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대하여
늘 하는 고민이지만 굳이 또 글로 써본다
사실 누구도 확신은 없다. 그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잘하는 일 중에서 해야 하는, 해야 할 것 같은 일을 주로 택할 뿐. 하고 싶은 일은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을 벌려면 해야 하는 일을 해야만, 그것도 잘해야만 한다.
사례 1.
대학에서 국문을 전공하고 보니 취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자기소개서를 봐달라는 부탁이 가끔 들어온다. 최근에 들어온 부탁은 해 놓은 일이 없다고 생각해 자기소개서를 쓰는 데서부터 막막해진 사람이었다(편의상 A라고 하자). A의 인생을 화려하게 고쳐주기 위해 좋은 예시가 되어줄 다른 글을 뒤적거리다가 필자가 예스24에 취직할 때 쓴 자기소개서를 봤다. 차마 눈 뜨고 못 볼 글이었다. 너 자신을 알라……. 속으로 하는 탄식과 함께 감히 남의 인생 소개를 고칠 용기가 없어져서 맞춤법만 조금 고쳐 주었다. 왜 그 업종을 하고 싶은지, 그 부서에 필요한 특성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는 뻔하고 도움 안 되는 조언과 함께.
사례 2.
최근에 어머니 친구분의 따님이 수능이 끝났다고, 대학에 들어가기 전 할 수 있는 활동이나 일이 뭐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친구는 B라고 하자.
"B는 뭘 하고 싶다고 하는데요?"
"B야 놀고 싶다고 하지. 근데 그냥 놀기만 하면 어떡해. 앞으로 슬슬 어떻게 먹고살지 준비해야지."
라고 했다. '그냥 놀면 어떡하느냐'니. 대학 이후에도 경쟁이 계속된다는 사실은 누차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의 한 고비였을 시험을 끝낸 친구의 노는 시간을 지지해주지 못한다니. B도 B의 어머님도 만족할만한 대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았다.
왜 이 일을 하고 싶나요? 뻔한 질문에는 뻔한 대답이 돌아온다. 주로 안정과 삶의 균형과 전망성 등을 얘기하지만 사실 누구도 확신은 없다. 그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잘하는 일 중에서 해야 하는, 해야 할 것 같은 일을 주로 택할 뿐. 하고 싶은 일은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을 벌려면 해야 하는 일을 해야만, 그것도 잘해야만 한다. 삼위일체처럼 돌아가는 밥벌이의 무한궤도를 따라가다 정신을 차려보면 전혀 생각지 않은 직종이나 회사명으로 자신을 소개하며 돈을 벌고, 또 돈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피곤은 덤으로 온다. 단순히 오래 일하는 탓이 크지만, 마음이 허한 만큼 몸이 마음에 맞춰가느라 여기저기가 부식되는 느낌. 이 불균형을 맞춰보려 혹자는 자본주의에 발맞춰 쇼핑을 하고, 때로는 돈이 되지 않는 취미에 몸을 맡긴다.
밥벌이와 취미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일, 혹은 재미있는 일을 한다고 해서 마냥 행복하지도 않다. 친구들이 모이면 원하는 회사에 들어간 사람들은 앞다투어 자기 상사가 얼마나 말이 안 통하는지, 자기 회사가 얼마나 비전이 없으며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만나자마자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하는 와중에, 그 반대로는 재미있는 일들이라 추켜세워지는 일이 얼마나 돈을 못 버는지, 수입이 일정치 않아서 불안한지 말을 할 수 없어 침묵한다. 몇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일을 하느라 모임에 못 나온다.
여차저차 다들 일은 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 혹은 일을 좋아하기 위해 아등바등 산다. 알량하게 위로해주는 미생의 한 마디에 눈물을 쏙 빼가며. 회사는 돈 벌려고 다니는 거라고 쿨한 척하지만 누가 봐주지도 않는 야근을 스스로 청하며. 어떻게 좀 더 맞는 일이 없을까, 보람 있는 일이 없을까 다른 곳을 기웃거리기도 하며.
아무리 그래도 사무실에 임시완 같이 생긴 직원이 있으려고. 출처 : tvN
현실에서 일은 '그저 돈벌이'도 아니고, '감히 돈벌이'도 아니다. 사람은 다층적 존재이며 현실의 삶에는 수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일에도 여러 결이 존재한다. (중략) 어쩌면 일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은 문제를 정교하게 구성하는 작업일지 모른다. 일을 그저 돈벌이라고, 혹은 사회적 헌신이라고, 혹은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뭉뚱그린다면 우리가 머릿속에 그리는 일은 늘 현실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환상일 것이다. 덜컹거리는 현실에서 그나마 최선으로 일하려면 일을 이루는 수많은 결을 하나하나 발라내 균형을 맞춰가지 않으면 안 된다.
- 제현주,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88쪽
결국, A가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완벽한 자기소개서와 B의 어머님이 원하는 전망 있는 미래를 위한 준비방법은 끝까지 해결해주지 못했다. 자신도 어디로 갈지 몰라서 갈지자로 커리어를 그리고 있는 마당에 무슨 도움이 될 조언이 있겠나. 할 수 있는 건 이미 많이 고민한 사람의 책을 추천해주고 동시대의 밥벌이를 같이 견뎌내는 것뿐. 그나마도 요새는 워낙 세상의 버전이 빨리 바뀌어서 언제까지나 이 안내서가 유효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일하면서 알아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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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 (총9권) 완간 박스세트
윤태호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만화가 아닌 인생 교과서’, ‘직장생활의 교본’, ‘샐러리맨 만화의 진리’ 등으로 불리며 대한민국을 ‘미생 신드롬’에 빠뜨린 『미생 - 아직 살아 있지 못한 자』 완간 세트가 출간되었다. 열한 살에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가 프로기사만을 목표로 살아가던 청년 장그래가 입단에 실패하고 ‘회사’라는 전혀 새로운 ‘판’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만화 『미생』은 취업준비생과 신입사원에게는 직장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매너리즘에 빠져 관성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대리, 과장에게는 자신의 일에 대한 긍지를 안겨주었으며, 미래를 꿈꾸기보다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 많아졌던 차장, 부장의 가슴을 새롭게 뛰게 해주었다.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제현주 저 | 어크로스
우리 시대 일의 의미를 화두로 협동조합 롤링다이스 활동을 비롯한 다채로운 실험을 계속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새로운 일의 윤리와 행복한 일하기의 새로운 조건을 구성하고자 시도한다. 내리막 세상에서 끊임없이 ‘내 인생의 일’을 찾아 헤매는 우리 시대 노마드들의 욕망과 좌절을 그려내며, 일한다는 것의 의미를 근본부터 재규정해나간다. 일과 우리의 정체성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인문학적으로 성찰하고, ‘좋아하는 일’, ‘가슴 뛰는 일’을 하라는 사회의 주문들을 비판적으로 돌아보며, 일과 관련한 다양한 욕망을 조화롭게 해소할 방법들을 현실적으로 모색한다. 우리 시대 일하기를 다각도로 성찰한 저자의 사유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다르게 일하며 살아갈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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