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홍준호의 구식이 아니라 클래식
아름답다, 아름다워 김경만 감독의 <미국의 바람과 불>
우리는 어떻게 걱정을 그만두고 미국을 사랑하게 되었나
이 작품은 미국을 향한 대한민국의 의존의 역사이기도 하면서, 위정자들이 벌이는 의존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통령들은 적극적으로 미국에게 가서 인정받으려 애썼거나 혹은 그들에게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결론은 어떠냐고? 전부 이 ‘아름다운 나라’의 손아귀로부터 빠져 나오지 못했다.
“미군이 떠나가면 나라가 불행합니다. 미군이 떠나가면 경제가 흔들립니다. 미군이 떠나가면 사회에 혼란이 옵니다. 우리는 우방 미국과 더불어 함께 살기를 원합니다. 아멘.”
2011년에 제작된 김경만 감독의 다큐멘터리인 <미국의 바람과 불>에서 한 구국기도회 현장을 보며 묘한 웃음이 나왔다. 기도회를 여는 목회자라면 지극히 신앙적인 태도와 시선으로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당 종교에 걸맞는 방식으로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작품 속의 목회자는 무조건 말한다. 미국이 없으면 우리 나라는 불행해 진다고.
문득 작품의 도입부와 결말부가 떠올랐다. 작품은 두 지점에서 6.25 전쟁 당시 미군 폭격기가 가열차게 한국의 민가를 향해 폭탄을 떨어뜨리는 쇼트를 삽입한다. 저들이 뿌린 폭탄 위로 몇 명의 '북괴'가 희생됐을까. 1950년부터 3년동안 이어진 수많은 폭격 속에는 미국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전승의 그림자 뒤에는 폐허가 된 세상이 있다. 그러나 다 잊었다는 듯 한국은 6.25 ‘전승’ 60주년 퍼레이드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저런 순간들을 거대한 물량을 들여 재현을 했을까? 아니. <미국의 바람과 불>은 시대 별로 실제 찍어뒀던 공보부의 아카이브를 뒤져 기록 필름들을 골라내고, 배치한 작품이다. 어떤 나레이션도 없으며, 찍혀진 기록 필름에 개입하는 컴퓨터 그래픽도 존재하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소개되는 영상들은 모두 엄연한 현실이다. 오직 상영시간 1시간 52분동안 정권을 잡은 이들의 연대기 순의 실질적인 흑백과 컬러 기록만이 나열되는 셈이다. 살면서 이런 기록을 볼 일 자체가 별로 없다는 이유로 작품이 우리의 관심권에 들 수는 있다. 하지만 작품을 감상하고 나면 단순히 기록물을 본다는 것을 넘어, 뭐랄까... 이상한 잔상이 마음 속에 남는다..
<미국의 바람과 불>에선 사실 이야기가 길게 써지지 않는다. 단순히 보자면 공보영상물의 나열이며, 해당 영상 속 인물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나 간단한 주석조차도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기록 필름의 나레이터 마저도 특유의 목소리로 거의 대부분 언급하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대통령' 이다. 주변 인물들까지 전부 다 상세하게 알고 있다면, 아마 이 리뷰를 좀 더 재미나게 풀어내지 않았을까 싶은데.. (여기서 이렇게 근현대사에 대한 내 무지가 드러나는가 보다.) 그러나 여기에 관해선 나름대로 억울하게 변명을 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한국사회에서 대부분의 정권은 근현대사를 제대로 된 방식으로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 이와 더불어 민주정권을 제외한 나머지 정권들은 통치 기간에 비해 국가 기록물을 터무니 없이 적게 남겨놨다. 그나마 그 국가기록조차 거의 대부분이 대통령을 향해 집중되어 있는 편이다. 위정자들이 대통령이라는 더한 위정자에 묻어가려는 속셈도 있었겠지만, 생각해보면 90년대가 도래하기 전의 시대는 그랬었다. 그 때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시대이지 않았던가.
이것이 김경만 감독에게 베어 그릴스가 되게끔 만드는 좋은 영양분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 작품을 제외하고서 내가 본 그의 작품은 2008년작 단편 극영화인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뿐이다. 그러나 그 작품을 포함하여, 보지는 못했지만 감독 데뷔작인 다큐멘터리 <각하의 만수무강>을 비롯해 <하지 말아야 할 것들>, <학습된 두려움과 과대망상> 등에서 <미국의 바람과 불>의 원형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작품들 모두에서 기록 필름들이 이용되고 있으며 또 해당 시기의 대통령의 모습들도 주의 깊게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조롱하는 태도라는데, 최소한 내가 본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조롱을 냉소와 포복절도가 공존하는 코미디로 전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호박이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는 않지
감독의 이전 작품들과 연관지어 생각해볼 때, <미국의 바람과 불>은 미국을 향한 대한민국의 의존, 혹은 위정자들이 의존해 온 역사로 읽힐 수 있다. 한국의 대통령들은 적극적으로 미국에게 가서 인정받으려 애썼거나 혹은 그들에게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결론은 어떻냐고? 전부 이 ‘아름다운 나라’의 손아귀로부터 빠져 나오지 못했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작품은 기록 필름을 더 이상 내보내지 않은 채 직접 포착한 화면들을 통해 한국사회의 여러 단면들을 보여준다. 작품 초반부에 등장하던 구국기도회는 어느새 상암 주경기장을 빌려 수많은 신도들을 더하다 못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까지 동원해 연설을 하는 수준이 됐으며, 한국어조차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가르친다고 ‘영어마을’ 이라는 유령도시도 떡하니 만들어져 있다.
