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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이게 뭔지 까먹었어요

굿바이 스물아홉, 헬로우 서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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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이 되면 ‘포기’라는 단어에 익숙해진다. 각자 인생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한 가지씩을 포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도전’ 보다는 ‘안정’을 택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용돈 대신 월급이라는 걸 받아먹기 시작한 다음부터 '굿모닝~' 이게 뭔지 까먹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 나는 서로 해결해달라고 아우성치는 문제들에 직면했다. 큰 걸 볼 것인가 말 것인가, 머리를 감을 것인가 말 것인가? 재빨리 결정하는 것부터가 그 시작이다." - 영화 <싱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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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의 단체 카톡방 모습 (좌) 고등학교 동기 (우) 대학교 동기


스물아홉, 친구들과의 단체 카톡방에는 ‘굿모닝~’, ‘좋은 아침~’이라는 다정한 인사 대신 ‘잠을 자도 왜 이렇게 피로가 안 풀리냐?’, ‘헬요일 시작이구나’, ‘서른까지 카운트다운 30일’ 등의 투정이 오고 간다. 우린 26살을 기점으로 하나둘 취업의 문턱을 넘어 월급( 눈칫밥)을 받아먹고 있다. “오늘은 무슨 신나는 일이 일어날까?”라는 두근거림으로 대학생활을 했다면, 사회생활은 “오늘 하루도 무사히”라는 기도로 시작된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더 늦기 전에 돈을 모아서 1~2년 세계 여행을 가고 싶다. 근데 돌아왔을 때 직장은? 날 받아줄 곳이 있을까? 직장에 들어간다 해도 나보다 어린 친구가 선배면 어쩌지? 결혼은? 그때 친구들은 다 결혼했을 텐데 나만 홀로 노처녀 취준생이 되는 건가? 100세 시대에 ‘1년’도 내 마음대로 못하는 대한민국 사회가 싫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숨 쉴 틈을 주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서른이 된 내가 어떻게 ‘행복’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대한민국에서는 개인이 행복하기가 쉽지 않다. 나이대 별로 도달해야 하는 사회적 기준이 너무 강력해서 그렇다. 획일적인 사고방식만을 강요하는 주입식 교육의 희생양인 나는 거대한 톱니바퀴에서 이탈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스물아홉’을 위한 리스트들을 이뤄나가는 것이 목표인 바퀴족에 지나지 않는다.


1. 결혼
2. (1)을 위한 연애  
3. 안정적인 직장
4. 연봉 2500만원 이상(30대 여성 기준 평균, 2013년 국세통계)
5. 요가, 헬스, 골프 등 건강을 위한 취미생활
6. 1년에 1회 이상의 해외여행 
7. 명품 가방 및 유행 상품은 그때그때 소비
8. 보험과 청약저축 통장
9. 자기계발을 위한 스터디
10.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

 

예를 든다면 이런 것. 위 10가지 항목 중 최소 5개 이상은 충족되야 평범한 스물아홉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스물아홉에 ‘이 정도는 기본’이라 지당하신 말씀이다.  


29, 스물아홉은 참 부담스러운 나이다. 스물아홉은 결혼을 전제로 한 진지한 연애를 해야 하는 나이다. 안정적인 직장과 경제력(요즘 5천만원은 모아야 결혼을 한다는데)을 갖춰야 하는 나이고, 어른이라는 말을 들어야 하지만 결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나이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건 다 해봤다고 생각했는데 못 해본 것만 떠오르는, 흘러가는 청춘이 한없이 아쉬워지는 나이다.


스물아홉에 '스물'은 젊음과 청춘을 뜻하지만 '아홉'은 초조함을 대변한다. 아홉수로 인해 쉽게는 연애부터 어렵게는 이직이나 결혼까지 뭐 하나 제대로 하기에 겁나는 시기인 것이다. ‘안정’보다는 이루지 못한 꿈을 쫓아가고 싶은 열정과 젊음을 가진 나이지만 나와 내 친구들은 모두 겁쟁이가 되어 있다.


