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여자 정해진 공식은 없어

연애지침서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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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이렇다던데 여자는 이런다던데 라고 써둔 연애지침서를 읽고 그와 나에게 굴레를 씌울 필요는 없다. 너와 나 각자 개별적인 사람이 만나 그 특수한 점들을 공유하고 보듬어준다는 생각으로 연애를 임하는 것이 나를 부정하지 않고 나답게 연애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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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연애지침서를 읽고 있노라면 당최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끝까지 읽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남자는 어쩌고 여자는 어쩌고, 그렇게 크게 분류해서 설명하면 편리할 것이다. 인간을 네 가지 타입으로 분류하는 혈액형 성격학을 두고 비합리적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조차도 아주 쉽게 인간을 여자와 남자 둘로 나눠서 말하곤 한다. 문제는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라고 팔리는 연애지침서들은 모두 최선을 다해 남자를 변명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여자의 특성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들 중에는 나랑 맞지 않는 것이 많았다. 나 자신이나 남자를 이해하는데 도움 될 만한 내용이 없었다. 오히려 책 속에 묘사되고 있는 보통 여자와는 다르게 느끼고 반응하는 내가 잘못된 건가 싶었다. 그를 사로잡기 위해 여성다움을 한껏 살린 행동의 예시들은 어쩜 그토록 수동적인 것인가. 순종적이지 않은 기질을 가진 내가 어딘가 잘못되고 문제가 있는 건가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그 책에 나온 대로라면 나는 남자라는 생물에게 절대 사랑받을 수 없었다.
 
가장 납득하기 힘든 부분은 남자는 여자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말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직면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만의 동굴에 들어가 처박히는 걸 이해하라는 대목이었다. 어째서 여자는 그가 알아서 나올 때까지 괴롭더라도 그를 자극하지 않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가? 왜 그는 둘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실제로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성인 두 사람의 의사소통이 아니라 어린애와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어째서 자기 내면 상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남자다움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줘야 하는가. 그런 내용들이 적힌 연애지침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지는 게 아니라 피로감이 밀려왔다.
 
남자들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는 수준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해야 하며, 불만을 토로해야 할 때조차 그의 알량한 자존심에 상처내지 않는 방식으로 엄마가 아이를 우쭈쭈쭈 달래고 어르듯이 감싸줘야 하다니. 연애가 아니라 양육을 하란 소리였다. 그런 심리적 배려를 상호적으로 할 수 있도록 조언해주는 게 아니라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는 여자들에게 미래의 모성을 가져다 와서 연애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마치 모성이 여성이라면 타고난 기질이라는 듯이 말이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구분할 필요가 전혀 없는 영역까지 선을 그어놓고 여자가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 못하게 묶어 놓는다. 성적 욕망과 선택은 남자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듯이 여자는 욕망하지 않는 존재인 것처럼 박제시켜 두려고 한다. 여자의 능동성을 두려워하는 남자라면 연애도 섹스도 못하고 홀로 늙어버려야 할 텐데 그런 남자들이 손쉽게 연애하고 섹스할 수 있도록 조언하는 책들이라니.
 
더 나아가 여자만을 위한 연애지침서라며 기획되어 나온 책들은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다면 나쁜 여자가 되라고 강요한다. 더 많이 좋아하는 건 연애라는 게임에서 패배자가 될 뿐이라고 말한다. 관계의 지배자가 되어 권력을 휘두르고 싶다면 솔직한 마음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애타게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런 글을 읽을 때마다 내가 미련하고 영악스럽지 못한 것인지 짜증부터 치밀어 몰랐다. 어째서 내가 아닌 어떤 ‘척’을 해야 하는 거지? 무릎이 후들거리면서도 아닌 ‘척’ 하려는 삶을 추구하려고 싶지 않았다. 위악적이고 강하고 나쁜 ‘척’하는 것으로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조언하는 말을 우습게 여겨야 한다. 나답지 않은 모습으로 관계를 맺을수록 여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 의심은 항상 이것이다. ‘그가 진짜 내 모습을 알게 된다면 더 이상 날 사랑해주지 않을 거야.‘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사랑은 나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걸 감추고 사랑받기 위해 다른 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일은 아니다. 
 
남자는 이렇다던데 여자는 이런다던데 라고 써둔 연애지침서를 읽고 그와 나에게 굴레를 씌울 필요는 없다. 너와 나 각자 개별적인 사람이 만나 그 특수한 점들을 공유하고 보듬어준다는 생각으로 연애를 임하는 것이 나를 부정하지 않고 나답게 연애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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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현정(칼럼니스트)

사랑하거나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사랑만큼 서툴고 어려운』, 『나를 만져요』 등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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