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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대교, 도시가 사람을 위로한다

마포대교 마포구-영등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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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대교에 갔다.

마포대교에 갔다. 출판사와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게 해보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나눈 뒤, 그럼 계약이나 하고서……, 라는 말을 꺼냈다가 일이 커졌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닦긴 닦아야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디서부터 첫 글을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오더라.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디 그렇게 만만한가. 그러던 어느 날,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라는 짧은 광고를 보고 눈물이 찔끔 났다. 마포대교가 생명의 다리로 다시 태어났단다. 그래, 요즘은 힐링이 대세지. 그럼 여기서부터 시작해볼까. 며칠 뒤, 어스름한 새벽녘에 나는 마포대교를 찾았다.


밤거리. 차도를 등지고 강을 바라본다. 등 뒤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차량 한 무리가 쏜살같이 질주한다. 그럴 때마다 거친 바람이 등을 민다. 속도에 대한 거리낌이 없어지는 시간. 내 앞으로는 검은 어둠이 짙게 내려앉아 있다. 저 멀리 띄엄띄엄 불 켜진 SIFC빌딩, 63빌딩 그리고 일군의 아파트 불빛들이 두터워진 어둠을 힘겹게 붙잡고 있다. 발밑으로 노랗거나 붉은 불빛에 언뜻언뜻 드러나는 시커먼 한강이 몸을 비비며 흘러간다.

 

인근 지하철도 끊긴 새벽에 마포대교에 오려고 택시를 탔다.


“아저씨, 마포대교 건너다가 중간쯤에 내려주세요.”

 

연재1_마포대교.jpg


택시 기사분이 이상하다는 듯 백미러로 흘끗 나를 바라본다. 며칠간 야근을 한 덕에 수염도 못 깎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내 얼굴을 보고 저 인간 혹시 살다 지쳐 딴마음 품은 게 아닐까 의심하는 눈초리다. 몰골은 이래도 내 눈빛은 살아 있을 텐데. 슬쩍 백미러를 보니 영락없이 죽은 생선 눈빛이다.


“이 밤에 거긴 왜 가요”

“볼 게 있어서요.”

말을 하면서도 한밤중에 한강 다리에 볼일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싶었다.

“아저씨, 죽으러 가는 거 아니니까 가다 내려주세요.”
“다리 위에서는 못 서요.”
“그럼 다리 시작하는 데 내려주세요.”

 

뭐 이런 말이 오갈 줄 알았는데 택시 기사는 마포대교에 데려다 달라는 말에 아무런 대꾸도 없이 차를 몰아 다리 시작점에 잠시 멈춰 서곤 이내 바쁘게 사라졌다. 아저씨나 나나 밤일하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나만큼이나 피곤한 게지.

 

인터넷에서 본 「자살의 다리 마포대교가 생명의 다리로 다시 태어나다」라는 기사에 따르면, 생명의 다리는 한강 다리 중 자살률 1위인 마포대교를 남단과 북단 양방향 시작 지점에서 각각 두 개씩, 총 네 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20여 개의 에피소드를 담아 구성했다고 한다. 각 구간에는 센서가 설치된 조명등이 보행자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데, 거기에는 일상과 생명의 소중함, 희망 그리고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글귀가 적혀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한다. 동작에 반응하는 빛이라니, 야근 끝나고 찾아가면 제격인, 심야 답사에 적절한 장소이다.


『삼저주의』의 공동 저자인 미우라 아쓰시는 『성인을 위한 도쿄 가이드 북』이라는 책도 냈다는데, 늦게까지 일하는 직장인을 위한 야간 답사 장소를 묶어보면 그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제목은 ‘야근하는 성인을 위한 서울 안내서’. 목차는 밤 ‘9시에 일이 끝난 이를 위한 코스’부터 ‘10시, 11시에 끝난 사람들을 위한 코스’, 마지막에는‘철야 코스’를 두면 좋겠다.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여의도에서 시작하는 다리를 따라 걸었다. 기사에 나온 대로 움직임에 반응하는 난간이 내게 말을 건넸다.

 

난간: 밥은 먹었니?
나: (질문을 하니 대답을 할 수밖에) 응, 야식도 먹었어.
난간: 힘들지
나: 알면서.
난간: 3년 전에 힘들었던 게 잘 기억 안 나지
나: 3년 전이면 2010년. 기억 잘 난다. 서울시 용역 하느라 아주 죽는
줄 알았어.
난간: 다 그런 거지 뭐.
나: (잠시 침묵) 그렇긴 뭐가 그래. (울컥)

 

마포대교는 제일기획에서 제작한 광고를 통해 생명의 다리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알고 보면 태생부터가 생명의 다리다. 마포대교는1970년 5월 16일, 서울대교라는 이름으로 준공된 한강에 놓인 다섯 번째 다리다.


