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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키(H1-KEY)의 건강함 : 하이키(H1-KEY) ‘Seoul Dreaming’
하이키의 건강한 아름다움
뼛속까지 건강한 사람이 주는, 어떤 상황에서도 괜찮다고 짓는 웃음 같은 에너지가 하이키의 음악에 어려있다. (2023.08.31)
건강함이 주는 깨끗한 울림이 있다. 요령 피우지 않고 땀 흘려 만든 몸과 정신에 깃든 맑은 기운. 조금이라도 손해 보면 큰일 나는 줄 아는 호구 공포와 권모술수가 만연한 세상에서 지나면 다 별거 아니라며 짓는 순박한 웃음이, 건강함을 굳게 받친다. 워낙 사람이 좋다 보니 그런 건강함을 왜곡하거나 악용하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 솔직하지 못할 일이 유독 많은 대중문화계도 이 혐의를 피할 순 없다. 뚜렷하게 느껴지는 성적 어필을 건강하다는 말로 교묘하게 감싸 드러내 소비하거나, 농담으로라도 건강하다고 할 수 없는 환경에서 활동하는 이에게 속절없이 건강을 바라게 되는 속 답답한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4인조 여성그룹 하이키는 2022년 1월 데뷔한 신인 그룹이다. 올해 초 발표한 첫 미니앨범 타이틀곡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가 음원 차트를 역주행하며 화제에 올랐다. 발매와 동시에 반응을 얻지 못하면 하루에도 수만 곡씩 쏟아지는 새 음악 사이 묻혀 버리기 십상인 요즘, 하이키의 노래는 무려 한 달 반 만에 늦은 상승세를 탔다. 무엇보다 이색 마케팅이나 특별한 이슈 없이 노래가 가진 힘으로 사람들의 입소문을 끌어당겨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이 긍정적이었다. 노래가 반응을 얻자, 음반도 뒷심을 발휘했다. 전작 기준 발매 첫 주 2000여 장에 불과했던 하이키의 음반 판매량은 총 판매량 36,000장을 훌쩍 넘어섰다. 백만 장이 흔해진 분위기 속에서 소박해 보여도 중소 기획사로서는 여전히 드문 기적이었다.
건강함은 사실 하이키가 데뷔부터 앞세운 키워드다. ‘당당하고 건강한 아름다움’. 데뷔 싱글 제목부터가 ‘Athletic Girl’이었다. 음악과 콘셉트 모두에서 최근 유행하는 애슬레저 룩을 의식한 기획은 다음 곡 ‘RUN’까지 이어졌다. 트렌디한 팝 록 질감을 한여름의 케이팝답게 풀어낸 노래는 좋은 곡이었지만 와닿는 데가 없었다. 그리고 데뷔 1주년이 되던 날,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가 수록된 하이키의 첫 앨범 <Rose Blossom>이 발매되었다. 그 사이 멤버와 작곡가가 바뀌어 있었다. ‘피지컬적인 건강美에서 내적인 건강함에 포커싱을 맞췄다’는 테마도 새롭게 내세웠다. 갈 길을 찾지 못해 계기판만 빙글빙글 돌던 나침반의 바늘이 비로소 한 곳을 가리켰다. 그것이 정답이었다. 아스팔트 사이를 겨우 헤집고 나온 장미 한 송이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힘들었던 시간을 떠올리고, 투영하며, 공감했다. 모두가 내 향기를 맡고 취할 때까지 끝까지 버티겠다는 비명에 가까운 한 마디에 많은 이들이 위로받았다. 여기에 짧게는 3년, 길게는 9년까지 길었던 멤버들의 연습생 생활까지 서사를 더했다.
<Seoul Dreaming>은 그렇게 비로소 몸과 마음에 꼭 맞는 균형감을 찾은 하이키의 건강함이 빛 좋은 때깔을 자랑하는 앨범이다. 선공개되었던 더블 타이틀곡 ‘불빛을 꺼뜨리지 마(Time to Shine)’는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로 좋은 호흡을 보여준 작곡가 홍지상과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 곡이다.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의 자매곡처럼 들리는 노래는 ‘절대 꺾이지 않겠다’며 온몸에 부서질 듯 힘을 주고 버티고 있던 그때보다 한껏 여유로워진 태도를 보인다. ‘고갤 들고 끝까지 버티겠다’던 나와의 다짐은 겨우 피워낸 이 ‘불빛을 꺼뜨리지 마’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나 부탁이 아니다. 나 자신과 나누는 다짐이자 고백이다.
높은 건물로 빽빽해 하늘 한 점 보이지 않던 회색 도시는 보다 구체적인 지명 ‘서울’로 자리 잡았다. ‘Such a Beautiful City’라는 낭만적 부제가 붙었지만, 노래의 화자는 실은 그 누구보다 이 도시의 매정함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이다. 어떠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거리 음악가를 연상시키는 노랫말은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에 이어 데이식스의 영케이가 다시 한번 썼다. 케이팝의 건강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니 이보다 더 어울릴 순 없다. 노래는 경쾌한 리듬에 맞춰 온기 한 점 없는 차가운 콘크리트 위에서 자꾸만 스러지는 꿈을, 이 꿈이 끝날 때까지는 절대 깨지 못한다고 외친다.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진다. 뼛속까지 건강한 사람이 주는, 어떤 상황에서도 괜찮다고 짓는 웃음 같은 에너지가 하이키의 음악에 어려있다. 몸과 마음이 균형을 갖춘 꽃봉오리가 조금 더 피어났다. 건강히, 오래 피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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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