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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말과 말 사이의 빈 공간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와 배우 한석규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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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화나 인터뷰라는 형식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대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에 대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수잔 손탁의 말대로 글쓰기는 혼자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마음속에 어떤 목소리를 끊임없이 떠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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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JTBC <뉴스룸>

 

 

세 번째 문제. 인터뷰로 하는 대화

 

(문제)
아나운서 손석희 씨가 진행하는 JTBC <뉴스룸>에는 문화인이 출연해 이야기를 나누는 꼭지가 있다. 다음은 배우 한석규 씨가 출연했을 때의 대화다. 빈칸에 잘 어울리는 대화는?

 

손석희: 이런 표현을 해서 미안합니다만, ‘나도 점차 구닥다리가 되어간다는 듯한 불안감’ 같은 걸 배우로서 느끼지는 않습니까?
한석규: 아닙니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배우의 좋은 점을 거창하게 말씀드린다면, 나이 먹는 걸 기다리는 직업이 배우입니다. 저는 젊었을 때는 그런 생각 안해봤어요. 나이를 조금씩 먹었을 때 배우라는 게 정말 좋구나 하는 점 중에 하나가 60이 되어서 70이 되어서 제가 하고 싶은 역할, 그때를 기다리는 그 즐거움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게 있어요.
손석희 : 조금 이해가 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례지만 해 바뀌면 몇 되십니까?
한석규 : (웃음) 제가 이제 만 50 됐습니다. 하하하, 선배님은 몇 되셨어요?
손석희 : (        문제            )


1) 제 질문을 잘 이해를 못하신 것 같은데요.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2) 저는 노 코멘트 하겠습니다.
3) 아직 멀었습니다. 저 따라오시려면.
4) 저는 만으로 60 됐습니다.
5) 시간이 없어서요. 마지막 질문 하겠습니다.

 

(문제 해설)
한때는 좋은 인터뷰어가 되는 게 꿈이었던 적이 있었다. 사람에 대한 기사를 쓰는 게 너무 힘들고 막막해서, 입만 열면 멍청한 질문만 내뱉는 내가 너무 보기 싫어서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잡지사에 다닐 때였고,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해야 했다. 인터뷰를 한다는 건 설레는 일이기도 하고 무서운 일이기도 했다. 두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을 알 수 있을까? 몇 마디 나눠보고 그 사람에 대한 기사를 쓸 수 있을까? 그런 고민으로 밤잠을 설치던 때가 있었다.

 

좋은 인터뷰어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인터뷰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에 대한 답부터 찾아야 했다. 과연 노력하면 될 수 있는 일인가? 나도 질문의 고수들처럼 상대방의 허를 찌를 수 있을까. 사자후 토하듯 다양한 물음의 파편들을 내뱉을 수 있을까. 과연 그런 날이 올까. 세월이 흘러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그런 날은 과연 오지 않았다.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누군가를 인터뷰할 때면 탈색약을 뿌린 듯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인터뷰에는 별다른 재능이 없는 것 같아서 다른 사람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이러니저러니 평가내리는 건 좋아한다. ‘아, 이건 인터뷰어가 인터뷰이한테 잡아먹혔네. 아니지, 이건 이렇게 쓰는 게 아니지. 속았네, 속았어.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빼먹은 것 같은데?’ 중얼거리면서 인터뷰하는 두 사람의 옆자리에 슬그머니 앉는다. 인터뷰를 직접 하지만 않으면 세상에 그보다 재미있는 형식의 글이 없다. 껄끄러운 질문으로 공격하는 인터뷰어, 재치로 빠져나가는 인터뷰이, 그러나 다시 발목을 잡는 인터뷰어, 정면 돌파하다가 잘못된 길로 빠져드는 인터뷰이…, 힘의 균형이 어느 쪽으로 무너지는지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잔 손탁은 자신의 책 『수잔 손탁의 말』에서 ‘인터뷰라는 형식을 좋아한다’면서 이렇게 적었다.

 

“대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문답을 좋아하기 때문에 인터뷰를 좋아하는 거죠. 그리고 내 사고의 상당 부분이 대화의 소산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어떤 면에선 글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혼자 해야 하고 그래서 나 자신과의 대화를 꾸며내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이건 본질적으로 자연스럽지 못한 활동이거든요. 저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은둔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대화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낼 기회를 주죠. 관객은 추상이기 때문에 관객의 생각을 알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누구든 개인의 생각은 당연히 알고 싶은데, 그건 일대일로 만나야만 가능한 일이죠."

 

내가 대화나 인터뷰라는 형식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대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다. 소설을 쓰고 있기 때문에 대화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수잔 손탁의 말대로 글쓰기는 혼자 하는 일이기 때문에 마음속에 어떤 목소리를 끊임없이 떠올려야 한다. 그게 소설 속 주인공일 때도 있고, 소설을 평가하는 객관적인 평론가가 될 때도 있다. 주변에서 만나는 소설가들이 가끔 미친 것처럼 보이거나 지나치게 멍청해 보일 때가 있을 것이다. 분열증 환자처럼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그게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길에서 우연히 소설가를 만나면 안쓰러운 마음으로 등을 토닥여주시길 부탁드린다.

