소 단가를 계속 낮추게 되는 게 가장 어려워요. 그러다보면 시장이 엉망이 되어서 아직도 인쇄소, 제본소에 주는 단가가 20년 전 가격이랑 같은 곳도 있어요.
출판업계 이래 최대 불황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습니다.
베스트셀러를 많이 만들어봤지만, 요새 만드는 책은 베스트셀러라도 제작 부수가 거의 절반 이상 줄어들었어요. 그래서 제조업계에서는 패키지나 기업체 사원 물품 같은 인쇄제작물도 많이 만들고 있죠. 독립출판 하시는 분들도 컨설팅하다 보면 대부분 초판에서 끝나서 안타까워요. 열 권 발행하면 재판을 찍는 책은 두세 권 정도 돼요.
이제까지 제작을 맡은 책 중에 기억에 남는 책이 있다면요?
『안철수의 생각』 제작할 때 일화가 있어요. 원고 받는 과정에서부터 인쇄소에 데이터를 넘기는 과정까지 극비리에 진행했는데, 대선 후보였기에 기자가 직원인 척 잠입해서 테스트하는 종이, 속칭 ‘야레지’를 빼내서 기사를 쓴 적이 있어요. 그런 우여곡절 끝에 많이 판매가 된 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아무래도 제작하면서 책을 많이 만들 때가 제일 재밌습니다.
완성된 책을 보면 기분이 어떠신가요?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책이 있어요. 책을 만들 때 고생을 하거나, 이 출판사는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정말 책다운 책을 만드는 출판사는 제작 과정에서라도 도와드리면 더 많은 분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죠. 어느 책이든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서 만들어지니까,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