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김중혁 “픽션이 너와 함께하기를”
<월간 채널예스> 2015년 8월호 커버 스토리 단편소설집 『가짜 팔로 하는 포옹』펴내
김중혁 스타일로 해석된 ‘연애’는 「상황과 비율」, 「픽포켓」, 「종이 위의 욕조」, 「힘과 가속도의 법칙」, 「요요」 등의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김중혁은 책 속 ‘작가의 말’에 이번 단편소설집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의 이름을 적으며 “이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재밌게 쓰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진심 어린 작가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소설가는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감독
“내 첫 번째 연애소설이에요.” 김중혁 작가가 편집자에게 농담처럼 건넨 한 마디가 책의 카피가 되어 세상에 나왔다. 김중혁 작가의 네 번째 단편소설집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이야기다. 작가는 대뜸 “독자들에게 항의가 많이 들어올 거예요”라고 말했다. 응당 있을 것 같다. 소설가 김중혁이 쓴 연애는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는 사랑하는 ‘연애(戀愛)’의 범주를 뛰어 넘은 세계에 있다.
“지금은 되게 심란해요. 사실 가장 좋은 건, 글을 쓰고 있을 때예요. 제일 행복한 순간은 소설이 3분의 1쯤 진행됐을 때고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상상할 때, 그 때가 되게 좋아요. 소설을 끝내고 책이 나올 즈음이 되면, 굳이 책을 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고 마음이 복잡해지죠.”
그러니까 이 인터뷰는 김중혁 작가의 심란한 속내가 드러날 이야기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 예약 판매 중인 상태에서 진행된 인터뷰였으니, 완성된 소설을 읽은 독자는 출판사 편집자와 작가 본인, 그리고 필자가 전부였다. “말은 자책하게 되는데 글은 절대 자책하지는 않는다”는 김중혁 작가는 이 인터뷰를 읽고 “내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자책하고 있을지 모른다. 처음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녹음하고서는 “내가 저런 멍청한 이야기를 했나?” 싶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김중혁에게 소설은 더 귀한 물성이다. 소설은 온전히 작가가 모든 걸 창조한다. 캐스팅부터 자료조사, 분장, 연출, 촬영, 편집까지. 책에도 엔딩 크레딧이 있다면 작가의 직업은 꽤나 많아질 것이다. 작가의 말마따나 “소설가는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감독”이다.
“소설을 쓰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쓴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농담처럼 ‘연애소설’이란 이야기를 했는데,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잘되고 있는 연애 말고, 연애를 막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 막 끝내고 난 상황의 이야기, 즉 연애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김중혁 스타일로 해석된 ‘연애’는 「상황과 비율」, 「픽포켓」, 「종이 위의 욕조」, 「힘과 가속도의 법칙」, 「요요」 등의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김중혁은 책 속 ‘작가의 말’에 이번 단편소설집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의 이름을 적으며 “이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재밌게 쓰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진심 어린 작가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을 쓸 때 어떤 특정한 주인공이 주로 떠오르지만, 그 주인공이 있으려면 더 많은 사람들을 상상해야 하거든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그 모든 사람들을 다 생각을 하면서, 상상을 하면서 소설을 썼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다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책장을 열면 나오는 작가 소개에는 김중혁 작가가 지금까지 쓴 모든 단편의 제목을 적었다. 출생, 학력 등은 찾아볼 수 없다. “소설책이 표지부터 마지막 장까지, 하나의 완결된 세계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이 반영됐다. 소설집 제목 『가짜 팔로 하는 포옹』 역시, 책에 수록된 단편소설의 제목이다. “한 번만 안아주고 가라”는 남자의 말에 “지금까지 마신 건 내가 계산하고 갈게”라고 답하는 여자, 두 사람의 이야기다. 줄곧 대사와 장면이 반복되는, 해설 없는 시나리오 같은 작품이다.