* 사실 영어마을의 건설은 이미 과거부터 예견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바람과 불>을 보다 보면 기록 필름 중에서도 프로파간다 성이 짙어 보이는 것들을 많이 보게 된다. 압권은 전두환, 노태우 등의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탈취했던 1980년의 미스 유니버시아드 대회 기록 필름에서다. 당시 미국의 한 유명 가수가 대회 출전자들과 함께 ‘한글을 배우는 노래’를 부른다. 이후 미국과 한국 중 서로의 언어를 많이 배운 쪽이 누군지를 생각해보면 이는 참 우스꽝스러운 서비스였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어느 한 쪽에게는 여전히 잘 통하는 서비스 방식이다. *
이 정도까지 가면 묘하게 웃기고 어째 좀 무섭다. 6.25 전쟁 때 생사고락을 같이 했다고 한들, 이 정도까지의 정성은 어째 좀 과하지 않나? 물론 작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냥 과거 기록 필름들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이 작품으로 하여금 일견 모호하고 확실한 주관이 없어 보인다는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신기하게도 뭔지 모를 낯부끄러움이 계속 남는다. 이 정도까지 왔으면 더 이상 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더 이상 민족적인 정서로만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이전에 한국에서 이미 자본주의는 시작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독재를 하든 하지 않았든. 그러니까 권력을 누리기 위해서건, 혹은 정말 국가발전을 위해 힘을 쓰기 위해서건, 남한의 위정자들은 미국과 그들의 종교, 그리고 문화에 의지해야 했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자본주의의 최상위층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나라가 굳건할 때 공산주의가 붕괴했고, 이젠 국민 모두가 미국의 일부가 되고자 꿈꾼다. 그들처럼 생각하고 배우면 나도 무엇보다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다들 아시겠지만 굳이 미국에 대입하지 않아도 그렇게 삶이 흘러가지는 않지.
소수의 그들처럼 우리도 열을 올린다. 우리도 그들처럼 행동하고 노력하면 미국이라는 자본주의의 최상위 지점에 오르거나 호형호제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에 매달린다. 이것은 분명 한국의 현재이며,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환영하거나 영어마을을 열심히 오고 가는 모습, 혹은 미국 가수에게 한국말을 시키는 프로파간다를 만드는 모습은 분명 한국의 과거였다. 이걸 보며 묘한 이물감을 느낄지, 아니면 뜨거운 우애라고 느낄지에 따라서 김경만 감독의 <미국의 바람과 불>은 가장 대비되는 담론을 펼칠 수 있는 작품이 된다. 얼핏 보면 애매해 보일 수 있는 작품이 가장 폭발력 있는 뇌관을 가진 작품이 되는 셈이다. 여러모로 이 작품은 문제작이다.
p.s. - <미국의 바람과 불>을 감상하면서 예전에 들은 재미있는 말이 하나 떠올랐다. 그건 바로 컬러 TV가 일찍 도입될 수 있었는데, 박정희 정권 쪽에서 일부러 막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사진으로 예를 들자면, 흑백으로 찍힌 게 컬러가 되는 순간 흑백 특유의 깊이감과 신비함이 사라져 버리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 자신의 신비감을 나타내기 위해 목소리를 거의 공개하지 않는 권력자들도 있듯, 비슷한 경우이지 않겠나 하는 게 이유였다.
물론 당시 한국에서 컬러 현상을 시도할 때 풍요로운 색을 얻기 힘들었다는 기술적 후진성과 비싼 가격대가 주된 원인이었겠지만, 유독 한국에서 흑백 기록 필름을 70년대 넘어서까지 많이 활용했으니, 아마 저런 의도도 있지 않았겠나 싶다. 실제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러 온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모습은 흔치 않게 컬러로 찍혀 있는데, 거기서 그의 모습이 흑백에 비해 어째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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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에서 전혀 유명하지 않은)파워블로거, 대학졸업생, 딴지일보 필진, 채널 예스에서 글 쓰는 사람. 혼자 작품을 보러 다니길 좋아하고 또 그런 처지라서 코너 이름을 저렇게 붙였다. 굳이 ‘리뷰’ 라고 쓰면 될 걸 뭐하러 ‘크리티끄’ 라고 했냐 물으신다면, 저리 해놓으면 좀 고상하게 보여서 사람들이 더 읽어주지 않을까 싶어서다. 이거 보시는 분들 글 마음에 드시면 청탁하세요. 열과 성을 다해 써서 바칠께요. * //sega32x.blog.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