서울대교가 놓일 당시 서울 변방의 한갓진 섬이었던 여의도는 개발을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1968년 밤섬을 폭파하고 110일간의 혈투 끝에 여의도를 둘러싸는 7.6킬로미터의 윤중제가 완공되었다. 여름이면 홍수로 몸살을 앓던 한강인지라 여의도 개발에 앞서 제방을 쌓는 일은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윤중제가 완공되고 매립 공사가 시작되었다고 여의도 개발을 위한 준비가 모두 갖춰진 것은 아니었다. 실질적인 개발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의도는 섬이지 않은가. 섬에 가려면 다리가 필요했다. 당시 서울의 중심이 강북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마포와 여의도를 연결하는 다리가 필수적이었고, 이 다리는 여의도에 실질적인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해야 했다. 이것이 서울대교가 생명의 다리가 된 연유다.


1970년 5월 16일 서울대교가 완공되던 날, 주요 일간지는 박정희 전前대통령 내외와 삼부 요인 등 주요 인사 다수가 참석한 교량 준공식이 거행되었으며 이날 개통식에 모여든 1만여 마포구민은 대통령의 시주가 끝나자 통악대를 앞세우고 다리로 몰려들어 난간을 만져보는 등 잔치 분위기에 휩싸였다고 전했다.


이렇게 태어난 마포대교는 4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 지하철 여의나루역에서 5분 거리라는 접근성 때문인지 한강 다리 중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죽음의 다리로 변모했다. 2012년 모생명보험회사가 ‘생명의 다리’라는 이름으로 기획한 광고에는 이런 내레이션과 인터뷰 장면이 나온다.

 

한강 다리 투신 1,090명(2003~2011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통계)

 그중 투신자수 1위, 마포대교(2003~11 188건, 전체 중 17.2%)
“마포대교 생명을 지켜라”
질문: 다리에서 투신하는 사람들을 막는 방법은
행인1: 난간을 좀 높게 해가지고 그래가지고 사람들이 올라가기 힘들게…….
행인2: 해가 지면 출입을 못 하게 하는 게 낫지 않아요
행인3: 안전망을 설치하는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을 막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되돌리고 싶었습니다. 불빛, 그것이 아이디어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어지는 장면들에서는 제작과정도 나오고 불빛의 문구들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그것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제법 감동적으로 설명된다. 생명을 구하는 빛이라니, 꽤 괜찮은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다. 모 생명보험 회사 홈페이지에는 이 광고가 작년 프랑스 칸 국제광고제 아홉 개 부분에서 상을 수상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인터넷 기사에는 생명의 다리 설치 후 투신률이 85퍼센트나 줄었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생명의 다리 설치 후 오히려 투신률이 높아졌다는 기사를 냈으나, 서울시는 이전까지 목격?119 신고에 의존하던 것이 생명의 다리 설치 후 생명의 전화 신고, CCTV 영상 감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집계되어 마치 투신자 수가 증가한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며, 실제 투신자 수는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대단하다. 2003년에서 2011년이면 대략 9년. 그동안 188명이 뛰어내렸으니 연간 20명이다. 거기서 85퍼센트가 줄었으니 17을 빼면 이제는 단 3명!


그럼 생명의 다리가 우리나라 전체 자살률을 줄이는 데 얼마나 기여했을까?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에서 2010년 한 해 1만5,566명(통계청)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고 한다. 거기서 17명을 빼면 1만5,549명이다. 좀 줄어든 것 같은가?


2013년 현재 우리나라는 여전히 OECD 자살률 1위, 자살 증가율도 1위, 청소년 자살도 1위다. 사실 마포대교 투신자 수는 우리나라 전체 자살자를 기준으로 보면 미미한 수준이다. 단지 공공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극단적인 행동이라 사회적으로 논쟁거리가 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숫자의 감소라는 측면으로만 보고 미진하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나는 도시가 새로운 개념으로 읽힐 수 있는 가능성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힐링’의 도시, 이런 개념 말이다. 비만이 심각한 문제가 되는 미국에서 뉴욕 시가 ‘살이 빠지는 도시diet city’를 만들어야 한다는 화두를 던진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보행도시 개념도 마찬가지다1970~80년대 개발과 차량의 빠른 이동이 패러다임을 지배하고 있을 때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육교로, 지하로 힘들게 이동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이 걷기 편해야 좋은 도시라는 생각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40여 년 전 여의도 개발을 위해 태어난 다리가 사람을 살리는 힐링의 다리로 변했다는 사실은 이제껏 도시가 사람을 위로해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 (특히 나 같은 건축?도시 전공자들에게) 새로운 상상을 하게 한다. 망친 시험으로 속상할 때, 연인과 헤어져 우울할 때, 누군가를 떠나보냈을 때, 도시가 이들을 다독이고 위로해줄 수 있다면, 서울은 한강 르네상스 같은 사업 없이도 멋진 도시가 되지 않을까? 물론 그런 장소를 만들기 전에 계획자들이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자살률 85퍼센트의 감소보다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 사람들이 ‘밥은 먹었니’라는 단순한 위로조차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겠지만.

 

 

* 이 글은 『서울 건축 만담』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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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건축 만담차현호,최준석 공저 | 아트북스
『서울 건축 만담』은 쫄깃하고 시원한 치맥처럼 십 수 년의 인연을 이어온 두 건축가가 퇴근 후 사람 사는 냄새가 눅진하게 배인 치킨 집에서 맥주 한잔에 그날 걷고 보고 재구성한 서울의 일상을 풀어놓은 건축 에세이다.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신변잡기 에세이를 빙자한 건축과 도시 이야기’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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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차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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