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서유미의 한 몸의 시간
너를 만나기 하루 전
See you tomorrow!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을 보며 드디어 내일이네, 내일이면 만나겠네, 라는 말을 여러 번 주고받았다. 내일이라는 시간은 금세 들이닥칠 것처럼 가깝기도 하고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방을 챙겼다.
수술하기로 진작 마음을 굳혔는데도, 그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자연분만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날짜를 정해두었기 때문에 병원에 가져가야 할 가방과 조리원에 가져갈 트렁크를 미리, 차분하게 준비해둘 수 있다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원래 넘치게 챙기기보다 늘 뭔가를 빠뜨리는 식으로 부족하게 챙기는 편이라 필요한 걸 꼼꼼하게 체크했다.
비장한 기분이 들 법한 날이지만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식당에 가서 옆 사람과 브런치를 먹고 근처 공원에 자리를 폈다. 평일 낮이라 잔디밭이 한산했다. 펴놓은 돗자리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해바라기를 실컷 했다.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을 보며 드디어 내일이네, 내일이면 만나겠네, 라는 말을 여러 번 주고받았다. 내일이라는 시간은 금세 들이닥칠 것처럼 가깝기도 하고 영영 오지 않을 것처럼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해가 기울 무렵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차린 건 없지만 병원 가기 전에 밥을 해 먹이고 싶다는 얘기였다. 동생들도 일찍 퇴근해서 들어올 거라고 했다.
- 북적북적하게 있다가 밥 먹고 가서 푹 자. 그럼 내일이 될 거야.
엄마는 내가 긴장하거나 무서워할까봐 걱정했다.
동생들과 나란히 앉아 〈무한도전〉 한 회분을 낄낄거리며 보았다. 엄마가 만든 반찬과 뜨끈한 밥을 든든하게 먹었다. 평소에도 마음껏 먹었지만 더욱 마음껏 먹었다. 동생들이 배에 손을 얹으며 축복아, 내일 만나자, 하고 인사했다.
집에 돌아와 며칠 전까지 퇴고를 하던 장편소설의 원고 파일을 열었다. 조금만 더 보자, 한번만 더 보자, 하며 붙들고 있던 건데 이제 보내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당분간 교정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말과 내일 아이를 낳으러 간다는 소식을 함께 전했다.
새벽까지 잠들지 못할 것 같았는데 메일의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자 나른한 잠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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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