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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연적 능력을 가진 외계의 존재, 크툴루 신화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나타나는 크툴루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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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툴루, 니알라토텝, 데이곤, 하이드라, 요그 소토스 등 사악한 신들과 죽음의 책인 네크로노미콘, 그들이 출몰하는 마을 아캄 등은 많은 공포소설, 영화, 게임 등에 차용되고 영향을 주었다.

크툴루 신화는 『광기의 산맥에서『찰스 덱스터 워드의 비밀 등을 쓴 미국의 공포소설 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이계의 신, 고대의 괴물 등이 존재하는 세계를 말한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서 분명하게 ‘크툴루 신화’를 정의하고 그려낸 것은 아니지만, 그의 친구이자 동료 작가인 오거스트 덜리스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하나의 신화로 만들어졌다. 크툴루, 니알라토텝, 데이곤, 하이드라, 요그 소토스 등 사악한 신들과 죽음의 책인 네크로노미콘, 그들이 출몰하는 마을 아캄 등은 많은 공포소설, 영화, 게임 등에 차용되고 영향을 주었다.


일각에서는 러브크래프트가 모호하게 표현한 세계를 덜리스가 체계화된 신화로 무리해서 만들었다는 평가도 있다. 단순화시켜 선과 악의 이원론으로 만들거나 초월적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대적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든 것 등은 러브크래프트의 의도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광기의 산맥에서』의 비망록에 ‘신화’란 단어가 나오고, 고대 신과 4대 원소 등의 설정이 나온 덜리스의 소설을 러브크래프트에게 보여준 적도 있었다. ‘사후 공동 집필’이라는 기묘한 방식이기는 했지만, 크툴루 신화의 내용을 독단적으로 덜리스가 변형시켰다기보다 러브크래프트와 덜리스가 공유하며 발전시키려 했던 설정을 러브크래프트 사후에 덜리스가 완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크툴루 신화에 나오는 신은 절대적인 신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외계, 이계의 존재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크툴루의 부름』에 나오는 크툴루는 문어 같은 머리에 박쥐 날개를 가진 모습이다. 크툴루와 외계에서 온 신들은 수메르의 신들처럼 미끌미끌하고 축축한 피부를 가지고 있다. 23성운의 조스란 별에서 태어난 크툴루는 지구로 와서 이미 지구에 살았던 ‘옛 존재(Old One)’과 대립하며 싸운다. 크툴루 등은 ‘외계의 신(Outer Gods)이라고 부른다. 태평양에 존재했던, 무 대륙에서 거석으로 된 도시를 만들었던 크툴루는 지각변동으로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잠든 채로 있다. 크툴루가 있는 해저 도시 르뤼에(R'lyeh)는 가끔 물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고, 사교집단이 부활시키는 음모를 계획하기도 한다. 해저에 가라앉은 크툴루의 텔레파시가 인간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이야기가 『크툴루의 부름』에 나온다. 덜리스가 체계화한 설정에 따르면 크툴루는 물, 니알라토텝은 흙, 크투가는 불, 하스터는 바람을 상징한다.


‘옛 존재’ 역시 크툴루 이전 지구에 온 외계의 존재다. 또한 ‘이스의 위대한 종족’도 선주자다. 그들은 오랫동안 지구의 ‘선주민’으로 있었고, 인간은 그들을 숭배했다. 클라이브 바커의 『미드나이트 미트 트레인』에는 심야의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죽여 시체를 깊은 지하로 가져가서 ‘선주민’에게 먹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크툴루와 옛 존재들의 싸움은 ‘크툴루의 사생아’(The Star-spawn of Cthulhu)가 옛 존재의 도시들을 전면 공격하는 전쟁으로 확장되었다가 휴전협정을 벌인다. 그 결과 무대륙은 크툴루, 나머지는 옛 존재들이 지배하는 것으로 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선주민들의 지배하에 있고, 인간의 종교에 등장하는 신이 그들인 셈이다. 인도 신화에서 신들끼리 전쟁을 벌이는 상황을 크툴루 신화에 비유할 수도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거인족과 싸워 세계의 지배자가 되는 신의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다른 초월적인 존재와 싸워서 ‘세계’를 쟁취하는 신화는 이전에도 많이 있다. 클라이브 바커의 영화 <심야의 공포>에는 요정과 괴물 등 ‘밤의 존재’가 인간 이전에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패배하고 ‘잊혀진 존재’가 되어 이야기나 꿈속에 출몰한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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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이리언3> 포스터


악령, 악마가 외계에서 온 존재로 확장되기 때문에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을 ’코스믹 호러‘(cosmic horror)라고 부르기도 한다. 폴 앤더슨의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이 보여주듯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이 우주의 어딘가에 있는 것이다. 또한 <에이리언>과 프리퀄인 <프로메테우스>에 나오는 엔지니어와 에이리언도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이 보인다. <에이리언>의 시나리오를 쓴 댄 오배넌은 코믹 좀비물 <바탈리온>의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러브크래프트의 ’코스믹 호러‘에 열광하여 뱀파이어를 외계에서 온 존재로 설정한 토비 후퍼의 <뱀파이어>의 시나리오를 썼고, 러브크래프트의 『찰스 덱스터 워드의 비밀』를 각색한 영화 <어둠의 부활>도 연출했다.


