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최민석의 영사기(映思記)
다시 시작한다는 것의 의미 <비긴 어게인>
생은 매일의 시작과 끝을 반복하는 것
영화를 보는 중간 즈음, 나는 생각했다. 해고를 당한 댄이 다시 앨범을 제작하기에 제목이 <비긴 어게인>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 확실히 알았다. 그는 극장 커튼이 올라간 후에, 추락한 예전의 자리로 돌아가 ‘또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걸.
여름 내내 무기력의 바다에서 허우적 거렸다. 글은 거의 쓸 수 없었고, 그 탓에 정신은 찌뿌둥했다(이 글을 쓰는 데도, 하루가 꼬박 걸렸다). 이런 표현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운동선수가 몸을 전혀 쓸 수 없으면 느끼는 갑갑함을 작가도 느낀다. 물론, 작가의 경우엔 글을 쓰지 못할 때다. 이때, 머릿 속은 표출되지 못한 생각더미들이 쓰레기처럼 쌓여가고, 가슴엔 해소되지 못한 감정들이 부랑자처럼 뻗어 있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된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걸까?’ 따져보니, 지난한 일상이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었다. 해가 뜨면 눈을 뜬다. 그리고 나는 일을 한다. 이 단순한 반복의 흐름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내가 일을 한다고 해서 보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보상으로 인해 내 일상이 별반 달라지진 않는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받는 일상을 매일 반복하는 셈이다. 누구의 표현에 의하면 작가는 ‘고용과 실직의 무한한 반복 상태’에 놓여 있는 존재다. 물론, 출근을 하라고 재촉하는 이도, 정시 퇴근을 한다고 눈치를 주는 이도 없다(실은, 이게 바로 무기력증에 빠지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한다). 결국, 작가는 약속한 날짜에 원고를 제때 공급하고, 그 원고의 질이 최소한의 퀄러티를 유지하면 다음의 고용(즉, 청탁)을 보장 받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경우,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기나긴 실업의 터널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작가의 일상이란 스스로 채찍질을 해가면서, 스스로 결과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시간의 연속인 것이다. 누군가 채찍질을 해주는 일도 없고, 조언을 해주는 일도 없다. 긴장을 하자면 끝없이 해야 하지만, 느슨해지자면 한 없이 풀어질 수 있다. 결국, 이 생활을 몇 년째 하다보면 어느새 지쳐, ‘뭐야, 오늘도 어제와 똑 같잖아!’ 하며 자신을 타임루프의 저주에 빠진 인물로 여기게 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글을 쓰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이고, 지구 한 편의 누군가 내 글을 읽어 주고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감격적이다. 하지만, 인간이란 존재는 태생적으로 근시안적이라 생의 매 순간마다 이 위대한 사실을 떠올리진 않는다. 이런 와중에 <비긴 어게인>을 봤다.
<비긴 어게인> 스틸컷
<비긴 어게인>에서 댄(마크 러팔로 분)은 음반회사의 창업자임에도 불구하고, 공동 창립한 동업자로부터 해고를 당했다. 과거엔 뉴욕의 음악사를 쓴 인물이기도 한, 이 스타 프로듀서는 이제 실업자가 되어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고는 이혼한 전처가 양육하는 딸을 가끔 만나 방과 후 집으로 데려다 주는 일, 그리고 펍에서 술을 마시(고 술 값이 없어 도망 치)는 일 정도. 무기력한 기운에 빠져 있던 나는 ‘댄’에게서 일상의 공통분모를 쉽게 발견했다. 필름이 돌아갈수록, 나는 그에게 어느새 동화되어 영화를 보고 있었다. 댄은 해고를 당한 최악의 날에 한 펍에 들른다. 그리고 거기서 통기타를 서툴게 치며 노래를 하는 풋내기 가수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 분)를 만난다. 이때부터 영화는 전통적인 플롯을 따라 진행되는데, 당연한 듯 둘은 음반을 제작하고, ‘댄’은 풋내기 가수의 잠재력과 이 음반의 예술성을 알아봤기에, 해고당한 음반사로 복직하게 된다.
<비긴 어게인>의 서사는 웃음이 나올만큼 단순했지만, 내 기분을 좋게 한 것은 결말이었다. 영화의 조명은 두 사람의 성공을 향해 비추지 않았다. 풋내기 가수인 그레타는 은행 잔고를 불려줄 음반사와의 계약을 거절한다. 그녀를 ‘언더에서 지상으로 끌어올린’ 프로듀서 댄 역시, 그 순수한 의도를 존중하여 음반을 불과 ‘1달러’로 아이튠스에 직접 유통하는데 동의한다. 그럼, 프로듀서 ‘댄’은 어떻게 됐냐고?
자, 이제 댄은 복직한 음반사에 출근해 능청스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레타의 음반이 출시된 아침, 그를 해고한 바 있는 대주주인 창업동료가 묻는다. 그레타가 자신들을 버리고, 직접 유통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느냐고. 댄은 당연한 듯, ‘아니, 금시초문인 걸’ 하며 어깨를 으슥한다. 그때, 창업 동료는 댄을 빤히 쳐다본다. 그 눈빛은 ‘어째서 프로듀서이면서 한심하게 이것도 몰랐느냐’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내게 복수를 하는군’ 하는 표정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그는 말한다. 이번에도 또 해고라고.
영화를 보는 중간 즈음, 나는 생각했다. 해고를 당한 댄이 다시 앨범을 제작하기에 제목이 <비긴 어게인>인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 확실히 알았다. 그는 극장 커튼이 올라간 후에, 추락한 예전의 자리로 돌아가 ‘또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걸. 소설가 답지 않은 결론이지만, 나 역시 식상한 결론이 가장 건강한 결론이라는 것에 동의했다. 작가의 삶이 ‘무한한 고용과 실직의 반복 상태’인 것처럼, 어찌보면 삶은 ‘무한한 실의와 재기의 반복 상태’가 아닌가 생각했다. <비긴 어게인>. 다시 보니, 썩 괜찮은 제목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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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비긴 어게인, 키이라 나이틀리, 마크 러팔로, 애덤 리바인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