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윤성훈 "편집은 기획, 그리고 독자를 만나는 일"

편집은 독자와 만나는 게 더 중요하다 윤성훈 다산북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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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잘 만들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들은 또 팔리잖아요. 희망 고문인가요? 계속 축소되고 있지만 그래도 살아남는 데는 살아남는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잘하면 되겠다고 생각해요.

<채널예스>에서 매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난다.

첫 번째는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는 편집자의 세계다.

 

편집자는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 관여한다. 책을 기획하고, 저자를 섭외하고, 원고의 교정, 교열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책의 디자인과 배열을 어떻게 할지, 어떻게 책을 어느 독자와 만나게 할지, 말 그대로 책의 처음과 마지막을 감독처럼 관리하는 직업이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등을 편집한 윤성훈 씨는 ‘편집은 콘셉트를 기획하고, 실제로 구현하고, 만들어진 콘셉트를 가지고 독자와 소통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2010년 웅진지식하우스에서 편집자로 시작해 출판사 인플루엔셜을 거쳐 지금은 다산북스에서 일하는 윤성훈 편집자를 만나 출판사와 편집자의 세계에 관해 물어보았다. 그는 현재 『1등의 통찰』이라는 책을 준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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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출판사에서 일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직의 계기가 있었나요?

 

학부 때부터 만약 대학원을 간다면 다른 학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학문적 동종교배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굳이 비유하자면 5년 반 근무한 웅진지식하우스가 제겐 학부 같은 존재였고 석사는 다른 출판사에서 하고 싶었어요. 다행히 다산북스에서 기회를 얻었어요.

 

편집했던 책을 소개해 주세요.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는 이윤기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고 3주년이 지나고 나온 책인데,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선생님의 산문 중에 글쓰기, 번역, 우리말 사용에 대한 원고를 모아서 콘셉트에 맞게 책을 만들었어요. 이미 세상을 떠나신 분이고 원래 있던 원고긴 했지만, 편집자의 역량과 기준, 취향에 따라 새로운 콘텐츠가 나올 수 있잖아요. 만들면서 제일 즐거웠어요. 독자들 반응도 좋았고 편집의 힘이 큰 책이라 편집자로서는 보람이 컸던 책이었어요.

 

최근 책으로는 인플루엔셜에서 냈던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이 있어요.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좋았고요(웃음). 저자랑 소통하면서 더 써 줬으면 좋은 내용과 빼면 좋을 내용, 디자인, 제목 등 굉장히 긴밀하게 작업했어요.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도망치지 않고 정면 돌파해서 좋은 평가를 만들어 낸 책인 것 같아요. 저자 분도 좋아서 앞으로도 계속 작업하고 싶어요.

 

기획한 책이 많이 팔리면 뿌듯한 기분이 들 것 같아요.

 

저자에게 돈을 많이 벌게 해주는 편집자가 되고 싶습니다. 저에게 맡기면 돈을 많이 번다는 걸 알려서 나중에는 저도 돈을 많이 벌 수 있지 않을까요.

 

작업하고 싶은 분야가 따로 있었나요?

 

원하는 분야는 딱히 없었어요. 특정한 분야에서 일하는 스페셜리스트에 매력을 못 느끼기도 했고 이것저것 다 하는 제너럴리스트가 더 되고 싶었어요. 지금도 분야 안 가리고 기획하고 있고요. 분야보다는 콘텐츠 자체의 매력이나 콘셉트의 매력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제너럴리스트의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요.

 

깊이 있게는 모르니까 한계가 있겠죠. 그래도 이것저것 다 하면 공부가 많이 되고 재밌어요. 한 곳에 매몰되기보다 섞어서 넓게 볼 수 있는 시야도 확보되는 것 같고요.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다양하게 해보고 싶어요.

 

편집자는 디자이너, 마케터, 저자 등 책을 만드는 모든 사람과 긴밀하게 소통해야 합니다. 커뮤니케이션을 잘할 수 있는 노하우가 있나요?

 

바짝 엎드려서 저자세로 나가는 거예요. 저자세지만 얻어낼 건 다 얻어내는 전략. 같은 말이라도 내가 상대방의 감정을 배려하는 상태에서 결과를 얻어야 결국 제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 같아요. 저자에게 개고 요청을 하거나 디자이너에게 수정 요청을 하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만 기분 나쁘게 이야기해도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어요. 책은 편집자가 혼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글도, 디자인도 다른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요구하는 입장이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기분 상하지 않게 소통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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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생업과 퇴근 이후의 삶이 구분이 안 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직업인으로 시간 분배를 어떻게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정말 해야 하는 일들, 당장 눈앞에 다가온 보고서와 회의 준비는 다 업무 시간에 하려고 하고요. 그 밖에 1, 2년 후를 내다보는 기획은 업무 시간 외에도 해요. 좋은 기사나 좋은 책을 보면 이 사람이 쓸 수 있는 아이템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 안테나는 24시간 살아있긴 하지만 당장 할 일은 업무 시간 안에 하는 편이에요.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게 피곤하진 않으세요?