상당히 복잡한 크툴루 신화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읽는 것이 우선이다. 근래에 나온 단편집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있고, 4권으로 구성된 『러브크래프트 전집』이 있다. 어거스트 덜리스의 소설은 나온 적이 없다. 크툴루 신화의 설정과 요소들을 살펴보고 싶다면 『크툴루 신화 대사전』과 『크툴루 신화 사전』이 있다. 크툴루 신화를 인용하거나 영향을 받은 작품은 수없이 많다. 로버트 E. 하워드의 『코난』은 러브크래프트 생전에 서로 친해지면서 세계관을 공유한 작품이다. 이후 스티븐 킹과 클라이브 바커 등의 공포소설 작가라면 당연한 일이고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조지 마틴, 레이 브래드버리, 앨런 무어, 닐 게이먼, 이토 준지, 기예르모 델 토로, 존 카펜터 등 SF와 판타지를 넘나드는 작가, 만화가, 영화감독에게 영향을 끼쳤다. 다만 크툴루 신화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작품도 있고 러프하게 ‘크툴루 신화’의 설정과 스타일을 차용하는 작품들도 있다.


이제는 <스파이더맨> 3부작으로 유명한 샘 레이미의 데뷔작 <이블 데드>에서 숲속의 오두막집으로 캠핑을 간 청년들이 지하실에서 이상한 책을 발견한다. 이름하여 ‘네크로노미콘.’ 책에 나온 말, 주문을 따라 읽게 되자 숲의 악령이 깨어난다. 시체가 살아나고, 숲이 살아 움직인다. 네크로노미콘은 압둘 알하자드가 730년경 기록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압둘 알하자드’(압둘 알하자레드)는 러브크래프트가 어린 시절 아라비안나이트에 빠져 만들어낸 이름이다. 즉 네크로노미콘은 러브크래프트가 소설 속에서 만들어낸 가공의 책이고, ‘크툴루 신화’에서 주요하게 등장하는 마법의 책이다. <이블 데드> 시리즈에서는 ‘네크로노미콘’을 통해 악령을 불러내고, 시체를 깨어나게 하는 등 다양한 흑마술을 가능하게 하는 ‘죽음의 책’으로 나온다. 브라이언 유즈나, 가네코 슈스케, 크리스토퍼 강스의 옴니버스 영화 <네크로노미콘>도 러브크래프트의 세계를 충실히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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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블데드> 한 장면

 


브라이언 유즈나가 제작을 하고 스튜어트 고든이 연출한 <좀비오> <지옥인간> <데이곤>은 모두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공포영화다. <좀비오>의 원작이 된 『시체를 되살리는 허버트 웨스트』는 단편집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에 실려 있다.『저 너머에서』를 각색한 <지옥인간>은 뇌를 자극하여 평소의 지각능력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저 너머의 세계를 엿보게 된 과학자들의 끔찍한 운명을 보여준다. 중편인 인스머스의 그림자』를 각색한 <데이곤>은 배경을 현대의 스페인으로 바꾸었다. 배가 좌초되어 표류하던 미국인들이 ‘데이곤’을 섬기는 스페인 마을에 가게 된다. 크툴루 신화에 등장하는 데이곤(다곤)은 일종의 양서류, 물고기와 인간이 뒤섞인 괴물처럼 묘사되지만 영화에서는 ‘촉수’가 두드러진 괴물이다.


그밖에도 러브크래프트의 영향이 보이는 다양한 작품이 있다. 『구인사가』로 유명한 쿠리모토 카오루의 『SF 수호지』는 ‘선주인’이라고 부르는 일본의 신들과 크툴루 신들이 격돌하는 이야기다. 아이소라 만타의 라이트노벨 『기어와라! 냐루코양』은 크툴루 신화의 신들을 모에화시킨 기이한 작품이다. 게임에서는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의 시나리오 작가 우로부치 겐이 참여한 <데몬 베인> 시리즈가 유명하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고대신도 크툴루의 신들을 모티브로 한다.


‘크틀루 신화’를 통해 러브크래프트가 보여주려 한 세계는 ‘진짜 현실’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결코 견고하지 않고, 우리가 보는 것 너머의 다른 무엇이 있다. 우리가 평범한 감각으로 볼 수 없는 ‘진짜 현실’을 보게 된다면 현실의 감각, 나의 자의식은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현실을 알 수 없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니까. 클라이브 바커의 걸작 <헬레이저>에서 남자는 신비한 큐브를 만지작거린다. 그러다가 이세계로 가는 문이 열린다. 진정한 ‘고통’을 안겨주는 악의 사제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러니까 큐브는 일종의 소환도구이기도 한데 크툴루 신화에 나오는 ‘부등면다면체’를 연상시킨다. 유고스라는 행성에서 만들어진 부등면다면체는 어둠속에서 니알라토텝을 불러내는 도구로 쓰인다.


다른 세계를 엿보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일 것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감정은 공포다. 그리고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다’라고 말한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미지’의 세계는 지금도 가장 강력한 공포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너무나 익숙하여 일본에서는 모에의 소재로 쓰이기도 하지만 ‘크툴루 신화’는 여전히 기이한 두려움을 안겨준다. 여전히 그 세계는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니까. 아무리 해석을 가하고, 변형을 시켜도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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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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