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날의 펑크정신
노브레인 <한밤의 뮤직>
혼자였지만 아무도 외롭거나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혼자 술을 잘 마시고 있었다. 나 역시 그 분위기에 녹아들며 노브레인의 ‘한밤의 뮤직’을 한 없이 반복해 들었다.
얼마 전 너무 외로워서 부산에 여행 갔다가 충동적으로 현해탄을 건너고 말았다. 부산행 KTX 편도 가격보다 싼 후쿠오카 왕복 선박 티켓을 득템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부산에서도 아무 ‘썸’이 일어나지 않아 계속 외로워서였다. 어째서인지 가방에 여권이 들어 있었다. 나는 일말의 기대감을 부풀렸다. 만약 나처럼 가을 특가 요금을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후쿠오카에 가는 여자 여행자를 배에서 만난다면? 살짝 마음이 통할 거고, 별 일 없으면 함께 여행하는 거다.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아, 어쩌면 밥도 같이 먹을 수 있을 거고, 같이 쇼핑하면서 서로 바보 같은 물건을 고르지 않도록 조언을 주고받을 수도 있을 거다. 심지어 그녀도 솔로라면 아름다운 ‘썸’을 탈 수도 있을 테고. 뭐가 됐든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오 예.
배가 떠나는 날은 태풍이 지나간 다음 날이었다. 하늘은 맑았지만 꽤 뒤끝 있는 태풍인지 파고가 높았다. 충동적 여행으로 인한 내 기대감도 덩달아 높아졌다. 그런데 배는 일단 출항을 하긴 했지만 여차하면 회항할 수도 있는 날씨였다. 먼 바다에 나가자 록 정신을 가진 파도가 출렁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몹시 흔들리는 배 안에서 멀미 증세를 느끼고 말았다. 괴로워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뿔싸. 이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 줄이야. 갑판에서 맥주 캔을 마시며 바다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을 때 나처럼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외로운 여행자를 발견해 슬쩍 눈인사를 건네는 그림을 그렸는데 그건 막상 초현실주의 화풍이 되고 말았다.
그 배는 쾌속선이라 워낙 빨라서 선실 바깥으로 나갔다가는 배가 흔들릴 때 나가떨어지기 딱 좋아서 아예 선실 바깥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내 앞뒤 좌석은 알콩달콩 커플이고, 뒤에선 ‘아잉 우리 자기가 미리 멀미약 챙겨주지 않았음 어쩔 뻔했어. 고마운 자기.’ 같은 소리나 찍찍 내뱉고 있고, 앞에 앉은 서양인 커플은 아예 부산에서 대마도를 지날 때까지 입술을 뗐다 붙였다 쇼를 하고 있고, 내 옆자리에 앉은 촌스러운 니트 스웨터 차림의 중년 남자는 세로쓰기로 된 일본어 문고판 책을 그 요동치는 배 안에서 물끄러미 읽고 자빠져 있어 내 멀미 증세를 더 악화시키기만 했다. 심지어 그가 화장실에 갈 땐 내게 ‘실례 좀 하겠습니다’ 하고 유창한 한국말 표준어를 구사해 어지럼증이 극에 달하기도 했다.
후쿠오카에 도착해 한참 시간이 지나서도 멀미가 가라앉지 않았다. 대체 그 남자의 국적은 어디인 걸까. 다 필요 없고 내 외로움의 끝은 어디인 걸까.
나는 일단 숙소에서 쉴 생각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내 방 앞에 맥주 자판기가 있어 일단 한 캔 마셨다. 그제야 어지럼증이 좀 가라앉아 나는 거리로 나섰다. 외롭지만 관광은 해야지. 그런데 우선 유명하다는 텐진이나 하카타에 가서 반짝반짝 쇼윈도 사이를 바쁘게 걸어 다니다 보니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의외로 지루했다. 내가 쇼핑하기에 비싼 건 예쁘고, 싼 건 전혀 살 마음이 안 들었다. 뭔가 가격이 적당하면서 후쿠오카다운 건 ‘돈고츠 라멘’뿐이었다. 그런데 한 라멘집에 매운 라멘 메뉴가 있었다. 맵기의 단계까지 선택할 수 있었는데 일본 사람들은 매운 음식에 대해 좀 호들갑을 떤다고 판단해서 가장 센 ‘초특급’ 단계를 주문했다. 그건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매웠다. 매운 걸 먹고 나자 가슴 한 구석이 불을 지핀 듯 뜨거워졌다.
