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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완의 다음으로 가는 마음] 떠난 마음은 다시 돌아오는가

제 2화. 떠난 마음은 다시 돌아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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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시 매일매일 야구를 보고 소리 지르고 울고 기뻐하는 날이 올까. 그 마음은 돌아올까. 아니면 내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는걸까. (2022.10.18)


<채널예스>에서 격주 화요일
영화감독 박지완의 '다음으로 가는 마음'을 연재합니다.


일러스트_박은현

나는 야구를 정말 좋아했다. 지금은,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누가 물어보면 한국 프로 야구는 좀 덜 보지만 야구라는 스포츠는 정말 좋아한다고 말한다.

돌아보면 야구는 나의 기질과 아주 잘 맞는 스포츠였다. 직접 해보는 일은 잘 없었지만 팬으로서 말이다. 규칙은 세세하지만 작전이 복잡하지는 않고, 시즌 동안에는 일주일에 하루 빼고 매일 경기를 하기 때문에, 그 데이터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그걸 가지고 오늘의 경기를 예측할 수 있다. 경기장에 직접 가서 보기도 하지만 매일매일 중계가 되고 있으니, 언제 어디서든 스코어를 확인하거나 볼 수도 있다. 심지어 경기장에 가서도 중계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2008년부터 히어로즈의 팬이 되었는데 사실 어릴 때도 야구는 좋아했고, 그건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 그렇지만 같은 팀을 응원하기를 원하시진 않았는데, 부산 출신인 부모님 중 아버지는 당연히 롯데를 응원했지만, 어머니는 특이하게 OB를 좋아했고, 내 동생은 엘지 어린이 팬클럽이었다. 나는 그 모든 팀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러다 갑자기 히어로즈를 응원하게 된 것이다.

히어로즈가 사용하던 목동 야구장은 내가 자주 가는 도서관에서 걸어서 10분이 채 안 되는 곳에 있었다. 지금도 다른 구장들이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7, 8회가 되면 무료로 입장이 가능했다. 나는 도서관에 있다가 집에 가는 길에 들렀다.

야구장은 아름다웠다. 경기장 안이 보이지 않을 때부터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합창 소리처럼 들려온다. 오르던 계단 끝에 환하게 켜진 조명탑과 초록색 잔디가 보이면 누구든 가슴이 두근거릴 것이다. 모두 맛있는 것을 먹고, 마시고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을 부르고 함께 춤추고 노래한다. 특히 아이들에게 누구도 조용히 하라고 하지 않아서, 글러브를 가져온 어린이들이 모두 응원가를 목이 터져라 부르고 있다. 물론 이기고 지는 것에 따라 분위기가 다를 때가 많지만, 내일도 야구는 또 하니까 연패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이다. 목동경기장은 외야도 없어서 더 시원한 맛이 있었다.(지금은 돔 경기장으로 키움 히어로즈가 옮겨갔고, 비나 더위를 피하기는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답답함을 느낄 때가 있었다)

히어로즈, 현재는 키움 히어로즈이고 나는 이 팀을 사랑했다. 그러나 현재 구단을 이해하기에는 나의 사랑이 작아서인지 미워하는 마음을 감당할 수 없어 잠시 내려놓은 상태이다. 선수들은 여전히 너무 좋지만 그들이 팀을 옮겨가거나 남고, 또 어떤 방식으로 다루어지는지 생각하다 보면 머리가 너무 복잡해진다.

내가 이 팀을 응원하게 된 것은 사실 히어로즈의 팬들 때문이었다. 이미 팬이 많은 팀은 팬들 역시 많은 것을 겪은 탓인지, 선수와 감독을 향해 욕도 많이 하고 알 수 없는 자부심도 대단하여 아무튼 내게는 좀 공격적으로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 그 팀에는 야구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어떤 팬들은 오직 선수만 존재하는 것처럼 굴 때가 있는데 그것도 좀 불편했다.

그 당시 히어로즈는 스폰서 이름 없이 그냥 '히어로즈'였을 만큼 경제적인 상황이 좋지 않았고, 팬도 많이 없었는데 나처럼 집이 가까워서 우연히, 혹은 현대 유니콘스의 오랜 팬이었다든지 하는... 아무튼 사람들이 대단하게 쳐주지 않는 이유로 사람들은 경기장에 와서 야구를 보고 그 팀을 응원했다. 그리고 병살타(타자 자신과 앞 주자까지 모두 아웃 시키는 플레이)를 치고 들어오는 선수에게도 야유를 보내기 보다는 다음에 잘 하라는 식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가끔 팬이 많은 팀과 경기할 때는 홈팀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경기장에 우리의 숫자가 너무 적었지만, 그것에 화를 내거나 괴로움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냥 우리는 저 팀의 야구가 좋아서 왔고 할 수 있는 만큼 응원하리라, 하는 태도가 멋있었다. 그리고 선수들도 그걸 잘 알았다고 느낀다. 왜냐, 야구는 기록의 경기이니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당시 히어로즈는 홈 경기 승률이 매우 높았다. 내가 경기장에 가서 응원하면 제법 많이 이겨주었다.

