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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프트 펑크 「겟 럭키」와 스페인 이비자 섬

다프트 펑크(Daft Punk) 「겟 럭키Get Lucky」 스페인의 이비자Ibiza 섬 나는 왜 개다리 춤을 출 수밖에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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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엔 초청하지 않은 울적한 순간들이 자꾸만 찾아오고 뭔가를 잘못 선택하거나 바보 같은 짓을 해버리는 경우가 정말 많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어깨를 늘어뜨리는 대신 다프트 펑크의 ‘겟 럭키’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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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를 난생 처음 들은 곳은 스페인의 이비자Ibiza 섬이었다. 카탈루냐 식으로 발음하자면 에이비싸Eivissa 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섬에 들어가는 비행기 값이며, 숙박비며, 맥주 값을 낼 때마다 에이, 비싸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오, 이런 잔망스러운 언어유희로 칼럼 첫 회를 시작하게 될 줄이야! 부끄럽고 겸연쩍다.
 

흠, 흠. 제주도 1/3 크기인 이비자 섬은 세상에 흔하지 않은 환락의 섬이자 섬 전체가 거대한 일렉트로닉 클럽이라고 해도 무방한 곳이다. 춤추는 사람들에게 거품을 내리 끼얹는 파티로 유명한 암네시아Amnesia, 탐스러운 궁둥이 두 쪽 같은 빨간 앵두 마크로 유명한 파차Pacha를 비롯해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니는 클럽들이 즐비하고, 유명세에 걸맞게 유명 디제이들이 줄줄 찾아와 높은 수준의 공연을 자행하는 곳이다. 여름 성수기엔 호텔들마다 각 클럽들의 이벤트 일정이 도표로 만들어져 게시한다. 이비자만큼 ‘클러버’들이 대놓고 정신없이 흔들기 좋은 판을 깔아놓은 섬은 이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 섬에 도착해 헤벌쭉 즐거워하는 순간, 아차 내가 클럽 문화를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기억해냈다는 점이었다. 깜빡깜빡 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여행지를 깜빡하고 잘못 선택하는 식의 개그를 하고 싶진 않았는데 꽤 심각한 문제였다. 인생이 초라하고 울적해서 찾아간 환락의 섬에 오자마자 울적해야 한다니 잔혹한 비애감이 파고들었다. 
 

내가 클럽 문화를 즐길 수 없게 된 건, 어느 날 내게 생긴 밀집 공포증 때문이었다. 회사 다닐 때 2호선 만원 지하철에 하도 시달려서인가. ‘죠리퐁’을 먹다 죽도록 사래가 들린 적이 있어서인가. 원인은 모르겠지만 뭔가 바글바글한 것을 견딜 수 없다. 그런 장애가 생긴 줄도 모르고 홍대에서 한 번 클럽에 갔다가 사람들에 떠밀려 앞쪽에 밀려 나갔는데 갑자기 격심한 요의가 시작되었으나 사람들에 막혀 화장실 쪽으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상태에 직면하자 내게 그 공포증이 있음을 선명하게 인지하고 말았다. 그 순간 다리 관절들이 제 맘대로 부들부들 떨렸다. 사람들은 내가 웃기려고 개다리춤을 춘다고 생각했겠지만 내 표정은 닭한테 닭발로 따귀를 맞은 사람처럼 낯선 공포심에 사색이 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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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이비자의 클럽들 사진도 바글바글한 인파를 자랑하는 장면이 대부분이라 그 공포심을 자극했다. 이비자에 왔으니 화려한 조명과 특수효과 속에서, 멈춘 심장도 다시 뛰게 만들 것 같은 비트에 맞춰 춤을 추고 싶긴 했지만 아무래도 무리가 따를 것 같았다. 더구나 섬을 지배하는 드레스 코드는 ‘헐벗는’ 것이었다. 남자고 여자고 길거리에서 수영복 정도나 달랑 입고 맨살을 노출하며 다니는데, 단단한 근육이나 매끈한 몸매 라인을 강조하는 그 패션을 나는 미처 준비해 가지 못했다. 나로선 최소 3년 이상 꾸준히 운동해도 될까 말까한 몸들이 대세였고 흐름이었고 경향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운동도 안 하고 이비자에 왔단 말인가. 후회가 밀려왔다. 클러버들의 성지에 와서 의식을 거행하길 거부하는 이단자가 된 기분이었다. 게다가 이비자 섬의 신도들이라면 하루에 오십 번씩 겟 럭키를 들어야 한다는 교리가 있는 듯했다. 섬 어느 술집이나 식당에 들어가도 한 번씩은 꼭 듣게 되는 곡이 다프트 펑크의 ‘겟 럭키’였다. 아예 이비자 섬의 찬송가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곡의 경쾌한 리듬이며 노랫말의 내용이 이비자의 분위기와 딱 떨어지면서 착착 감기니 그럴 만도 했다. 이단자인 나조차 그 음악을 하염없이 듣고 있자면 ‘겟 럭키’(땡잡기?)를 위해 클럽에서 춤추고 밤새며 놀고 싶어지는 경건한 신앙심이 생기곤 했다. 노랫말에 따르면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이므로. 마치 전설속의 불사조처럼. 
 

