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안 레드(Russian Red) 『Agent Cooper』
“러시안 레드의 음악을 알고 있나요?”
“네”라는 대답을 할 수 있는 당신에게 러시안 레드의 신보는 매력적으로 들릴 가능성이 높다. 앨범이 그의 새로운 면모를 충분히 담고 있는 덕분이다. 이 경우, 러시안 레드에 갖고 있던 이미지는 신보를 통해 상당부분 바뀔 여지가 있다. 반면 “아니오”라는 대답을 해야 하는 당신이라면, 앞의 경우에 비해 앨범의 매력도가 낮게 다가올 공산이 크다. 이것은 대중적 공감의 음악이기보다, 러시안 레드 개인에게 집중한 성격이 더 짙은 음반이기 때문이다.
『Fuerteventura』 는 폭넓은 보편성이 돋보이는 앨범이었다. 각각의 트랙들은 ‘radio friendly’라는 태그와도 어울려 보일 정도로 대중적인 선율을 자랑하고 있었고, 한 번 듣고도 노래를 흥얼거리게 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한 선율을 갖고 있었다. 그와 함께 돋보인 것은 물론 그 자신의 목소리였다. 1986년생임에도 소녀와 숙녀를 오가듯, 명징함과 고혹미를 동시에 갖고 있던 러시안 레드의 보컬은 앨범을 듣는 백미였다.
이것이 전작에 호평이 집중되던 이유다. ‘개성을 간직한 보편적 대중성’이야말로 러시안 레드 음악이 가지는 커다란 강점이었던 것이다. 콘셉트도, 다른 어떤 홍보 수단도 남다른 면은 없었다. 다만 뮤지션의 제1 덕목, 무엇보다 음악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을 훌륭하게 지켜낸 모범 사례였을 따름이다.
신보는 그런 그의 매력을 상당부분 내려놓았다.
『Fuerteventura』 에서 들려줬던 공감의 선율은 에 이르러 개인의 이야기로 변모했다. 트랙리스트의 제목들은 자신에게 영감을 준 남자들(아버지, 친구, 옛 남자친구 등)의 이름을 그대로 썼으며, 그 자신 또한 소총을 들고 본드걸로 분했다. (왜 총을 들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스러운 부분이다.)
음악 스타일은 「Michael P」 와 「Stevie J」 정도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radio friendly’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복잡다단해진 곡들이 늘어났고(「Casper」, 「…Xabier」, 「Anthony」)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멜로디 캐치가 어려운 곡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이전처럼 ‘들리는’ 음악이기보다는 ‘집중해야 들리는’ 음악으로 바뀐 셈이다. 「Casper」 를 들으면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광기가 생각나는 대목도 있다. 자기 음계(音界)의 확장이다.
분명한 자기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낸다. 분명히 말하건대 이것은 ‘성장’이다. 다만 앞으로 그 세계에 함몰되어버리는 것을 경계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물론 개인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은 뮤지션의 자유다. 다만 생각해볼 것은, ‘우리가 개인에게 집중한다면 그 개인은 어떠한 개인인지’에 관한 문제다. 러시안 레드 개인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가질 이유, 아직은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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