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러시안 레드(Russian Red), 본드걸로 변신하다

‘소녀’에서 ‘숙녀’로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러시안 레드의 음악을 알고 있나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러시안 레드가 본드걸로 분한 3집, <Agent Cooper>를 만나보세요.

러시안 레드(Russian Red) 『Agent Cooper』

“러시안 레드의 음악을 알고 있나요?”

“네”라는 대답을 할 수 있는 당신에게 러시안 레드의 신보는 매력적으로 들릴 가능성이 높다. 앨범이 그의 새로운 면모를 충분히 담고 있는 덕분이다. 이 경우, 러시안 레드에 갖고 있던 이미지는 신보를 통해 상당부분 바뀔 여지가 있다. 반면 “아니오”라는 대답을 해야 하는 당신이라면, 앞의 경우에 비해 앨범의 매력도가 낮게 다가올 공산이 크다. 이것은 대중적 공감의 음악이기보다, 러시안 레드 개인에게 집중한 성격이 더 짙은 음반이기 때문이다.


『Fuerteventura』 는 폭넓은 보편성이 돋보이는 앨범이었다. 각각의 트랙들은 ‘radio friendly’라는 태그와도 어울려 보일 정도로 대중적인 선율을 자랑하고 있었고, 한 번 듣고도 노래를 흥얼거리게 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한 선율을 갖고 있었다. 그와 함께 돋보인 것은 물론 그 자신의 목소리였다. 1986년생임에도 소녀와 숙녀를 오가듯, 명징함과 고혹미를 동시에 갖고 있던 러시안 레드의 보컬은 앨범을 듣는 백미였다.

이것이 전작에 호평이 집중되던 이유다. ‘개성을 간직한 보편적 대중성’이야말로 러시안 레드 음악이 가지는 커다란 강점이었던 것이다. 콘셉트도, 다른 어떤 홍보 수단도 남다른 면은 없었다. 다만 뮤지션의 제1 덕목, 무엇보다 음악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을 훌륭하게 지켜낸 모범 사례였을 따름이다.

신보는 그런 그의 매력을 상당부분 내려놓았다. 『Fuerteventura』 에서 들려줬던 공감의 선율은 에 이르러 개인의 이야기로 변모했다. 트랙리스트의 제목들은 자신에게 영감을 준 남자들(아버지, 친구, 옛 남자친구 등)의 이름을 그대로 썼으며, 그 자신 또한 소총을 들고 본드걸로 분했다. (왜 총을 들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스러운 부분이다.)

음악 스타일은 「Michael P」 와 「Stevie J」 정도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radio friendly’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복잡다단해진 곡들이 늘어났고(「Casper」, 「…Xabier」, 「Anthony」)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멜로디 캐치가 어려운 곡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이전처럼 ‘들리는’ 음악이기보다는 ‘집중해야 들리는’ 음악으로 바뀐 셈이다. 「Casper」 를 들으면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의 광기가 생각나는 대목도 있다. 자기 음계(音界)의 확장이다.

분명한 자기세계를 구축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낸다. 분명히 말하건대 이것은 ‘성장’이다. 다만 앞으로 그 세계에 함몰되어버리는 것을 경계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물론 개인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은 뮤지션의 자유다. 다만 생각해볼 것은, ‘우리가 개인에게 집중한다면 그 개인은 어떠한 개인인지’에 관한 문제다. 러시안 레드 개인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가질 이유, 아직은 찾을 수 없다.

글/ 여인협([email protected])

[관련 기사]

-대한민국 대표 록 밴드 넬(Nell)의 위대한 여정
-리듬에 맞춰 박수쳐보자! 자보아일랜드(Javoisland)
-고전적 감성을 소환하다 - 아이유(IU)
-1971년,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시대가 시작되다
-[빌리 조 암스트롱 & 노라 존스] 최고의 록밴드 보컬과 싱어송라이터의 만남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 15,600원(20% + 1%)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 20,200원(19% + 1%)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AI, 전혀 다른 세상의 시작일까

유발 하라리의 신작. 호모 사피엔스를 있게 한 원동력으로 '허구'를 꼽은 저자의 관점이 이번 책에서도 이어진다. 정보란 진실의 문제라기보다 연결과 관련 있다고 보는 그는 생성형 AI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보 기술이 초래할 영향을 분석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국 문학의 지평을 더욱 넓혀 줄 이야기

등단 후 10년 이상 활동한 작가들이 1년간 발표한 단편소설 중 가장 독보적인 작품을 뽑아 선보이는 김승옥문학상. 2024년에는 조경란 작가의 「그들」을 포함한 총 일곱 편의 작품을 실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들과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한 권에 모두 담겨 있다.

주목받는 수익형 콘텐츠의 비밀

소셜 마케팅 전문가 게리 바이너척의 최신작. SNS 마케팅이 필수인 시대, 소셜 플랫폼의 진화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을 위한 6단계 마케팅 전략을 소개한다. 광고를 하지 않아도, 팔로워 수가 적어도 당신의 콘텐츠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

삶의 끝자락에서 발견한 생의 의미

서른둘 젊은 호스피스 간호사의 에세이.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하며 겪고 느낀 경험을 전한다. 죽음을 앞둔 이들과 나눈 이야기는 지금 이순간 우리가 간직하고 살아야 할 마음은 무엇일지 되묻게 한다. 기꺼이 놓아주는 것의 의미, 사랑을 통해 생의 마지막을 돕는 진정한 치유의 기록을 담은 책.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