해가 저물자 번화가를 떠나 아무도 안 다닐 것 같은 남모를 골목에서 느긋한 걸음걸이를 하고 싶었다. 혼자 술 마시기도 궁상맞고, 나는 정처 없이 한적한 골목을 걸어 다녔다. 기왕 외로운 거, 나 자신의 은밀한 구석구석을 점검하고 되새기고 정돈할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
어느 이국적이고 아담한 골목 귀퉁이에서 낮게 떨어지는 가로등 조명에 반짝 빛나는 조그만 카페를 보았다. 그곳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고, 아예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위치에 있었다. 그런데 안에서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평범한 쓰리코드인데 펑크 스트로크 주법이었다. 입술에 피어싱을 한 남자가 기괴한 창법으로 그 쓰리코드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뭐랄까, 노래는 개판이었지만 펑크 정신이 살짝 느껴졌다. 동시에 내 가슴속 어떤 부분이 꿈틀, 했다. 초특급 매운 라멘을 먹을 때 잠시 뜨거워졌던 부위였다. 그곳을 더블클릭해 보니 우와? 펑크록을 미친 듯이 좋아하던 시절과 그때 즐겨 듣던 곡들과 방방 뛰며 춤추던 내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 모습은 와락 내게 달려들더니 다짜고짜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이봐, 친구. 펑크록이 있는데 외로워했어? 느낌 괜찮았다. 마음 깊이 묻어둔 내 자존감이 그런 형태로 생생히 살아있을 줄은 몰랐다. 그렇게 된 이상 펑크록 음악을 들어야 했다. 나는 노브레인 앨범을 처음부터 쭉 들어나갔다. 수없는 명곡이 있지만 그 중에서 ‘한밤의 뮤직’을 들으며 걸을 때 발걸음이 몹시 가벼워졌고, 지난 세월과 상처들을 잊게 되었으며, 혼자 술 마시기 싫다는 마음이 쏘옥 사라지면서 발길이 저절로 이자까야로 향해졌다.
나는 아무 이자까야에 들어가 아무 안주나 시켰다. 내가 주문한 건 꼬치구이 세트였는지 주인장이 꼬치를 종류대로 구워 내게 하나씩 가지고 왔다. 접시에 꼬치가 쌓이는 속도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나는 맥주를 계속 마셨고 노브레인을 계속 들었다. 그것은 혼자 마시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옛 자존감과 마시는 거였고, 노브레인과 함께 마시는 거였다. 그 작은 이자까야 안에는 나처럼 혼자 온 사람이 많았다. 스모키를 진하게 한 채 혼자 줄담배를 피우는 정장 차림의 여자와 꼬치 두 개에 맥주 한 잔을 슬로우 비디오라도 돌리듯 천천히 음미하는 점퍼 차림의 2대 8 가르마 남자와, 여성성을 강조한 블라우스에 생머리를 하고 양손으로 사케 도쿠리를 들고 홀짝이는 여자, 왜 그러는지 몰라도 사시미에 콜라를 마시고 있는 짧은 머리의 젊은 남자 등등이었다.
그들은 혼자였지만 아무도 외롭거나 쓸쓸해 보이지 않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혼자 술을 잘 마시고 있었다. 나 역시 그 분위기에 녹아들며 노브레인의 ‘한밤의 뮤직’을 한 없이 반복해 들었다. ‘작지만 커다란 꿈을 안겨주던 너의 목소리’가 떠오르는 ‘아련하던 그 기억’을 만끽하며 ‘때 묻은 기타 한 대와 나를 울려주던 낡은 라디오’를 그리워했다. 내 자존감은 바로 그 지점에 남아 있었다. 외로워서 낑낑거리다 발견한 나 자신은 사실 외로움 같은 건 신경도 안 쓰고 살던 펑크록 마니아였던 것이다. 하도 신나 있어서 외로워도 외로운 줄 몰랐던 것이다. 외롭다고 부들부들 떠느니 춤추면 되고, 펑크 코드를 긁으며 소리 지르면 되는 거였다. 힘들면 매운 라면을 먹었고,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홍대에서 개판(?)치면서 외로움이 뭐 어쩌고 개입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날 이자까야에서 혼자 꽤 마셨지만 전혀 취하지도 않았다. 숙소에 돌아와 쉬려는데 어째서인지 내 주머니에 편의점에서 산 피스타치오 봉지가 있고, 복도의 맥주 자판기는 편의점보다 싸서 엔화 동전이 떨어질 때까지 맥주를 뽑아 먹었다. 노브레인의 음악과 함께 밤이 깊도록 머리를 흔들자 외로움 같은 건 어딘가로 꺼졌는지 코배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 상태가 정말 좋았다. 자존감이 가득했다. 가을이라 외로움을 세게 탔지만 의외로 그 안에서 자존감을 건져냈으니 풍성한 수확을 한 기분이었다.
돌아오는 배 안에선 옆자리에 분위기 좋은 어떤 여자애가 앉았다. 국적을 짐작할 수 없었지만 혼자였다. 그날은 파도가 잔잔해 멀미도 안 났고, 바깥의 끝없는 수평선과 드넓은 바다위에 태양이 쏟아지는 광경이 무척 아름답고 열정적인 펑크록처럼 느껴졌다. 나는 숙취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브레인과 크라잉 넛이 서로의 노래를 바꿔 부른 96이란 최신 앨범을 내내 들었다. 나는 전혀 외롭지 않았으므로 옆자리 여자에게 한 마디도 말을 걸지 않았다.
… 아차, 근데 왜 그랬지? 미쳤구나. 어우 딱 내 스타일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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