그러나 클럽은 과감하게 포기했다. 클럽 입장료를 보니 에이 비싸, 라는 말이 또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포기하니 편했다. 
 
그런데 이비자 섬은 클럽문화의 에너지로 리드미컬할 뿐 아니라 굉장히 너그러운 섬이었다. 불경스러운 이교도인 내게 섬은 다른 종교를 권했다. 그것은 자연이 조성한 아름다운 해변들이었다. 그 풍경을 경배하지 않고는 배겨낼 도리가 없는 해변들이 잔뜩 있었다. 이비자 섬은 클럽으로 유명해지기 이전에 미친듯이 아름다운 해변들을 가진 섬으로도 유명했다. 저마다 특색을 뽐내는 해변이 대략 오십 개 쯤 있었다. 
 

나는 그 바다들의 매력에 설렘을 느꼈고 이내 한없이 빠져들었다. 수영을 잘하는 편이 아니지만 이비자 섬의 해변에서 헤엄을 치고 있으면 수영 실력이 좋건 말건, 이 지구 위에서 인간으로 사는 자존감이 극도로 향상되는 기분이었다. 클럽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나지도 않을 만큼 해변들은 내게 융숭한 환대와 축복을 베풀었다. ‘깔라 꼼떼’처럼 유명한 곳은 말할 것도 없고, 숙소 근처의 손바닥만한 해변도 기가 막힌 색채와 구성의 미학으로 은혜를 베풀었다. 오늘은 깔라 꼰따, 내일은 깔라 바싸! 갈 곳이 넘쳐났다. 지중해 바다에 몸을 던져놓고 하루 종일 수영하거나 모래사장에서 책을 읽고, 저녁이 되면 맛있는 맥주를 마시는 패턴으로 지내자 몸과 마음에 점점 에너지도 넘쳐났다. 또한 발랄한 에너지를 뭉게뭉게 발산하는 젊은 여행자들과 분위기 좋은 바에 섞여 앉아 농담을 주고받으며, ‘겟 럭키’를 수십 번씩 듣는 하루하루를 보내자 굳이 클럽에 가지 않아도 그 시간들이야말로 ‘썸씽’ 이고 ‘겟 럭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거리에서, 식당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비키니 차림으로 다니는 섬이라 해변에선 그나마 걸친 수영복도 벗어던지는 사례가 빈번한 것도 부가적인 즐거움이었다. 그들이 아름다운 바다에 대해 표하는 그런 경의는 신성해 보였고, 마땅히 존경받아야 하는 신앙심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이비자 섬에 가서 클럽 근처에도 가지 않고 바다에서만 놀다 온 경험으로 웃길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뜻밖의 소득을 올린 기분이었다. 그 모든 장면과 경험에 배경음악으로 깔린 ‘겟 럭키’라는 음악은 인생이란 어느 정도 흥겨워야만 유연하게 유지된다는 메시지를 각인 시켰다.

 


인생엔 초청하지 않은 울적한 순간들이 자꾸만 찾아오고 뭔가를 잘못 선택하거나 바보 같은 짓을 해버리는 경우가 정말 많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어깨를 늘어뜨리는 대신 다프트 펑크의 ‘겟 럭키’를 듣는다. 이 신나는 곡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머리를 까딱거릴 때마다 마치 이비자 섬의 클럽에서 일생의 스트레스를 해소한 사람들과 같은 기분이 되고, 이비자 바다의 투명한 물속에서 훤히 보이는 물고기들 사이를 유유자적 수영하는 장면이 바로 연상된다. 맛있는 맥주를 건배하며 짓는 은근한 미소나, 유쾌한 농담을 듣고 빵 터지던 표정을 저절로 짓게 된다. 인생을 살면서 이만한 약을 갖고 산다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맥주와 겟 럭키를 함께 섭취하는 걸 마치 종교적 제의로 숭앙하듯 살고 있으며 생의 초라함과 울적함을 튕겨낼 카드로 고이 간직하고 있다. 아니 뭐, 이런 게 하나쯤 있어야 사람이 살지. 
 

이비자에 가보지 못했더라도 다프트 펑크의 겟 럭키를 들으면 그 섬을 여행한 것과 유사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글을 읽는 누구에게나 좋은 약효를 가진 유쾌한 기억이 잔뜩 생기길 빈다. 싹싹 빈다. 그럼 모두모두 겟 럭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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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상 (소설가)

소설가.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 『말이 되냐』,『예테보리 쌍쌍바』와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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