나도 그들도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도 될까. 그 무렵 나는 도서관에서 도대체 누가 읽어줄지 알 수 없는 시나리오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좀 더 힘을 낼 필요가 있다고 느낄 때 히어로즈 응원가를 들었다. 효과가 좋았다.

나는 뭐든 책으로 먼저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라 도서관에서 검색어에 '야구'를 넣어서 이런저런 책을 빌렸다. 믿을 수 없이 많은 책이 있었다. 그 당시 도서관에만 300권 가까운 책이 검색되고 미국과 일본의 책, 그리고 한국의 야구선수들의 이야기, 팬들이 쓴 각종 고백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차례차례 책들을 읽었다. 그리고 연말에는 프로야구 스카우팅 리포트를 샀으며 야구가 잠깐 나오는 소설들도 찾아보게 되는데 그 중엔 종종 철학서도 있었다. 집에 와서는 야구와 관련된 영화를 보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야구 영화는 캐빈 코스트너가 나오는 한국어 제목으로 <사랑을 위하여>. 원래 제목은 <For Love Of The Game>이다. 정말이지 눈물 없이 볼 수 없다. 그 배우가 나오는 <꿈의 구장>도 좋다. 그 영화 역시 어린이였던 나를 엄마가 호암아트홀에 데려가서 보여주었다.

새로 만나는 사람 특히 남자들에게는 내가 야구를 좋아한다는 얘기는 잘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히어로즈 선수들의 대부분의 기록을 알고 있었고(종종 생일도 외웠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구단의 선수들 상황도 알 수밖에 없었으며, 무엇보다 매일 KBO의 모든 경기를 하이라이트로 보고 인터뷰를 찾아보는 광인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은 나에게 야구를 가르치려고 했다.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는데, 내가 더 많이 알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무안을 줄 수도 있고 혹은 새로운 정보를 줄 수도 있는 그런 상태라는 것을 나 혼자 즐겼다. 친해지지 않을 테니 내가 광인인 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자,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자주 일어나는 일이 되어 그냥 말하지 않고 거짓말을 붙였다.

"야구 좋아하세요?"

"네 전 남친이 좋아해서, 조금."

최근에는 사실 야구를 열심히 보지 않는다. 때때로 야구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 때도 있다. 감정 소모도 되지 않고, 시간도 아낄 수 있는 일이지만 지나간 사랑의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오늘은 정말 좋아했던 선수가 은퇴하는 날이었다. 사실 지금 소속이 히어로즈도 아니고 심지어 옮겨간 팀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우승도 했으니, 그냥 정말 내 마음 속에서만 이어져 있는 선수인데 그가 프로 야구에서 선수를 그만 둔다는 사실이 나를 이상한 감상에 젖게 만든다. 정말 다행스럽게 지금 그의 소속팀은 그를 위해 은퇴식을 준비해주었다. 아마 오늘 잠들기 전에 그의 인터뷰는 찾아볼 것이다. 잠을 설칠 정도로 슬프지는 않을 것 같은데, 또 모르지.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 중 하나는 히어로즈 팀의 시구였다. 아이돌이나 화제의 인물들을 불러서 시구를 하게 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때 히어로즈는 '우리 주변의 숨은 영웅'을 찾아서 시구자로 부르는, 지금 생각해도 정말 멋진 시도를 했다. 특히, 기억나는 날 중 하나는 그 주에 은퇴하시는 목동 야구장 그라운드 관리인이 자신이 오랫동안 일했던, 그러나 자신의 것은 아니었던 그라운드에서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면서 시구를 하고 그날 5회가 끝나자 자신이 늘 하던 대로 그라운드를 살피러 다시 나왔던 날이었다. 나는 야구장에서 알게 되는 사람들과 거기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아주 좋아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야구와 관련된 이야기를 쓰리라, 꼭 만들겠다 다짐했다. 그때 당장 쓰지 않았던 이유는 너무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일반 관객들이 보기에는 조금 이상한 연애편지 같을까봐,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 이사 온 동네 가까운 고등학교에 야구부가 유명한 모양이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며 나는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편인데 야구 유니폼을 입고 큰 배낭에 야구 배트를 들고 걸어가는 학생들과 종종 마주쳤다. 고된 훈련을 해서일까, 지쳐 보이기도 했는데 그냥 그 학생이 야구하는 걸 언제 한번 보고 싶었다. 그 학생은 대한민국 최고의 타자, 최고의 외야수 이런 게 되고 싶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즐겁게 야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시 매일매일 야구를 보고 소리 지르고 울고 기뻐하는 날이 올까. 

그 마음은 돌아올까.

아니면 내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는걸까.


*이 글은 지난 여름의 어느 날 써 내려간 일기를 바탕으로 수정한 글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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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지완(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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