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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하디드, 말하다

건축가 가상 인터뷰 동대문디자인플라자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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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반듯한 바둑판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에요

안녕하세요.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설계한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예요. 한국의 최모 소장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제 디자인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 같아서 간단히 설명이라도 드릴 겸 이렇게 나오게 됐네요. 제 원래 이름은 자하 모함마드 하디드랍니다. 그런데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건축가 이름에 모함마드가 붙으면 좀 그렇잖아요. 종교적인 냄새도 나고, 그러다 꽉 막힌 기독교 쪽 애들이 일거리를 안 주면 큰일 날 테니까요. 그러니 그냥 편하게 자하라고 부르세요. 이름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비행기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시간이 날 때면 가끔 제 이름을 ‘자 하하 디드’로 바꿔보며 킥킥대곤 한답니다. 이름 중간에 하하 하고 웃음소리가 나잖아요. 이름에서 웃음소리가 나다니, 멋진 아이디어 아닌가요? 호호, 후후, 헤헤, 히히……. 웃음소리에도 종류가 참 많은데 만일 제 이름이 ‘자 호호 디드’ ‘자 히히 디드’였다면 얼마나 웃겼겠어요. 특히 호호라니, 한겨울 포장마차에서 어묵 먹는 것 같잖아요. 그러니 ‘하하’라는 긍정적이면서도 대범해 보이는 웃음소리가 중간에 들어간 이름은 참 괜찮은 것 같아요. 실은 이렇게라도 매사에 긍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중이랍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작품을 보고 주위에서 수군거리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성격 버리겠더라고요. 훗. 웃으면서 살아야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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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개인적으로 섹시한 선들을 좋아해요. 특별한 요청이 없는 한 휘휘 돌아가면서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선을 그리다 보면 짜릿한 기분에 날 새는 줄도 모른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설계한 건물은 시공하기 어렵다고들 하네요. 어서 좋은 시공기술이 개발돼서 세계 여기저기에 제가 디자인한 건물들이 쑥쑥 올라가야 할 텐데 말이죠.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제가 디자인한 DDP를 두고 말들이 많다면서요? 저번에 한국에 갔을 때도 인터뷰하는 기자나 건축가 들이 DDP가 주변에 안 어울린다느니,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느니 하며 저를 죄인 취급하더라고요. 기가 막혀서. 마음에 안 들면 처음부터 뽑지나 말든지. 왜 뽑아놓고 난리들인지 모르겠어요. 중간에 디자인을 바꾼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리고 5,000억이요? 세계를 향한 디자인 창조산업의 발신지가 되려면 그 정도는 써야 뭐라도 나오는 거 아닌가요? 실은 좀 더 쓰고 싶었는데 참았어요. 그 바람에 정말 중요한 부분을 놓쳤어요. 조금만 더 썼더라면 대단한 걸 해볼 수 있었는데. (씩씩) 어머, 제가 좀 흥분했나 봐요. 웃으면서 살아야 하는데. 하하.

 

기존 역사 환경이나 주변과 안 어울린다는 지적에도 할 말이 많아요.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그 자리에 야구장이 있었다고. 그리고 그 밑에는 한양 성곽이 지나가고 조선 시대 군사시설 하도감下都監이 있었다고. 어쩌면 제 생각에는 더 밑으로 가면 공룡 화석이 있을지도 모르고 좀 더 밑으로 들어가면 지구 탄생의 비밀이 숨겨져 있는 지질층이 나올지도 모르고 더 밑에는 또 뭔가 있겠죠. 그러니까 한번 봐요. 물론 모든 시대는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어요. 그렇다고 모든 지층을 살릴 수도 없잖아요.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것들이 뭔지, 거기에 따라 가감이 필요한 거죠. 그러니 이렇게 물어야 하지 않겠어요? 야구장이 뭐가 중요해?


저는 야구를 안 봐서 잘 모르겠는데 누가 공을 던지면 방망이를 휘두르고 나서 냅다 뛰는 거 아닌가요? 그리고 그 공을 잡겠다고 멍하니 서 있는 사람들을 보세요. 그들이 공이 안 올 때는 무슨 생각하나 궁금해요. 참 웃긴 운동이에요. 결국 한 바퀴 돌고 나면 제자리로 오잖아요. 정말 웃긴 건 바로 이거예요. 다시 제자리로 올 걸 왜 그렇게 열심히 뛰나 모르겠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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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장소의 특성도 반영하고 나름 신경을 안 쓴 건 아니에요. 옆에 보세요. 야구장에 있던 스포트라이트가 벌떡 서 있잖아요. 제가 다 부순 건 아니라니까요. 돌아다니다 보면 아레나 분위기도 나고 그렇잖아요. 그리고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는데 사실 까놓고 말해서, 조화를 이룰 만한 주변 건물이 뭐 변변히 있기나 한가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건물이 우주선처럼 보인다더군요. 근데 좋은 뜻으로 말하는 건지 비웃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네요. 실은 저도 거기까지는 생각 못 했는데 다시 보니 우주선 같기도 하더군요. 뭐 해석은 자유니까 우주선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어요. 그런데 다들 우주선을 본 적이 있기는 한가요? 근데 왜 우주선이 저렇게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실제로 이제껏 인류가 날린 우주선은 사인펜처럼 둥근 몸통에 머리가 뾰족한 것뿐이었는데. 저렇게 우아한 곡선을 가진 우주선을 대체 어디서 본 거죠? 혹시 외계인들이 타고 다니는 UFO를 말하는 건가요? 하지만 이건 꼭 알아두셔야 해요. 저는 지구인을 위해 설계하는 지구인 건축가랍니다.

