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는 냄새로 엄마를 각인한다

초물리적 인연의 끈으로 연결된 환상의 짝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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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는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 있으니까 처음 본 로렌츠를 따라가서 각인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뇌를 제대로 발달시키기 위해 누워 있어야 하는 인간 아기는 엄마에게 어떻게 각인할까? 생후 3∼4개월이 지나야 시각이나 청각으로 엄마를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는데 말이다.



아기는 냄새로 엄마를 각인한다

오리는 태어나자마자 걸을 수 있으니까 처음 본 로렌츠를 따라가서 각인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뇌를 제대로 발달시키기 위해 누워 있어야 하는 인간 아기는 엄마에게 어떻게 각인할까? 생후 3∼4개월이 지나야 시각이나 청각으로 엄마를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는데 말이다. 걸을 수 없는 아기가 엄마에게 각인하는 비밀은 바로 엄마 냄새이다.

냄새는 기억을 부르고, 기억을 해야 판단을 할 수 있다. 냄새는 두 눈 사이의 후각세포를 통과한 뒤 감각의 중계소인 시상과 편도체를 거친다. 그 다음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앞머리 부분의 안와전두엽에 이른다. 냄새를 지각하면 편도체와 해마에서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정서 경험을 회상하고 최종적으로 전두엽에서 통합적인 판단을 한다.

이렇게 중요한 냄새를 받아들이는 후각은 다른 어떤 감각보다 빨리 뇌에 전달된다. 시각 세포는 각막의 보호를 받고 청각 세포는 고막의 보호를 받지만 후각은 받아들이는 그 즉시 전달된다. 후각은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감각으로, 347가지의 감각 뉴런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테리아도 냄새로 독과 영양소를 구별할 만큼 후각은 생명체의 원시 감각이다. 감각과 지각, 운동과 기술, 사고력, 상상력, 언어능력 등을 통합하는 고도의 기능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이 발달한 인간은 후각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약한 듯이 느껴지지만, 후각은 여전히 숨 쉬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기는 생각한다.

‘이 냄새는 엄마 거네. 아, 좋다. 이제 안심해도 되니 슬슬 일을 해볼까? 안심하고 젖을 먹어도 되고 손발을 움직여도 되겠구나. 오늘은 한 번 뒤집어볼까? 뒤집어도 안전했으니까 그 다음엔 뭘 해볼까. 마음껏 놀아야지.’

냄새는 곧 지금 이곳이 안전하다는 신호가 된다. 안전해야 밥을 먹고 안전해야 응가를 볼 것이며 안전해야 책을 읽고 문명을 만들어낸다. 그 안전감의 토대가 되는 것이 바로 냄새와 온도이다. 성인이 된 우리는 부모님의 온도와 냄새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엄마 배 속 일정한 온도의 양수 속에서 보호받던 아이는 태어난 후에도 엄마 냄새와 일정한 온도를 통해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계속 가져야 한다. 인간의 탄생은 태어난 뒤에도 3년 정도 더 계속되기 때문이다.

나비 애벌레가 번데기로 지내는 기간 동안 충분히 보호받아야 허물을 벗고 예쁜 나비가 되듯, 일정 기간 동안 엄마의 냄새를 맡으며 안락한 환경에서 보호받는 것은 인간이 되기 위한 필수 과정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아이들의 번데기 과정을 무시하고 있다. 그 결과 번데기로 지내는 동안 엄마 냄새를 충분히 맡지 못해 사랑 결핍증에 걸린 괴물 나비들이 자라고 있다. 말끝마다 욕을 하고, 라디오 전선줄로 친구의 목을 묶어 바닥에 떨어진 과자를 주워 먹으라고 협박하고선 장난이었다고 한다. 벽에 머리를 박으며 자신을 해치기도 한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부모가 없기에 세상에 어른도, 선생님도 없다. 그 때문에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꾸짖는 할아버지를 계단에서 밀어버린다.

누가 이런 괴물 나비를 낳고, 만들었을까? 절대로 태어날 때부터 괴물인 아이는 없었다. 우리 어른들이 만들었을 뿐이다. 충분한 사랑의 시간을 주지 않은 채 그들의 껍데기를 함부로, 다급하게 벗겨냈기 때문이다. 신나게 하늘을 날고 꽃가루를 나르며 친구 나비를 사귀고 꿀을 빨아 먹으며 재생산을 해야 하는 나비의 일생을 딱 나비가 되는 순간까지로 규정해 가혹하게 내몰았기 때문이다. 나비가 되어 즐겁고 행복하게 살라고 하지 않고 오직 나비만 되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대학만 진학하면 나비이다. 그 나비가 몇 개월 후 정신적 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날개를 접더라도 말이다.




초물리적 인연의 끈으로 연결된 환상의 짝꿍

갓난아기가 잠을 설쳐 울고 있는데 고양이가 앞발로 아기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재우는 동영상을 본 적 있다. 결정적인 시기에 고양이에게 각인된 아이는 엄마보다 고양이를 더 잘 따를 것이고, 담요에 각인되었다면 엄마보다 담요를 더 자주 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할머니에게 각인된 아이는 잠재적으로 엄마보다 할머니 말을 더 잘 듣는다.