 

의식적이고 적극적으로 세운다기보다는 삶이 되어서 그냥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지금 담당하는 편집 업무는 일상을 침범하지 않게 노력하면 괜찮아요.

 

일하면서 참고했던 책이나 다른 사람한테 배웠던 에피소드가 있나요?

 

편집자는 항상 다른 책을 보고 많이 배웁니다. 특히 좋은 출판사에서 나오는 책을 보면 배울 게참 많아요. 인플루엔셜으로 이직했던 이유 중에도 어떻게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발견했고, 만들었고, 또 팔았지? 하는 궁금증이 있었어요. 매년 눈에 띄는 출판사들이 일 년에 한두 개씩은 꼭 보이잖아요. 그런 걸 보고 많이 배우죠. 다산북스도 콘셉트 싸움을 가장 잘하는 출판사라고 생각하는데, 많은 걸 배웠습니다.

 

편집자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콘셉트를 만드는 기획 단계와 콘셉트 퍼포먼스라고 기획을 구현하는 단계, 독자들과 소통하는 콘셉트 커뮤니케이션, 이렇게 세 단계로 업무를 구분하자면 중간에 있는 구현 단계는 훈련할 수 있어요. 흔히 편집자의 핵심 업무라고 하는 제목을 짓고, 목차를 짜고, 본문 윤문과 교정교열을 하는 일이 여기에 속하는데, 5,6년 정도 훈련하면 잘하거든요. 하지만 첫 번째 단계인 저자 섭외와 기획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될 때가 많아요. 신규 저자 발굴도 촉을 세워야 할 수 있는 거고, 큰 저자는 말할 것도 없어요. 그리고 마지막 커뮤니케이션은 편집자 역시 마케터 이상으로 많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어떤 노하우를 알았더라도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 금세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편집자 연차가 쌓일수록 첫 번째와 세 번째 단계를 어떻게 하냐 고민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출판의 위기다, 책의 위기다” 말을 많이 합니다. 위기를 체감하시나요?

 

예전에는 네이버 오늘의 책에만 올라도 판매 반응이 있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매체마다 영향력이 약해진 것 같아요. 신문광고도 마찬가지고. 매년 발표되는 보고서만 봐도 큰 회사들의 매출이 줄어들고 있어요. 임프린트(출판사 내 독립된 브랜드)도 많이 없어지고 함께했던 동료들도 다 떠나는 걸 보면 확실히 느끼긴 하죠. 그래도 잘 만들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책들은 또 팔리잖아요. 희망 고문인가요? 계속 축소되고 있지만 그래도 살아남는 데는 살아남는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잘하면 되겠다고 생각해요.

 

같이 일해보고 싶은 저자가 있나요?

 

이거 실리면 선생님이 싫어하실 것 같은데, 포항공대에서 철학을 가르치시는 이진우 교수님과 작업해보고 싶어요. 지금 저한테 20만 부 이상 팔릴 만한 아이템이 있어요(웃음).

 

만들고 싶은 책은요?

 

편집자들을 모아서 공저로 쓴 책을 내보고 싶어요. 죽은 외국 저자들에게 소설을 개고해 달라는 편지를 10명 정도의 편집자가 모여서 쓰는 거예요. 예를 들어 스콧 피츠제럴드에게 ‘『위대한 개츠비』는 그렇게 쓰면 안 됩니다, 여성 캐릭터가 너무 축소되어 있습니다, 데이지를 살려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는 식으로요. 굉장히 깊이 있는 책 읽기에 관한 책이자 편집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 수 있는 책이 될 것 같아요.

 

최근 작업하고 있는 책은 어떤 내용인가요?

 

『1등의 통찰』이라는 책이고요, MIT 슬론 스쿨이라는 경영대학원에서 수십 년 동안 강의한 내용을 일본의 전략 컨설턴트가 재해석했어요. 정보과잉 사회에서는 현상만 보이고 본질이 안 보일 때가 많은데, 그 본질을 통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에요.

 

<채널예스>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 부탁드려요.

 

처음에 일할 때는 저도 모르게 독자를 무시했던 것 같아요.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서 뭐 이런 책을 읽나 하는 건방진 생각을 했었어요. 하지만 결국 별로인 책은 아무리 밀어도 반짝하고 죽잖아요. 투표할 때 민주주의가 균형을 잡는 것처럼 독자들은 좋은 책을 알아보고 오래 유지하는 걸 보면서 독자가 답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독자 분들이 리뷰든 뭐든 많이 이야기해 줬으면 좋겠어요. 책이 좋으면 왜 좋은지, 나쁘면 왜 나쁜지 활발히 이야기하면 독서 문화도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책 읽는 사람들이 더 잘난 척해서 나는 이런 책을 읽고 이런 책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하면 편집자도 더 많이 독자 이야기를 듣고 독자가 원하는 책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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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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