 

어떤 분들은 동선이 혼란스럽다고 하더군요, 최 소장님도 구불구불, 뱅글뱅글 돌다가 옥상까지 올라가셨나 보네요. 일반인들이라 면 그럴 수도 있다고 이해하지만 건축가가 길을 잃다니 실망이네요. 하지만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해보세요. 구불구불 돌다 나도 모르게 도착한 공간. “아, 2층으로 가야 되는데 3층에 왔네. 다시 내려가야 하나? 그런데 가만 있자, 저기 무슨 전시가 열린 거지? 오호 자하 하디드 전展이구나, 층을 헤매지 않았더라면 좋은 전시를 놓쳤을 텐데. 2층, 3층이 헷갈리니 정말 좋군. 앞으로 종종 길을 잃어야지”라고 할 수도 있죠. 그리고 벤야민 씨던가요? 가끔 도시에서 길을 잃고서야 보석 같은 공간을 만난다고 했죠. 참 대단하신 분이에요. 100년 전에 이미 제 건물을 이해하고 있었으니 말이에요. 그분이 살아 계셨더라면 DDP에 초대했을 텐데.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그만…….


DDP의 복잡한 동선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어요. 우주선 동선은 원래 좀 혼란스러워요.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죠. 그리고 지났으니 하는 말인데, 실은 순간 이동 텔레포테이션 기능을 넣고 싶었어요. 비용 때문에 못했지만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정말 중요한 기능인데 얼마나 돈이 많이 들어가는지 아느냐고 공무원 분들이 보채는 바람에 할 수 없었죠. 그 기능만 들어갔어도 완벽했을 텐데. 지금 생각하면 후회막심이네요. 길을 잃을 것 같으면 휴대폰에 연결된 순간 이동 앱을 열고 이렇게 문자를 넣는 거죠. ‘나를 5번 전시실로 데려다 줘’라고. 그러면 바로 휙 하고 5번 전시실로 이동할 수 있거든요. 이때 오타가 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해요. ‘나’를 ‘너’라고 치면 옆 사람이 별안간 사라질지도 몰라요. 아무튼 이런 기능을 생각하고 디자인을 하다 보니 길이 좀 아리송하게 되었네요. 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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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너무 커 보인다고 투덜대는 분들도 계시던데, 그런 분들에게는 에펠탑 얘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에펠탑이 파리에 처음 지어졌을 때 얼마나 말들이 많았는지 아시죠? 드가니, 모파상이니 졸라니 하는 양반들이 파리의 수치라느니 천박하다느니 하며 떠들어댔잖아요. 하지만 지금 보세요. 짱이잖아요. 에펠탑 없는 파리를 상상이나 할 수 있겠어요? 그러니 지금의 관점에서 크다느니, 콘텍스트가 없다느니 하는 얘기는 꺼내지 마세요. 그건 앞으로 이 건물을 쓸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세요. 그리고 더는 질문하지 마세요. 했던 말 또 하기 싫어요. 그냥 느끼세요.

 

마지막으로 이런 얘기를 들려드리고 싶네요. 인생은 반듯한 바둑판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에요. 이 얘기는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얘기인데요, 실은 하도 인터뷰를 많이 해서 어떤 기자에게 얘기한 건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기사가 났으니 제가 했던 말이라고 해두죠. 바둑을 아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몰라요. 하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고 성공할 때가 있으면 실패할 때가 있고 오르막 뒤에 내리막이 있는 게 인생이잖아요.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때로는 휘두르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인생이라는 건 알아요. 인생이란 어딘가를 향해 직선을 그으면서 가는 게 아니잖아요. 예측 불가능하다고요. 노래도 있잖아요. ‘인생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야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어머, 죄송해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제가 디자인하는 비정형 건축은 이렇게 알 수 없는 인생, 오르락내리락 하는 인생,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 인생을 담느라 그런 거예요. 자연 경관을 생각해봐요. 그중에 균일하거나 규칙적인 게 있나요? 있다고요? 시끄럽고요. 제 건축은 한마디로 인생을 담고 있어요. 그러니 인생을 모르는 자 제 건축을 논하지 마세요. 저를 손가락질하는 전 세계 건축가들에게 마지막으로 물어보고 싶어요. 니들이 인생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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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건축 만담차현호,최준석 공저 | 아트북스
『서울 건축 만담』은 쫄깃하고 시원한 치맥처럼 십 수 년의 인연을 이어온 두 건축가가 퇴근 후 사람 사는 냄새가 눅진하게 배인 치킨 집에서 맥주 한잔에 그날 걷고 보고 재구성한 서울의 일상을 풀어놓은 건축 에세이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변잡기 에세이를 빙자한 건축과 도시 이야기’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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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차현호

서울 건축 만담

<차현호>,<최준석> 공저17,100원(5% + 2%)

건축인 듯 건축 아닌 건축 이야기 두 남자가 걷고 보고 재구성한 서울의 일상 독서가로도 유명한 미국의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책을 인간의 생활과 사상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식으로 규정했다. 비슷한 의미로 건축 역시 사람과 시대상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이자 척도가 된다. 건축은 늘 우리의 복잡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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