“머릿속으로 연극 무대를 상상하면서 쓴 소설이에요. 두 명의 남녀가 술집에 앉아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는 상황을 떠올렸어요. 문득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 되게 슬프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가짜 팔’이라서 슬프게도 들리지만, 가짜 팔로라도 포옹한다는 것 자체가 희망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두 사람이 포옹을 했어야 했나? 가짜 팔로라도 해야 하나? 둘이서 어떤 마음일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작가들이 말 잘해도 이상하지
김중혁 작가가 애당초 소설집 제목으로 생각했던 작품 「요요」는 ‘제13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이미 수상작품집의 제목이 됐다. 시계를 만드는 남자의 인생을 그린 이 소설은 단편이지만 굉장히 긴 시간을 다룬다. 주인공은 한 여자를 사랑했지만 현실의 것들을 버리지 못해 먼 곳에 있는 여자에게 가지 못한다. 김중혁 작가는 “정말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소설인데, 쓰다 보니 남녀가 사랑하는 얘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요요」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한 컷 한 컷 보여주는, 그런 시각적인 기분으로 쓰고 싶었던 작품이었어요. 짧은 소설에서 긴 시간을 표현해야 할 때는 어떻게 장면을 건너뛰는 게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썼어요. 당시 수제시계를 제작하는 회사를 취재하면서 시계 조립과 관련된 책을 읽기도 했거든요. 소설을 쓰다 보면 그런 낯선 책들도 읽게 돼요.”
「요요」의 주인공 차선재는 아픈 아버지를 병간호하느라 베를린에 있는 수영에게 가지 못하는데, 그 와중에 시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병원만 왔다갔다하는 환경 속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아픈 아버지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사실을 찜찜해 하는 인물이다. 소설가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기쁨과 슬픔 속에 빠져 있다가도 문득 이야깃거리를 떠올리는 게 작가의 운명이다.
“온전히 슬픔이나 기쁨을 느낄 때가 있지만, 거기에서 조금 빠져나갔을 때는 정말 내가 관심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조금만 그 감정에서 물러나 있으면, 이 감정이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를 떠올리는 게 작가의 직업병이 아닐까, 생각해요. 사람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에요. 다툴 때는 화나 나서 싸우는데, 상황이 좀 지나고 나면 내가 왜 이랬지? 왜 화를 냈지? 그 배경이나 상황을 생각하게 돼요. 직업병일 수도 있지만 작가로서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쨌든 모든 걸 관찰하고 들여다보면서 이해하려는 시도를 계속한다는 점이에요. 그냥 무감각하게 무덤덤하게 무심하게 받아들이는 것보다, 아주 작은 거라도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게 소설가의 운명이라면 말이에요.”
다섯 번째로 실려 있는 단편 「종이 위의 욕조」에는 큐레이터와 방송기자의 대화가 그려진다. 큐레이터인 용철은 미술작가와 인터뷰를 마친 기자에게 묻는다. “(그 작가) 말 잘 못하죠?” 기자는 답한다. “작가들이 말 잘해도 이상하지.” 용철은 대꾸한다. “인터뷰 내용 들어보니 전부 뜬구름 잡는 소리던데?” 기자는 “사람들은 구름 좋아해. 뭉실뭉실하니까”라고 답한다. 김중혁 작가에게도 똑같이 물었다. “지금 우리도 뜬구름 아닌가요?”
“뜬구름 위에서 비가 내리죠. 뜬구름이 겉으로 아름다워 보일 뿐 아니라 실제로 우리에게 비를 내리고 휴식을 제공하는 것처럼, 예술도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가끔은 뜬구름이라서 스스로가 하찮게 보이고 필요 없이 보일 때도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려도 많이 노력해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게 허무맹랑해 보이고 무의미해 보일 때가 많지만, 삶을 너무 타이트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김중혁 작가는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을 펴내며 독자 사은품으로 보틀을 만들었다. ‘중혁 보틀’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물병에는 “픽션이 너와 함께하기를(May the fiction be with you)”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대사 “May the force be with you”를 패러디했다. 독자들은 물병에 물을 담으며 어떤 생각을 할까. “소설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릴지라도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저 | 문학동네
숫자로 치자면 네번째 소설집이고, 그의 입을 빌리자면 첫번째 연애소설집이다. 대놓고 연애라니, 그렇다면 주요한 테마를 ‘사랑’으로 잡았다는 얘기인데 세상 그 어떤 소설이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고서 쓰일 수 있겠냐마는 그럼에도 ‘김중혁이 이야기하는 남과 여’는 보다 특별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총 여덟 편의 소설이 실린 이번 작품집에서 그는 그만의 장기인 빠른 읽힘의 힘을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다. 일부러 쉬어가라는 듯 찍어둔 잦은 쉼표 사이사이 그만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은 여전히 젊다. 특유의 재치도 양껏 잘 녹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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