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한 사랑은 하지 말 것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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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객관성을 잃은 상태를 두고 사랑에 눈이 먼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쓴다. 하지만 사랑의 감각은 우리를 훨씬 더 예민하고 통찰력 있게 만들어준다. 몸이 닿는 친밀한 사이라면 몸으로 인지하게 되는 상대의 감정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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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tterstock

 

신기하게도 내 마음에 쏙 들어온 그 사람 앞에서 나는 항상 모자란 것 같다. 그 사람은 내게 너무나 과분하게 느껴진다. 어째서인지 그 사람이 나보다 더 나은 사람 같고, 처음에 느낀 것보다 더욱더 특별해지고 이상적이게 된다.
 
그런 이상화가 작동해야 호감이 사랑으로 바뀌게 된다. 그 사람이 돋보이고 굉장하다고 느껴야, 즉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쓰여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지나치게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잘 찾아내는 사람은 사랑에 빠지기 어렵다. 호감 단계에서도 사람들을 추려내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은 강력한 매력의 쓰나미를 맞지 않는다면 사랑의 단계까지 갈 수가 없다. 보통 사람들은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게 만들어줄 사랑을 애타게 찾고 있으며 사랑에 빠지려고 무던히도 노력을 한다. 기꺼이 조금의 장점이라도 더 크게 보고 평범한 것이라도 의미를 덧붙여 훌륭한 것으로 만들어낸다.
 
두 사람이 함께 공평하게 이상화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를 칭송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일방적으로 한 사람이 도취되어 만들어내는 이상은 그 사람의 자존감에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가뜩이나 자기애가 낮은 여성의 경우에는 사랑을 통해 삶을 겸손한 태도로 임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게 아니라 자기 비하와 자괴감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된다. 상대를 이상화하면서 덩달아 자신이 하고 있는 사랑을 유난스럽게 특별한 경험이라고 여기게 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자존감이 낮으면 낮을수록 이상화의 방식이 현실 수준을 뛰어 넘어 판타지 영역으로 상대를 몰고 들어간다. 상대를 제대로 볼 마음이 없게 된다. 자기가 원하는 모습만을 상대에서 보기 시작한다.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객관성을 잃은 상태를 두고 사랑에 눈이 먼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쓴다. 하지만 사랑의 감각은 우리를 훨씬 더 예민하고 통찰력 있게 만들어준다. 몸이 닿는 친밀한 사이라면 몸으로 인지하게 되는 상대의 감정은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정확하다. 그럼에도 진실을 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눈이 머는 쪽을 택한다. 아니 아예 눈을 뽑아버린다.
 
그 사람은 아주 근사하고 내가 하는 사랑이 특별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관계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협상과 협의는 로맨틱함을 훼손시킬 뿐이다. 그렇기에 상황을 개선시킬 의지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나만 모른 척 하면 되는 것이기에 시도하지 않는다. 그를 잃으면 다시 혼자가 될 테니까. 그를 잃고 혼자가 되는 것보단 그의 요구에 응하면서 내 사랑은 헌신적이고 특별하다고 믿으면서 둘인 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자기는 분명히 인지하고 있지만 무시했던 둘 사이의 진실이 증거처럼 제시되는 어떤 날은 불안해질 것이다. 그런 날은 자학하며 밤을 보낼 것이다. 그러다 다시 그 사실을 지우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자존감이 바르게 작동하지 않으면 내 남자에 대한 균형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연애를 엉망으로 만들고 스스로를 깎아 먹게 되는 이유는 대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금 상태가 최선이자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상 자체의 무결하고 완벽함에서 사랑의 특별함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의 의미가 쌓이면서 두 사람만의 특별함이 갖춰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해 관계가 어긋날 수도 있고, 극복하고 돈독해질 수 있는 것이다. 서로에게 격정적이면서도 해맑기만 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한 사람은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 것뿐이다. 그 고통의 자리는 언젠가 곪기 마련이고 견딜 수 없게 되는 날이 온다. 그때가 되면 관계가 끝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도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내 사랑을 이상화해서 높이 올라간 만큼 추락하는 길도 깊을 수밖에 없다.
 
나의 자존감이 허약할 때일수록 내가 하는 사랑에서 나의 가치를 찾으려 들고 그것이 특별하다고 믿고 싶어진다. 사랑이 나를 구원해줄 거라는 믿음도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다. 특별한 사랑을 하려면 나의 자존감이 튼튼해지는 것부터 우선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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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현정(칼럼니스트)

사랑하거나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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