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음악 > 주목, 이주의 앨범
악동뮤지션에서 '악뮤(AKMU)'로 8년여간 활동을 이어간 끝에 발매한 이찬혁의 첫 번째 솔로 작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꽃폈다. 그 관심은 음악이 아닌 '행동'에서 발아한다. 음반이 공개되기 전, 의외의 장소에서 독특한 모습으로 목격되는가 하면 몇몇 음악 방송에서 보여준 예측 불가의 퍼포먼스는 그의 음악을 듣지 않고 보고, 읽게만 했다. 노래와 음반이 화제가 되지 않았고, 이찬혁의 행동이 연일 텍스트화 되어 온라인을 떠돌았다.
'다리꼬지마', '라면인건가' 등 일상적인 소재로 노래를 만들던 그가 사랑('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자유('Bench'), 그리고 신보와 같이 죽음을 노래하기 시작했지만 세상의 시선은 그 변화를 따라올 만큼 민첩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부터인가 이찬혁에게선 과거가 보이지 않았다. 대중은 여전히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땀난 손을 연신 닦으며 통기타를 쥐던 '찬혁이'를 기억하지만, 우리가 알던 그때 그 시절의 찬혁이는 이 자리에 없다.
이를 바로 보지 못할 때 대중과 이찬혁 사이의 에러(Error)가 극심해진다. 음반의 내러티브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번뜩이는 퍼포먼스가 '기행', '예술병' 등의 단어로 격하되는 것이다. 유독 이찬혁의 일거수일투족이 밈(meme)으로 소비되는 현상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매끈한 선율, 유기적인 수록곡, 담백한 무게감으로 죽음을 회고하게 하는 압축적 서사까지, 작품마다 완숙한 성장을 보였지만 상찬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신보는 지난했던 과거와의 완벽한 이별이자 이찬혁 성상 서사의 확실한 변곡점이다. 파워풀한 일렉트릭 기타로 죽음을 목격하는 순간을 다룬 '목격담', 완연한 EDM으로 사고 현장을 묘사하는 'Siren', 생의 마지막 파노라마처럼 스쳐 가는 기억을 복고풍의 신시사이저 선율 위에 녹여낸 '파노라마'. 앨범을 수놓은 11개의 수록곡은 사고, 죽음의 문턱, 이별, 죽음, 장례의 과정을 착실히 좇아가며 이야기를 쓴다.
하나의 콘셉트 음반으로 죽음이란 무거운 주제를 쓰지만 대중성을 놓치지 않았다. 이찬혁은 늘 대중적이며 친대중적인 음악을 만들었는데 그 작곡 능력이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귀에 감기지 않는 멜로디가 하나도 없다. 앨범의 중간 위치에서 삶의 후회를 논하는 '뭐가'는 발라드로 마음을 울리고 착하고 따뜻한 후크송 '내 꿈의 성'은 아기자기한 초창기 악뮤 음악을 떠올리게 한다. 또, 웅장한 가스펠로 작품의 문을 닫는 '장례희망'은 짜릿하다. 예상치 못한 가스펠이 터져 나올 때 저마다 각기 다른 감정을 터트릴 것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마음을 졸이던 어린 날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를 인정하고 이제 이찬혁을 다시 읽어야 한다. 죽음을 사유하는 철학적 접근에선 신해철이 엿보이고, 다양한 장르를 매끈하게 저울질하는 모습에선 윤상이 떠오른다. 이렇게 다양한 글감으로, 이토록 근사한 음반을, 주기적으로 만들어내는 음악가라니.
"찬혁이 바라보는 모든 것은 음악이 된다."
탈피, 환골, 변태. 에러 없는 성장이 가속도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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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