스물아홉이 되면 자연스레 ‘포기’라는 단어에 익숙해진다. 각자 인생에 있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한 가지씩을 포기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도전’ 보다는 ‘안정’을 택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똑같은 하와이에 왔다고 해도 그 과정이 중요한 거야. 어떤 펭귄은 자기 힘으로 바다를 건넜다면, 자기가 도착한 섬에 겨울이 와도 걱정하지 않아. 또 바다를 건너면 되니까. 하지만 누가 헬리콥터를 태워 줘서 하와이에 왔다면? 언제 또 누가 자기를 헬리콥터에 태워서 다시 남극으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할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톱나바퀴가 싫어 호주로 날아간 20대 여성의 이야기는 꽤나 심금을 울렸다.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로 이민 간 사정을 대화 형식으로 들려준다. 20대 후반의 계나는 종합금융회사 신용카드팀 승인실에서 꾸역꾸역 근무하던 중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출퇴근의 지옥철은 더더욱 참지 못한 나머지 사표를 제출한다. 학벌?재력?외모를 비롯해 자아실현에 대한 의지?출세에 대한 욕망 등 모든 부분에서 평균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이 이민이라는 모험을 통해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1인칭 수다 형식을 통해 생생하고 경쾌한 재미를 더했다.


“내가 여기서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그런 주제에 까다롭기는 또 더럽게 까다로워요. 직장은 통근 거리가 중요하다느니, 사는 곳 주변에 문화시설이 많으면 좋겠다느니, 하는 일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거면 좋겠다느니, 막 그런 걸 따져.” -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속도’를 지니고 태어난다. 계나처럼 혹은 나처럼 스물아홉의 시간도 개인마다 다르게 흘러간다. 내가 처음에 적은 1~10번 항목들은 사회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기준일 뿐. 아직 공부를 더하고 싶은 사람도, 직장을 버리고 배낭 여행이나 봉사 활동을 떠난 사람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꿈을 쫓는 스물아홉도 있다. 엉터리 잣대에 따라 누구는 박수받아야 하고, 누구는 비난받아야 하는가? 스물아홉에게 기대하는 사회적인 시선은 애초부터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난 저마다의 개인이 행복했으면 한다. 사회적 기준에서 본다면 나는 경쟁력 없는 인간이지만 내 스스로가 행복한 서른이 된다면 29살 크리스마스가 그렇게 슬프지는 않을 것 같다.


며칠 있으면 새해다. 나는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새끈한 차', '1등 신랑감 남자친구' 둘 중에 하나는 가질 줄 알았다. 지금 난, 여전히 뚜벅이며, 연하남 남자친구와 떡볶이 데이트를 하고 있다. 그럼 어때? 마흔 살쯤에는 뭔가 이루어지겠지 뭐, 아님 말고. 어쨌든 서른 살 이제 다시 시작이다. 파이팅! 파이팅!


“나난, 너는 꿈이 뭐야?”
“꿈이라. 27살 땐 얼른 과장이 되는 게 꿈이었고. 23살 땐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었고, 20살 땐 멋있는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었고. 19살 땐 대학에 붙기만 해도 소원이 없었다”
“그땐, 얼른 집 떠나는 게 소원이었지”
“우리 그 꿈은 이뤘네. 하하” - 영화 <싱글즈> 

 

 


추천책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저 | 민음사

『한국이 싫어서』는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로 이민 간 사정을 대화 형식으로 들려주는 소설이다. 학벌?재력?외모를 비롯해 자아실현에 대한 의지?출세에 대한 욕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평균 혹은 그 이하의 수준으로 살아가며 미래에 대한 비전을 꿈꾸지 못하는 주인공이 이민이라는 모험을 통해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가는 과정을 담았다. 특히 1인칭 수다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전개 방식은 20대 후반 여성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은 듯 생생하고 경쾌하게 전달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하야마 아마리 저/장은주 역 | 예담

살아갈 용기도, 죽을 용기도 없는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며 텔레비전 화면에 무심코 시선을 던진 그녀는, 눈앞에 펼쳐진 ‘너무도 아름다운 세계’에 전율을 느낀다. 그곳은 바로 라스베이거스! 난생처음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간절함과, 가슴 떨리는 설렘을 느낀 그녀는 스스로 1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한다. ‘스물아홉의 마지막 날, 라스베이거스에서 최고로 멋진 순간을 맛본 뒤에 죽는 거야. 내게 주어진 날들은 앞으로 1년이야.’ 그날부터 인생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돈을 벌기 위해 평소라면 생각도 못한 다양한 직업을 종횡무진하며 죽을힘을 다해 질주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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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박지애

감상의 폭에 따라 삶의 질이 좌우된다고 믿는다.
감동한다는 건 곧,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증거다.
아이스타일24 웹진 <스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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