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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펜매뉴얼] 오은의 동네 사랑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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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를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 동네를 향한 사랑을 유지하는 방법은 바로 동네에서 길을 잃어보는 것이다. (2022.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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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대해 잘 알고 있는가? 동네를 사랑하는가? 동네를 잘 아는 것만으로는 동네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 동네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동네와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한다. 사랑이 너무 뜨거우면 부지불식간에 데고 마니까. 혼연일체가 되면 결국 자기 자신이 지워지고 마니까. 그런 점에서 나는 복을 타고났다. 길눈이 어둡기 때문이다.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익숙한 분위기에서 낯섦을 간파하는 데 능하다. 늘 다니던 길이 어색할 때가 많다.

동네를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 동네를 향한 사랑을 유지하는 방법은 바로 동네에서 길을 잃어보는 것이다. 어떻게 동네에서 길을 잃을 수 있느냐고? 놀라지 마라. 나처럼 길눈이 어둡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아무리 오래 산 동네라도 내가 아직 모르는 건물이, 골목이, 공간이 있게 마련이다. 시력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지만 낮과 밤의 풍경은 매일 달라진다. 시간대에 따라 동네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차가 없고 운전 또한 못하는 나는 이곳에 산 지 4년째 되는 해에야 동네에 세차장이 있는 걸 알았다. 사람은 자신이 관심 있는 데에만 눈길을 주곤 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3년 전부터 나만의 동네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높은 건물이나 유명한 건물 등 흔히 랜드마크 위주로 구성된 지도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고 또 내게 중요한 곳들로 지도를 채워나갔다. 헌 옷 수거함,('옷체통'이라는 이름도 사랑스럽다), 구석에 있어 아무도 앉지 않는 벤치(사람의 손이 타지 않으면 물건은 더 빨리 낡기도 한다) 꽃잔디가 수놓인 둔덕, 딱 세 명까지만 입장 가능한 분식집, 일반 가로등과 높이와 모양이 다른 가로등 등이 산책의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산책하다 발견한 멋진 장면들이 지도의 주요 구성 요소였다.

종이 위에 실제로 지도를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머릿속에는 내가 발들인 공간이 점점이 찍혀 있다. 발자국이 발자취가 되는 시간이었다. 나만 아는 아지트도 많이 생겼다. 밝을 때 찾으면 한눈에 들어오던 공간이 어둠 속에서 새로이 꿈틀거리는 것도 목도했다. 동네의 신비가 눈앞에 있었다. 발견은 발생으로 이어져 글을 완성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관찰과 상상은 길 위의 장면을 이야기로 만들어주었다. 같은 곳을 가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가려는 태도가 동네에서 길을 잃을 수 있게 해주었다.

동네는 단어를 눈으로 확인하는 곳이기도 하다. '돌짬'이라는 단어는 '돌과 돌 사이의 갈라진 틈'을 뜻한다. 이 단어를 알게 된 지 2년 만에 동네 산책 도중 돌짬에서 피어난 하얀 꽃을 보았다. 돌단풍이라는 이름의 식물이었다. 머릿속 지식이 경험을 만나 마침내 '체득'되는 순간이었다. 동네는 '자기가 사는 집의 근처'를 뜻한다. 탐(探)하는 마음이, 익숙한 곳에서 낯선 것을 발견하려는 태도가 동네를 사랑하게 한다. 5년간의 이곳 생활을 마치고 곧 이사할 예정이지만, 어디에 가더라도 나는 길 잃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오은

2002년 등단해 『나는 이름이 있었다』, 『유에서 유』, 산문집 『다독임』 등을 펴냈다. 여전히 가장 즐겁고 잘하는 일은 시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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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오은(시인)

2002년 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너랑 나랑 노랑』 『유에서 유』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등을 썼으며, 현재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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