 

자, 이제 문제로 돌아가보자. 손석희 아나운서만큼 인터뷰를 잘하는 사람을 (백지연 씨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보지 못했다. 손석희 씨의 인터뷰를 보면서 놀라는 점은 대화의 템포를 늘 주도한다는 것이다. 질문을 하다보면 상대방의 말없음에 당황할 수도 있고, 상대방의 말 많음에 질릴 수도 있는데 손석희 씨는 언제나 대화의 템포를 조율한다. 나는 그게 말과 말 사이의 빈 공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손석희 씨가 하는 인터뷰에는 답변과 질문 사이에 빈 공간이 많다. 상대방이 답변을 모두 끝냈는데도 손석희 씨는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엇, 질문이 다 떨어져서 당황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말을 꺼내지 않는다. 보는 사람이 그 긴장감을 느낀다면, 인터뷰이도 당연히 그 긴장감을 느낄 것이다. ‘방금 내가 한 말이 불편했나?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다음에는 어떤 질문을 하려고 저러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터뷰 중에 생긴 미묘한 긴장감은 말의 수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빈 공간이나 짧은 탄식, 몸의 동작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빈 공간 다음에 꺼내는 질문들은 한층 더 날카롭게 느껴지고 정확하게 들린다.

 

손석희 씨의 인터뷰가 주는 긴장감에는 진지함과 유머의 낙차도 큰 몫을 한다.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말투, 태어나서 한번도 박장대소를 하지 않았을 것 같은 미소, 단호함을 상징하는 것 같은 얇은 안경테의 손석희 씨가 의외의 유머를 구사할 때 보는 사람도, 인터뷰이도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유머 자체의 완성도도 높지만 손석희 씨가 자아내는 웃음은 긴장이 풀어질 때의 한숨과도 비슷할 때가 많다. 자, 그럼 유머의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보자.

 

보기 1)은 손석희 씨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대사다. <100분 토론>에서 저 말을 들을 때 얼마나 살 떨렸던지….  보기 4)는 의외로 강력한 유머가 될 수도 있다. 최강 동안 손석희 씨의 입에서 “저는 만으로 60 됐습니다.”라는 말이 흘러나오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고,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나. 보기 5) 역시 <100분 토론>을 패러디한 예시다. 상황을 급박하게 종료하려는 마음과 자신의 나이는 절대 공개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엿보인다. 가장 적절한 유머를 구사한 3)이 답이 될 수밖에 없겠다.

 

나 역시 한석규 씨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스무 살 때는 50이라는 나이를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조금씩 상상할 수 있다. 아니, 상상이 아니라 바로 코 앞에 있다. (“네, 저는 만으로 44 됐습니다.”) 배우라는 직업을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소설가 역시 앞으로의 나이가 궁금해지는 직업이다. (창작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앞으로의 나이가 궁금해지는 게 아닐까?) 서른 살에 쓴 내 소설과 마흔네 살에 쓴 내 소설은 무척 다르다. 패기는 줄어들었지만 여유는 늘어났다. 형식적인 실험은 줄어들었지만 소설의 내용으로 하는 실험은 늘어나고 있다. 문장은 짧아졌고, 사람들의 대화는 부드러워졌다. 앞으로 나는 어떤 소설을 쓸 수 있을까. 힘들고 막막하지만 앞으로 내가 쓸 소설이 기대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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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tvN <삼시세끼>

 

며칠 전에는 차승원 씨와 유해진 씨가 출연하는 <삼시세끼 어촌편 2>에서 나이 이야기가 나왔다. 비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두 사람은 배우 송강호 씨의 이야기를 꺼낸다. “관상의 마지막 장면에서 바다를 바라보잖아. 그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회한과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잖아, 진짜, 그런 게 나오더라, 우와.”라고 차승원 씨가 이야기를 꺼내자 유해진 씨가 대답한다. “배우로서도 나이를 참 잘 먹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응.” 두 사람은 늙어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차승원 : 나이를 잘 들어야 돼.
유해진 : 그래, 이게 진짜 잘 늙는다는 게 힘들어.
차승원 : 잘 늙는다는 건, 하는 일도 분명해야 되고, 경제적으로도 윤택해야 되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아야 되고, 참 여러 가지 복합적으로 되어야 절충이 돼야 사람들이 보기에도 멋있게 늙는구나 되지. 하나만 핀트가 나가도.
유해진 : 그게 참 힘든 얘기야.
차승원 : 우리는 잘 버텼어, 그래 잘 버틴 거지.
유해진 : 그럼, 잘 버텼지.
차승원 : 행복한 거야, 이거 진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나와 비슷한 또래라 더욱 그랬을 테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게 어떤 건지 실감이 났다. 나이만 잘 먹으면 글 같은 건 어찌 되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나이를 잘 먹어야만 글이 좋아지는 것은 아닐까. 『무한화서』에서 읽었던 이성복 시인의 문장이 생각난다.

 

좋은 글은 내가 쓰는 게 아니라, 나를 통해 인생이 쓰는 거예요. 그냥 한 마디 툭 던지는 것 같은데, 그 안에 인생 전체가 다 들어 있어요.

 

과연 그런 것일까. 좀더 시간을 버텨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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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중혁(소설가)

소설 쓰고 산문도 쓰고 칼럼도 쓴다. 『스마일』, 『좀비들』, 『미스터 모노레일』,『뭐라도 되겠지』, 『메이드 인 공장』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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