물론 할머니에게라도 각인이 잘되면, 대한민국 젊은 엄마들이 꿈꾸는 목표에 도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이 언제나 우리 바람대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A형 볼트는 A형 너트에 끼워야 하는데 다른 너트에 끼우면 틈이 생긴다. 처음에는 조그맣지만 갈수록 그 틈이 커져서 나중에는 자기가 B형 볼트라고 우기거나(반항하기 시작한다) 자기는 A형 볼트이지만 B형 너트에 맞다고 우긴다(엄마는 계모라고 우기다가 결국 가출한다). 그러니 아이는 내가 잘 봐줄 테니 너는 애 키운다고 집에 퍼질러 앉아 있지 말고 남편 옆에서 수발 잘하고 돈이나 열심히 벌라는 시어머니의 간곡한 만류는 결과적으로 패가망신의 시초가 되는 셈이다. 결정적인 시기에 할머니에게 각인된 아이는 이후 엄마 곁에 왔을 때 그 냄새가 낯설어 다가가지 못한다. 엄마도 이상하게 정이 가지 않는다. 때마침 둘째를 낳아 엄마가 집에 들어앉으면 둘째에게는 첫째보다 훨씬 더 애정을 갖게 된다. 엄마는 그래도 둘째의 마음을 얻었지만 첫째는 무엇을 얻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이유 없이 동생과 비교 당한다.

상황을 바꿔보자. 첫째 아이는 엄마가 키웠는데 둘째를 떼어놓았다. 엄마에게는 첫째라도 남았지만 둘째는 결핍감 때문에 평생 피해 의식을 갖고 살아간다. 엄마가 아이들을 모두 할머니 손에 맡겼다면? 엄마는 돈 말고는 남는 것이 없으며 아이들은 서로에게 “왜 태어났니”하며 노래를 불러준다. 가정 잔혹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여기저기에서 온갖 비난의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느낀다.
첫 번째 화살이 꽂힌다.

‘여자들은 평생 애만 보면서 집안일이나 하라는 것이냐?’

무슨 말씀, 여자도 바깥일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낮에 미친 듯이 열심히 일하고 저녁만큼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이와 같이 보내야 한다. 물론 아빠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두 번째 화살이 꽂힌다.

‘부모 없는 아이는 그럼 죽으란 말이냐?’

불행하게도 친부모가 이 세상에 없다면 아기는 말끔하게 그 냄새를 정리하고 자기가 적응해야 할 새로운 사람의 냄새를 정한다. 동물적 본능으로 세상에 없는 냄새는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예기치 않은 사고로 자식을 먼저 보내고 손주를 키우는 할머님, 할아버님은 절대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부모가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는데도 눈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아이는 그 냄새를 찾기 위해 평생을 허비한다. 갓난아기 때 입양된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친부모를 찾는 이유이다. 일단 찾아서 냄새를 맡아보고 나서야 이 냄새를 계속 맡을 것인지 용서할 것인가, 버릴 것인지 다음 단계를 결정한다.

1년 365일 일정한 36.5도의 엄마 냄새를 항상 제공하는 것.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며 특히 3세 미만 아기에게는 생명을 키워내는 산소 같은 조건이다. 엄마와 아기는 엄마 배 속에서부터 끈끈한 인연으로 맺어진 환상의 짝꿍이다. 짝꿍 냄새를 충분히 맡아야 아기는 배 속에 있을 때처럼 느긋하고 안정되게 발달해나간다. 엄마는 출산만 끝나면 빨리 다른 짝꿍의 팔짱을 끼고 나가 맥주라도 한잔 하고 싶지만 엄마와 아기의 짝꿍 계약 기간은 유감스럽게도 최소 3년이다. 그리고 이 계약의 갑은 유감스럽게도 아이다. 그런 불공평하고 일방적인, 내가 사인도 하지 않은 계약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어깨를 한 번 올렸다 내리며 그것은 조물주에게 물어보라고, 당신도 엄마를 을로 만들어 긴 시간 힘들게 했다고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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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시간 엄마 냄새 이현수 저 | 김영사
세상의 모든 엄마가 가진 놀라운 능력 ‘엄마 냄새’가 아이의 인생에 기적을 만든다. 엄마 몸속에서 100%의 한 몸으로 살던 아이는 낯선 세상에서 엄마 냄새로 안정을 찾는다. 가장 원시적 감각으로 찾아가는 안전의 신호이자 생명의 필요조건, 엄마 냄새의 본질은 무엇일까? 수많은 아이들에게 제2의 탄생을 선물한 임상심리전문가 이현수 박사가 고려대학병원에서의 20년 연구와 경험으로 완성한 양육의 333법칙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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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현수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 석사와 박사 학위, 임상심리전문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20년 동안 고대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심리검사 및 상담을 하였으며 현재 힐링심리학 아카데미 원장을 맡고 있다. 고려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임상심리학, 정신병리학, 신경심리학, 스트레스대처 기법 등을 강의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부모교육 훈련을 하고 있다. 직접 만든 학습진로검사가 현재 많은 기관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기억검사, 노인우울검사, 스트레스검사를 국내표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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